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헌터 타이쿤-3화 (3/52)

제 3화

스타팅 멤버를 골라라 (2)

박정하는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했다.

“그러니 지금이 아니면! 제가 유서준zl존 길드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유서준zl존 길드의 불행을 이용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것은 저에게는 하나의 기회인 것입니다! 저는 그 기회를 붙잡기 위해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저는 유서준zl존 길드의 저력을 믿습니다! 수많은 던전과 탑을 정복하고 게이트를 관리하던 세계 랭크 1위의 유서준zl존 길드! 지금은 비록 흔들리고 있지만, 곧 다시 일어서서 명성을 떨칠 겁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우뚝 선 유서준zl존 길드의 개국공신이 될 겁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개국공신이라기보다는 중흥공신이겠지만.

어쨌거나 그의 진심은 잘 전해졌다.

내 길드를 그렇게 좋게 봐주었다는데 호감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박정하는 스펙상으로도 꽤 괜찮은 전사니까.

나는 박정하의 이름 옆에 동그라미를 세 개 그려두었다.

"네. 알겠습니다. 혹시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긴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채용을 해주시면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만! 설령! 채용이 되지 않더라도! 저는 오늘 이렇게 길드 빌딩에 와서! 길드 마스터님과 만난 것만으로도! 평생에 남을 추억이 되었습니다! 빌어먹게 감사했습니다!”

옆에 오래 두면 청력이 손상될 거 같아서 무섭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길드에 들어오고 싶어한다니 역시 호감이 간다.

어쨌거나 박정하는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가고.

두 번째로 들어 온 면접자는 암살자 클래스의 이연채였다.

“안녕하세요~”

태도가 조금 가볍기는 하지만, 무례한 정도는 아니고 발랄한 수준이다.

금년도에 아카데미를 막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니까 그럴 만도 하지.

스펙을 살펴보자면 F등급 암살자. 레벨은 3.

보유 스킬은 패시브 스킬인 《치명타》가 있고, 공격력은 평범하지만 속력이 빠른 편이다.

아카데미 성적은 무난하고 실습 경험도 여러 번 있다.

아직 길드에서 레이드를 해본 경험은 없지만, 이런 사람을 뽑아서 처음부터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럼 뭐부터 물어볼까.

역시 지원동기부터 시작하는 게 무난하겠지.

“이연채 씨는 우리 길드에 지원하신 동기가 뭔가요?”

“아, 네. 저희 언니가 유서준zl존...”

“잠깐만요.”

길드 이름을 바꾸든지 해야지.

길드명이 나올 때마다 유서준zl존, 유서준zl존 하다보니 어지러워 죽겠다.

“유서준zl존 길드라고 하지 마시고, 그냥 길드라고 해주세요.”

“네? 네... 어쨌든 저희 언니가 길드원이었거든요.”

“어디 길드요?”

“유서준zl존 길드요.”

나는 멍해서 입을 벙끗거리다가 물었다.

“그건... 이연채 씨의 언니도...”

“네. 소원의 탑에서 실종됐어요. 아니면 봉인되었든가요. 둘 중에 하나겠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핑계를 대려면 댈 수도 있겠지.

소원의 탑 공략을 지시한 것은 그게 게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길드가 무너지고 길드원들이 실종되거나 봉인된 이 상황에서 누군가 한 명이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건 나여야 한다.

책임지는 것은 위에 서는 자의 의무니까.

내가 길드 마스터로서 이 길드를 다시 부흥시키겠다고 다짐한 이상, 책임을 지는 것은 나의 의무일 수밖에 없다.

흠씬 두들겨 맞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연채는 의연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헌터는 원래 위험한 직업 아닌가요. 그래서 보험도 안 들어주잖아요. 저도 아카데미 졸업생이니까 알만큼은 알고 있어요. 물론 길드 마스터의 책임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미 책임지실만큼은 책임지셨다고 생각해요. 길드에서 준 보상금액을 보고 깜짝 놀랐는걸요.”

이연채는 이미 마음속에서 일단의 정리를 마친 듯했다.

나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질문했다.

“저, 혹시, 이연채 씨 언니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이은채에요.”

999명에 이르는 소속 헌터들을 전부 완벽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은채는 내가 아끼던 길드원이었다.

찰랑찰랑한 생머리에 까만 눈, 새하얀 피부.

규중 아가씨처럼 생겼지만 강력한 순간딜을 뽑아내는 암살자 클래스였다.

너구리 인형을 특히 좋아해서 [마이룸]에서는 늘 너구리 인형을 끌어안고 놀곤 했었지.

자세히 뜯어보니 동생인 이연채도 언니를 닮은 면이 꽤 있다.

이연채는 머리를 쓸어 넘기고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얘기가 계속 빗나갔는데요, 지원 동기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될까요?”

“네. 그래주시죠.”

“그러니까... 언니가 그렇게 사라지고 나서 길드가 휘청거린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결국은 언니가 사라진 것처럼 길드도 무너지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구직 사이트를 보다보니 이번에 새로 헌터들을 뽑는다고 해서 궁금하기도 하고, 아, 이런 마음가짐으로 면접에 오면 안 되는 거겠죠? 죄송해요.”

“아니에요. 당연히 궁금하실 수 있죠.”

이연채는 내 말에 감사하다는 듯 고개를 꾸벅 숙이고 말을 이었다.

