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30화 (30/152)

■ 제 30장 :

하늘에 떠있는 몇 조각의 구름 외에는 모든 것이 파아란 망망대해 가운데 일엽 편주가 서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해동을 떠난지 반나절이 된 중국 산동으로 향하는 상선이었다. 선상위에는 인삼, 자기, 화문석 등 해 동의 특산물이 꽤 많이 실려 있었다. 서풍을 가득 안은 돛은 활처럼 휘어지며 매우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 었다. 상선의 밑바닥에는 승객들이 타고 있었는데 상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한쪽 구석에 봇짐을 메고 하얀 무복을 입은 소년이 눈에 띄였다. 십육칠세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짙은 눈썹에 영준하게 보이는 소년은 피부 가 어찌나 고운지 여인의 살결보다도 더 희고 부드러워 보였다. 바로 중원을 가기 위해 배에 오른 은성이었다.

"저‥오빠! 오‥오빠라 불러도 되죠?"

은성이는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돌렸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보였다.

육 칠세나 먹었을까? 처음에 화려한 옷을 입은 뚱뚱한 상인의 손을 잡고 승선한 후 자리를 잡을 때 은성이와 이장여는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었던 귀엽게 생긴 여아 하나가 어느새 바로 옆에 와 있었다.

"풋‥그럼, 오빠라 불러도 되지. 그런데 우리 공주님이 무슨 일이신지?"

아이를 보면 같이 어려지는가 보다.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게 생긴 여아가 먼저 말을 걸어오자 장난 끼가 생긴 은성이가 말을 받았다.

"오빠! 이 이쁜 새 한번만 만져봐도 돼요?"

여아가 금아를 가리키면서 말을 하였다. 아마도 여아가 이곳으로 와서 자신에게 괜히 친근감을 표시한 것이 금아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럼! 만져 봐도 되지."

"금아야! 아무래도 여기 숙녀분께서 너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인사 해야지."

은성이가 옆에 있는 금아의 금색 머리털을 쓰다듬으며 말을 했다.

"숙녀? 숙녀야 안녕!"

숙녀란 말은 처음 듣는지 머리를 한번 갸웃거린 후 금아가 말을 했다.

"어!"

은성이를 따라 작은 손을 뻗어 금아를 쓰다듬으려던 여아는 금아가 갑자기 말을 하자 깜짝 놀라며 뻗었던 손 을 움츠렸다. 새가 말을 하자 주변에 있는 상인들도 깜짝 놀란 후 모두 호기심에 금아를 향해 시선을 집중시 켰다.

"공주님! 신기하죠? 금아는 말을 할 수 있는 새이예요."

"저..., 이 새 이름이 금아예요?"

"그래, 내 이름이 금아다. 너는 숙녀냐?"

금아가 여아의 말을 가로채 대신 대답을 하자 호기심에 들뜬 여아가 금아 곁으로 다가서며 대답을 하였다.

"아니, 내 이름은 숙녀가 아니라 은지이다. 성이 초이니가 초은지 이다."

여아는 금아가 말을 받아 주니까 조금 친근감이 생긴 것 같았다. 마치 친구에게 말을 하듯이 자연스럽게 말을 하였다.

"은지? 숙녀가 아니네‥."

금아가 붉은 눈동자를 굴려 자신을 이리저리 살펴보자 그 모습이 매우 귀여워 보였는지 은지가 말을 이었다.

"금아야! 한번만 만져 봐도 되지?"

"그래. 만져 봐도 된다."

어느새 친구가 된 것일까? 활짝 웃으며 금아의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금색 깃털을 만져보던 은지가 한자나 되 는 금아를 들어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금아도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금새 은지에게 친근감을 느꼈 는지 금아는 친근감의 표시로 하얀 부리를 은지의 얼굴에 부벼댔다. 금아와 은지가 재롱을 떠는 것이 어찌나 재미있고 유쾌한지 은성이의 입가에도 계속해서 미소가 어리어졌다. 그런데 조용하던 상선이 조금씩 소란스러 워졌다.

"폭풍우가 몰려온다! 돛을 내리고 갑판 위의 화물들을 대피시켜라!"

객실의 바깥쪽에서 선장으로 생각되는 사람의 다급한 외침이 들리어 오고 선원들이 분주하게 뛰어 다니는 소 리가 객실 안쪽으로 울려왔다.

"조타수! 몸을 뒤에 있는 기둥에 단단히 묶어라! 알겟나?"

"예! 그렇지 않아도 단단히 묶었습니다."

아마도 이 배의 선장은 이런 경험이 많았었는지 바쁜 와중에서도 선원들을 일사분란하게 지휘하고 있었다.

