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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허무검-149화 (149/152)

[연재]황정허무검(149)

임원영   2004-08-23 01:59:34, 조회 : 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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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가 흘러나오는 병기들을 묶어둔 바위를 지키고 있던 주진인도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사문의 비전 술법인 요마봉인부(妖魔封印符)를 사용하여 금제된 병기들이 요동치며 들썩거리고 있었다.

요마봉인부마저 위협할 정도로 병기에 봉인된 요물들이 엄청난 능력을 지녔던지 아니면 요물들을 조종하는 술사의 능력이 대단하던지 둘 중 하나였다.

우우우웅! 투두두둑!

검과 도가 울부짖으며 요분질을 치자 병기를 꽂아둔 집채 만한 바위가 흔들거렸다.

병기들의 발악이 심해지자 요마봉인부에서 붉은 운무가 자욱이 피어올라 요기를 약화시켰다.

시간이 갈수록 홍운은 짙어지고 있었다.

요마봉인부는 아무나 그리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부적이 아니었다.

일단 부적을 그리는 괴황지부터 평범치 않았다.

괴황지에 신기를 극화시키기 위하여 신단을 설치한 후 저승을 드나드는 귀신 중 한명을 청해 극진히 공양해야 했다.

일곱 날 밤을 모신 후 귀신 몰래 괴황지를 저승으로 향하는 귀신에게 붙여 두었다가 기일에 제사를 지내 귀신을 청하여 회수하였다.

음악한 존재들을 제압하기 위하여 양기가 강한 대추나무중 극양의 뢰기(雷氣)에 맞은 벽조목을 열양지기로 태워 그 숯으로 부적을 그렸다.

그렇게 완성된 부적에 요기와 귀기를 덧씌우고 마지막으로 구일동안 신향을 피우며 제례를 올려서야 완성되는 부적이었다.

마지막에 사용되는 신향은 침향(沈香)이나 강향(降香)을 사용해야지 단향(檀香)이나 유향(乳香)을 사용할수도 없었다.

천신(天神)이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사문에 몇 장밖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지금 이 순간 주진인의 믿음이 서서히 흔들리고 있었다.

병기를 꽂아둔 바위가 덜컥거리며 심하게 들썩거리자 주진인의 믿음도 격하게 따라 흔들렸다.

'투드드득..쿠쿵'

그리고 바위가 한자나 옆으로 이동하여 살짝 들렸다가 다시금 땅으로 떨어지자 믿음이 완전히 깨어져 버렸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왔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주진인의 안색은 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콰드드드득..쩌저적!'

바위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붉은 운무가 미친 듯이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사방을 살펴보니 강시 같은 괴물에 이어 형체는 물론 크기가 자유자재로 변화되는 붉은 괴물들이 외곽지역에서 날뛰고 있었다.

왠지 위험스럽다는 느낌으로 고개를 돌릴 즈음 드디어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쩌저저저적! 퍼석!

바위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요마봉인부(妖魔封印符)의 위력을 상징하는 홍운이 터지듯 흩어져 버린 것이다.

팔십여 자루의 병기들이 홍운을 제치고 허공위로 솟아올랐다.

병기들이 요기를 담고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상상을 하며 주진인의 안색이 파랗다 못해 하얗게 변색되었다.

그런데 허공에 떠오른 병기들이 제 갈 길을 몰라 허적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세히 살펴보니 병기들이 서로를 벗어나지 못 하는 것 같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단단히 묶인 것처럼 말이다.

요마봉인부에 또 다른 효능이 있었단 말인가?

아니었다.

만약 그런 효과가 있다면 모산파의 장문인인 자기가 모를 리가 없었다.

허공에 둥실 떠올라 미친 듯이 광분하고 있었지만 우두머리 없는 야수들 마냥 방향성 없이 사방으로 힘을 분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영문을 알 수는 없었지만 엄청난 살겁이 일어날 뻔한 사태가 해소된 것이다.

주진인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뜻대로 되지 않음에 광기(狂氣)가 돋았는지 병기들이 서로간에 부딪혀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일제히 울부짖는데 괴악(怪惡)한 요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급히 자리를 피하면서 힐끔 고개를 돌려 요물들이 들어찬 병기들을  바라본 후 비로소 안심한 듯한 눈빛으로 전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돌연 굳어지듯 멈추어섰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무리들.....

덜컥하며 심장이 내려앉고 놀란 간도 콩알만하게 줄어들었다.

등허리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온몸이 쥐가 난 듯 굳어져 왔다.

주진인의 놀란 눈이 고정된 곳은 뒤쪽에 따라오는 요괴들이 아니었다.

