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화
사내복지는 주5일과 수면실
【헌터헌터 타이쿤】의 주요 컨텐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길드를 확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속 헌터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헌터헌터 타이쿤】은 경영 시뮬레이션과 육성 시뮬레이션을 조금씩 섞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길드 확장은 사무실을 설치할 때 활용한 길드 시설 시스템을 통해 이뤄진다.
그리고 소속 헌터를 육성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이 일정(스케쥴) 시스템.
길드 마스터는 이 일정 시스템을 통해 4주 단위, 대략 한 달의 주기로 헌터의 일정을 정할 수 있다.
길드원의 길드에 대한 만족도나 길드 마스터에 대한 관계도, 활력 수치, 상태 이상 여부에 따라 일정이 어그러지기도 하지만 그건 일단 각설하기로 하고.
길드 시설이 확충됨에 따라 길드원들에게 더 다양한 일정을 꾸려줄 수도 있지만 그것도 일단은 각설하기로 하고.
지금 당장 정할 수 있는 일정은 일단 네 가지.
[훈련 : 헌터로서 기본적인 소양을 연습하고 익힙니다. 종합 능력치가 조금씩 증가합니다.]
[파견 : 다른 길드로 잠시 파견합니다. 코인과 명성을 벌어옵니다.]
[임무 : 소속 길드로 수주한 임무를 직접 수행합니다. 코인과 명성을 벌어옵니다.]
[휴식 : 휴식을 취하게 합니다. 만족도와 관계도, 활력을 회복시켜 줍니다.]
이건 역시 게임과 같았다.
“3일, 5일, 7일 연속으로 같은 일정을 잡으면 점점 더 효율이 높아진답니다.”
송서영이 옆에서 팁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것도 물론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박정하와 이연채는 어깨를 움찔했다.
【헌터헌터 타이쿤】의 설정상 헌터 업계에는 주5일제가 도입되지 않았다.
툭하면 사람을 해치는 몬스터가 뛰쳐나오는 세상이니 토요일, 일요일이라고 해서 헌터가 편히 쉴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헌터를 쉬지 않고 계속 돌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훈련과 파견, 임무는 모두 만족도와 관계도, 활력을 조금씩 소진시키는데, 이걸 가장 효율적으로 회복시키는 방법은 휴식을 취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값비싼 명절선물과 소고기 회식, 그리고 편리한 사내 시설도 달콤한 휴일보다는 못한 법이지.
회사원이었던 나로서는 그걸 너무나도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사설은 이 정도면 됐고.
나는 곧바로 일정표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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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하의 일정]
첫째 주 : 훈련(5연속!!), 휴식, 휴식
둘째 주 : 파견(5연속!!), 휴식, 휴식
셋째 주 : 파견(5연속!!), 휴식, 휴식
넷째 주 : 훈련(3연속!), 휴식, 파견, 휴식,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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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채의 일정]
첫째 주 : 훈련(5연속!!), 휴식, 휴식
둘째 주 : 훈련(5연속!!), 휴식, 휴식
셋째 주 : 훈련(5연속!!), 휴식, 휴식
넷째 주 : 훈련(3연속!), 휴식(3연속!),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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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하는 어느 정도 경력 있는 전사이니만큼, 첫째 주 정도만 가볍게 훈련을 하고나서 둘째 주부터는 파견을 나가 코인을 벌어와 줘야 한다.
반면 이연채는 이제 막 아카데미를 졸업했으니 훈련 위주로 일정을 짜두었다.
좀 질려할 수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실전을 겪게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렇게 각자 열심히 시간을 보내다가 넷째 주 마지막 날에는 임무를 같이 수행하기로 했다.
그 때까지는 우리 길드로 임무가 하나쯤은 들어오겠지.
임무를 수주하는 건 길드 명성과 사무원의 능력에 따라 정해지는데, 우리 길드의 사무원인 송서영의 능력을 생각해 보면 임무가 대여섯 개 쯤은 들어올 지도 모른다.
“일단 내 나름대로 일정을 짜봤는데. 어때요? 의견 있으면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나는 사무실 내의 화이트보드에 직접 일정표를 그려서 보여주었다.
이렇게 따르라고 명령을 내리는 건 간단한 일이지만, 나는 가급적이면 길드원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었다.
다행히 박정하와 이연채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길드 마스터께서!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요! 저는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동기들은 주말도 없이 출근한다고 하던데... 정말 이렇게 쉬어도 돼요?”
둘은 이견이 없었는데, 송서영이 말을 꺼냈다.
