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8장 :
'뇌살자'
마교 십대 장로중 한명인 번뇌마승의 사제로 지닌 바 무공이 번뇌마승과 버금간다고 알려진 절정 고수였다.
목전의 적룡이 아무리 강하고 흉폭하다 하더라도 뇌살자와 함께라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자 악귀대주의 양팔 에 다시 힘이 불끈 들어갔다.
적룡배사진이 발동되고 낯선 침입자들이 진세안으로 들어서자 이들을 한입에 삼켜 버리려던 적룡은 눈앞에 있 는 세명의 불청객 외에도 훨씬 더 강한 기세를 뿜어대는 뇌살자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공격하지 못하고 침입자들, 특히 뇌살자의 정체를 파악해 내기 위해 공격을 늦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세 명의 침입자가 세 갈래로 나뉘어 공격해 들어오자 그중 가장 빠르고 강해 보이는 악귀대주에게 공격을 집중하였다. 그런데 악귀대주를 즉사시키려는 순간에 암중에 숨어있던 뇌살자에 의해 꼬리 부분에 강 한 공격을 받았다. 게다가 용린의 단단함을 철썩 같이 믿고서 방치해 놓았던 별 위력이 없어 보이는 두 명의 피라미 같은 인간들에 의해 몸통이 욱신거릴 것 같은 충격을 받고 용린조차 몇 개 떨어진 것이다.
노한 적룡이 몸부림을 치며 눈앞의 뇌살자와 악귀대주에게로 지옥의 불길처럼 뜨거운 화염을 연속해서 발사해 댔다. 적룡이 날뛰자 주변에는 모레 폭풍이 불어대는 것처럼 화염에 휩싸인 모레 바람이 사정없이 흩날렸다.
그렇게 자욱한 모레 바람속에서 뇌살자와 악귀대주의 신형이 적룡과 함께 어우러지기 시작하였다.
뇌살자의 무기는 가운데 움켜잡는 손잡이 양쪽으로 번개 모양의 검이 새파란 청광을 뿜어대는 뇌검이었다. 그 뇌검의 양쪽날은 끝이 날카롭게 휘어져 있었는데 뇌살자가 공력을 일으키면 양쪽 날 끝에서 눈을 아릴듯한 백 광이 흘러나와 마주치며 방전을 일으키고 있었다. 뇌검에서 발생되는 백광은 대기를 타고 구불구불하게 흘러 가 번개가 치는 것처럼 목표물을 타격하였다.
뇌검에서 흘러 나오는 백광에 용린들이 떨어져 나가고 한 두 군데 상처까지 생겼지만 적룡의 발악은 그쳐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더 흉폭하게 사생 결단의 자세로 미친것처럼 날뛰고 있었다.
산을 흔들고 바다를 뒤덮을 정도로 위력적인 꼬리 공격으로 옆에 있는 모레 언덕을 쳐서 모레를 화살처럼 날 리는가 하면 미꾸라지 처럼 신법을 펼쳐 자신의 공격을 피해내는 뇌살자와 악귀대주에게 화염공격을 퍼붓는 동시에 귀청이 터질 듯한 괴성을 질러 정신을 혼미케 하기도 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무림 고수들의 끈질긴 협공에 적룡도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하였다. 적룡이 악귀대주 를 한 입에 삼켜 버리겠다는 듯이 화염을 쏜 후 날카로운 송곳니가 돋아 있는 입을 크게 벌리고 악귀대주를 물 왔지만 측면에서 쏘아오는 뇌살자의 공격에 다시 몇 개의 용린이 떨어져 나가고 검기조차 튕겨 낼 정도로 질긴 가죽조차 베어져서 피까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이때였다. 적룡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한 악귀대주의 신형이 폭포수를 거슬러 오르는 잉어처럼 튀어 올라 적룡 의 머리위로 올라탔다. 용의 머리에 나있는 용린은 세린(細鱗)들이었다.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어 대는 적룡 의 머리위에서 뿔을 잡고 가까스로 떨어지는 것을 면한 악귀대주가 적룡이 머리를 모레속으로 파묻기 위해 용 트림을 하는 와중에 두손을 깍지 끼운체 혼신의 내공을 기울여 적룡의 정수리 부근을 내리쳤다.
