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헌터 타이쿤-11화 (11/52)

제 11화

장비비 공략전 (1)

영체(靈體)란 영계(靈界)의 물체다.

간단히 말해서 저승의 물건이란 말이다.

본디 이승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조금씩 발을 걸치고 있는 네크로맨서들은 그것을 다루는 것이 업이다.

그러니까 네크로맨서 아닌 인형술사가 영체를 다룬다는 건 좀 특이한 일이다.

인형 대신 인간을 부리려다가 금기를 넘어선 걸까.

불가사의로 가득한 소원의 탑 안에 있는 녀석이니 무슨 사정이 있어도 이상하진 않다. 그걸 지금 고민해봐야 알 도리가 없기도 하고.

어쨌든 내게 당장 중요한 건 장비비를 되돌려 받는 것이니까.

“그렇단 거죠? 그런데 어떻게요?”

이연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 아지트로 출근한 길드원들에게 사정을 설명하던 중이었지.

나는 짝하고 손뼉을 부딪치며 대답했다.

“영체는 영체로 공격하는 수밖에 없죠.”

내 말에 박정하가 오오하고 큰 소리를 냈다.

송서영은 관심 없다는 듯 파티션 너머에서 탁탁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지만, 타자 치는 빈도가 확연히 줄어든 걸 보니 내 이야기를 은근히 엿듣고 있는 모양이다.

여하튼 이연채는 번쩍 손을 들고 또 질문을 했다.

“길마, 영체 공격 수단도 갖고 계셨어요? 아니면 아는 네크로맨서가 있다든가 한 거예요?”

아는 네크로맨서가 한 명 있기는 하지.

그 자신이 원혼이기도 한 강시철.

그가 나를 도와준다면 든든하겠지만... 그는 내가 자신의 도움 없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괴상하게 올드한 낭만을 추구한다고 할까.

역시 조금은 이상한 사람이야.

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이미 그가 날 도와준 거나 다름없다.

선문답을 통해서 힌트를 준 것도 그렇고, 또 그가 내게 맡긴 귀여운 유령견 웰시가 있으니까.

유령 강아지가 있다는 말에 이연채는 발을 동동 굴렀다.

“웰시코기요? 저 코기 엄청 좋아하는데! 보여주세요!”

“지금은 낮이라 좀 곤란해요. 낮에는 웰시가 졸리다고 잘 안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웰시의 도움을 받으려면 이따 밤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멈칫했다.

나와 웰시, 둘만으로 장비비를 상대할 수는 없다.

옛말에도 그랬지.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고.

그러니까 박정하나 이연채, 아니면 둘 다 나를 도와줘야 한다.

“물론입니다! 길드 마스터!”

“소원의 탑에 가는 건 저도 바라는 거니까요. 어쩌면 그 장비비란 사람이 제 언니 소식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좋아요.”

박정하와 이연채는 흔쾌히 내 부탁을 받아주었다.

고마워서 오늘 주간에는 편하게 쉬고 이따 밤에 다시 만나자고 했는데.

“하이얍!”

“야아아앗!”

두 사람은 해가 떨어질 때까지 훈련실에서 땀을 흘리며 훈련을 했다.

둘 다 의욕이 너무 넘쳐나서 탈이다.

길드원을 잘 뽑긴 했지.

덩달아 나도 땡땡이도 못 치고 훈련에 동참해야 했다.

【오늘의 훈련 종료!】

[헌터 유서준의 종합 능력치가 미미하게 증가했습니다.]

[헌터 박정하의 종합 능력치가 미미하게 증가했습니다.]

[헌터 이연채의 종합 능력치가 미미하게 증가했습니다.]

【5연속 훈련 버닝!!!】

[헌터 박정하의 종합 능력치가 약간 더 증가했습니다.]

[헌터 이연채의 종합 능력치가 약간 더 증가했습니다.]

맞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 연속 훈련 일정을 짜두었지.

그 덕분에 박정하와 이연채는 미미하게 오르던 종합 능력치가 약간 더 증가했다.

어제 하루 훈련에 빠진 나는 버닝 효과를 못 받긴 했지만...

그래도 어제 훈련에 빠진 덕에 장비비를 공략할 힌트를 얻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우리는 각자 샤워실에서 씻고 다시 사무실로 모였다.

반나절 동안 땀을 빼며 훈련을 한 탓에 몸이 좀 나른하긴 하지만, 반대로 훈련 덕에 감각이 예리해진 기분도 든다.

“장비는 다 챙겼죠?”

“넵!”

“그럼, 일단은...”

나는 박정하와 이연채, 그리고 송서영에게까지 시선을 마주치고 말했다.

“저녁부터 먹으러 갑시다.”

금강산도 식후경인 법이다.

***

길드 아지트 근처에 오래된 중식당이 있었다.

여기서 오랫동안 생활해온 강시철에게 추천 받은 식당이었는데, 역시 나이 드신 분들이 아는 맛집이 진짜 맛집인가 보다.

표고버섯 안에 탱글탱글한 새우살을 다져서 넣고 튀긴 어향동고가 아주 끝내줬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혹시나 해서 빈 화단 앞에서 잠깐 기다려보았지만 강시철은 나오지 않았다.

역시 알아서 해결하고 오라는 걸까.

냉정히 말하자면 이 일은 그와는 상관 없는 일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자면 그가 내게 주는 일종의 시험 같은 걸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엿 좀 먹어보게 젊은 친구, 하는 심보일 수도 있지만. 으흠.

“아르르! 알알!”

