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헌터 타이쿤-12화 (12/52)

제 12화

장비비 공략전 (2)

박정하와 이연채는 레이드 장비를 모두 착용했다.

사무원인 송서영은 안전한 거리까지 물러나고.

길드 마스터이면서 동시에 헌터이기도 한 나는 박정하와 이연채 사이에 자리 잡았다.

한 손에는 스태프를, 한 손에는 개껌을.

웰시는 내 발치에 바싹 엎드려서 으르릉하는 소리를 냈다.

“……!”

장비비는 우리 중에서도 웰시를 콕 집어 노려보며 장팔사모를 겨누었다.

역시 그녀는 영체 끈을 뜯을 수 있는 웰시를 가장 위협적으로 보는 듯하다.

하지만 장비비로서는 영체인 웰시를 타격할 수단이 없지.

나는 이연채에게 화살을 쏘라고 지시하면서 동시에 웰시를 풀어놓았다.

“웰시! 물어!”

“알!”

웰시는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장비비는 이연채의 화살은 그냥 갑옷으로 튕겨내면서 웰시를 향해 장팔사모를 휘둘렀지만, 창날은 웰시의 흐릿한 몸을 스치고 지날 뿐.

웰시는 공중에서 도움닫기를 하더니 끈을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장비비는 장팔사모를 회수하고는 웰시를 향해 외쳤다.

“꺼져라!”

《사자후 Lv.8》

〈주변의 적들을 겁에 질리게 한다.〉

“캥!”

동심원 형태의 충격파가 웰시를 덮쳤다.

웰시는 데굴데굴 굴러서 내 쪽으로 돌아왔다.

나는 얼른 웰시의 몸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웰시는 몸이 좀 흐릿해진 것 외에는 큰 상처가 없었다.

하지만 한두 번 더 사자후에 직격하면 영체가 아예 형체를 잃고 역소환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웰시가 위험할지도 모른다.

낮에는 졸리다고 웰시 스스로 역소환되곤 했지만, 공격을 받아 역소환되었을 때에 웰시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를 일이니까.

그런데 《사자후》 스킬이 어떻게 영체인 웰시한테 타격을 준 거지?

그건 적을 두려움에 질리게 하여 상태이상에 빠뜨리는 스킬이었을 텐데.

“사자후(獅子吼)는 원래 부처의 우레 같은 설법에 마귀들이 굴복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어요. 어쩌면 그 원전(原典) 내용에 따라 웰시가 사자후에 타격을 받은 걸지도 몰라요.”

송서영이 우물쭈물거리다가 말했다.

“그렇지만 저도 이제껏 사자후로 영체를 타격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글쎄. 그건 장비비의 사자후 스킬 레벨이 높은 것과 관계있을지도.

어쨌든 나도 사령계 몬스터가 나타나면 네크로맨서나 성직자로 대응했으니까 지금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끼잉... 낑...”

“미안해. 웰시.”

“알...!”

웰시는 괜찮다는 양 내 손을 핥는 시늉을 했다.

정작 공격을 한 장비비는 뒤로 물러난 우리 일행을 시큰둥하게 바라볼 뿐이었지만.

이렇게 되면 일이 간단히 풀리지는 않겠다.

웰시가 끈을 끊으려고 하면 장비비가 사자후로 웰시를 견제할 테니까.

그럼 웰시가 끈을 끊는 동안 어떻게든 장비비의 시선을 돌려놔야 한다.

문제는 장비비는 호랑 길드의 전사들도 쉽사리 농락해서 파고들었다는 거다.

E급 전사 박정하나, F급 암살자 이연채, F급 지원가인 내가 장비비 앞에서 어지간하게 어그로를 끌다가는 창질 한 번에 목이 달아나는 수가 있다.

“그렇지만 길마는 뭔가 계획이 있으신 거죠?”

이연채는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물론이죠.”

사실 단 한 번에 장비비 공략을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모든 일에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와 사고가 발생하기 마련. 그래서 박정하와 이연채에게 함께 와줄 것을 부탁하기도 한 거지.

나는 장비비에게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 길드원들을 물리고서 작전 회의를 열었다.

“장비비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 장비비가 어떤 상태인지를 확실히 확인해야 합니다.”

“그야 조종당하는 상태죠?”

“맞아요. 장비비는 소원의 탑 안에 있는 인형술사에게 조종당해서 의지를 빼앗긴 수문장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소원의 탑 입구에서부터 일정한 거리 안에서만 움직이고, 우리가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장비비도 공격하지 않아요. 우리가 공격했다가 물러나도 일정 거리 바깥으로 피하면 장비비도 공격을 멈추고요.”

나는 저 앞의 도로 부분을 가리켰다.

“저기 잘 보시면 벽돌 타일에 조금씩 흠집 난 곳이 있죠? 저기까지가 장비비가 돌아다닐 수 있는 범위 내에요. 일명 레드존.”

호랑 길드가 장비비와 싸울 때 눈여겨 봐둔 곳이었다.

저기까지 물러나면 장비비는 더 이상 쫓지 않았다.

이연채가 내 의중을 날카롭게 캐치했다.

“그럼 레드존 밖은 그린존이겠네요?”

“그렇죠. 자, 우리의 작전은 이겁니다. 그린존에서 레드존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장비비의 주의를 흩트려 놓기. 그러다가 틈을 노려서 웰시를 내보내서 끈을 자르는 거죠.”

간단하지만 막상 해보면 쉽지는 않겠지.

“그러니까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위험하다 싶으면 물러나서 다음에 다시 시도하는 거예요.”

