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화
귀신의 부탁
세상에는 무서운 것들이 참 많다.
시퍼런 주식 차트, 꽉 끼는 작년 바지, 친한 사이도 아닌데 건네받은 청첩장.
어른이 되면서 귀신보다 무서운 건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다 귀신을 안 만나봐서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귀신... 귀신은 무섭다...!
“돌아보지 않을 텐가?”
“…….”
“알알알!”
웰시코기는 눈치도 없이 마구 짖어댔다.
이 녀석, 나를 귀신한테 먹이려고 유인해온 거였구나.
믿었는데!
“그럼 내가 자네 눈앞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겠구먼.”
거리를 좁혀오는 건지 높낮이 없는 목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서 들린다.
이러다가 갑자기 왁하고 튀어나오는 건가?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돌아보는 게 낫다.
나는 젖 먹던 용기까지 내서 고개를 돌아보았다.
“이제야 이 쪽을 보는구나.”
그 쪽에 있는 것은 웰시코기와 마찬가지로 영체로 이루어진 노인이었다.
백발을 이마 뒤로 넘긴 올백머리 스타일과 새까만 선글라스가 굉장히 진한 인상을 준다. 은퇴한 마피아나 사설탐정이 떠오르는 인상이라고 할까.
이렇게 보면 귀신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아.”
시선을 내려 보고 알았다.
그 노인의 하반신은 밑으로 내려갈수록 희미해져서, 발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정말 귀신이잖아.
내가 그대로 얼어붙자, 노인은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내가 무서운가? 걱정 말게. 산 사람을 해코지 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러십니까...?”
“안 믿는 모양인데. 일단은 내 소개가 먼저겠군. 나는 레이스 길드의 소속 헌터인... 아니, 였던, 네크로맨서 강시철이라고 하네.”
강시철은 선글라스를 벗고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등장은 갑작스러웠지만, 행동거지를 보니 그래도 양식이 있는 귀신인 것 같다.
그렇지만 성불하지 않고 이승을 떠돌아다니는 데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터.
이 건물을 지키려는 걸까? 아니면 원한을 풀어달라는 걸까?
혹은 여기 화단 밑에 묻혀 있는...
“으악!”
나는 그제야 넙다리뼈를 집어던졌다.
인골을 지금까지 들고 있었어.
손에 남은 생생한 감촉이 영 껄끄럽다.
강시철은 내던져진 뼈를 보고 혀를 찼다.
“아무리 죽고 난 다음의 일이라지만 내 뼈를 그렇게 내팽개치면 기분이 영 그렇구먼.”
“앗, 죄송합니다!”
나는 다시 넙다리뼈를 주웠다.
이게 저 할아버지의 뼈라는 걸 생각하면 영 기분이 오묘해진다.
그런데 왜 유골이 묘지가 아니고 건물 옆 화단에 묻혀 있는 거지.
무슨 불미스러운 사고가 있었나? 아니면 뭔가 거대한 음모?
“미안하지만 그런 건 없다네. 내가 여기 묻어달라고 했지.”
“어르신께서요?”
“이 건물은 내게 추억이 많은 건물이라서 말이야. 억지를 써서 건물 옆에 묻어달라고 부탁을 했다네.”
의외로 훈훈한 이야기일지도.
“물론 원한을 모으기 위한 이유도 있었지. 제대로 된 묘지에 묻히지 않으면 조금씩 원한이 쌓이게 되니까 말이야.”
역시 원혼이었어!
“원한을 모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네. 자네는 네크로맨서에 대해서 좀 아는가?”
“... 사자(死者)들을 부리는 지원가형 헌터 아닙니까.”
“그래. 그렇다면 네크로맨서의 극한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글쎄요.”
그건 내가 네크로맨서가 아니라서 모르겠다.
그러자 강시철은 흐물거리는 몸으로 빙빙 돌면서 외쳤다.
“최후의 네크로맨서라는 건 말이야. 나 자신이 직접 사자(死者)가 되는 것이네!”
“알알!”
강시철의 말에 웰시코기가 짖어댔다.
사자(死者)로서 스스로를 부리는 네크로맨서라.
