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26화 (26/152)

■ 제 26장 :

절벽 밑에 도착한 은성이는 돌 조각이 울퉁불퉁한 화강암의 석벽중에서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매끄러운 석벽이 있는 부위로 다가섰다. 마침 그 앞에는 오백년은 묵었음직한 고목이 위치하고 있어서 은성이의 모습이 교묘하 게 감추어지는 장소였다.

석벽앞에 선 은성이가 화강암 절벽에 오른손을 대자 놀랍게도 단단하기가 이를데 없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절벽속으로 은성이의 오른손이 팔꿈치 부위까지 쑥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잠시후 은성이가 오른손을 석벽속 에서 빼어내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눈앞에 있는 화강암 절벽이 갈라지더니 사람 두명은 충분히 들어갈 정 도의 동굴이 나타난 것이다. 은성이는 이곳이 무척이나 익숙한지 아무 거리낌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헉! 누...누구냐?"

동굴안에서 무척이나 다급한 음성이 들려 왔다. 이장쯤 더 나아가니 은성이의 눈앞에 손에 짤막한 몽둥이를 들고 갑자기 나타난 침입자를 경계하는 듯한 중년인이 한명 서 있었다. 중년인은 은성이의 이곳 저곳을 한참 을 바라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도...도련님 아니십니까?"

그리고는 갑자기 들고있던 몽둥이를 버리고 은성이에게 다가왔다.

"도...도련님..., 흑흑흑"

동굴안에 있던 중년인은 정집사였다. 정집사는 그동안 마음 고생이 심하였는지 삼년사이에 무척이나 초췌해지 고 늙어 있었다.

"정집사! 초...초금의가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아...아버님은...?"

아무 말도 안하고 계속해서 흐느끼기만 하는 정집사에게 은성이가 불안한 심정으로 말을 꺼냈다. 이미 금아를 통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지만 정집사에게 부정 하듯 물어보는 은성이는 제발 다른 말이 나오기 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 짧은 말을 꺼내기에도 얼마나 많은 주저함이 있었는지 은성이의 목이 꺼칠해지고 입술도 까맣게 타들어 가 고 있었다.

"흑흑, 가주님은 ..., 돌아 가셨습니다."

"아..."

은성이는 다리가 풀리고 머리에 어지럼증이 생기는 것을 느끼었다.

결국 휘청이다 옆에 있는 돌탁자에 걸쳐앉은 은성이는 고개를 양 다리 사이로 푹 파묻은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런 은성이에게서 조그맣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어 오기 시작하였다.

눈물을 흘리던 정집사의 울음소리는 은성이의 애처로운 모습에 더욱더 커져갔고 이에 감응 받아서인지 은성이 의 흐느낌소리도 차츰 커져만 갔다. 초금의가에 도착한 해적단 무리는 굳이 은성이의 모습을 찾기 위해 고생 할 필요조차 없었다.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한 이들은 절벽 밑에서 인공으로 만든 것 같은 동 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안에서 한없이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들리어 오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해적단 무리는 동굴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하고 이각(30분) 동안이나 서 있어야 했다. 한참 후에 동굴안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자 그 때서야 해적단 무리는 동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정집사! 내상을 입은 환자들이니 일단 안정을 취하게 자리를 마련해 주시지요!"

울음은 그쳤지만 눈동자와 눈 주위가 빨갛게 물들어 있는 은성이가 아직도 조그맣지만 서럽게 흐느끼는 정집 사에게 말했다. 환자들이 들어오자 소매를 들어 연신 눈가에 흐르던 눈물을 닦던 정집사가 몸에 베인 동작으 로 해적단 무리를 안내 하였다.

"환자들은 이쪽 석실로 옮겨 주시지요"

정집사가 안내하는 석실로 들어서던 지룡이 속으로 나직이 감탄을 터트렸다.