“격주로라도 7연속 일정 버닝을 받는 게 어떨까요? 첫째 주와 셋째 주는 주7일 근무로 하고, 둘째 주와 넷째 주는 주5일로 하는 거예요.”
“그건 길드원들이 너무 힘들어할 것 같은데요.”
“길드 빌딩을 되찾아오려면 그 정도는 해야죠.”
송서영은 하루라도 빨리 호랑 길드에게서 길드 빌딩을 되찾아 와야 한다며 이를 갈았다.
박정하와 이연채도 한 마디씩 말을 받았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의 피도 끓어오릅니다! 절치부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주7일 근무를 서도록! 하겠습니다!”
“그... 저도... 네, 격주로 쉬어도 괜찮아요. 사실 동기들 중에서도 주말 다 쉬는 애는 없거든요.”
그렇게 말한다면 못 이긴 척 송서영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그렇게 빡빡하게 길드원들을 돌리고 싶지는 않다. 요직게임 플레이는 게임에서 한 걸로 족하잖아.
그래도 사람이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쉬어줘야지.
물론 7연속 일정 버닝 효과를 놓치는 건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주5일제를 꼬박꼬박 지켜주면 얻을 수 있는 특별 이벤트도 있단 말이지.
“사무실을 철거할 때처럼 말이죠?”
송서영은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물었다.
능력 있는 사무원인 그녀는 정석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알고 있지만 꼼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래서 더 흥미로워하는 걸지도.
“네. 맞아요. 그 특별 이벤트 보상이 또 꽤 쏠쏠하니까 기대하셔도 될 거예요.”
“흐흥. 그럼 그렇게 준비하도록 할게요. 사실 주5일제를 지켜주는 길드는 많지 않으니까, 추후 신입 헌터를 영입하는 데에도 이 점을 유리하게 홍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송서영은 그 정도로 정리했지만, 주말을 잃어버릴 뻔하다가 되찾은 박정하와 이연채는 싱글벙글한 표정들이었다.
“그럼 일단 오늘은 이렇게 마치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일정 시작합시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다들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따로 집이 없는 나만 길드 아지트에 혼자 남겨졌다.
…….
조용하구나.
조금은 쓸쓸해진다.
원래의 현실에서도 퇴근하면 늘 혼자였는데.
요 며칠 송서영이나 박정하, 이연채와 함께 지냈다고 잠시 외로움을 잊었나 보다.
그래도 언젠가는 내 길드원들을 되찾아, 내 길드 빌딩으로 되돌아갈 테니까.
게임 화면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나만의 최애캐들. 언젠가는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술잔을 기울일 수 있을 거야.
그건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나는 금세 기운을 차렸다.
아. 그런데 나는 어디서 자지?
***
길드 아지트로 삼은 『낡은 건물』 5층 중 방 네 개는 아직 비어있고, 복도 가장 안 쪽의 방 하나만 사무실로 쓰이는 중이다.
일단 공실에는 아무 것도 없으니까 거기서 잘 수는 없고.
정말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사무실 소파에서 숙식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다 편하게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인데.
그렇게까지 코인을 아끼고 싶지는 않다.
『수면실』
「비용 : 50 코인」
「설명 : 길드 내에서 수면을 취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길드원들이 회사에서 출근해서 회사로 퇴근할 수 있도록 너그러운 길드 마스터들의 꿈과 희망이 구현된 장소입니다.」
「효과 : 길드원의 활력 회복이 약간 빨라집니다.」
길드 편의시설 중 하나인 수면실.
장기적으로 보면 근처 모텔에서 지내는 것보다 수면실을 설치하는 게 오히려 더 싸게 먹힌다.
수면실은 한 번 지어두면 추가 비용 없이 계속 쓸 수 있으니까.
그리고 수면실을 지을 거면, 이것도 같이 지어놔야지.
『샤워실』
「비용 : 50 코인」
「설명 : 온수가 잘 나오는 샤워실입니다. 개별 샤워부스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효과 : 길드원의 만족도가 약간 증가합니다.」
소지금이 300 코인밖에 없었다면 수면실과 샤워실, 합쳐서 100 코인을 쓰는 데에 손이 벌벌 떨렸겠지.
하지만 특별 이벤트 보상 덕에 내 소지금은 1000 코인까지 불어났다.
나는 수면실에 샤워실까지 과감하게 한 번에 설치하기로 했다.
사무실을 설치할 때와 마찬가지로 밝은 빛이 비어있는 방을 휘감았다.
잠시 후, 감았던 눈을 떠보면 사무실 옆의 방과 그 옆의 방에 각기 샤워실과 수면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먼저 샤워실에 들어가서 온수로 개운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수면실로 들어갔다.