이게 무슨 개소리지 싶으면서도 은근히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그럼 어르신은 네크로맨서의 극한을 추구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지. 잘 자다가 침대에서 죽었네. 워낙에 호상(好喪)이라서 원한 없이 바로 성불할 뻔 했네. 묘지에 안장했으면 아마 그대로 성불했을 거야. 화단에 묻어달라고 미리 유서를 적어두었기에 망정이지.”
“그럼 저 녀석은요?”
“웰시도 15년이나 살다가 천수를 다 누리고 죽었다네.”
무슨 이야기가 이래.
황당해서 좀 허탈할 정도다.
그냥 이대로 들어가서 자면 안 될까.
하지만 강시철은 말상대가 생긴 게 기뻤는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여하튼 원혼으로서 이승에 남는 실험은 성공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지. 궁금하지 않나?”
“예. 너무너무 궁금하군요. 뭡니까, 그게.”
“그건 바로 내가 영체란 거야.”
“원래 영혼은 다 영체 아닙니까.”
“네크로맨서 영혼은 다를 줄 알았지. 이건 내가 바란 게 아니네.”
강시철은 이래서야 그냥 귀신과 다를 게 없다며 한탄을 했다.
“영체와 실체의 중간재만 있다면 그걸 반도체 삼아서 실체화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게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요.”
“소원의 탑.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이상향. 아마 거기 어딘가에는 있을 거야.”
여기서 갑자기 소원의 탑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무어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눈앞에 익숙한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특별 이벤트 : 영혼 네크로맨서의 부탁】
[설명 : 스스로 원혼이 된 네크로맨서 강시철은 영체인 몸을 실체화하기를 원합니다. 영체와 실체의 중간 성질을 갖는 물질을 그에게 구해주세요.]
[보상 : 강시철과의 관계도가 조금 올라갈지도 모릅니다.]
특별 이벤트 보상이 귀신, 그것도 백발노인과의 관계도 증가라니.
그렇지만, 게이머로서의 직감이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런 애매한 문구로 얼버무린 것이 때론 엄청난 보상으로 돌아올 때도 있으니까.
“좋습니다. 어차피 소원의 탑에는 저도 볼 일이 있었으니. 어르신이 말씀하신 것도 찾아보도록 하죠.”
“정말인가? 고맙구먼! 내가 부탁한 거긴 하지만 소원의 탑을 오르는 건 쉽지 않을 게야. 그러니 웰시를 빌려주도록 하지.”
강시철은 화단 한 쪽을 가리켰다.
그가 시키는 대로 흙을 조금 파보니, 뼈다귀 모양의 개껌이 나왔다.
“이걸로 어디서든 웰시를 소환할 수 있다네. 영체라고는 하지만 던전이나 탑 안에서는 도움 받을 일이 많을걸.”
오히려 영체라서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정찰이나 파수, 경계에는 유령견의 도움이 큰 힘이 되겠지.
“고맙습니다.”
나는 강시철에게 인사를 하고 웰시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손은 녀석의 머리 안으로 쑥 들어갔지만, 웰시는 그대로 기쁘다는 듯 꼬리를 흔들며 웃었다.
“알알!”
생각지도 못한 이웃과 생각지도 않은 반려견이 생겼다.
그래도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밤잠은 싹 달아나 버려서, 나는 화단 옆에 주저앉아 강시철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달밤은 천천히 저물어갔다.
***
강시철과 이야기를 마치고 수면실로 돌아가 눈을 잠깐 붙였다.
“안녕하십니까!”
박정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리기 전까지.
과장 안 하고 정말 딱 십 분 눈 붙인 것 같은데.
벌써 아홉 시인가?
아니, 일곱 시잖아…….
수면실 창문을 열어보니 이제 겨우 아침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화단 옆에 있던 강시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침 해가 밝아서 사라진 걸까.
하지만 오늘 밤이 되면 당연하다는 둣 다시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개껌은... 여기 있네.”
침대 밑에 이빨자국이 난 개껌이 있었다.
손을 뻗어 그걸 어루만지면 근처에 희미한 그림자가 나타난다.
개껌을 흔들다가 휙 던지자, 알! 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그림자 속에서 웰시가 튀어나왔다.
