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헌터 타이쿤-1화 (1/52)

제 1화

헌터헌터 타이쿤

내 것을 키우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하지만 현실에서 무언가를 육성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다들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에 빠지는 게 아닐까.

공주님을 키우기도 하고, 붕어빵 가게를 확장하기도 하고, 도시를 개발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이것저것 키우고 싶어하는 만큼 육성 시뮬레이션의 종류도 다양하다.

많은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중에서도 큰 인기를 누린 게 【헌터헌터 타이쿤】.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들을 영입하고, 육성해서, 자신의 길드를 성장시키는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내가 이걸 처음 시작한 게 삼 년 전이었다.

삼 년 동안 정말 푹 빠져 살았지.

그 결과가 바로 이거다.

【유서준zl존 길드】

[소지금 : 999,999,999,999]

[명성 : 999,999,999,999]

[소속 헌터 : 999 명]

소지금과 명성은 한계치를 뚫어서 단위 표시가 잘릴 정도고, 소속헌터도 최대한도까지 꽉꽉 채워서 영입해놨지.

가만히 보고 있기만 해도 배가 부른 광경이다.

이 정도로 길드를 성장시켜 놓으면 내가 뭘 더 할 필요도 없다.

편하게 자동진행을 눌러놓으면 전속부관이 알아서 헌터 파티를 구성해 각 지역의 던전과 탑, 게이트로 출동시키고, 헌터들은 일개미처럼 부지런히 움직여서 코인과 명성을 벌어온다.

그렇다고 내가 이들을 마냥 혹사시키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관계도를 적절히 유지하지 않으면 헌터나 직원들이 갑자기 길드를 떠나거나 배신을 하기도 하니까.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내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닌가.

길드 빌딩 내에 호사스러운 개별 방이 있는 건 당연하고, 옥상에는 풀장과 바를, 꼭대기층에는 헬스장을, 지하에는 온천까지 설치해 놨다.

[헌터 진필립이 만족해합니다!]

[헌터 신세윤이 즐거워합니다!]

[스카우터 윤봄이 A급 헌터 메이링을 영입하였습니다! 헌터 영입 칸이 꽉 차서 영입이 불가합니다! 메이링은 몹시 아쉬워합니다!]

익숙한 알림창을 읽다보면 흐뭇하면서도 조금은 가슴이 답답해진다.

아무리 컨텐츠가 풍부해도 게임은 현실과는 다르니까.

열정적으로 플레이하다 보면 컨텐츠는 어느새 고갈되기 마련이다.

새롭던 임무는 지루하게 반복되고, 애착이 쌓인 캐릭터는 야속하게 정해진 대사만을 읊는다.

그런 걸 느끼게 되면 결국은 이건 게임에 불과하구나 하는 걸 느끼면서 허탈감이 찾아온다.

... 이 정도면 이 게임에서 즐길 수 있는 컨텐츠는 다 즐긴 것 같다.

아쉽지만 이제 그만 보내줄 때인가.

당장 게임을 삭제하거나 접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처럼 매일 로그인해서 하루에 몇 시간씩 플레이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일단 오늘의 플레이는 이만 종료하려고 하는데, 오랜만에 새로운 퀘스트 로그가 떴다.

【특별 퀘스트 : 소원의 탑 정복】

[임무 : 소문만 무성하던 소원의 탑이 발견되었습니다. 비밀에 쌓인 소원의 탑을 정복할 수 있는 것은 유서준zl존 길드의 길드 마스터뿐입니다.]

[보상 : 소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재밌는 퀘스트네. 소원을 이뤄준다니.

업데이트를 한다는 소식은 못 들어봤는데. 기습 패치일까?

나는 마지막 모험이라는 생각으로 임무 수락 버튼을 눌렀다.

***

커피는 참 좋다.

맛도 좋고 향기도 좋지만, 그보다도 좋은 건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거다.