'혼비권(魂飛拳)'
권마황에게 전수받은 삼초식의 무공중 한가지였다. 단순한 초식이지만 발경의 묘를 간직한 경천동지의 위력이 담겨진 무공이었다.
'끄어억'
모레속으로 향하던 적룡의 머리가 붉은 핏줄기를 뿜으며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혼신의 힘을 모아 공격에 성 공한 악귀대주가 간신히 신법을 발휘해 모레위로 안착할 때 적룡의 울부짖음은 극에 달해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동물에게 정수리는 치명적인 사혈이다. 왜냐하면 정수리 부근은 비록 단단하지만 한겹의 뼈만 통과 하면 연약하고 조그마한 충격에도 치명적인 뇌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수리에 발경의 묘를 발휘해 공격을 가하면 약하면 이지를 잃어 미치고 무거우면 죽기 마련이다.
이미 이지를 상실한 듯한 적룡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뇌살자의 뇌검에서 쉴새없이 흘러 나오는 백색 섬광이 적룡의 울부짖는 입속으로 적중되어 뒤통수 부근으로 튀어 나오자 적룡의 미친듯한 몸부림이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하였다. 공중으로 몸을 반쯤 세우고 조금은 풀린 듯한 눈동자로 붉은 핏물을 쉴새없이 흘리며 상체를 흔드는 적룡을 향해 갑자기 뇌살자가 날아 올랐다.
단숨에 오장여를 뛰어오른 뇌살자의 뇌검에서는 일장은 될 듯한 백색 검강이 형성 되어져 있었다. 뇌검이 적 룡의 미간을 중심으로 태산압정의 초식으로 휘둘러 지고 공중에서 몸을 튼 뇌살자가 서서히 모레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그토록 악귀같던 적룡의 머리가 서서히 두쪽으로 갈라지며 주변 정세가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혈안마공을 운용하지 않으면 한치 앞도 볼 수 없었던 묵연이 서서히 걷히며 죽어가는 적룡과 모레 사막이 사 라지고 있었다.
"네가 검후냐?"
가공할 만괴수살진을 깨트리고서도 공력의 손실이 별로 없었는지 아니면 손실된 공력으로도 충분히 검후를 제 압할 자신이 있었는지 뇌살자가 침착한 목소리로 동굴앞에 서 있는 검후에게 물었다.
"그런데요?"
붉은 옷의 노인이 적룡과 싸우면서 사용한 무공을 보고 이미 노인의 정체를 파악한 검후는 어짜피 한판의 대 결이 벌어져야 한다는 것을 감지하고는 마음을 다지며 도전적인 어조로 대답을 하였다.
무림맹으로 떠나기전 이미 천하 정세와 문파들의 특성 그리고 사파의 무기들과 마교의 중요 인물들의 특징과 사용하는 무공은 물론이고 무공 수위까지 철저히 암기한 검후는 다소 긴장을 하고 있었다. 보타문의 장문인직 과 함께 자동적으로 검후라는 과분한 칭호를 받고는 있었지만 아직은 검후라는 칭호에 걸맞는 무공 수위에 미 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었다.
물론 검후가 익혀야 할 모든 무공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암기하고 있었으며 나이에 걸맞지 않게 검강까지도 시 전할 수 있었지만 현재 자신은 사부님이자 전대 검후의 무공과 비교해서 팔성 수준밖에 성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두달전 운명을 달리하신 사부님은 마교의 광명우사와 일대일 대결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고 알려져 왔었다. 마교의 저력은 역대 최고라고 평가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뇌살자는 그러한 마교의 절정 고수인 것이다.