이곳 암동은 인공으로 만든 것이 분명하였다. 들어오는 입구도 충분히 넓었지만 이장 정도 안으로 들어서면 사람이 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삼장길이의 정방형 석실이 나타났다. 석실에는 들어오는 입구 부근을 제외한 삼면으로 다시 한 개씩의 석실이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 들어서는 석실은 매우 시원하고 정갈하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환자들을 진료한 적은 없었는지 환자들이 누울 침상등의 시설은 보이지 않았다. 지룡의 지시 에 의해 해적단의 부하들이 침상을 만들기 위해 동굴 밖으로 나가자 은성이는 중앙 석실에서 정집사에게 궁금 한 것을 물었다.

"정집사,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해 주시지요!"

정집사는 일년전의 참혹함을 다시 떠올리기를 주저하는 듯 망설이다가 다시금 눈가에 물기가 어리더니 조금씩 말문을 열기 시작하였다.

"작년 이맘때입니다. 의가에서 사용될 식량과 옷가지 등을 구입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용안(龍安)에 내려 갔었을 때입니다. 점심때쯤 되었는데 왜구들이 갑자기 나타나 불을 지르고 약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왜구들이 침입했는지는 모르지만 후일 들어보니 이삼백명쯤 되었다고 합니다. 오전에 계약을 마치고 마 침 객잔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왜구들은 객잔까지도 들어와서 마침 식사중이던 무술인들과 싸움이 붙었습 니다. 그놈들의 잔인하고 흉악함은 말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했습니다."

정집사는 목이 마려운지 옆에 놓아둔 자기병속에 든 물을 벌컥벌컥 마신후 계속 말을 이었다.

"왜놈들과 싸우는 무술인은 물론 한쪽에서 덜덜 떨고 있는 손님들중 반수 이상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습니다.객잔에서 왜놈들이 물러난 후 어쩔줄 모르고 있던 차에 관군과 인근의 무술인들이 객잔으로 들어오고서야 안 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그날 관군과 인근의 무술인들이 똘똘 뭉쳐 간신히 왜놈들을 물리쳤지만 시내 곳 곳은 불에 타고 관군과 무술인은 물론 애매한 주민들도 숱하게 죽거나 다쳤습니다. 왜놈들이 도망간 후 서 둘러 초금의가에 왔는데 식솔들은 모두 죽고 의가는 정문만 남겨두고 모두 불에 타서 폐허로 변해 있었습니다 . 가주님과 그 많은 식솔들중에 칠성이란 놈만 숨이 조금 붙어 있었는데 왜구들의 만행이었답니다."

정집사의 눈가에 어리던 물기가 많아지더니 뺨위로 조금씩 흐르기 시작하였다. 한탄조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침착하던 목소리도 다시금 조금씩 떨려 가고 있었다.

"그리고 가... 가주님 시신은 돌아가신 가모님 무덤옆에 안치시켰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정집사는 입을 다물었다. 마치 말을 더 많이 하면 말이 오열로 변하게 될 것을 두려워 하는 것 같았다. 한편 옆 석실에 누워있던 해적단의 지룡과 용왕은 자연스럽게 정집사의 한스런 고백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자신들을 치료한 어린 의원의 신세가 길 잃은 외기러기 마냥 매우 가여워진 것이다.

해적단의 치료는 매우 순조롭게 되어지고 있었다.

해적단의 부하들이 인근 숲속에서 잘라온 나무들로 제작된 침상위에 각각 누워있는 용왕과 지룡, 노룡은 지금 정집사가 정성스럽게 달인 탕약을 받아 마시고 있었다. 해적단 무리들에게는 운이 많이 따르는가 보았다.

죽음의 위기에서 은성이를 만나고 내상을 치료하고 몸을 보하게 하는데 필요한 약재는 마침 이곳 상빙고에 보 관 되어져 있었다. 게다가 명의랄 수 있는 은성이도 옆에 있었다. 이들을 치료하면서 은성이는 새로운 의술의 경지에 들어서고 있었다. 환자의 신체에 손가락등을 이용한 직접적인 접촉없이 공간을 격한 채 기를 이용해 진맥하고 치료를 하는 경지였다.

이미 태극진기를 완성하고 중단전이 발달된 은성이는 허무경 6단계의 수련법을 대부분 완성하고 있었으므로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상의를 벗고 침상에 앉아있는 노룡은 조금은 여윈 듯 하지만 단단한 근육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새겨져 있었다.