수십여자루의 무기들을 등 뒤에 꽂고 오는 인영의 좌측에 검은 천으로 얼굴까지 깊숙이 가린 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음산한 귀기가 아니라 으스스스 온몸을 저며 오는 지옥의 마기(魔氣).

분명 현세에 머무는 자가 아니라 지옥에서 소환된 존재였다.

그것도 엄청난 능력을 지닌 자였다.

이처럼 멀리 떨어져서도 오금이 저려올 정도의 지옥마기라니.....

뒤쪽에 따라오는 요괴들이 왁자지껄 날뛰지 않고 조용히 뒤따라옴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저 중에는 지옥악귀를 불러온 자도 있을 것이다.

자세히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제일 선두에서 호위를 받으며 다가오는 놈이었다.

그자에게서도 무시 못할 요기와 귀기가 얽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행히 야차귀노는 아닌 것 같았다.

야차귀노가 아니라고 안심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지옥의 악귀를 소환할 정도면 야차귀노에 뒤지는 능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요마봉인술이 깨어진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자옥의 악귀조차 소환할수 있는 술사가 직접 봉인한 요물들이 하찮은 것들일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처럼 가까이 다가와 요력(妖力)을 배가시켜 준다면 아무리 모산파가 자랑하는 비기(秘技)라도 안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뒤쪽에서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요기를 발산하는 병기들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토록 위력적인 요물들이 금제에서 풀려났으며 술법을 건 술사가 가까이 다가왔는데도 불구하고 저런 한심한 꼴이라니.....

인간답지 않은 괴물들이 다가오자 호기를 부리며 달려드는 무사가 있었다.

호북성에 위치한 거도파(巨刀派)의 고수였다.

자기 키보다도 더 거대한 도를 치켜들고 다가가는 기세가 걸리는 것은 모조리 일도양단시킬 것 같았다.

무리중에서 녹색 광채가 번뜩이는 놈이 뛰쳐나오자 섬전처럼 도를 휘둘렀다.

'휘리릿..깡'

그런데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연이어 들려오는 소리는 파육음이 아니었다.

바위도 아닌 쇳덩이를 내리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도가 두 동강이 나버렸다.

커거걱..퍽!

연이어 들려오는 소리.

녹색광채의 인영이 당황하는 거도파 고수의 목을 움켜 잡은 후 가슴에 일장을 날리며 들려오는 소리였다.

가슴이 산산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고깃덩이들.....

잔인한 일격을 날린 녹색 광채는 어느새 제자리로 뒤돌아가 있었다.

"이노움!"

천둥같은 외침과 함께 또다시 달려가는 무인도 역시 거도파의 고수였다.

이름 없는 고수는 아니었다.

천력패도(天力覇刀) 왕천치.

거도파의 장로로 호북성에서 제법 위명이 자자한 고수였다.

왕패도(王覇刀)란 이름의 보도에서 넘실거리는 도기만 보아도 그의 무위를 짐작할수 있었다.

그러나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도기가 실린 보도를 사십년 내공으로 내리쳤는데도 녹색 광채 인간의 몸을 베어내지 못하였다.

한 치 정도 물러선 것도 같았지만 그뿐이었다.

똑 같이 목을 붙잡혀 목뼈가 부러진 후 가슴이 터져나가 버렸다.

"케케케케케! 하룻강아지들 뿐이구나."

철판을 긁어대는 듯한 듣기 거북한 목소리였다.

이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정파의 초극 고수들이 모여들고 있는데도 안중에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하루살이 보다는 낫지 않을까?"

무상의 옆에서 백우선을 활짝 펼친 문상이 말을 받았다.

"뭐라고? 네놈이 그 잘났다는 문상놈이더냐? 크케케케 케케케....."

등뒤에 삼십여자루나 되는 병기들을 꽂은 못생긴 자가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로 계속하여 징그러운 괴소를 흘렸다.

거미줄같이 얽힌 흉터와 불에 그을린 듯한 피부로 몇 살인지 알 수 없었는데 자세히 보면 등허리가 조금 굽어 있었다.

귀를 후벼파는 듯한 껄끄러운 괴소를 지르다가 서서히 멈추었다.

괴소는 멈추어졌지만 흉악한 눈빛과 살기는 한층 가중되고 있었다.

쏘아보는 시선만으로도 자살하고픈 충동을 느낄 정도였다.

"역시, 사부께서 말씀하신대로 보통놈이 아니구나. 귀혼자멸소(鬼魂自滅笑)에도 끄덕없다니....."

웃으며 문상에게 암중으로 펼친 귀마공이 성과없이 좌절되자 무척 놀란 것 같았다.

"크케케케! 하지만 네놈의 운도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흐흐흐흐!"

"흥! 미친놈의 곰보 꼽추새끼!"

역겨운 목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초극 고수들의 뒤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민 사람이 외쳤다.