만괴수살진이 무너지는 동시에 빼어든 빙검 여래혼을 잡은 손아귀에 촉촉히 땀방울이 돋아나는 것이 느껴지자 검후가 여래혼의 손잡이를 더욱 강하게 움켜 쥐었다. 친어머니와도 같이 자상하시고 다정하신 사부님의 운명 소식을 듣고 한나절 동안이나 눈물을 흘렸었다.
그리고는 잔인하고 패도적이며 사부님을 죽인 원수들의 집단인 마교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잔인해 지리라 하늘과 장문령패에 두고 맹세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슴없이 태사조께서 만드신 후 잔인함과 흉악함 이 너무 지나치다며, 금지에 보관해 둔 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삼대 절진을 설치할 수 있는 부적을 꺼내 오고 만괴수살진을 설치했었던 것이다.
"어디, 검후의 무공이 얼마나 고절한지 보자꾸나!"
일말의 외침과 함께 신형을 번뜩이며 검후에게로 뇌검을 쳐가던 뇌살자는 검후에게 다가서기도 전에 눈앞에 무엇이 번뜩이는 것을 느끼자 다급하게 회피 동작을 하였다.
미간으로 날아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 머리를 뒤로 젖혀 간신히 피했지만 한쪽 볼에 '쏴' 하는 느낌이 나는 것 으로 보아 완전히 피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머리를 뒤로 젖히느라 상대방의 다음 공격을 예상할 수 없자 뇌 살자의 신형이 머리를 뒤로 젖힌 채 뒤쪽으로 주욱 미끄러져 나갔다. 뒤로 물러나는 와중에서도 뇌살자의 머 리는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검후만 신경쓰다 보니 검후의 옆에 있는 서생같이 생긴 젊은 놈을 간과한 것이 실수였다. 젊은 놈이 공격한 것은 암기가 아니라 지풍의 종류인 것 같았는데 이처럼 빠르고 위력적인 지풍은 마교내에서도 손꼽을 정도밖 에 없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마교 절강 지부장인 보살지마가 암암리에 악귀대를 따르며 검후를 생포하라는 부탁을 하자 천하 일색이라는 검후의 얼굴이나 보자는 심정으로 가볍게 부탁을 수락하였었다. 하지만 검후의 옆에 이처럼 가공할 정도의 무위를 가진 조력자가 있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뇌살자였다.
젊은 놈의 공격권 내에서 충분히 회피했다고 생각한 뇌살자가 그래도 혹시 하는 심정으로 허리를 더욱 굽히고 옆으로 급이동 하려는 순간이었다. 지풍소리는 커녕 암기소리조차 나지 않았건만 갑자기 심장 부위가 따끔 거 려왔다.
너무나 놀라서 비명을 질러 대려고 하는데 비명소리조차 재대로 나오지 않았다. 사십년이나 걸려서 익힌 절세 무공을 일할도 재대로 펼쳐 보지 못하고 너무나 허망하게 죽는 것이 억울하기 이를데 없었다. 순간적으로 머 리속이 하얗게 비워져 버린 뇌살자는 그 자세 그대로 뒤로 날아가 땅바닥에 사정없이 처박혀 버렸다. 뇌살자가 검후에게 달려들고 은성이의 미륵지에 맞아 죽기까지는 숨 몇번 쉴 정도의 시간밖에 소요되지 않았 다. 마교에서도 십대장로에 비해 무공이 별로 약하지 않던 절정고수의 최후치고는 너무나 허망한 최후였다. 뇌살자와의 격전에 대비해 전의를 불태우고 있던 검후도 뇌살자가 있으므로 해서 우세를 점치고 있었던 악귀 대주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은 너다. 덤벼라!"
아직도 중원어에 서툰 은성이가 짧은 단어를 조합해 악귀대주에게 소리치자 그제서야 악귀대주가 뇌살자에게 서 눈을 돌려 은성이를 마주 대했다. 그리고는 내력을 최대한도로 운용하며 한발한발 은성이에게로 다가왔다.
이미 뇌살자의 죽음을 인정한 이후부터 삶을 포기한 악귀대주였다. 그래도 비굴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서 싸우 다가 죽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반쯤 튀어나온 눈을 부라리는 악귀대 주는 생긴 것과는 달리 영웅의 기상이 풍 겨 나왔다.