“커피가 맛있네요.”

“한 잔 더 드릴까요?”

사무원은 나를 빤히 내려다보다가 그렇게 물었다.

쌀쌀맞은 인상에 조금 어깨가 움츠러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그녀를 어느 정도 안다는 사실에 다소 자신감이 되돌아온다.

“송서영... 씨.”

“송 주임이라고 하셔도 돼요.”

송서영 주임.

그녀는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헌터헌터 타이쿤】 속의 사무직원 중 하나다.

그런 그녀가 왜 내 앞에 있는지는 몇 번째 설명을 들어도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럼 길드 마스터를 위해서 세 줄 요약 해드릴게요. 하나, 길드원들은 소원의 탑을 정복해서 소원석을 얻었어요. 둘, 다들 소원석에 대고 길드 마스터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고요. 셋, 그래서 길드 마스터가 이렇게 소환된 거예요.”

송서영은 깔끔하지 않냐며 어깨를 으쓱했다.

게임 속의 캐릭터인 그녀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겠지만, 게임 밖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굉장히 당혹스럽다.

소설 같은 이야기 아니냐고.

게임 속 캐릭터들이 플레이어를 보고 싶어서 소원을 빌어 소환했다니.

나는 책상을 툭툭 두들기다가 마우스 옆에 있는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눈앞에 불투명한 홀로그램이 비춰 보인다.

『사용된 소원석』

「설명 : 소원의 탑을 정복한 증거입니다.」

「효과 : 무엇이든 하나의 소원을 들어줍니다. 그러나 이 소원석은 이미 사용되어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다만 밤에는 예쁘게 반짝거립니다.」

이런 게 내 눈에 보이는 걸 보면 역시 몰래 카메라 같은 건 아닌데.

그렇지 않아도 당장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면 창이나 칼을 든 헌터들이 떠들며 지나간다.

내가 【헌터헌터 타이쿤】 속의 세계로 소환된 건 확실해 보인다.

사실 소환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불만이 없다.

연락하는 이 하나 없는 고독한 회사원으로 남을 건지, 천 명에 이르는 헌터들을 호령하는 최고의 길드 마스터가 될 건지.

그렇게 물어본다면 누구라도 후자를 택하지 않을까.

그런데 말이야.

“우리 길드원들은 다 어디 갔어요?”

“봉인 됐어요.”

“봉인? 누구한테요? 왜요?”

“탑주가 소원의 대가로 봉인한 거예요.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지만 대가가 없다고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악마의 제안인가.

그럼 길드원들의 희생으로 내가 소환된 거라고.

데이터상의 존재였다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울컥하고 무언가가 치밀어 오른다.

아니, 내가 이 세계에 소환된 이상 그들이 데이터상의 존재만이라고 할 수도 없다.

혼자 감정을 정리하고 있는데, 송서영이 내게 대뜸 물었다.

“이제 어떡하실 건가요?”

“어떡하다니요?”

“길드원들이 다 없어졌잖아요. 길드 마스터랑 사무원인 저만 남았는데, 길드를 해산하실 건가요?”

만약 그러신다면 퇴직금을 청구하려구요.

송서영은 그렇게 덧붙였다.

게임 속 세상에 소환되자마자 다짜고짜 퇴직금부터 줘야 하다니.

그러고 보니 게임 속 원래 내 재산은 어떻게 됐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눈 앞에 익숙한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유서준zl존 길드】

[소지금 : 300 코인]

[명성 : 1 포인트]

[소속 헌터 : 1 명]

“아니! 내 돈 다 어디 갔어!”

“소원의 탑 등반하면서 실종되거나 봉인된 길드원 가족 분들한테 위로금도 지급해야 하고, 감사 들어온 것 방어하느라고 법률비용도 나갔고, 미리 수주해놓은 임무를 다 해약해야 해서 손해배상 청구까지 어마어마했어요.”

다들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나 보네.

