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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약혼자가 내 꽃길을 방해한다-6화 (6/121)

6화

티스베가 소어를 조금도 의심하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당연하지만 첫 번째는 소어가 지나치게 착하고 선한데다 정직하기까지 한, 티스베의 눈으로는 천사나 다름없는 인물이라서.

그리고 두 번째는, 놀랍게도 티스베 본인의 문제였다.

그녀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것들에게 지독하게 무심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이 사교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녀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사교술은 필수였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티스베가 사람들의 시선에 언제고 지쳐 있었다는 뜻이 되기도 했다.

돌이켜 보자면, 티스베의 주변은 언제나 그녀를 공격할 수 있는 것들로 넘쳐났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눈과 귀를 닫았다. 주변에 무심해졌다.

‘아마도 본인은 그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지만.’

아무래도 좋다.

하고, 소어는 생각했다.

그의 시선은 도로 한편, 조금 전 칼릭스트의 문장을 단 마차가 떠난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풍경 위로 조금 전의 일을 그리는 중이었다.

땅거미 질 즈음 그의 약혼녀와 함께 카페를 나와,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었던 것을.

-벌써 해 질 시간이네요. 오늘도 즐거웠어요, 소어.

-당신께서 즐거우셨다면 저 역시 기쁩니다.

소어의 대답에, 티스베는 어쩐지 쓸쓸한 표정이었다. 어쩌면 애잔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마치, 그 말이 기쁘면서도 슬픈 듯한 표정.

사실 티스베는 언제고 그랬다. 소어가 티스베를 위하는 말을 할 때마다 매번.

-늘 상냥하게 말해 줘서 고마워요, 소어.

그래서 소어는 늘 의아했다.

티스베가 자신에게 뭔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매번 그런 표정인 건지.

왜 매번.

-내가 아는 사람들 중 당신만큼은 꼭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말을 하는 건지.

가능하다면 직접 묻고 싶었다. 무엇이 당신을 슬프게 만드는지. 왜 매번 나를 볼 때 그런 표정을 짓는 건지.

또, 왜 가끔은 영영 떠날 사람처럼 구는 건지.

……물론, 그렇게 다그쳐 묻는다면 그의 사랑스러운 약혼녀는 분명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할 것이다.

자신은 단 한 번도 그의 앞에서 그렇게 굴었던 적이 없었다면서.

‘내게 말씀하실 생각이 없으시다면 굳이 캐묻진 않겠지만.’

한 가지 다행인 일이 있다면, 최근 티스베가 그토록 슬퍼 보였던 이유를 소어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빌어처먹을 것들이 그의 고결하고 무구한 약혼녀를 건드렸기 때문에.

체르닐 경관, 마네트 후작, 그 외 버러지들.

티스베의 머리에 기억될 가치조차 없는 것들이 감히 그의 성녀께 삿되게 입을 놀렸다.

그 쓰레기들은 죽을 때도 시끄러웠다.

-고, 공작! 내가 잘못했네. 아니, 아니. 잘못했소. 실언이었소! 워, 원한다면 공녀께 직접 사과를……

-제발, 자비를 베푸십시오, 각하! 살려만 주신다면 다, 다시는 눈에 띄지 않겠습니다!

기세등등하게 티스베를 매도할 때는 목이 빳빳하던 것들이, 자비를 베풀어 달라며 조아릴 때는 무릎조차 어찌나 가벼웠던지.

하지만 자비는 신의 몫이니, 소어는 한갓 인간답게 그들을 모두 신의 품으로 보내 주는 몫을 맡았다.

‘좀 더 고통스럽게 죽였어야 했는데.’

마차로 돌아가는 소어의 구둣발이 날카로운 소음을 냈다.

마차에 오르자,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의 솔정이 모자챙을 까딱여 인사했다.

“다녀오셨습니까, 각하. 만남은 즐거우셨는지?”

“늘 당연한 걸 묻는군, 라스.”

라스라고 불린 진녹발의 청년은 마차 안에서 내내 기다렸던 것에 제법 몸이 찌뿌둥했던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곤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긴 합니다만, 근 며칠 약혼녀 분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셨잖습니까.”

“아, 그랬지.”

“한 건 하면 처리할 게 유독 많아야지요. 그럼 이제 공작저로 돌아가는 겁니까?”

라스의 물음에, 소어는 고개를 저었다.

“너희가 고생한 건 안다만, 생각보다 처리가 미숙했던 것 같군. 마저 처리할 부분이 생겼다.”

“오늘은 야근이군요, 신나라.”

전혀 신나지 않은 목소리로 라스가 말하고, 소어는 익숙하다는 듯 무시하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라스에게 넘겼다.

