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정허무검-128화 (128/152)

[연재]황정허무검(128)

"총관! 무슨 변명이라도 해보아야 하지 않겠나?"

어둡고 음악한 전각안에서 조용히 울려나오는 목소리였다.

"죄..죄송합니다. 저도 도..도저히 믿기지가..."

머리를 숙여 방바닥에 댄후 겁에 질린 강아지마냥 부들부들 떠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귀명자였다.

"문상의 암살 실패는 그렇다 쳐도 지옥의 절진에 죽음의 술법이라는 미로환상진(迷路幻想陣)이 맥없이 무너지 고 곤륜천문과 곤륜지로의 참담한 패배까지..게다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확실하게 뒤처리를 할 것이라는 본교의 정예 무사들까지 아무런 성과도 없다니..쯧쯧."

조용히 그리고 나지막이 전달되는 목소리에 귀명자의 등허리는 더욱더 깊숙이 구부러졌다.

"죄..죄송합니다."

"허허!... 그말을 듣자고 총관을 부른 것이 아니지 않는가? 원인 파악을 하고 대책을 듣자고 부른 것이네. 자 네 말대로 혼극인(魂極人)까지 적진에 보내 주었는데 설마하니 아직도 패인을 모르겠다는 말인가? 문상의 능 력이 그토록 신비스럽다는 말인가?"

친한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다정하고 편안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귀명자의 몸뚱아리는 더욱더 크게 진동하고 있었다.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속에 은밀한 살기가 깊숙이 담겨져 있음을 느낄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문상을 과소평가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상보다도 더 가공할 능력자가 무림맹을 돕고 있는 것 같습니 다. 무공뿐만이 아니라 지혜와 술법으로도 어찌할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세히 말해보게!"

현천교주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고 급박해졌다.

"밀교의 만다라에서 파생된 미로환상진(迷路幻想陣)은 아무리 머리가 좋은 문상이라 할지라도 몇시진 안에 절 대 해체할수 없는 진법이었습니다. 무공만 높고 지혜가 부족하다면 몇시진도 되기전에 죽음에 빠져들 수밖에 없고 말입니다. 절진속에 술법이 가미된 지옥의 절진이 단숨에 파훼된 것과 곤륜지로에서 천여명의 술사들을 일시지간 막아선 괴상하고 무섭기 이를데 없는 술법은 결코 인간이 발휘할수 있는 능력이 아닙니다. 그 절대 초인을 유인하기 위해서 혼극인을 보냈는데 한명뿐이라서 그런지 절대초인은 그림자조차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이미 혼극인을 상대할 정도의 고수들이 다수 모여든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불괴지신에 근접한 혼극인의 한쪽 어깨를 잘라낸 무상은 이미 전설의 무공인 무형검을 깊숙이 터득한 것 같았습니다."

"무형검! 대단하군! 혹시 무상이 그 절대 초인이 아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리 무형검의 경지에 이르렀다 하여도 미로환상진을 그처럼 쉽사리 파해시킬수는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곤륜지로에서 보여진 술법은 결코 인간으로서는 펼쳐낼수 없는 가공의 경지였습니다."

"흠,흠 ..."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 현천교주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깊은 사색에 빠져든 것 같았다. 하 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한명의 혼극인으로 부족하다면 더 보내야겠지. 무상의 능력이 그정도라면 혼극인의 능력을 더 높이고 말이야."

이내 이어지는 말은 또다른 음모와 처절한 결전을 짙게 암시하고 있었다.

"저..그럼 오늘밤에 보내는 것이 어떻겠는지요. 오늘 또다시 쳐들어갈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좋네. 혼극인 중에서도 가장 강한 세명을 보낸다면 그 절대 초인인지 뭔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수 없을 것이네. 오늘 반병신이 되어 회귀한 혼극인의 내공을 출전하는 세명에게 골고루 나누어 준다면..흐흐흐 결과 가 매우 흥미롭군 그래."