웰시는 ‘왜 오늘은 할아버지 안 나와요? 주무셔요?’하고 묻는 듯이 빈 화단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뛰어다녔다.

이연채는 웰시가 너무 귀엽다며 사진을 찍으려다가 카메라에 웰시가 비치지 않는다고 울상을 지었다.

- 부웅.

길 건너편에서 택시를 잡은 박정하가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길드 마스터! 택시! 왔습니다!”

“지금 갈게요. 연채 씨. 갑시다.”

“네, 길마~ 웰시야. 언니랑 가자.”

“알!”

우리는 택시 한 대를 함께 타고 소원의 탑으로 향했다.

“그런데...”

나는 조수석에서 슬쩍 뒷좌석을 돌아보았다.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요, 왜 송 주임까지 따라왔어요?”

송서영은 째릿하고 시선을 돌려주었다.

“왜요? 제가 따라오면 안 되나요?”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이상하잖아.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사무원이 따라오다니.

“사무원도 길드의 일원이에요.”

“그거야 당연하죠.”

“장비비는 길드원였구요. 그 애가 소원의 탑에서 실종되었다가 인형술사에게 조종 당하기 전까지는 저랑 친하게 지냈다구요.”

그랬겠구나.

그 점을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애정으로 장비비를 키우긴 했지만 결국 나는 그녀를 게임으로만 접해왔다.

박정하와 이연채는 아예 그녀를 만난 적도 없지.

그에 비하면 송서영은 장비비와 오랜 시간 같은 길드의 동료로서 교류했을 텐데.

내 생각이 짧았다.

사과하려는데, 송서영이 먼저 조용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실은 전에도 몇 번 혼자 만나러 가봤어요."

"장비비한테요?"

"혹시라도 알아보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못 알아보더라구요. 그래도 완전히 자아를 잃은 것 같지는 않았는데, 저를 보는 시선이 그랬거든요. 그냥 제가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였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도 나와 비슷한 걸 생각했구나.

가만히 듣고 있자, 송서영도 가만히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그냥 사무원이라서 장비비를 구해줄 방법이 없었어요. 그냥 그렇게 가끔 가서 물끄러미 쳐다보고 돌아올 뿐이었는데... 길드 마스터."

"네."

"길드 마스터라면 그 아이를 구해줄 수 있을 테니까요."

송서영은 그 모습을 꼭 같이 보고 싶었다며 살며시 웃었다.

역시 웃으면 엄청 미인이라니까.

"언니! 웃으니까 엄청 이쁘시네요!"

이연채도 호들갑을 떨었다.

송서영은 언제 웃었냐는 듯 입술 꼬리를 샥 내렸다.

"언니라니. 아직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잖아요. 송서영 주임, 아니면 송서영 씨라고 부르세요."

"딱딱하게 왜 그러세용. 장비비 그 분한테는 부들부들하게 대해줬을 거면서. 같은 길드 동료끼리는 다 친구 아니에요? 친구!"

"장비비는 유서준zl존 길드의 명예로운 길드원이었으니까요. 죄송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연채 씨는 진정한 길드원이 되려면 한참 멀었어요."

"능력으로 차별하는 건 치사한 거 아니에요?"

"저랑 친해지고 싶으면 얼른 성장하시란 소리에요."

그 말에 이연채는 얼른 커져서 송서영과 친해지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송서영이 좀 밀어내는 성격이라 기분 나빠할 수도 있는데, 이연채도 친화력이랄지 배짱이랄지 만만치가 않았다.

택시 기사 아저씨의 눈을 피해 이연채의 무릎에 앉아 있던 웰시는 작게 알! 하고 울었다.

"갑자기 뭔 개소리가..."

고개를 갸웃하는 택시 기사 아저씨의 모습에, 우리는 모두 숨죽여 웃었다.

송서영의 말대로 우리가 아직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앞으로 이런 밤을 몇날이고 함께 보내다보면 언젠가는 이미 친해져있지 않을까.

나는 웃으면서 그냥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

우리를 태워다 준 택시는 다시 반대편으로 붕하고 멀어져 갔다.

소원의 탑 인근은 고요했다.

서울의 밤은 낮보다 훨씬 역동적인데 이 곳만은 딴 세상 같았다.

“사람들이 거의 없네요.”

“근처에 소원의 탑 수문장이 있잖아요.”

"길드 마스터께서! 해주신 말로는! 선공하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그렇다면! 일반 시민들은! 수문장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선공하지 않는다고는 해도 자신을 쉽사리 해칠 수 있는 존재가 근처에 있다는 것만으로 불안한 거죠.”

장비비는 사람들에게 불안을 주는 존재가 되었구나.

내 길드원들은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기를 바랐는데.

... 하지만 이제 어그러진 것을 다시 되돌려 놓을 수 있을 거야.

“저기, 저기인가 봐요.”

이연채가 손가락을 들었다.

소원의 탑 입구.

도개교가 내려진 곳에 홀로 서 있는 소녀.

그녀의 어깨에는 진한 어둠이 내려 앉아 있었다.

다만, 어둠 속에서도 머리에 붙은 끈만은 희끗희끗 빛났다.

나는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나 왔어.”

장비비는 나와 길드원들을 흘깃 보고는 장팔사모를 어깨에 걸쳤다.

역시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제 내가 놔두고 간 봉투는 엎어져서 아이스크림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포장지 덕분에 내용물이 나오진 않았지만, 포장지가 아무렇게나 구겨진 걸 보니 속에서 아이스크림이 물렁하게 녹아내린 것 같다.

기껏 사온 걸 버렸단 말이지.

너는 좀 혼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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