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헌터 타이쿤-10화 (10/52)

제 10화

달밤의 선문답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장비비는 흘깃 보기만 했다.

역시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장비비도 공격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장팔사모로 위협하기 시작하니까 조심해야 한다.

저 창날이 한 번만 스쳐도 내 몸은 너덜너덜해질 테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서 장비비의 발치에 떨어진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주웠다.

그 때까지도 장비비는 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비비야.”

“…….”

역시 대답은 없다.

조종당하는 동료에게 '우리의 추억을 떠올려!'라고 외쳐도 별 소용은 없겠지.

세상은 그렇게 달콤하지 않다.

그렇지만... 세상이 그렇게 쌉싸래하지만도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장비비는 분명히 내가 던진 아이스크림 막대기에 반응을 보였다.

한 순간의 반응이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백호랑의 노집사는 목숨을 건졌지.

나는 잠깐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가서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왔다.

장비비의 시선이 아이스크림에 꽂혔다.

“먹고 싶지? 응?”

“…….”

대답은 여전히 없다.

하지만 침이 고이는 모습이 다 보인다.

【헌터헌터 타이쿤】에서는 길드원에게 선물을 해주면 관계도를 쉽게 올릴 수 있다.

모두가 똑같은 선물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서 길드원에 따라 선호하는 선물이 다른데, 장비비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은 아이스크림이었다.

나는 병아리일 적부터 장비비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여 키웠던 것이다.

“네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야. 자...”

하나 포장지를 뜯어서 입에 살며시 가져다대자, 장비비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와삭와삭 씹어 먹었다.

막대기를 뒤로 빼자, 장비비는 고개를 쭉 늘려서 아이스크림을 따라온다.

그러다가 한 걸음, 두 걸음. 발을 옮기기도 하고.

하지만 역시 멀리까지 따라오지는 않았다.

움직일 수 있는 한계선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

장비비는 입맛을 다시며 다시 도개교 쪽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머리 위에 붙은 실끈은 성문 안쪽 어딘가로 이어진다.

어떻게든 저 끈을 떼어낼 수는 없을까.

나는 장비비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이면서 끈 쪽으로 손을 가져다댔다.

이걸 이대로 살짝만 떼어내면...

“크르릉...”

장비비는 아이스크림을 먹다 말고 목을 울렸다.

역시 쉽게는 안 되나.

당장은 묘수가 떠오르질 않는다.

여기서 계속 고민해봐도 어쩔 수 없겠지.

나는 사 온 아이스크림들을 봉투 하나에 담아서 장비비 옆에 내려두었다.

“여기 둘 테니까, 나중에라도 먹고 싶으면 먹어.”

“…….”

“그나저나 실제로 보니까 생각보다 더 멋있던데. 장팔사모 휘두르는 거 말이야. 물론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한 건 나쁜 일이었지만,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지?”

“…….”

“다음번에는 가급적이면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하고. 너도 다치지 말고.”

“…….”

“또 올게.”

“…….”

나는 발길을 돌렸다.

가다가 돌아본 장비비는 그냥 아이스크림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먹여주지 않으면 먹지 못하는 걸까.

그 모습은 조금 쓸쓸해보였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

밤이 되면 낡은 건물에서는 개 짖는 소리가 울린다.

근처를 지나는 행인들은 깜짝깜짝 놀라곤 하지만, 웰시가 꼬리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게 웃겠지.

아. 유령견이라고 화들짝 놀라려나.

“알알! 알!”

웰시는 오늘도 화단에 나가서 놀자고 내 바짓단을 무는 시늉을 했다.

나는 목에 수건을 걸치고 웰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건물 옆, 빈 화단에는 선글라스를 쓴 멋진 노익장이 앉아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고는 선글라스를 올려 쓰고 씩 눈인사를 보냈다.

“위스키 한 잔이 사무치는 밤이야. 안 그런가?”

“듣고 보니 당기네요. 저 앞 편의점에서 팔 텐데, 사올까요?”

“술이 당긴다고 술을 마시는 건 하류지. 나 정도 술꾼이 되면, 저 달에 차가운 불을 담아 마신다네.”

강시철은 달을 가리키며 손가락을 튕겼다.

영체(靈體)로 되어있는 손가락은 신기하게도 불길처럼 일렁거렸다.

묘한 착시 현상으로, 달에 불꽃이 담겨 찰랑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한 잔 하시게.”

“감사히 받겠습니다.”

우리는 이 달을 술 삼아, 저 달을 안주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딱히 목적 없이, 주제가 흘러가는 대로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강시철은 본인도 말이 많긴 하지만, 꽤 편한 이야기 상대이기도 했다.

딱히 나이를 내세우지도 않고 성격도 소탈하다.

네크로맨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말이 한참 길어지긴 하지만, 평범하게 이야기하다 보면 이 사람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깜빡할 정도다.

어쨌든 한참 말을 하다가 장비비 이야기가 나왔다.

강시철은 그 말을 듣고 굉장히 흥미로워했다.

“자네 길드원이 인형술사에게 조종당해서, 소원의 탑 수문장이 되어 있단 말인가?”

“저를 봐도 딱히 반응이 없더군요. 알아보는 건지 아닌 건지 반응도 너무 옅고.”

“글쎄. 정말로 인형술사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면 어쩔 수 없겠지.”

강시철은 손가락을 흔들어 웰시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알!”

웰시는 손가락을 잡겠다고 짧은 다리로 펄쩍펄쩍 뛰었다.

강시철은 웰시와 놀아주다가 갑자기 가로등 저편을 가리켰다.

“웰시! 쫓아!”