"제가 할께요."
검후가 갑자기 은성이의 앞을 가로 막더니 여래혼을 들어 눈 앞으로 반듯이 뻗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검후를 말리려던 은성이는 검후의 실력이면 악귀대주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판단되자 한쪽으로 물러났다.
"은하! 조심해."
그래도 조금 불안했던지 은성이는 검후에게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을 하였다.
"흐흐, 한꺼번에 덤벼도 된다."
상대가 바뀌어졌지만 악귀대주의 표정 변화는 전혀 없었다.
천천히 다가오던 악귀대주의 신형이 빠르게 좌우로 흔들리며 검후가 내뻗은 여래혼의 빈틈을 유도하는 듯이 움직이자 여래혼의 검끝에서 실같이 가는 검기가 악귀대주를 향해 암기처럼 쏘아져 나갔다.
악귀대주의 보법은 매우 특이하였다. 끊어짐이 없이 계속해서 유연하게 이어지는 악귀대주의 신형은 하얀 포 말을 가로지르며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여래혼의 검기를 피해내며 조금씩 검후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악귀대주는 어깨나 팔뚝의 피륙들이 검기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려대고 있었지만 치명적인 급소로 쏘아 오는 검기는 완벽하게 피해내고 있었다. 악귀대주가 가까이 접근하자 검기를 쏘아대던 여래혼이 사방으로 흔들리며 십여개의 검영을 뿌려댔지만 괴이 하면서도 유연한 악귀대주의 보법에 등 쪽에 한치 깊이에 한자 정도 길이의 상처를 내는데 그치고 말았다.
대신 악귀대주의 권력에 여래혼의 검배를 스쳐 맞은 검후의 검법이 흐름을 끊기고 말았다. 기회는 이때다 싶 었는지 득달같이 달려든 악귀대주의 장영이 흐려지는가 싶더니 검후의 눈앞을 가득 메웠다.
'혼비장(魂飛掌)'
권마황에게 전수받은 삼초식의 무공중 최후의 일초식이 펼쳐진 것이다. 검후는 악귀대주가 펼친 장세에 숨을 막힐 정도의 위력이 담겨져 있는 것이 느껴지자 이를 악물었다. 한치의 빈틈도 없이 몸을 피할 방위조차 완벽 하게 적의 장세하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적의 필살지기를 파해 할 구명지공이 보타문에는 전 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옥녀산화'
현재 팔성 정도의 성취를 이룬 무공이지만 지금같은 때에 이보다 더 적합한 무공은 없었다.
검후의 여래혼이 차디찬 한광을 흩뿌리며 하늘 가득히 고운 꽃송이들을 새겨 놓자 가공할 회전력이 가미된 화 영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 장영과 부딪히며 화려하게 폭발했다. 그리고 화영의 가공할 회전력은 장영을 발했 던 악귀대주의 육체까지도 처참하게 터트려 버렸다.
혼비장이 절세의 무공이라 하지만 옥녀산화 또한 일세를 풍미하던 무공이었다. 검후에 비해 공력이 약한 악귀 대주가 만괴수살진에서 기력을 소실한 상태로 펼쳐내는 혼비장은 검후가 펼쳐내는 옥녀산화에 비할 바가 아니 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렇듯 처참히 나타나 버린 것이다.
잠시 처절한 죽음의 현장을 살펴본 은성이와 검후는 한숨을 내쉰 후 아무런 소리도 없이 금아와 함께 동굴을 떠나갔다.
은성이가 떠난 후 일각정도 지나서였다. 죽음의 현장에 있던 삼십이구의 시체중에서 한구의 시체가 조용히 눈 을 뜨고는 부러진 듯한 다리를 절며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적룡과의 싸움중에 반탄지기에 튕겨져 나 간 악살귀였다.
악살귀 역시 현장을 둘러보고 침음성을 흘리고는 한쪽 다리를 절며 서둘러 떠나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