노룡은 얼굴에 표정이 없고 왼쪽 눈이 없어 검은 안대를 한 것만 빼면 잘 생겼다고도 할 수 있는 얼굴이었다.

노룡이 앉은 침상에서 석자쯤 떨어진 곳에 은성이가 작은 의자에 앉아 정좌해 있는 노룡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은성이의 눈은 감기어져 있었다.

은성이가 심안을 발휘하여 노룡을 살펴보자 태극진기가 자연스럽게 반응하며 노룡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노룡의 몸 속으로 흘러 들어간 태극진기의 양은 매우 적었지만 뭉치면 좁쌀보다도 작지만 펼치면 대해를 덮을 수 있다는 허무경상의 구절처럼 노룡의 몸 구석구석까지 아니 닿는 데가 없었다.

일반 진기라면 노룡이 가진 내공과 반발할 것이 자명하였지만 가장 자연스럽고 순후하며 만물의 모태인 오행 이 귀일한 태극진기라서 그런지 노룡의 진기와는 전혀 상충됨이 없었다.

노룡의 몸속으로 들어간 태극진기는 은성이의 중단전에서 뻗어나간 진기이었다. 중단전에서 뻗어나간 태극진 기는 은성이와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은성이의 의념에 따라 자유자재로 음직이었고 환자의 몸속에서 자연 스럽지 못한 부위가 있으면 그 상태까지도 은성이에게 자세히 전달해 주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태극진기를 완성하고 허무경 6단계를 완성한 이외에도 은성이가 의학적 경험이 풍부하고 인체의 구조와 생명의 원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은성이는 심안으로 연결된 노룡의 몸속을 눈에 보이는 것보다도 더 자세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노룡의 심장에서 한치쯤 떨어진 곳의 가슴 부위에 조금씩 아물어 가던 상처가 갑자기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그곳에서는 조금씩 핏물이 흘러 나오고 있었지만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다. 그리고 상처 부위에서는 보기만 해도 섬찟하고 날카로운 표창 한 개가 서서히 살을 헤집으며 삐져 나오고 있었다.

노룡의 앙다문 입술이 조금씩 떨리고 무릎 위에 올린 채 꽉 쥐어져 있는 주먹에서는 푸른 힘줄이 두드러지게 튀어나오고 있었지만 신음 한마디 세어 나오지 않았다. 노룡의 입술은 표창이 새로운 상처를 만들며 몸에서 완전히 빠져 나온 이후에야 떨림을 멈추었지만 아직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표창을 제거한 후 눈을 감고 있 던 은성이의 손위에 있는 작고 붉은 목곽이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서서히 열리어졌다.

목곽안에는 크기와 굵기가 다른 은침들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그 중에 중간 크기의 은침 하나가 두둥실 떠오르더니 서서히 노룡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는 노룡의 수음 삼음경중 수소음심경(心經)의 가장 심혈인 극천(極泉)혈로 이동한 후 반이나 파고 들어갔다.

이어서 떠오른 은침은 청영(靑靈)혈로 이어지고 다음은 소해(少海)혈로 파고 들어갔다. 제일 작은 은침이 마 지막 소충(少衝)혈로 시술된 후 비로소 은침 지술이 멈추어졌다.

목곽안의 은침들은 반이나 비어져 있었다. 목곽이 다시금 서서히 내려앉아 은성이의 손위에 떨어진 후 은성이 는 노룡의 몸속에 주입시킨 태극진기의 양을 늘려서 본격적으로 조정하기 시작하였다.

중단전에서 뻗어나가는 태극진기의 양을 늘려서 노룡의 상처 부위에서 더 이상 피가 세어 나오지 않도록 노룡 의 상처 부위를 중심으로 몸 안과 밖의 주요 경락을 폐쇄시키고 상처 부위 외의 다른 부위에 조금씩 막혀 있 거나 굳어 있는 주요 경락들은 일일이 관통시켜 주었다.

노룡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기연을 얻고 있는 것이다.

해적단의 세 부상자가 완치되면서 은성이의 의술은 더욱 향상되어 있었다. 치료중 혈도에 장기간의 자극을 주 지 않고 순간적인 자극을 줄 때에는 은침대신 진기로 대용하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진기로 혈도에 자극을 주 는 시간이 길어지다가 나중에는 은침대신 사용하는 진기의 조절이 자유자재로 되었다.

