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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물 속 피폐 엑스트라가 되었다 (56)화 (56/92)

힐링물 속 피폐 엑스트라가 되었다

56화

최근, 그녀들의 이슈는 단연코 비체라발리에 입양될 예정이라는 어린 아가씨였으니까.

“오늘도 귀여우신가요?”

“정말 귀여우셨어요!”

“부럽다…… 가까이서 보면 정말 눈이 부셔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땠어요?”

“네! 저는 제대로 마주 볼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눈이 부신 것을 겨우 참고 보았는데, 제인이 말했던 것처럼 피부가 굉장히 하얗고, 볼이 진짜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하게 눌러 보고 싶을 정도로 귀여우셨어요.”

다른 하녀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아가씨’에 관해 설명하는 연노랑빛 머리카락의 하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개중 누군가가 물었다.

“아가씨께서 비체라발리에 오셔서 다행이에요.”

“그쵸? 도련님도 즐거워 보이시고.”

“맨날 도망치시기는 하지만요.”

키득키득. 하녀들이 웃었다.

“그래도 이제 곧 함락되지 않으실까요? 아가씨께서 대단한 기세던데.”

어느 하녀의 말에 다른 하녀들이 고개를 주억였다. 확실히. 아가씨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았다.

솔직히 자신들이었다면 지금처럼 도련님에게 다가가지 못했을 것이다. 도련님은 아직 어린 소년임에도 불구하고 비체라발리 가문의 사람답게 보고만 있어도 심장이 서늘해질 만큼 타고난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그럼에도 아가씨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해사한 미소로 웃음을 짓게 했다.

정말이지 보고 있으면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저는 일주일이면 도련님께서 포기하실 것 같아요.”

어느 하녀가 힘주어 말하자, 여기저기에서 한마디씩 쏟아 냈다.

“저는 사흘이요!”

“저는 내일이요!”

그러다가 모두들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구석에 모인 하녀들이 속삭이는 와중에도 저 멀리에서 레이블라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로이안! 저거 봐! 무지개가 떴어!”

비체라발리가 사람들의 얼굴에 절로 웃음꽃이 피게 하는, 사랑스러운 목소리였다.

* * *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

레이블라가 로이안을 따라다닌 지 정확히 일주일 후. 이리 도망치고 저리 도망치던 로이안이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든 채 레이블라의 앞에 섰다.

레이블라는 제 앞에 선 로이안을 바라보았다. 도저히 참지 못해 왔다는 듯이 그는 불만 가득한 표정을 한 채 삐딱하게 서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레이블라는 우선 그에게 수건을 건네었다. 하지만 로이안은 이번에도 그녀가 내민 수건을 거칠게 쳐내었다.

“나한테 바라는 게 있을 거 아니야.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용건을 말해.”

이 정도라면 제법 로이안으로서는 고개를 숙이고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할까?’

아무 사심 없다고. 그저 친해지고 싶을 뿐이라고 할까?

공작과의 사이를 풀려면 로이안과 먼저 친해지는 것이 좋았다. 그래야 만남을 주선할 때 보다 순순히 따라 줄 테니 말이다. 제 말에 더 귀를 기울일 수도 있고.

하지만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알 수가 없었고, 곧 여기를 떠나야 하는 레이블라로서는 얼른 이 사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공작님을 어떻게 생각해?”

“……지금, 그게 궁금해서 날 이렇게 괴롭힌 거야?”

그가 허탈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고는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레이블라를 쏘아보았다.

“왜? 내 마음이라도 알아 오래?”

“아니. 그냥 내가 궁금했어.”

레이블라는 진실을 말했지만, 로이안에게 그녀는 이미 비체라발리 공작의 첩자라도 되는 듯이 인식된 모양이었다.

혀를 차면서 고개 돌리는 모습이 단단히 화가 난 기색이었다.

이렇게 가면 또 언제 대화할 수 있을지 몰랐다. 떠나야 할 날은 다가오는데, 공작과 로이안의 오해를 풀기는커녕 두 사람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거기에 내내 업무니, 환영식이니 바빠진 비체라발리 공작의 일정 탓에 아직도 마석 광산의 ‘마석’이란 말조차 꺼내지 못했고, 검술 훈련조차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레이블라는 등을 보이는 그를 붙들기 위해 다급히 소리쳤다.

“아침마다 네 방문 앞에서 노래 부를 거야!”

“……뭐?”

“또, 수업 시간에 가서 대답도 가로채고 계속계속 쫓아다닐 거야!”

“너 진짜……!”

“내가 보이지 않길 바라면 말해 줘. 그럼 나도 너에게 좋은 선물을 줄게.”

“선물 따위……!”

“황녀 전하 일인데?”