음흉한 미소가 짙게 드리워졌다. 한층 더 강해진 혼극인 세명이라면 청령전에 모여든 정파의 떨거지들을 뒤집 어 엎어 놓을 수가 있을 것이었다.

귀명자의 확신에 찬 믿음이었다. 여지껏 생각지도 못한 절대초인 때문에 작전이 몇 차례나 실패로 돌아갔지만 혼세지계(混世之計)는 큰 문제없이 잘 진행되어 지고 있었다. 대세에는 큰 지장이 없었길레 그나마 자신의 목 이 붙어 있는 것이다. 현천교에서 보유중인 열명의 혼극인중 세명이라면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곤륜파와 곤륜파를 돕기위해 몰려올 무림맹의 무리들을 전멸시키고자 하는 혼세지계 일장(一場)에서는 혼극인 과 교의 최고위의 신적인 존재가 최소한도로 노출되어진채 막을 내려야만 되었다. 그래야만 중원 일통지계인 혼세지계 이장(二場)이 순조롭게 진행될수 있는 것이다.

마교와 연합하여 중원을 일통한 후에는 필연적으로 또 하나의 결전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혼세지계 삼장(三場).....

가장 치열하고 아직은 결과조차 예측불허한 전쟁일 것이다. 하지만 교의 최고위에 계신 존재에 대한 무조건적 인 믿음은 혼세지계 삼장도 현천교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자기 최면적인 믿음으로 이어지고 있었 다.

"극락조단의 고수들은 잘 하고 있는가?"

교주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현천교가 지배하는 지상천국의 세상을 상상하던 귀명자가 이제야 다소  떨림이 진정되어졌는지 조금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급히 대답하였다.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팔백여명의 극락조단 고수 전원이 참가하였습니다. 벌써 큰 진척이 있었습 니다."

"벌써..... 삼일후에는 완벽한 술법이 펼쳐질 수 있겠군 그래. 술법명은 무엇으로 정했는가?"

"파산지술(破山之術) 입니다."

"'파산지술..' 약하네 약해! 위력을 상상해 보게! 곤륜이 무너지고 곤륜의 하늘이 불바다로 변하는데 파산지 술 이라니... 노룡파천술(怒龍破天術)은 어떤가?"

"훨씬 좋습니다. 당장 바꾸겠습니다."

"삼일후는 혼세지계 일장이 종결되어지는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네. 그날까지 계획이 한치의 오차도 없도록 만전을 기하여 지금까지의 실수를 만회하기 바라네. 무형검을 익힌 무상과 절대 초인...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다해도 혼세지계의 성공을 가로막지는 못할걸세. 노룡파천술이 펼쳐지면 그 어떤 저항도 소용이 없을 테니 까... 그날은 그분께서도 오신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잘 알고 있습니다."

짧게 대답을 마친 귀명자의 시커먼 눈동자에서 잠시 사이한 빛이 흘러나왔다. 오늘밤 혼극인 세명을 보내서 적의 절대 초인에 대한 정체를 밝혀내면 작전은 그야말로 완벽을 기하는 것이었다. 절대초인이 아무리 강해도 혼극인 세명을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아니 설마 그렇다고 하여도 대세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현천교에는 신과 같은 존재가 한분 계시기 때문이 다. 정체와 무위만 확인되면 두놈이던 세놈이던 그분께서 처리해줄 수 있을 것이었다. 믿음 차원이 아닌 거부 할 수 없는 당연한 현실이었다. 혼세지계 일장은 성공을 예약해 놓은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현천교에서 음모가 무르익어갈 무렵 은성은 낮에 왔었던 숲속에서 혼자 무언가를 익히고 있었다.

무상이 펼친 무형검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기발한 무공이었다. 내기를 유형화하여 검의 형상으로 만들 다니...