그러다가 세 부상자가 완치될때쯤 해서는 은침이 전혀 필요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환자들의 몸을 보하기 위한 탕약은 은성이가 처방을 하고 정집사가 조제를 한 후 정성껏 달여서 환자들에게 직접 복용 시켰다.

동굴 밖으로 나서던 지룡은 다시금 신기한 눈으로 굴 입구의 암벽을 바라보았다. 돌출되어 나온 정도가 동일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석벽에 손바닥 넓이의 현무암이 박혀 있었다.

이 현무암은 동굴 안과 밖에 모두 한 개씩 있었는데 이것이 기관을 움직이는 열쇠이었다.

지룡이 현무암 부근에 손바닥을 대고 힘을 가하자 현무암 부근이 손바닥을 따라 암벽속으로 쑥 들어갔다.

현무암이 밀려 들어간 자리에는 다시 오목한 공간이 있었으며 그 곳으로 손가락을 내밀자 작은 고리가 손에 걸리었다. 이 고리를 잡아 다니자 열려 있던 동굴의 한쪽에서 주변 석벽과 구분하기 어려운 화강암으로 이루 어진 석문이 서서히 밀려나와 동굴을 완벽하게 차단하였다.

다시 한번 고리를 잡아 다니자 석문이 밀려나와 동굴이 드러났다. 동굴을 열어 놓은 채로 지룡은 동굴앞의 고 목을 돌아 폐허로 된 초금의가의 마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는 용왕과 노룡이 무술을 수련하고 있었다. 노룡은 신법과 암기술을 수련하고 있었는데 다치기 전보 다 오히려 실력이 늘어 있었다. 예전에도 노룡의 비도는 눈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비도는 물론이고 비 도를 던지는 노룡의 손 동작도 잘 보이지 않고 있었다.

비도를 던지는 방법상에 큰 차이가 생긴 것 같 았다.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거나 예전에는 알고는 있었지만 능 력이 부족하여 시도하지 못하던 수법을 시전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용왕의 손에는 박룡수가 끼어져 있었다. 그 박룡수를 낀 양손이 끊임없이 흔들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일견 무질서하고 쉬어 보이는 그 동작이 얼마 나 어렵고 심오한지 지룡은 잘 알고 있었다.

"만파절무수(萬波切舞手)"

오늘날의 용왕 이무기가 있게 된 절대적인 무공이었다. 만파절무수를 펼치는 이무기의 작은 눈은 갈수록 심현 하여지고 굳센 기상이 돋보이는 얼굴에는 땀방울이 소록소록 돋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지룡이 간과한 것이 있 었다. 만파절무수를 펼치는 용왕의 손가락 사이에서 누에가 실을 뽑듯 가느다란 강기들이 줄줄이 뽑아져 나오 고 있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시간을 내서 금아와 사냥을 나선 은성이는 한참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미륵산 심처까지 경공을 이용해 몸을 날리니 도처에 널린 것이 날짐승과 산짐승 이었다. 짐승의 급소를 본능 적으로 알고 있는 금아가 번개같은 빠르기로 거친 콧김을 쌕쌕 내뿜고 있는 맷돼지의 정수리를 하얀 부리로 한번 쪼자 오늘 저녁은 물론 몇일간의 음식 걱정이 필요없게 되었다.

사냥감이 넘치자 더 이상 사냥할 기분이 나지도 않았다. 금아와 함께 따뜻한 봄 햇살을 즐기며 숲속을 거닐던 은성이는 눈앞에 삼십장은 넘을 듯한 절벽이 가로막자 문득 장난끼가 생기었다. 심안을 이용하여 주변에 인적 이 없음을 확인한 은성이가 태극진기를 운기하여 일학 충천의 신법을 발휘하자 금아도 같이 날아오르기 시작 하였다.

절벽을 십장쯤 오른 후 다소 힘이 부치자 해연약파(海燕躍波)의 초식으로 튀어나온 암석 부위를 사뿐히 즈려 밝고 재 도약 하였다. 단 두 번의 도약으로 정상에 오른 은성이는 절벽 밑으로 작은 돌조각 들을 하나씩 떨어 트렸다.