동료가 죽자 역시나 도망쳐 법왕의 등 뒤에 달라붙어 있던 철두파의 고수였다.

입은 걸었지만 상대방의 위세를 알고 있었는지 몸을 내보이지는 않았다.

"이런 개 같은....."

듣기 싫어하는 욕이었는지 꼽추의 흉악한 얼굴이 붉게 달아 올랐다.

입술을 달싹이니 등 뒤에서 또다시 녹색 광채가 솟아나와 철두파의 고수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 나왔다.

눈으로 쫒기에도 벅찬 가공할 신법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빠른 광채가 있었다.

부처님의 손바닥인양 거대한 황금색 장인이었다.

검기조차 무시하는 녹색 괴영이 육장을 무서워할리 없었다.

슈슈슈슉!

황금색 장인을 무시한채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외였다.

펑!

육중한 격타음과 함께 녹색 괴영이 오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뒤쪽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털푸덕..투둑.'

시체와 핏덩이들이 쏟아지는 소리.

그런데 가슴이 휑하니 뚫려 죽어 마땅할 녹색 괴영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역시 강시로군....."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문상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문상 만큼이나 놀란 듯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흉악해 보이는 꼽추였다.

두 눈을 빛내며 한참동안 법왕을 바라보더니 믿을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법왕이로군! 실종되었다는 법왕이 이곳에 있다니..... 궁주! 정신이 어떻게 된 것 아닙니까? 도대체 무슨 짓입니까?"

무림에서 달뢰대라마가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한 듯 안하무인의 꼽추조차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쇠를 갉아대는 소리였지만 말이다.

"마교와 포달랍궁의 인연은 십일년전 단절되었다. 생각이 다르면 가는 길이 다른법. 팔십 평생을 헤메다가 이제야 천도(天道)를 발견하였다."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

금강석처럼 깨질수 없는 절대무변의 신념으로 가득찬 목소리였다.

아군이 아니면 적군이었다.

"케케케! 법왕! 녹옥강시(綠獄剛尸) 한 구를 물리쳤다고 의기양양하다니... 제 정신이 아닌듯한데 죽어서도 통곡해야 할 것이오. 제자와 궁도들은 우리를 돕기 위해 나섰거늘....."

"아미타불..!'

꼽추의 말에 흠찟하니 놀란 달뢰대라마가 처연하니 불호를 외웠다.

일년 전 포달랍궁을 비밀리에 나서기 전 부 궁주인 제자에게 무림에 나서지 말도록 당부하였는데 제자가 마교의 꼬임에 넘어간 것이 분명하였다.

"법왕의 위명이 대단하지만 그래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지. 내 무량구천(無量九天)의 친구들을 소개해 주겠소. 당신을 지옥으로 안내할 금사자이니 성대히 맞아주기 바라오. 크카카카카카카."

징그러운 웃음소리와 함께 꼽추의 오른쪽에 위치한 금빛 인영 하나가 꺼지듯 사라져 버렸다.

사라지는 순간 달뢰대라마 앞에 나타나 다짜고짜 덮쳐 들어왔다.

가만히 당할 수는 없었는지 법왕의 신형도 잔영만 남겨둔채 사라져 버렸다.

금사자와 법왕이 치열하게 얽혀든 방원 오장여 공간이 순식간에 금빛 광채에 휩싸여졌다.

법왕의 광채는 황금빛에 가까웠지만 둘 다 너무나 빨라 형체를 분간할수 없을 지경이었다.

'펑..퍼펑'

법왕의 공격에 격중 되었는지 금사자라 불리는 괴영이 빨랫줄처럼 긴 잔영을 남기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 뒤를 달뢰대라마가 포달랍궁의 절세 신법인 무량신보(無量神步)를 구사하며 뒤따랐다.

그러나 금사자의 허리춤에서 폭발하듯이 뻗혀 나오는 금빛 검강에 급히 수비로 전환하여야 하였다.

놀랄만한 검술이었다.

특히나 환(幻)이 강조되었는데 변화무쌍하기로는 세상에 견줄 검법이 없을 것 같았다.

허공에 잔영을 흩뿌리는 금사자의 가공할 빠르기와 조화되어 순식간에 전세를 역전시키고 있었다.

절세신법인 무량신보가 없었다면 일백여초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빨라 분신술을 펼친 것처럼 수많은 실상과 허상이 겹쳐져 공격해왔다.

수많은 고수들에 둘러싸인 듯한 위기의 순간.

법왕의 양손에서 포달랍궁의 최대 절기인 패엽만장이 펼쳐졌다.

허공 가득히 흩뿌려 지는 수백여개의 장인...

꽃잎이 일제히 만개하여 사방으로 퍼져 나가듯 황홀한 장면이었다.