“……뭐?”

‘황녀’를 언급하자 로이안의 반응이 달라졌다.

지금껏 미운 세 살처럼 굴던 그가 성난 사자라도 된 것처럼 사납게 변했다. 목소리는 전에 없을 만큼 위협적이었다.

“네가 뭔데 그분을 언급해.”

“뭐긴 뭐야. 생명의 은인이지.”

딱히 황녀와 친밀한 굴며 유세를 부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로이안이 이렇게나 까칠하게 구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표면으로 보이는 사실을 추켜세워 권위를 높이는 수밖에.

레이블라가 싱긋 웃으면서 그녀와의 인연을 자랑하자, 로이안이 입술을 굳게 다물면서 쏘아보았다. ‘생명의 은인’이라는 발언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은 기색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눈싸움하다가 결국 그가 한발 물러섰다. 조금은 수그러든 목소리로 물었다.

“황녀 전하와 관련된 일이 뭔데.”

“내 입을 열고 싶으면 네 이야기부터 해. 그게 순서잖아.”

“……하.”

로이안이 기가 찬다는 듯이 은빛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하지만 내심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저 질문에 답을 할까, 말까.

100년 묵은 나무처럼 줏대가 강한 녀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황녀를 운운하는 말 한마디에 갈대처럼 살랑살랑 흔들릴 줄이야.

레이블라는 지난 일주일이 몹시 아까워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황녀 이름을 댈 것을.

역시 사랑 앞에서는 이 세상 최고의 완벽남이라는 남주라도 바보가 되는 모양이었다.

짜게 식은 눈으로 줏대 없는 남주를 보고 있을 때였다. 고민을 마친 로이안이 한숨을 쉬듯 제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 내용은 예상을 뒤엎는 수준을 넘어 충격적이었다.

“그 사람이 어머니를 죽였으니까.”

……뭐라고?

레이블라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로이안을 보자, 그가 재차 힘주어 말했다.

“비체라발리 공작이, 어머니를 죽였다고.”

* * *

“오늘은 정말로 바쁘셔서, 다른 만남은 거절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로이안의 이야기를 들은 직후 레이블라는 다급히 비체라발리 공작을 찾았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헤넌의 어색한 미소와 만남을 거부하는 말이었다.

‘들었구나.’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했다고 하나, 이 집안 안에서 비체라발리 소공자를 지켜보는 눈이 없을 리가 없었다.

로이안의 어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셨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당사자에게 사실을 듣는 게 제일 빠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성내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바로 당사자에게 찾아온 것은 민감한 내용을 당사자의 허락도 없이 뒷조사하듯 캐내는 건 옳지 못한 일 같았다.

게다가 뒷조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비체라발리 공작이 모를 리 없으니, 차라리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왔는데. 이렇게 만나 보지도 못한 채 거절당할 줄이야.

그럼 다시 뒷조사를 하고 들 수밖에 없었다.

주먹을 꾹 쥔 레이블라가 헤넌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헤넌은 알고 있죠? 내가 여기 왜 왔는지.”

“……그야.”

“알려 줘요. 네?”

레이블라가 두 손을 모아 부탁하자, 헤넌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곤란해하면서도 말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모양새였다.

‘소공자와 공작이 사이가 나쁜데 헤넌이라고 신경 안 쓰일 리가 없지.’

……조금만 부탁하면 되겠는데?

잠시 고민하던 레이블라가 그에게 제안했다.

“알려 주시면 제가 필요한 정보를 줄게요. 물론, 제가 아는 선에서만요.”

“……정보요?”

“잊었어요? 제 덕에 비체라발리에 들어온 첩자도 잡아내셨잖아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잠시 고민하던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춰 주었다. 그리고 몰래 속삭이듯 물어 왔다.

“그럼 펠리시티에서 키운 회계사들에 대해 아는 게 있으십니까?”

“살아 있는 사람들 말이죠? 네. 알고 있어요.”

펠리시티는 대대로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며, 여러 분야에 인재들을 키워 왔다. 대놓고 지원했는지, 몰래 도와주었는지 저마다의 차이는 있지만 펠리시티에서 배출한 인재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같이 수학한 이들도 있으니, 정보 제공이 어렵지 않았다.

“개중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음. 네. 10살 때 아카데미에 입학할 만큼 수재가 있어요. 세 사람 정도면 될까요?”

“그 정도면 충분하죠.”

“지금은 타 가문에서 일하고 있지만, 헤넌이라면 데리고 올 수 있겠죠?”

“물론입니다. 말씀만 해주시면…….”

그러자 레이블라가 입을 꾹 다물고선 그를 빤히 보았다. 거래는 이렇게 하지 않지요. 라는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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