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화
스타팅 멤버를 골라라 (1)
길드는 결국 길드원들의 모임이다.
즉, 길드 마스터인 나와 사무원인 송서영만 남은 지금의 길드는 길드지만 길드가 아니라는 거지.
그러니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길드원을 영입하는 것이다.
일단 어떻게든 헌터를 뽑아야 레이드를 돌고 코인을 벌어 올 수 있으니까.
게임 속에서는 일정 시간마다 [채용] 탭을 눌러서 무작위로 헌터를 뽑았는데. 스카우터 직원을 통해서 [헤드헌팅]을 하기도 하고.
게임 속이지만 현실이기도 한 이 세계에서는 채용을 버튼 하나로 끝마칠 수는 없는 모양이다.
“길드 명성이 많이 낮아져서 걱정했는데, 그래도 하루 만에 세 명이나 지원해주셨어요.”
송서영은 구인 사이트에서 들어온 이력서를 넘겨주었다.
나는 슬쩍 이력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분들 내일 당장 면접 일정 잡아주세요.”
“네? 이 분들 중에서 바로 채용하시게요? 며칠만 기다리시면 더 능력 있는 지원자 분들이 오실 수도 있어요.”
“시간이 촉박하잖아요. 여기 빌딩 나가기 전에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어야죠.”
원래 길드원의 영입은 길드의 명성과 계약 조건에 따라 성공 확률이 정해진다.
하지만 게임 같은 현실, 현실 같은 게임 속 이 세계에서라면 그것 말고도 많은 변수들이 있겠지.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으리으리한 빌딩.
유서준zl존 길드가 파멸적으로 추락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호사스러운 빌딩에서 면접을 진행하는 걸 보면 면접자들 모두가 유서준zl존 길드의 부활을 믿게 되지 않을까.
“그거 사기 아닌가요?”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여기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면 사기 아니잖아요?”
송서영은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곧바로 면접 일정을 잡아주는 건 역시 프로 사무원다운 일처리였다.
***
다음날.
나는 호화스러운 방에서 일어났다.
침구가 좋으니까 수면의 질도 좋아지는구나. 사람들이 왜 비싼 걸 찾는지 조금 이해한 기분이 든다.
스탠드 옆의 버튼을 눌러서 커튼을 치우면 통유리창 너머로 서울의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호텔 스위트룸에 가본 적은 없지만 그런 곳도 우리 길드 빌딩의 숙소만은 못하지 않을까.
이 빌딩에서 쫓겨나기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는 게 문뜩 억울해진다.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고 말 테다.”
나는 샤워기에 냉수를 틀어놓고 분노의 양치질을 마친 후에 정장을 갖춰 입었다.
복도를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승강기 안에는 밀짚모자를 쓴 너구리 인형이 서 있었다.
너구리 인형은 내게 행선지를 물었다.
“어디로 가?”
“어... 사무실이랑 대표실이 있는 77층.”
“77층! 내가 대신 눌러줬어!”
너구리 인형은 낑낑거리면서 손을 뻗어 77층 버튼을 눌렀다.
귀여운 녀석.
“고마워.”
“피곤해?”
갑자기?
움직이는 너구리 인형이 대뜸 피곤하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해야 하지.
나는 어물쩍 대답했다.
“아니, 피곤하진 않은데...”
“걱정이 있어 보여!”
“걱정은 좀 있지.”
“힘내!”
【힘내 너구리의 응원】
[힘내 너구리가 당신을 응원했습니다. 오늘 당신이 하는 일에 신기한 행운이 따를지도?]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아. 이제 기억난다.
길드 편의시설 중에 인형의 집을 짓고 풀 업그레이드를 하면 이렇게 너구리 인형들이 빌딩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길드원들에게 응원을 해주곤 했다.
길드원들의 만족도가 올라가고 명성이 소소하게 올라가는 효과도 있었지.
은근히 대화 핀트가 맞지 않는 너구리였지만, 그래도 순수한 응원을 받으니까 조금 힘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고마워. 덕분에 좀 힘이 났어.”
나는 너구리 인형에게 인사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은 썰렁했다.
한 때는 사무직원과 영업직원, 스카우터, 트레이너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던 곳인데.
그 넓은 공간에서 송서영 주임 혼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고개인사를 하고 대표실 쪽으로 발을 옮겼다.
“길드 마스터.”
대표실 문을 막 열려고 하는데, 송서영이 나를 불러 세웠다.
“왜요?”
“넥타이가 좀 비뚤어지신 거 같은데요.”
“아, 이게... 이렇게 하는 거였던가...”
사실 넥타이는 지퍼식 넥타이밖에 안 써봤다.
그런데 내가 묵은 방에는 아무리 뒤져봐도 지퍼식 넥타이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일반 넥타이를 허둥지둥 대충 맸는데, 그게 티가 많이 났나 보다.
어떡하지.
넥타이를 일단 풀고 이리저리 돌려보았지만 아무래도 이걸 어떻게 매는지는 잘 모르겠다.
“손 치워 보세요.”
“네?”
“제가 해드린다구요.”
송서영은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 쪽으로 훌쩍 다가왔다.