“알알알!”
개껌을 물고 돌아 온 웰시는 헥헥거리며 꼬리를 쳤다.
하지만 밤에 비해서는 영 기운이 없어 보이기는 했다.
“아침은 좀 힘들지? 이따 밤에 다시 놀자.”
“알!”
웰시는 한 번 크게 울고는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개껌을 잘 챙겨두고 샤워실에서 씻은 다음 사무실로 들어갔다.
박정하는 이미 자기 자리를 다 정리해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길드 마스터!”
“좋은 아침입니다... 그런데 너무 일찍 온 거 아니에요? 아직 출근 시간까지 한참 남았는데.”
“첫 출근이라 조금 빨리 왔습니다! 사실 너무 기대가 돼서! 어젯밤은 잠도 자지 않았습니다!”
원래 파이팅이 넘치는 스타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쯤 되면 좀 무서울 정도다.
어쨌든 박정하도 아침을 안 먹고 왔다고 해서, 같이 근처 국밥집에 가서 뜨끈한 순대국을 한 그릇씩 먹고 돌아왔다.
남자끼리라서 이런 건 편하고 좋네.
“안녕하세요!”
곧 이연채도 한 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출근했다.
송서영은 정시되기 딱 오 분 전에 왔고.
우리는 일단 소파 테이블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럼 어제 말한 대로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일정 시작합시다.”
“훈련부터 하면 될까요?”
“네. 우선은 훈련실을 지을 테니까 나가서 보죠.”
송서영은 사무실에 남아서 일을 보고, 두 헌터만 나를 따라 복도로 나왔다.
이연채는 밤사이에 수면실과 샤워실이 생긴 걸 보고 재밌어했다.
“길드 마스터. 나중에 여기 써도 되나요?”
“당연하죠. 길드 시설이니까 편하게 이용하시면 돼요.”
사무실과 수면실, 샤워실에 이어서 이제는 훈련실을 만들 차례다.
『초급 훈련실』
「비용 : 500 코인」
「설명 : 헌터가 훈련을 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시설입니다. 훈련실 내에 교관을 배치하면 효과를 더욱 증대시킬 수 있습니다.」
「효과 : 헌터의 종합 능력치가 조금씩 증가합니다.」
“오오...!”
초급 훈련실은 구조가 검도장과 비슷했다.
벽 한 쪽에는 통유리 거울이 있고, 옆면에는 사물함과 작은 창고가 딸려 있었다.
그 반대편에는 목각 허수아비가 줄지어 서 있다.
박정하와 이연채는 각자 가져온 짐을 사물함과 창고에 넣고, 기본 장비를 착용했다.
박정하는 꽤 단단해 보이는 전신 갑옷을 입고 메이스를 들었다면 이연채는 얇은 외투를 두르고 활을 쥐었다.
이렇게 실제로 보니까 상당히 멋있잖아.
“멋있는데요.”
“부끄럽습니다!”
박정하가 하나도 안 부끄러운 성량으로 외쳤다.
이연채는 활줄을 만지작거리다가 허수아비를 겨누었다.
“시작해도 될까요?”
“네. 저는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훈련 시작하세요.”
- 파앙!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살이 날아가 허수아비의 머리에 박혔다.
“이야아압!”
그 모습에 또 감탄하고 있는데, 박정하도 질 수 없다는 듯 허수아비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메이스를 횡으로 휘둘러 허수아비의 머리를 박살내버렸다.
- 쾅!
부서진 허수아비의 머리는 잠시 후에 저절로 재생되었다.
이런 식으로 훈련을 하는 거구나.
나는 뒤로 물러나서 박정하와 이연채가 허수아비를 갖가지 방법으로 파괴하는 걸 지켜보았다.
훈련이라고는 하지만 워낙 호쾌하게 허수아비를 박살내다보니까 내 손도 근질근질하다.
액션영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액션포즈를 취하게 되는 거랑 비슷하다고 할까.
그런데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나'는 뭐지?
그것 자체가 존재론적인 문제였지만, 내가 궁금한 건 조금 더 실용적인 문제였다.
나도 헌터인가?
나도 헌터로서 성장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