하긴. 소속 헌터를 다 잃어버린 길드는 딱 좋은 먹잇감이었겠지.

한 번에 소속 헌터들이 다 사라져버렸으니 명성이 몽땅 사라진 것도 이해가 된다.

명성이 악명으로 전환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요, 길드 마스터. 어떻게 하실 건가요? 길드, 해산하실 건가요?”

송서영은 내게 대답을 재촉했다.

나는 사용된 소원석을 만지작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길드는 확실히 휘청거리고 있지만,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은 아니다.

길드 마스터인 내가 있고, 사무직원인 송서영이 있고, 이 으리으리한 길드 빌딩이 있다.

이만하면 한 번 도전해보기에 충분한 패가 아닌가.

내가 이 세계에 소환된 이유가 있다면 그건 당당하게 도전하기 위한 것이지, 침울하게 물러서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나와 만나고 싶어서 소중한 소원을 빈 길드원들을 봉인에서 다시 구해내는 것.

그것도 길드 마스터로서의 의무겠지.

“길드는 해산하지 않습니다. 길드원들을 새로 영입하고, 육성해서, 봉인된 길드원들을 되찾아 올 거니까요.”

송서영은 내 다짐을 흔들어보려는 듯이 말했다.

“소원의 탑에 다시 도전하시겠다구요? 소원의 탑은 길드가 가장 강했을 때에도 도전하기 버거운 목표였어요. 구백 구십 구명의 헌터들 중에서 소원석 앞까지 다다른 건 고작 아홉 명 뿐이었다구요.”

“그럼 그 아홉 명을 봉인에서 구하기 위해서라도 가야겠네요.”

그들은 길드 마스터인 나와 만날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그 대가가 봉인이더라도,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언젠가는 그들과 내가 만날 수 있다는 게 아니겠어.

그렇다면 봉인을 풀 방법도 반드시 어디엔가는 존재한다.

길드를 도로 세워서 길드원들을 되찾아온다.

그리고 유서준 zl존 길드의 이름을 이 세계에 다시 한 번 널리 떨친다.

게이머로서, 길드 마스터로서, 한 명의 사나이로서.

꽤 괜찮은 목표잖아.

나는 그렇게 다짐을 굳혔다.

송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 마스터가 그러신다면, 사무직원인 저야 따를 뿐이죠. 월급만 밀리지 말고 주세요."

"그건 걱정 마요. 월급이 밀리게 되면 이 빌딩을 팔아서라도 마련해 줄 테니까."

이 빌딩 가격이 얼마인데.

나는 내심 유쾌한 농담을 했다고 생각하며 뿌듯해했다.

"저... 길드 마스터.”

“네.”

“이 건물, 다음 주까지 비워줘야 해요.”

나는 잠깐 눈을 감고 마른세수를 했다.

그러면서 살짝 뺨을 꼬집어 봤지만 상당히 아픈 게 역시 꿈은 아닌 모양이었다.

“... 그러니까, 우리 길드 빌딩이 팔렸다고요? 아니, 빌딩은 남은 거 아니었어요?”

“빌딩은 길드 자산 중에 제일 먼저 팔렸어요. 경매에 나오니까 호랑 길드에서 낼름 집어가던데요. 길드 마스터한테 남은 건 300 코인이 전부에요.”

나는 이 세계에 소환되기 전의 내 통장 속 잔고를 떠올려보았다.

어쩌면 회사원이 길드 마스터보다 나을지도...

"길드 마스터."

"네, 네?"

"아무 것도 없이 시작하려니까 어쩐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르네요. 그러니까... 잘 부탁드려요."

송서영은 살짝 미소 짓고 뒤돌아 나갔다.

웃으니까 예쁘구나.

어쩐지 조금 홀린 기분이라, 나는 살짝 뺨을 꼬집어보았다.

음... 역시 길드 마스터가 회사원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잘 부탁드립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