그리고는 정말로 내 넥타이를 착착 매주기 시작했다.
“부하직원이 상사의 넥타이를 매주는 건 적절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요.”
송서영은 단정하게 넥타이 매듭을 짓고 내 정장 옷깃을 살짝 잡아당겼다.
“길드 마스터는 길드의 얼굴이니까요. 단정하고 의젓하셔야 해요. 특히 길드원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아셨죠?”
“네...”
“내일부터는 안 매드릴 거니까 꼭 연습해오세요.”
송서영은 그렇게 말하고 자기 자리로 되돌아가다가 문뜩 생각났다는 듯이 허리를 돌리고는 두 주먹을 살짝 쥐어보였다.
“파이팅이에요.”
“파이팅... 네. 파이팅입니다!”
힘내 너구리와 송서영에게 응원을 받고 나니까 한결 어깨가 가벼워진 기분이 든다.
나도 모르게 중압감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갑자기 게임 속 세계로 소환되었는데, 나를 소환한 길드원들은 실종되거나 봉인 됐고, 내가 세운 길드는 풍비박산이 났으니.
그렇지만 아직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 나를 응원해 준 너구리도 있었고.
내가 삼 년 동안 아껴온 모든 것들이 헛되지는 않았다.
나는 길드 마스터인거야.
그럼, 조금 더 기운을 내보기로 하자.
나는 기운 넘치는 발걸음으로 대표실 안에 들어갔다.
안쪽에는 송서영이 미리 준비해둔 것인지 면접자가 앉을 의자와 약간의 다과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면접까지는 아직 삼십 분 정도 시간이 남았는데.
다시 한 번 이력서를 훑어볼까 해서 이력서를 꺼내자, 이제는 눈에 익은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필수 퀘스트 : 스타팅 멤버 선택】
[임무 : 길드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길드원이 필요합니다. 함께 역경을 딛고 고난을 헤쳐 나갈 믿음직스러운 길드원을 선발해주세요.]
[보상 :
1. 명성 +1
2. 영입칸 + 1]
누구를 영입하든 명성과 헌터 영입칸이 1씩 올라간다고.
꽤 고마운 필수 퀘스트다.
하지만 그게 내 고민을 덜어주지는 않았다.
누구를 영입할지는 참 어려운 문제란 말이지.
이번 채용 공고에는 전사와 암살자와 마법사가 하나씩 지원했다.
헌터의 기본적인 네 클래스 중 지원가만 빼고 두루 지원해준 것이다.
안정적으로 레이드를 돌리려면 역시 체력과 회복력이 우수한 전사가 낫지만, 길드를 빠르게 성장시키려면 공격력이 높고 속력이 빠른 암살자가 낫다.
명성이 오르기 전까지는 길드에 잘 찾아오지 않는 마법사를 이번 기회에 낚아채는 것도 구미가 당기는 선택지지.
나는 고민하다가 역시 채용은 면접자들을 직접 만나보고 정하기로 했다.
사람은 만나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법이니까.
아. 이제 시간이 됐다.
나는 내선 전화기를 들어서 송서영에게 연락했다.
“면접자 분들 차례대로 들여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첫 번째로 들어온 헌터는 전사, 박정하.
그는 면접 시간이 되기 한참 전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안녕하십니까! 박정하라고 합니다!”
그는 우렁찬 함성으로 인사하고 직각으로 허리를 접었다.
반삭발로 머리를 빡빡 민 그는 어깨가 넓고 체구가 커다래서 미식축구 선수 같은 인상이었다.
“제 지원동기는! 세계 1위 랭크였던 유서준zl존 길드는 언제나 제 우상이었고! 그래서 지금은 잠시 길드가 흔들리고 있기는 하지만! 제가 이 손으로 바로 세우고자! 이 한 몸 바쳐 불태우기 위해! 지원한 것입니다!”
“아, 네. 기운이 넘쳐서 좋네요. 일단은 앉아주세요.”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대답부터 시작하는 박정하는 생긴 것만큼이나 시원시원한 성격인 것 같다.
나는 그의 이력서에 적힌 내용을 떠올려보았다.
E등급 전사. 레벨은 2.
보유 스킬은 《도발》 뿐이지만 체력과 회복력, 활력의 수치는 E등급 전사들 중에서도 꽤 높은 편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초반에 탱커로 기용하기에는 우수한 헌터라는 말이다.
“박정하 씨 스펙이면 다른 견실한 중견 길드에서도 영입 제안이 들어왔을 것 같은데요.”
“예! 영입 제안을 몇 번 받기는 했습니다만! 역시 제 마음을 울리는 것은! 세계 랭크 1위였던 유서준zl존 길드 뿐!”
“우리 길드를 좋게 봐주는 건 고맙습니다만 솔직히 말씀 드릴게요. 아시다시피 우리 길드는 길드원들을 다 잃는 사고를 겪었어요. 명성도 땅에 떨어졌고, 길드 자산도 바닥이 났습니다. 박정하 씨가 바라는 대우를 맞춰주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박정하 씨는 우리 길드에 들어오고 싶으십니까?”
그 말을 들은 박정하는 서슬퍼런 안광을 뿜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