폭풍우가 조금씩 거세어지는지 좌우로 조금씩 흔들리던 배가 이제는 심하게 요동을 치자 은지의 아버지가 은 지를 데리고 객실의 구석으로 가서 벽면에 의지한 후 꼬옥 안아 주었다. 그 옆에 자리를 잡은 은성이는 은지 가 금아를 꼬옥 안고 내려 주지 않았지만 금아의 안위에 대한 걱정은 그리 하지 않았다. 폭풍우가 아니라 용 권풍에 휩쓸려도 금아는 무사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배는 파도에 심하게 출렁거리고 있었지만 노련한 선장과 선원들 때문인지 별 위험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바닷길에서 날씨의 변덕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을 정도로 변화가 심했다. 조금은 잠잠하던 선원들의 외 침 소리가 갑자기 커지기 시작하였다.

"선장님! 파도가 계속 심해지고 있습니다. 무슨 대책이 있어야 겠는데요."

외침소리는 파도와 바람 소리에 묻혀 간간이 끊기고 불 명확했지만 그 절박함만은 객실에 있는 승객 전원에게 명확하게 전달 되어졌는지 객실내에 불안감이 갑자기 팽배해 지기 시작하였다.

"앗! 엄청난 파도다! 다들 무엇이라도 꽉 붙잡아라!"

"으악!"

외침 소리와 비명 소리가 뒤죽박죽으로 뒤섞여 들려 오더니 이윽고 가장 절망스러운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선장님! 방향키가 부러졌습니다."

조타수의 울부짖음이 광풍소리에 묻혀 가면서 희미하게 들리어 왔다. 객실 밖의 위험한 상황이 객실 안으로 다급히 전달되어져 오자 이리저리 요동치는 객실 안에서 필사적으로 중 심을 잡고 있는 아버지의 품안에 있던 은지가 금아를 더욱 꼬옥 안아 주었다.

"다들 객실 안으로 대피해라!"

폭풍우에 휩쓸리는 와중에도 배를 전복시키지 않고 또한 원래 목표했던 방향으로 배를 조금씩 몰아가고 있던 선장이 방향키가 부러졌다는 소리에 더 이상 선원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최후의 결정을 내렸다.

객실 안으로 들어온 선원들은 선장을 포함하여 일곱명이었다. 폭풍우에 세명이 바다속으로 실종된 것 같았다.

방향키까지 부서져 버린 배는 파도를 따라 출렁이며 표류하기 시작하였다. 폭풍우는 더욱 거세어 졌는지 돛대 부러지는 소리까지도 들려오고 배가 출렁이는 정도도 훨씬 심하여졌다. 파도위에 올라간 후 파도가 꺼지면 배 가 부드럽게 내려 앉는 것이 아니었다. 높은 파도 위에서 갑자기 떨어져 내리듯이 급작스럽게 떨어져 내렸다.

그러면 뱃속에 있는 장기조차도 파도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배와 같이 위로 부드럽게 올라갔다가 급작스럽게 쿵하며 밑으로 내려 앉았다. 몇 명 비위가 약한 상인들은 장기들의 요분질에 뱃속에 있는 것을 모두 게워내고 도 계속해서 구역질을 해대고 있었다.

객실내에서 나뒹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둥 등에 메달린채로 창백해진 얼굴로 구역질을 해대는 상인들과 객실안에 있던 상품들과 가구, 보따리 등이 객실내로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는 모습은 한폭의 난장판을 연상케 하고 있었다. 바람이 조금 잠잠해진 것은 폭풍우가 몰아친 후 세시신 정도가 지난 후였다. 은성이는 은지 아 버지 몰래 태극 진기를 운용하여 은지와 은지 아버지의 장기를 감싸주고 배의 출렁거림에 객실 내에서 나뒹굴 지 않도록 보호 하여 주고 있었다. 배의 출렁거림이 현저히 늦추어지자 선원 한명이 밖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 해 객실 밖으로 나갔다.

"선장님! 돛대가 모두 없어 졌습니다."

밖으로 나간 선원의 절망어린 목소리가 들려오자 선장과 선원이 모두 객실 밖으로 나갔다. 객실 안에서 죽도 록 시달렸던 일부 상인들도 객실 밖으로 나가자 은성이도 금아를 은지에서 맡겨논 채로 객실 밖으로 나왔다. 밤하늘에 별들이 보석 가루를 뿌린 듯 찬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해시 초입쯤 된 것 같았다.

갑판위는 처참지경으로 파손 되어져 있었다. 네개나 있었던 큰 돛대중 세 개는 부러진채 실종 되어졌으며 남 은 한 개도 꺾여져 있었다. 방향키가 있던 선수 부근은 파도에 휩쓸렸는지 난간등이 모두 부서져 형체만 남아 있었고 방향키는 사라져 보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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