수면실 안에는 이층침대가 네 개나 있는데 각 침대마다 매트리스와 이불, 베개까지 모두 구비되어 있었다.
침대 위에 누워보니 적어도 내가 현실에서 자취할 때 쓰던 매트리스보다는 훨씬 나았다.
길드 빌딩에서 지낼 때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건 뭐 어쩔 수 없지.
누우니까 졸린데.
이대로 잘까 하다가, 습관처럼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유튜브에는 레이드 중계 영상이 추천 영상으로 올라와 있었다.
길드 순위를 정하는 영상도 있고, 헌팅의 기술을 알려주는 영상도 꽤나 조회수가 높다.
이 세계를 좋아하던 나로서는 이것저것 다 모두 재밌는 소재들뿐이다.
갑자기 두둑한 설정집을 선물로 받은 기분이라고 할까.
랜덤하게 이어지는 영상을 흘러가는 대로 시청하고 있는데, 다음 순서가 뉴스 영상으로 넘어갔다.
“다음 소식입니다. 수년 간 세계 랭크 1위를 차지하던 유서준zl존 길드에서 새로 헌터를 영입했다고 합니다. 소원의 탑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고로 길드원들이 모두 실종되거나 봉인 됐으니 이대로 해산 절차를 밟는 게 아닐까 했는데, 이렇게 되면 부활의 가능성도 두고 봐야겠습니다. 장막 뒤에서 암약하던 유서준 길드 마스터가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도 들려오는데요, 이에 관하여는 추후 특별 보도를 편성하여...”
아직 우리 길드 명성은 한 자릿수일 텐데, 특별 보도까지 편성한다고?
명성과 인지도는 별개라는 걸까.
그럼 높은 인지도를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 방법이 없을까.
그런데 저 놈의 길드명은 하루라도 빨리 바꾸든지 해야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나 보다.
“... 알!”
“... 알알!”
“알알알알알!!”
시끄러워…….
밤중에 개 짖는 소리라니.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그런데, 눈앞에 시꺼먼 형체가 보여서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조심스럽게 더듬더듬 손을 뻗어보니 아무 것도 만져지지는 않는데.
나는 바닥에 내려놓은 핸드폰 불빛을 켜서 그것을 비추었다.
“알!”
그건, 인절미색 웰시코기였다.
녀석은 혀를 내밀고서 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다.
찰랑거리는 풍성한 꼬리를 보아하니 단미수술은 받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게 그 유령견인가.
송서영이 나올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던 걸 깜빡했다.
“알알!”
웰시코기는 심심했는지 내 이불을 잡아당기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영체(靈體)라 이빨은 이불을 스쳐 지나갈 뿐이다.
역시 이 녀석은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는 없는 듯했다.
척 봐도 해를 끼칠 것 같이 보이지는 않고.
나는 그냥 귀를 막고 벽 쪽으로 돌아눕기로 했다.
“알알알알알!”
놀아달라는 거냐.
웰시코기는 집요하게 짖어댔다.
“으으...”
나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기로 했다.
한 삼십 분 놀아주면 되겠지.
하지만 내가 일어나자마자 웰시코기는 침대에서 펄쩍 뛰어내려 수면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수면실 밖에서 알! 하고 다시 짖었다.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나는 천천히 웰시코기를 따라갔는데, 녀석은 나를 건물 밖까지 데려갔다.
1층 정문을 나서서 건물 옆에 있는 작은 화단이 목적지였다.
화단에는 아직 꽃을 심지 않아서 울타리 안은 작은 잡풀 몇 개만 잎사귀를 내밀고 있었다.
“알알알!”
웰시코기는 작게 울고는 화단을 파바박 파헤치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흐릿한 영체 앞발로는 흙을 파낼 수가 없었다.
“끼잉... 낑...”
야. 그렇게 안쓰러운 눈을 하고 쳐다본다고 내가 대신 파줄 거 같아?
“끼이잉... 끼잉...”
음.
에라. 모르겠다.
나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화단을 대신 파주었다.
밤중에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는데...
두 뼘 정도 팠을까.
아래에서 무언가 희고 단단한 것이 손에 잡혔다.
나는 그것을 잡고 당겨보았다.
그건 의외로 쉽게 쑥하고 뽑혀 나왔다.
“이게 뭐지... 하얗고... 딱딱하고... 딱 넓적다리뼈처럼 생겼는데.”
“알!”
“넙다리뼈 맞다네.”
“…….”
“다시 말해 대퇴골(大腿骨)이란 거지.”
“알알알!”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하지만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싹한 한기가 등골을 타고 오른다.
건물에 붙어있던 원혼은... 다 성불했다고 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