조금 전 티타임에서 티스베가 보고 있던 것.

1면에 티스베의 살인 의혹을 대문짝만하게 실어 둔 바로 그 신문이었다.

신문의 우측 상단에는 발행 일자와 함께 발행사가 쓰여 있었다.

헤링턴 신문사.

“빚쟁이들을 좀 보러 가야겠다.”

소어의 말에 마차가 출발하고, 그로부터 며칠 뒤 헤링턴 신문사의 경쟁 신문사의 1면에 실린 헤드라인은 이러했다.

[헤링턴 신문, 외교부 장관과의 유착 밝혀져……모든 것은 헤링턴의 막대한 빚 때문?]

* * *

덜컹이는 마차 안.

팔락, 티스베의 손에 들린 신문이 바스락거리며 가벼운 소음을 만들었다.

지금 티스베는 놀람을 금치 못하는 중이었다.

“정말, 망했네.”

“헤링턴 신문사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도 놀랐어요. 그렇게 큰 신문사가 하루아침에 스러지다니.”

티스베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하녀가 신문을 슬쩍 보고는 알은체를 했다.

“사장이 그렇게 도박 빚을 많이 졌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건실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는데. 다들 감쪽같이 속았지 뭐예요.”

“그러게……. 듣긴 했지만 정말이네.”

티스베의 중얼거림에, 하녀가 동그랗게 눈을 떴다.

“아가씨는 알고 계셨어요?”

“알고 있다고 하기엔 좀 그렇고. 살짝 듣기만 했어. 헤링턴에 빚이 많다고.”

하녀는 그 말을 ‘고위 귀족들 사이에서는 이미 헤링턴 신문사의 빚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정도로 이해했던지,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티스베와 그리 친밀한 관계인 하녀도 아니었던 데다, 주인의 일을 캐묻는 것 역시 예의가 아니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티스베는 그 오해를 정정해 줄 생각이 없었다.

‘무엇보다 오늘은 거짓말을 하고 나오기도 했고 말이지.’

신문을 접어 내린 티스베의 착잡한 시선이 차창에 가 닿았다.

빠르고 경쾌하게 움직이는 차창 밖의 풍경과 별개로, 티스베의 속마음은 복잡했다.

이유는 당연하지만, 거짓말 때문이다.

티스베는 근 며칠 밖에 나가지 못했다. 소어와 만나고 온 것이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 그날의 만남이 티스베의 마지막 외출이었으니 더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티스베가 소어와의 만남에서 돌아온 다음 날.

티스베의 할아버지, 칼릭스트 공작은 그녀를 데려다 놓고 말했다.

-당분간 외출은 삼가해라.

오랜 군인 생활로 딱딱함이 몸에 배인 칼릭스트 공작다운 명령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었을 때, 티스베는 생각했다.

‘올 것이 왔구나.’

<괴물꽃>에서도 티스베는 외출 금지를 당하니까.

사유는 간단하다.

-너도 알겠지만, 널 향한 여론이 좋지 않다. 그러니 당분간 사적인 외출은 삼가는 게 네 신상에도 좋을 게다.

비록 칼릭스트 공작이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살인 혐의까지 받고 있는 티스베가 외출이 잦아 좋을 게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칼릭스트 공작의 말은 하나뿐인 손녀딸에게 하는 것이라기에는 무척 딱딱했지만.

그는 작중에서도 그 딱딱함 때문에 손녀딸과 사이가 데면데면했다고 나온다. 아니, 오히려 남에 가까운 사이였다.

칼릭스트라는 이름이 없었더라면 서로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은 무정함.

‘실제로 나랑도 그렇고.’

그래도 작중의 티스베는 하나뿐인 혈육인 할아버지에게 정을 바라 종종 그의 곁을 맴돌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티스베는 무심한 할아버지의 정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주 오래 전 망명을 계획했을 때부터 티스베의 관심사는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러니 사이가 가까워질 수 있을 리가.

어쨌거나 여기서 중요한 건 그녀가 외출 금지를 당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예외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소어였다.

-약혼자를 만나는 것까지는 허락해 주겠다. 다른 건 안 돼.

-그럼, 다음 주에 소어와 저녁 약속이 있는데 그건 다녀와도 되나요?

-……마음대로 해라. 대신 하녀를 데려가도록.

감시역을 붙이겠다는 거다.

그러나 명령을 거부할 권리 따위는 처음부터 티스베에게 없었기에, 티스베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소어와의 가짜 만남을 이야기하고, 감시를 붙이더라도 티스베는 오늘 꼭 외출을 해야 했으니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 암시장의 경매에서 루넷 영식이 죽는다.

티스베는 그걸 막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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