“알겠습니다!”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하고 각자의 위치로 흩어졌다.

나는 여기 그대로. 박정하는 저 멀리까지 뛰어가서 섰고, 이연채는 나와 박정하의 중간 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박정하였다.

“덤벼라!”

《도발 Lv.1》

〈적의 이목을 자신에게 쏠리게 한다.〉

그의 함성에 장비비는 박정하에게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레드존과 그린존 사이에 발을 걸치고 있던 박정하는 얼른 그린존 바깥으로 달아났다.

장비비는 멀뚱멀뚱 서 있다가 다시 도개교로 돌아갔다.

그녀의 등 뒤를 노리고 이연채가 화살을 쏘았다.

- 텅!

《강한 운명》

〈마법과 원거리 투사 무기로 인한 피해량이 감소한다.〉

화살은 장비비의 갑옷에 맞고 튕겨나갔다.

강한 운명 특성이 없더라도 F급 암살자 이연채의 공격은 S급 전사인 장비비에게는 이쑤시개로 한 번 콕 찌른 것이나 다름없겠지.

그래도 공격은 공격.

장비비는 이연채에게로 등을 돌려 달려들었다.

“아차찻!”

이연채는 활대를 쥐고 급히 그린존으로 도망갔다.

이번에도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장비비.

그녀는 레드존과 그린존 사이의 경계에 서 있다가 맥없이 다시 돌아갔다.

절반 정도 돌아갔을 때, 박정하가 다시 한 번 방패를 두들겨 도발을 시전했다.

“날 봐라!”

《도발 Lv.1》

〈적의 이목을 자신에게 쏠리게 한다.〉

장비비는 이번에도 열심히 박정하에게 달려갔다.

이제 박정하가 물러날 차례지만, 그는 장비비를 깊게 끌어들이려는 건지 바로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의도는 기특하지만 너무 위험하다.

장비비는 빠르다. 박정하에 비하면 몇 배나 더.

박정하는 뒤늦게 발을 돌렸지만, 장비비는 이미 그에게 장팔사모를 내지르려고 하고 있었다.

“이연채!”

“알아요! 길마!”

이연채는 급히 활시위를 당겼다.

- 파앙!

《치명타 Lv.1》

〈일반 공격보다 강한 치명타로 적을 공격한다.〉

패시브 스킬인 치명타가 떴다.

하지만 도발 스킬의 어그로 효과가 치명타로 인한 데미지 어그로보다 강한지 장비비는 여전히 박정하를 노리고 있다.

“한 번 더!”

“에이잇!”

이연채는 활시위를 한계까지 당겼다.

나는 그녀가 활시위를 놓음과 동시에 외쳤다.

“영광을 위하여!”

《독려 Lv.1》

〈주변 동료들의 공격력과 공격속도를 증대시킨다.〉

화살촉이 살짝 빛났다.

며칠 동안 함께 훈련한 덕분에 이연채는 놀라지 않고 능숙하게 화살을 쏘아붙였다.

- 파앙!

《치명타 Lv.1》

〈일반 공격보다 강한 치명타로 적을 공격한다.〉

독려 스킬이 더해진 치명타 공격이 장비비의 등을 때렸다.

장비비는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프다기보다도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어쨌든 그 틈을 타 박정하가 후다닥 그린존 밖으로 도망쳤다.

장비비는 이제 슬슬 화가 나는지 입술을 앙 다물고 있었다.

인형술사에게 조종 당하고 있더라도 약간의 감정은 남아있는 걸까.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감정이 있다는 건 격동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니까.

“……!”

그녀는 땅을 박차고 다시 이 쪽으로 달려온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알아요! 그럼 길마도 파이팅하세요!”

이연채는 아슬아슬하게 레드존과 그린존의 경계에서 장비비를 유인했다.

반대편에서는 박정하가 틈틈이 도발 스킬을 발동하면서 장비비의 주의를 끌고 있고.

나는 그 사이에 품 안에 웰시를 숨기고 살금살금 도개교 쪽으로 다가갔다.

장비비는 박정하와 이연채를 쫓는 와중에도 내가 신경 쓰이는지 자꾸만 고개를 돌려보았다.

“이쪽이다! 이쪽이야!”

“아니! 이쪽으로 와!”

박정하와 이연채는 마구 소리를 치며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장비비의 예리한 직감은 역시 웰시를 가장 큰 위협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

장비비는 박정하와 이연채의 공격을 전부 무시하고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달리다가 웰시를 풀어놓았다.

“웰시! 부탁할게!”

“알!”

웰시는 내 품에서 뛰쳐나가 도개교 쪽으로 달렸다.

장비비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후에 끈을 물어 뜯어야 한다. 그래야 사자후로 방해받지 않을 테니까.

장비비는 웰시가 너무 멀어지기 전에 사자후를 발동하기 위해 입을 벌렸다.

“꺼져...”

- 파앙!

“흣!”

이연채가 절묘하게 치명타를 박아 넣은 덕분에 장비비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연채의 치명타는 장비비에게는 모기가 문 정도 일뿐이다.

그녀는 금세 다시 입을 벌려 사자후를 발동하려 했다.

"꺼져..."

“이거나 먹어!”

나는 바닥에 널려 있던 아이스크림 봉투를 던졌다.

장비비는 장팔사모로 그걸 베어버리려다가 움찔했다.

역시 조금의 감정은 남아있는 걸까.

그건 아주 잠깐의 망설임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그 사이 웰시는 파바박 달려가 도개교 앞에 늘어진 영체 끈을 앙하고 물었다.

“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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