은성이보다 늦게 출발하였지만 절벽 정상에 먼저 도착한 금아는 다시 절벽 밑으로 활강 비행을 하고 있었다.

새는 날개가 있어서 날 수가 있다고 다소 틀에 박힌 생각만을 하고 있던 은성이의 머릿속에 무언가 강하게 부 딪혀 왔다.

은성이는 절벽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절벽밑으로 내려오는 것은 절벽위로 오르는 것보다는 힘이 더 들 었다. 하지만 정상에서 몸을 날린 후 떨어지는 속도를 줄이기 위해 절벽에다 화룡검을 휘두르던 은성이는 다 섯 번의 칼질 만으로 절벽 밑으로 내려설 수 있었다.

그런데 절벽 밑으로 내려선 은성이는 다시금 절벽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단 한번의 도약으로 십장 높이 까지 뛰어오른 은성이는 공중에서 몸을 뒤집어 머리가 땅바닥으로 향하게 한 후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쑤아아앙'

하지만 그 떨어져 내려오는 자세는 매우 유연하고 자연스러웠다.

이윽고 몸이 지상에서 삼장 높이에 이르자 갑자기 화룡검을 뽑아 절벽에 휘두른 후 떨어지는 속도를 줄이었다.

한번 두 번 십장여 높이에서 떨어져 내리던 은성이가 이십여장 높이에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 하였다.

높은 곳에서 정신을 집중하여 떨어져 내리던 은성이는 많은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몸이 밑으로 떨어져 내려올 때에는 하락하려는 힘만 발생되는 것이 아니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지면으로부터 받쳐 주는 힘이 있으며 또한 절벽같은 장소에서 많이 발생되는 상승 기류도 있었다.

이 두 가지 힘을 이용하면 떨어지는 속도를 늦출 수도 있었으며 이 힘을 극대화 시켜서 떨어져 내리는 몸을 다시금 위쪽으로 날아오 르게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다시 십여장 높이에서 떨어져 내리던 은성이는 화룡 검에 의지하지 않고 절벽 밑에서 받쳐 주는 항력 및 상승기류를 이용하고 순간적으로 몸을 둥글게 말아 회전 력을 높인 후 지면에 사뿐히 내려설 수가 있었다.

이십장 높이는 물론 삼십장 높이에서 떨어지면서도 떨어지는 속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된 은성이는 물 속으로 잠수하던 물고기가 유연하게 수면으로 튀어오르 듯 할 수가 있었다. 마치 수중에서 헤엄치는 듯이 속 도 조절은 물론 방향 조절까지 하게 된 은성이는 이제야 조금 금아의 흉내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절벽 위에서 내력으로 몸을 가볍게 한 후 날아 오르는 금아의 두 발을 잡고 공중을 헤엄치듯이 날아다니다가 금아의 발목을 놓고 허공을 유영한 후 지상에 가까워지면 앞으로 나아가려는 힘을 이용해서 밑으로 떨어져 내 리는 힘을 약화 시키자 내려서고자 하는 땅위에 부드럽게 내려설 수도 있었다.

내력을 운기하면 몸의 무게를 깃털 보다도 가볍게 할 수 있었다. 은성이가 금아의 등에 올라탔는데도 금아는 행동의 지장을 전혀 받지 않고 있었다. 너무 높이 오르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뜨일가 저어되어 은성이는 금아 에게 저공 비행만을 하도록 부탁하였다.

금아도 은성이와 노는 것에 재미를 붙인 것 같았다. 빗살처럼 빠르게 날며 나무와 나무사이로 비행 곡예를 하 기도 하고 심지어는 몸을 뒤집어 비록 잠시이지만 은성이가 땅쪽으로 향하게 한 후 날기도 하였다. 이때는 은 성이도 태극진기를 조금 더 운기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마음이 일자마자 운기되어지는 태극진기인지라 둘 사이의 유희를 방해할 만한 행동도 아니었다. 한참을 놀다보니 벌써 저녁때가 다.되어가는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