웰시는 으르렁거리며 재빠르게 달려갔다.

애옹거리며 서로 싸우고 있던 길고양이 두 마리는 기겁하고 각기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다.

“헥헥헥!”

웰시는 꼬리를 치며 다시 돌아왔다.

강시철은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흡족하게 웃었다.

“봤나? 이게 네크로맨서의 도(道)라네. 죽은 것으로 산 것을 물리치는 거지.”

“견주의 도 아닙니까?”

“웰시는 유령견 아닌가. 그러니 유령견을 부리는 건 네크로맨서의 도(道)인 게야. 어쨌거나 네크로맨서와 인형술사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뭔지 맞춰보겠나?”

네크로맨서와 인형술사의 공통점?

일단 둘 다 지원가 클래스에 속한다는 점이 먼저 떠오르는데.

강시철이 그걸 물어보려는 건 아닌 것 같고.

나는 잠깐 더 고민하다가 퍼뜩 무언가를 떠올렸다.

“둘 다 무언가를 자기 뜻대로 조종한다는 겁니까?”

“옳아. 맞네.”

강시철은 웰시를 쓰다듬어준 것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할아버지 귀신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지는 기분은 묘했다.

그 손이 내 머리 안으로 쓱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하니까 기분은 더 묘했다.

그 사이 웰시는 내 주변을 빙빙 돌다가 강시철에게 갔다가 하면서 정신없이 뛰놀았다.

영체로 된 웰시의 몸은 화단 울타리와 돌멩이를 쉽사리 투과했다.

보고 있자면 상당히 눈이 어지러워지는 광경이었다.

웰시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내게, 강시철이 화두를 던졌다.

“그 친구 말이야. 장비비라고 했나? 그 친구 머리 위에 실끈이 달렸다고 했지? 그리고 그 실끈은 격렬하게 전투하는 와중에도 끊어지지 않았다고?”

“네. 마법과 투사 무기를 두들겨 맞는 동안에도 멀쩡했죠.”

“그럼 그 실끈은 대체 뭘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나?”

소재가 뭐냐니.

그건 내가 아니라 대장장이나 장인에게 물어봐야 하는 질문이 아닐까.

무언가 알려주려고 선문답을 하는 거라면 그냥 편하게 알려줬으면 하는데.

그럼 강시철은 자기한테 답을 맡겨놨냐고 웃고 말겠지.

어디, 한 번 잘 생각해보자.

격렬한 전투 속에서도 끊어지지 않을만한 소재라.

탄력이 있고 질긴 소재라면 몇 개 알고 있긴 하다.

『아라크네의 거미줄』, 『백백은사(百白銀絲)』, 『청실홍실』 같은 조합 재료 아이템.

그것들 중 하나를 써서 실끈을 만들었다면 어느 정도는 전투에도 버티겠지.

하지만 실끈만을 노려 공격한다면 아무리 강한 소재를 쓰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할 거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걸 백호랑이 생각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백호랑은 분명 실끈을 노려 공격한 적이 있을 거야. 하지만 오늘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지.

백호랑이 실끈을 노려 공격하지 않았다는 건, 그녀 자신도 실끈을 공격하는 게 쓸모 없다는 걸 지난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집중 포화를 당해낼 만큼 강한 실끈을 만들 수는 없겠는데.

그렇다면 조금씩 각도를 바꿔서 생각해보자.

공격을 튕겨내는 소재, 공격을 흡수하는 소재, 공격을 반사하는 소재, 혹은 공격을 받지 않는 소재.

그런 소재가 있을까?

나는 장고에 빠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혼자 놀던 웰시가 내 앞으로 다가와서 같이 놀아달라는 듯 알! 하고 울더니 내 가슴팍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깜짝 놀라 일어섰지만, 웰시는 내 몸을 뚫고 반대편으로 나가서 다시 알! 하고 울었다.

놀라게 하긴.

나는 다시 앞으로 뛰쳐나온 웰시를 붙잡아 혼내주려고 했지만, 영체로 된 웰시의 몸은 내 손을 뭉실뭉실 피해갔다.

그 순간, 나는 번쩍이는 희열을 느꼈다.

“영체! 영체였군요!”

강시철은 꽤나 놀란, 그리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단하구먼.”

“바로 앞에 힌트를 주셨잖아요.”

“답까지 알려줘도 못 알아먹는 작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힌트에서 답을 도출한 것도 대단한 거라네.”

그 말에 더 기분이 좋아졌다.

끈의 정체를 알아내 실마리를 찾았다는 것도 기뻤다.

그러니까, 그 끈이 영체로 되어있다는 거지.

그러니 온갖 공격도 다 소용이 없었겠지.

웰시가 사물을 투과하듯, 그 끈도 공격을 통과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겨우 중요한 질문을 하려는데, 강시철이 밝아오는 하늘을 가리켰다.

“이제 곧 아침이구먼.”

“알!”

웰시는 한 번 크게 짖고는 졸린 눈으로 하품했다.

강시철은 웰시의 털을 쓸어주고는 화단 위에 섰다.

나는 그가 사라지기 전에 급히 말했다.

"한 가지만 여쭈려고 했는데요!"

"밤에 또 하세나. 저녁에는 또 그 때의 달이 뜨지 않겠나?"

그의 몸은 서서히 화단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야기 즐거웠네. 그럼 오늘 밤에 또.”

달밤의 선문답은 그렇게 끝났다.

끝까지 직접 답을 알려주지는 않는구나.

그렇다면 답을 맞추어보는 건 내가 해야 할 몫이겠지.

나는 저 멀리 우뚝 선 소원의 탑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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