검에 내기를 유형화시키는 검강에 비해 몇가지 장점이 있었다. 검이나 도등 특정한 무기가 없어도 언제 어디 서든 펼칠수 있고 단련되면 한손에 몇가닥이라도 만들어낼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검강은 검과 같이 곧은 무기로 펼쳐지기 때문에 일직선으로 밖에 형상화 시킬수 없지만 무형검은 형체 가 없으니 형상이 의도하는 대로 자유자재로울 수가 있을 것이다. 길어지고 넓어지는 것은 기본이고 휘어지고 꺽어지고 몇가닥으로 갈라져 펼쳐진다면 방어와 공격 양면에서 최강의 무기인 셈이다.

내기가 너무 강하다면 검이 파손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형검은 검이 파손될 염려가 없으니 내기의 집약력을 검강보다 몇배나 높일수도 있을 터인데 이는 현 천교의 괴인과의 대결에서 이미 검증되어진 사실이었다. 검강조차 호신강기로 막아내던 괴인이 무형검에는 견 디지 못하고 몸이 쩍쩍 갈라져 나갔으니 말이다.

장점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무상의 마지막 공격처럼 형상화된 무형검을 암기처럼 쏘아보낼수도 있 을 것이었다. 회귀하여 돌아오게 만든다면 진기소모도 적을 터이고 말이다. 검의 일부만을 쏘아 보내는 방법 도 있었다.

이래저래 대단한 무공이었다. 물론 일반인에게는 상상속의 무공이었지만 말이다. 무형검을 익히기 위해서는 상상불허의 내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오행진기를 완성하여 태극진기로 승화시킨 은성이었다.

중단전의 작은 내단속에 간직된 태극진기를 풀어 내자 은성의 손에는 어느새 무형검이 형상화되어 어리어져 있었다. 버릇이었는지 화룡검의 형상이었다. 검의 형태를 바꾸고 크기를 조절하고 개수까지도 여러차례 변화 시키다 보니 어느새 한시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몸에 익숙해 지도록 초식을 변화시키다 보니 눈에 띠는 단점이 드러났다.

무형검을 만들어 내고 내기로 흡수하여 거두어 들이는 시간은 반복된 수련으로 점차적으로 짧아졌지만 무형검 은 너무나 밝았다. 내기가 집중되어질수록 더욱 밝았는데 숲으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 으면 밤에 몇십리 밖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정도의 밝기였다.

태극진기를 거두어 들이고 상단전에 갈무리된 심기를 내뿜어 형상화 시키자 일각도 안되어 태극진기로 형상화 한 무형검처럼 자유자재로 펼쳐낼 수가 있었다. 심기로 펼쳐내는 무형검은 눈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신도 심안으로만 검의 형체를 분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반시진 정도 더 연습한 은성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드리워졌다. 태극진기보다도 몇배나 강력한 심기이다 보니 한층 강해지고 보다 완벽해졌던 것이다. 말 그대로 무형검(無形劍)인 셈이다.

심기를 발하는 공격은 빠르고 강했지만 무형검처럼 강한 것은 아니었다. 심기를 검강처럼 집중하고 유형화한 무형검은 직접적인 심기공격보다는 느리지만 그 파괴력은 비교할 수 없이 강해진 것이다.

새로운 무공의 경지를 일구게 되었지만 아직은 초보적인 경지일 뿐이었다. 무형검의 특징에 맞춰 기존에 익힌 초식들을 변화시키고 다듬어야 했다. 무형검을 작게 만들어 화살처럼 쏘아내는 무형시(無形矢)를 연습하고 무 형시를 회수할 수 있으려면 꽤 많은 수련이 필요할 터이었다.

새로운 무공 경지에 흠뻑 취해 시간 가는줄도 모르던 은성이 갑자기 귀를 쫑긋하는가 싶더니 검무를 추던 자 세 그대로 허공을 박차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는 내리꽂히듯 저멀리 청령전이 있는 방향으로 급하게 몸을 날리었다. 반파된 채로 남아있던 청령전이 완전히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설마 오늘밤 또다시 침입할 줄이야...

수련하던 숲속과 청령전은 짧은 거리가 아니었지만 은성이 청령전 상공에 도착한 것은 숨 두어번 몰아쉴 정도 의 시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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