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33화 (33/152)

■ 제 33장 :

호북으로 향하는 작은 산길을 걸으며 은성이는 금아와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요즈음 금아는 은성이의 어깨에 앉아 동행하면서 말 실력이 부쩍 늘어 있었다.

"뭐야? 그럼 금아 네가 태어난 곳이 동해 멀리에 있는 작은 섬이란 말이야?"

"그렇다. 그곳은 화산이 있다. 향기롭고 맛있는 과일 많이 있다."

"아니! 그런데 미륵산 자운곡 까지는 어떻게 온거야?"

"냄새 맡았다. 하늘 날아가다 냄새 맡고 내려왔다. 그런데 괴물이 있어서 싸웠다."

중원에 온 후 은성이는 조금씩 중원의 언어를 배우고 있었지만 아직은 익숙치 않아서인지 금아에게는 중원어 를 가르치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금아와의 대화는 해동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하고 있었다.

'그래! 날개도 달리고 괴상하게 생긴 뱀이던데...,그러니 괴물은 괴물이구나.'

자운곡에서의 상황을 떠올리는지 고개를 끄덕끄덕하던 은성이가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점심을 먹은 객점을 지나 반시진 정도나 되었는데 계속해서 은성이를 따라오는 사람이 있었다. 몸매로 보아서는 여자인 것 같은데 면사에 챙 깊은 모자까지 눌러쓰고 있어서인지 얼굴은 커녕 나이조차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다만 새하얀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이가 많아 보이지는 않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만이 가능한 정도였다.

"은성아! 그런데 저 사람이 계속 우리를 따라온다."

금아도 면사녀의 존재가 신경이 쓰이는지 뒤를 흘끔거리며 은성이에게 말을 하였다.

"가는 방향이 같을지도 모르잖아."

"아닌 것 같다. 우리 따라오는 것 같다."

"그래?..."

'푸드득'

은성이의 왼쪽 어깨위에 앉아 있던 금아가 말을 하다.말고 날아올라 뒤쪽으로 날아갔다.

"야! 너 우리 따라오고 있지?"

은성이와 대화를 하면서 배운 말인지라 존대어의 개념을 모르는 금아는 낮선 사람에게도 처음부터 반말을 사 용했다. 은성이도 뒤에 있는 여자가 계속해서 자기를 따라오는 것 같아 궁금증이 있었지만 이렇게 금아가 갑 자기 사건을 저지를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금아야! 무례하지마!"

뒤에 있는 여자가 황당해 할 것이라 판단한 은성이가 즉시 뒤돌아 서며 금아를 꾸중했다.

"어!..."

따라오던 여자는 갑자기 금아가 나타나 무어라 말을 하자 신기한지 모자를 살짝 치켜들고 금아를 바라보고 있 었다. 금아가 실수한 것 같아 사과하기 위해 은성이가 다가오자 면사녀가 은성이를 바라보며 말을 하였다.

"저..., 이 새가 뭐라고 말을 하는 거예요?"

영롱한 목소리였다. 세속의 티가 전혀 묻지 않았는지 탁기가 하나 없이 영기만이 깃들여 있는 나이 어린 소녀 의 목소리였다. 맑고 쾌활한 목소리였지만 중원말을 조금밖에 모르는 은성이는 대충 물어본 의도만 감으로 파 악할 수 있었다.

"혹시... 우‥우리 따라 왔어요?"

면사녀의 목소리와 체형으로 보아 나이가 자기와 비슷하거나 아니면 어릴 것으로 판단한 은성이는 중원어로 서툴게 물어 보았다."

"저..., 그런데 저 새 이름이 무었이지요?"

면사녀는 인간의 말을 하는 금아가 매우 신기한지 간단한 중원어 조차 더듬거리며 말하는 은성이에게 다시 물 었다. 답이 없고 문만 있는 황당한 대화였다.

"야! 너도 이상한 말 하냐?"

금아는 면사녀가 은성이에게 중원어로 말하는 것을 알아 들을 수 없자 푸념을 한 후 다시 은성이 어깨위로 날 아 내렸다.

"금아, 은성이"

중원어에 서툰 은성이는 금아를 가리킨 후 다시 자신을 가리키며 이름을 소개했다.

"금아..., 이쁜 이름이네요. 나는 은하라고 해요, 고은하."

"검?"

고은하의 등 뒤에 옥으로 정성을 들여 세공한 검집과 붉은 수실이 달린 검이 메어져 있자 은성이가 물었다.

"예, 조금 수련했어요. 그런데 어디에서 오셨지요?"

은성이가 생긴 것은 중원인과 비슷하지만 중원어에 서툴고 발음도 이상하자 고은하가 물었다.

"해동에서 왔다."

하면서 은성이는 동쪽을 가리켰다.

"어디를 가는데요?"