금빛 장인에 허공 가득한 금사자의 허상이 남김없이 파괴되어졌다.

패엽만장의 초식으로 위기를 벗어난 법왕이 무량신보를 극성으로 펼쳐 금검의 잔영을 뒤따랐다.

그리고 연이어 보리패엽장의 패엽건곤(貝葉乾坤)을 펼쳤다.

전력을 기울여 펼쳤는지 이제까지의 기세가 아니었다.

천지간에 만물이 사라지고 홀연히 나타난 황금빛 장영(掌影).

부처님의 성령이 담긴 듯 찬연한 후광조차 깃들여 있었다.

'퍼억! 쐐애애애액 꽈광!'

엄청난 타격음에 금사자의 신형이 실 끊어진 연처럼 땅으로 쏘아져 나갔다.

단단한 암반으로 이루어진 땅에 부딪혔는데 순간적으로 암반이 꺼져 들어가 금사자의 몸을 삼켰다.

"크크크! 썩어도 준치라더니 제법이로군..."

자신이 그토록 자신 있어 하는 금사자가 지옥의 아가리처럼 깊은 공동 속으로 사라졌는데도 꼽추는 여전히 여 유 만만한 눈빛이었다. 현신하는 미륵불처럼 가볍게 내려서는 법왕에게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준치가 곰보 꼽추보다는 훨씬 보기 좋다. 이 떠그랄 새끼야!"

또 다시 철두파의 고수가 나서서 속을 긁어대자 꼽추의 눈에서 흉광이 피어올랐다. 순간, 등 뒤에서 붉은 검 하나가 화살처럼 튀어나와 철두파의 고수에게로 쇄도해갔다. 예측치 못한 공격이었다.

낯빛이 하얗게 변한 철두파의 고수가 급히 법왕의 등 뒤로 몸을 사릴때 붉은 검을 향해 소림의 범각 대사가 손을 뻗었다. 소림의 비전절기인 금룡십이해(金龍十二解)였다.

그런데 이럴수가....?

붉은 검이 부드러운 채찍처럼 스르르 휘어지더니 법각대사의 금나수를 교묘하게 빠져나가 버리고 말았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붉은 검을 향해 진기를 변화시켜 허공섭물의 신공을 발휘하였으나 그것도 허사였다.

붉은 검의 내력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너무나 신출귀몰한 붉은 검의 신기에 연이어 실패한 범각대사가 천년 호수처럼 잔잔한 성목(聖目)에 노기를 띠우려다 급히 내기를 추스르고 성승처럼 고요한 신태를 되찾았다.

무상이 무형검을 펼치는 것을 목격한 때문이다. 검기가 부챗살처럼 퍼져나가 붉은 검쪽으로 나아갔다. 퇴로조 차 완벽히 차단하여 그물망처럼 펼쳐진 무형검망(無形劍網)이었다.

피피피피핏!

또다시 뱀처럼 휘어지며 피하려던 붉은 검이 그물망처럼 촘촘한 검망에 십여조각으로 잘린채 바닥으로 떨어졌 다. 그런데 바닥으로 떨어진 검조각은 붉은 빛을 띠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철검이었다.

붉은 검이 격파되자 하얗게 변한 안색에 핏기가 돌아온 철두파의 고수가 또다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꼽 추 녀석에게 야유를 보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꼽추녀석의 입가에 아직도 비릿한 미소가 남아 있는 것을 보 자 왠지 모를 두려움이 온 몸을 내리 눌러왔다.

그때였다.

"위험... 콰아앙!"

법왕의 외침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땅 밑에서 금색 광채가 솟아올라 철두파 고수의 몸을 산산이 헤집으며 허공으로 폭사되었다. 붉은 피를 뒤집어쓰며 허공에 우뚝 선 이는 조금전 법왕에 의해 땅속에 처박혀 들어간 금사자라는 괴인영이었다.

"인간이 아닌 줄은 알고 있었지만.....아미타불!"

서서히 떠오르며 법왕이 불호를 외웠다. 긴장된 듯한 목소리였다.

"케케케!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무량구천의 존재라고. 아! 깜박했구만.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운명을 지녔다는 말을 해줬어야 하는데... 크헤헤헤헤헤!"

미친듯한 광소소리와 더불어 뒤쪽에 포진해 있던 삼십여구의 녹옥강시(綠獄剛尸)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검기로는 손톱만한 상처도 입힐 수 없고 신법도 눈으로 쫒을 수 없을 만큼 초절한 녹옥강시의 뒤를 일백여 마리의 요괴들이 뒤따랐다.

그들을 주눅들게 하던 지옥 마기의 금제에서 풀려난 것에 광분해서인지 우리를 벗어난 맹수처럼 사납기 이를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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