“실은 면접 보러 올 때만 해도 그런 생각으로 왔어요. 언니가 그렇게 좋아라 하던 길드가 어떤지 구경하고, 길드 마스터 얼굴이라도 보면, 이제 정말로 언니를 보내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러셨군요.”

“그런데 저 앞에 사무원 분한테 들었는데요... 길드 마스터님이 소원의 탑에 다시 도전하신다고...”

그렇게 말끝을 흐리는 이연채의 얼굴에는 불안과 희망이 서로 엉켜있었다.

나는 꼿꼿하게 허리를 세워서 다부지게 대답했다.

“네. 들으신 내용대로입니다. 저는 길드를 다시 세워서 소원에 탑에 다시 도전할 거예요. 그리고 소원의 탑 어딘가에 숨어있을, 혹은 봉인되어 있을 길드원들을 되찾아올 겁니다.”

이연채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럼 저도 길드 마스터님과 함께 하고 싶어요. 아, 이것도 면접자가 할 말은 아닌가... 이건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죄송해요. 제가 좀 이랬다 저랬다 하죠?”

“괜찮아요. 이해합니다.”

조금 뒤죽박죽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사회초년생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아끼던 이은채의 동생이다.

동생이 언니를 구하겠다고 하는데 그것만큼 절박하고 진실한 동기도 없겠지.

“길드 마스터님께서 소원의 탑에 오르신다면, 저는 꼭 그 옆에 함께 하고 싶어요. 언니를 구할 수 있다면, 제 손으로 언니를 구해내고 싶어요. 네, 그러니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연채는 그렇게 말하고는 허리 인사를 하고 나갔다.

박정하와 이연채.

둘 다 괜찮은 인물들인 만큼 고민이 길어진다.

그리고도 아직 한 명이 더 남아있었지.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송서영 씨. 다음 면접자 분 들여보내주세요.”

“다음 면접자인 신수련 씨는 차가 막혀서 조금 늦는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럼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한 십 분 정도 기다렸을까.

마법사 신수련은 딱딱거리는 하이힐 구두굽 소리를 내면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죄송한데 전화 한 통만 하고 시작할 게요. 급한 거거든요.”

대표실에 들어오자마자 전혀 죄송하지 않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어 올리는 신수련.

이건 가관이다.

“여보세요~? 아이스크림 치과죠? 저 세 시에 예약했는데 좀 늦을 거 같아서요. 네, 네, 한 십 분 정도 늦을 거 같아요. 네. 차가 막혀서요.”

난 기가 막히다.

당장 돌아가라고 하고 싶지만, 어쨌거나 오긴 왔으니 면접을 하긴 해야겠지.

사실 스펙만 따지자면 신수련은 박정하나 이연채 둘을 합친 것보다 훨씬 낫다.

C등급 마법사. 레벨은 5.

이것만 해도 대단한데, 보유 스킬은 《불꽃탄》, 《섬광탄》, 《매연탄》으로 모두 하나 같이 괜찮은 공격 스킬들이다.

이런 인재가 왜 망해가는 길드에 면접을 보러왔는지 의아해지지만...

껌을 짝짝 씹으면서 대표실을 둘러보는 저 모습을 보면 대충 알만하기도 하다.

“유서준zl존 길드가 망했다고 다들 그러던데, 빌딩은 엄청 비싸보이네요?”

“네... 뭐...”

“하긴. 부자는 망해도 삼대가 간다는데. 세계 1위 랭크 길드가 하루아침에 망하겠어요. 무슨 리먼 형제 길드도 아니고.”

신수련은 이 정도면 내가 채용되어 주어도 좋다는 식이었다.

다른 길드에서도 이런 식이었겠지.

아무리 능력이 좋고 클래스가 귀해도, 결국은 사람을 안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녀 정도의 스펙은 그냥 놓치기에는 참 아쉬운 것이기도 하다.

"신수련 씨 지원 동기는..."

“아, 저 다음 약속이 있어서요.”

“치과 가세요?”

“아앙~ 진짜 급한 약속이에요. 면접 끝났으면 가 봐도 되죠?”

“네. 가세요. 가셔요.”

신수련은 히히 웃고는 음료수를 두 병이나 집어갔다.

그러면서 은근히 '마법사는 어디서든 모셔가는 거 아시죠?'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눈살이 찌푸려지기는 하지만, 그녀를 바로 내쫓지 않은 것은 그만큼 그녀의 스펙이 좋기 때문이다.

C등급 마법사인 신수련을 지금 영입한다면 던전 레이드는 무척 수월해지겠지.

길드가 정상화 될 때까지만 꾹 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 똑똑.

송서영이 노크하고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내 앞에 타피오카 펄을 잔뜩 넣은 타로 밀크티를 내려놓았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고생하셨습니다.”

차마 아니라는 말은 못하겠다.

앞에 두 분은 참 좋았는데 마지막 사람이 참.

“아, 그 면접자 분들 희망 급여 적은 것 좀 보여줘요.”

“여기 있습니다.”

송서영은 표로 잘 정리된 서류를 내밀었다.

박정하. E등급 전사. Lv. 2 (250 코인)

이연채. F등급 암살자. Lv. 3 (200 코인)

신수련. C등급 마법사. Lv. 5 (400 코인)

이게 당장 나가는 돈이 아니라는 데에 안심해야 하나.

어쨌거나 첫 급여를 줄 때까지 한 달의 여유는 있는 셈이니.

그럼 영광스러운 스타팅 멤버로 이 중에서 누구를 택한담.

각자 장단점이 있는 만큼, 나는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