"무림맹"

"그래요, 어쩐지 계속 제 앞에 가시더라니... 저도 호북 무림맹에 가는 길인데 잘 됐네요. 그런데 무림맹에는 무슨 일로 가는데요?"

고은하가 은성이가 중원어에 서툴다는 것을 잊었는지 빠른 억양으로 길게 얘기하자 은성이는 마지막 '무림맹 에는 무슨 일로 가는데요' 라는 말 밖에 들리지 않았다.

"사부"

"사부가 누군데요?"

"동방파 허선도"

"허선도? 처음 듣는 이름이네요. 그건 그렇고 말도 서툴고 길도 초행인 것 같은데 어떡하죠... 할 수 없네요. 제가 동행해 드릴께요."

비록 동행해 준다는 말 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천상의 선녀같은 목소리의 소녀가 동행해 주겠다고 하자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은성이였다. 어깨위에 있던 금아는 은성이와 고은하가 계속해서 알아 듣지도 못할 중원어로 말을 주고 받자 심심해 졌는지 하늘 높이 날아 올라 구름 뒤로 숨어 들어가 버렸다.

'휘리릭'

야풍이 달빛을 희롱하고 있는 절강의 구음산 중턱에 밤 공기를 뚫고 지나가는 야행인이 있었다.

야행인은 야조처럼 날아가고 있었지만 옷자락 스치는 소리조차 나지 않고 있었다. 야행인은 이곳의 지리에 매 우 익숙한 듯 밤인데도 불고하고 나무와 바위 틈새로 몸을 은폐시켜 가며 은밀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던 야행인이 풀속에 싸인 커다란 바위 앞에서 번뜩이더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구은산 어귀... 크고 작은 집들이 100여채 정도 있는 마을의 중앙에 기와로 지어진 큰 저택이 있었다. 저택은 외형상으로 보면 마을의 유지가 사는 듯한 평범하고 흔한 저택이었다. 하지만 저택의 중앙 지하실에 위치된 밀실에서는 지금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밀실 안에는 방금 전에 구음산 중턱에서 사라진 야 행인이 부복하고 있었다.

"뭐라고? 보타문의 검후가 무림맹으로 가고 있다는 말이냐?"

나지막하지만 매우 절도가 있는 음성이 부복한 야행인 앞에서 등을 돌린채 뒷짐을 지고 서 있는 은포의 중년 인에게서 흘러 나왔다.

"그렇습니다. 수행원도 없이 혼자서 출발하였다고 합니다."

"음..., 하늘이 나 보살귀마에게 절호의 기회를 주는가 보구나."

"밀찰대주!"

"예, 지부장님"

지금 당장 잔살대와 악귀대에 가서 검후의 위치를 소상히 알려 주거라. 그리고 잔살 대주와 악귀 대주에게는 이리로 오도록 통보하고."

"알겠습니다."

밀찰 대주라 불리운 야행인이 소리없이 사라지자 뒷짐을 지고 있던 은포의 중년인이 나지막 하지만 징그러운 웃음을 지었다.

"흐흐흐흐, 검후만 사로잡아 소교주 님에게로 보낼 수만 있다면 내성 입성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절대 놓칠 수는 없지... 아무리 검후라 하여도 잔살대와 악귀대에게는 어려울 것이다. 흐흐 설령 잔살 대와 악귀대가 실패한다 하여도 나에게는 비장의 패가 있다... "

주변에는 나무들이 무성하고 바위와 자갈 투성이의 언덕 길에는 새소리와 함께 즐거운 웃음 소리가 울려 퍼지 고 있었다.

*********

"호호호! 이 공자님, 그 먼 해동에서 중원까지 날아 왔다니 그런 농담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예요. 금아 말고 이공자님이 어떻게 오셨냐고요?"

바위가 많은 험로인데도 불구하고 사뿐사뿐이 조용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고은하가 말을 했다.

"진짜다. 검 타고 왔다."

"그럴때는 '배 타고 왔소' 이렇게 말 하는 거예요."

"배 아닌데..."

호북으로 가면서 삼일동안 고은하와 대화 하면서 듣기 능력이 조금씩 개발된 은성이는 간단한 중원말은 거의 다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은 금아가 조용하네요.?"

은성이의 어깨위에 있는 금아가 말 한마디 없이 조용하자 고은하가 금아를 바라보며 말을 하였다.

"은성아! 얘가 지금 뭐라고 하는거냐?"

눈치가 빠른 금아는 고은하가 자기 얘기를 하는 것 같자 궁금했던지 은성이에게 물었다.

"금아야! 얘라고 하지 말고 '고 아가씨' 라고 불러. 알았지?"

"뭐! 제가 아가씨라는 말이야? 얼굴도 안 보이는데... 알았다. 고 아가씨가 지금 뭐랬냐?"

"금아 네가 말을 하지 않으니 고 아가씨가 심심했나 봐."

"흥, 이상한 말만 하니까 하나도 못 알아 듣겠다. 고 아가씨와는 안 논다."

샐쭉해진 표정으로 금아가 고은하를 바라본 후 고개를 홱 돌리자 고은하도 궁금중이 생겼다.

"금아가 나에게 토라진 것 같은데, 왜 그래요?"

"금아는 해동어만 배웠다. 고 아가씨 중원어 금아는 모른다."

"풋, 금아와 놀려면 제가 해동어를 배우든 금아에게 중원어를 가르치든 해야 할 것 같네요."

일행이 큰 나무 옆을 지나갈 때였다. 잎이 무성한 큰 나뭇가지는 길 위에까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늘 을 벗어나려는 순간 은성이는 십여장 밖에서 미세한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경각심을 느끼고 심안을 운용하 려는 순간 공중과 사방에서 그 무엇인 가가 일행에게 덮쳐왔다.

방원 삼장은 덮을 만한 그물망이 공중과 사방에서 덮쳐오자 금빛이 번쩍이고 금아가 포위망을 벗어났다. 태극 진기를 운용해 고은하를 보호하려던 은성이는 흠칫 하였다. 어느새 등뒤의 검을 빼어든 고은하가 오히려 은성 이를 보호하기 위해 공중으로 솟구쳐 오른 것이다.

그런데 은성이는 신변에 닥쳐온 위험보다는 고은하가 빼어든 검에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얼음의 정화를 뿜 어내 듯 차디찬 한광이 번쩍이는 검의 날이 투명하였기 때문이다.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는 그물망 사이로 검 기가 그물망을 이루며 밀려 나가게 한 고은하는 은성이 옆에 내려선 후 빠르게 은성이 주변을 멤 돌았다.

그러자 은성이를 축으로 하여 사방으로 검기의 그물망이 뻗어 나가 밀려드는 그물망과 부딪혔다.

'쏴아아아'

공중에서 잘게 끊어진 그물 조각들이 떨어져 내렸다. 새끼 손가락 보다도 가는 줄을 엮어 만든 그물은 신축성 이 매우 좋아 보였지만 바위를 무 베듯 하는 검망에 견딜 정도로 질기지는 않은 것 같았다. 사방에서 덮쳐오 던 그물망 또한 마찬가지로 잘게 잘리어져 나갔다. 은성이는 고은하의 실력이 이 정도 일줄은 미처 생각지 못 하였다. 검을 차고 있으며 발에 힘이 거의 들어가지 않고 사뿐사뿐 걷는 것으로 보아 꽤 고강한 무공을 수련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별로 힘 들이는 기색도 없이 검망을 펼쳐 내고는 숨소리 하나 흐트러짐이 없이 사방을 훓어 보는 것이었다.

손에 잡고 있는 투명한 검에서는 살을 얼릴 듯한 차디찬 한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근처에 일행을 공격한 자들이 숨어 있을 것이라 판단한 은성이가 심안을 운용하려다 하늘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좌측에 있는 숲 위쪽에서 금아가 멤돌면서 은성이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적이다! 많이 숨어 있다."

그러자 좌측 숲속에서 금아를 향해 하얀 섬광이 몇 개 날아 올라 갔지만 금아는 간단히 피해 버렸다.

"나쁜 놈들이다! 적이다."

금아는 더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 중원에서 자신을 공격할 만한 무리가 있지는 않 을 것이라고 생각한 은성이가 산적이나 화적 무리쯤으로 생각하고 여유롭게 경공을 발휘하며 좌측 숲으로 달 려 가는데 은성이 옆을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스쳐가는 고은하가 한 마디 하였다.

"위험해요. 이곳에 있어요."

"..."

고은하의 실력 정도라면 산적 나부랭이들은 상대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은성이는 경공을 멈추고 서서 히 걸어갔다.

'채챙, 캉'

그런데 일방적인 싸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급작스럽게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자 당황한 은성이가 급 히 경공을 발휘하였다.

'묵귀영'

심해 오백장의 깊이에서 수련한 귀선문의 절세 비기가 펼쳐지자 은성이의 모습은 흐릿한 잔영만 남기우고 사 라져 버렸다. 현장에는 검은 옷을 읿은 무리가 삼십여명이나 있었다. 그중 십여명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으며 고은하는 남 은 무리들과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무리들은 모두 도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도기를 자유 자재로 부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신출 귀몰한 보법을 익혔는지 공수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바닥에는 잘린 도 조각들이 즐비하 였다. 고은하의 검끝에서 실 같이 가는 검기가 암기처럼 쏘아져 나가면 셋에 한둘은 바닥에 고꾸라 졌으며 투 명한 검날에 걸리는 것은 그 무엇이든 간에 잘리어져 나갔다.

이때였다.

"멈추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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