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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헌터 타이쿤-14화 (14/52)

제 14화

길드 명성은 중요합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길드원들에게 휴식을 주기로 했기에 길드가 쉬는 날이다.

어젯밤 늦게 들어간 박정하나 이연채는 아마 푹 쉬고 있겠지.

나도 알람을 끄고 늦잠을 자고 있는데, 송서영이 불쑥 길드 아지트로 찾아왔다.

“비비가 걱정돼서요.”

옷하고 세면도구, 간식거리, 그 외에도 이것저것 싸온 모양이었다.

“일부러 사 오신 거예요? 길드에서 비용처리 해드릴게요.”

“친구를 위해서 사온 거니까 안 그러셔도 돼요.”

“그래도...”

“아뇨...”

비용 처리 문제로 둘이서 설왕설래하는데, 장비비는 희희낙락해서 아이스크림부터 뜯었다.

“고마워 서영아! 잘 먹을게!”

“비비. 너 아침 먹기도 전에 아이스크림부터 먹으면 안 돼.”

“형님! 그런 게 어딨어!”

“여기. 먹고 싶으면 아침 먹고 먹어.”

나는 송서영에게 고개를 돌려서 물었다.

“아침 드셨어요? 아니면 점심이라도? 안 드셨으면 같이 드시죠.”

“그래요. 그럼.”

우리는 입이 댓 발이나 나온 장비비를 끌고 브런치 카페로 향했다.

수플레 팬케이크의 몽실몽실 구름 같은 자태에 장비비는 삐진 척 하는 것도 잊고 눈빛을 빛냈다.

“맛있겠다! 근데 양이 너무 적어!”

“더 시켜줄게.”

“그럼 일단 스무 그릇!”

“…….”

장비비는 정말로 스무 그릇을 자기 배에 쓸어 넣고도 배가 고프다고 이것저것 더 시켰다.

그래. 오랫동안 뭐 못 먹었다고 하니까. 이번 주말까지만 봐준다.

나와 송서영은 장비비가 먹는 걸 지켜보면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아무래도 공통 화제가 딱히 없다보니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송서영도 사적인 이야기보다는 그게 편한 듯 바로 화제를 물었다.

“길드 마스터. 다음 주부터 박정하 헌터는 파견 일정이잖아요?”

“네, 그랬죠.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게요. 아직 길드 명성이 너무 낮아서 제대로 된 파견처를 찾기가 힘드네요.”

하긴. 한 번 완전히 망했다가 겨우 다시 선 길드니까.

인지도와는 별개로 명성은 처참한 수준이다.

누가 이런 길드에 파견 일감을 주고 싶어 하겠어.

송서영은 죄송한 표정을 지었다.

“파견처가 아주 없는 건 아닌데, 너무 조건을 후려쳐서 말이에요. 최대한 여기저기 연락을 돌려보기는 했는데...”

“매번 수고해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너무 조건이 안 좋으면 곤란하죠. 길드 자체가 우습게 보일 수도 있고 파견 가는 박정하 씨한테도 미안한 일이고요.”

그렇게 조건이 안 좋으면 차라리 훈련으로 일정을 변경해서 능력치를 쌓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파견은 명성 수치를 올려주기도 하니까 장기적으로 투자한다고 생각하고 악조건을 감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한데.

머리를 싸매 쥐고 고민해보았지만, 딱히 이렇다 할 묘안이 나오지는 않았다.

“형님! 걱정 마! 내가 있잖아!”

장비비는 수플레 팬케이크를 볼에 욱여넣다가 외쳤다.

그 덕에 팬케이크 파편이 조금 튀긴 했지만... 음.

그래. 지금 우리 길드에서 S급 헌터 장비비의 존재는 크다.

당장 장비비를 파견한다고 하면 모셔갈 파견처는 널렸겠지.

“비비도 파견 보내실 생각이신가요?”

장비비는 파견을 보내기에는 아까운 인재다.

파견과 임무는 둘 다 코인과 명성을 벌어오는 일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아무래도 다른 길드 밑에서 잠깐 일을 도와주는 파견보다는 우리 길드 소속으로 의뢰를 수행하는 임무가 더 조건이 좋은 편이다.

물론 그만큼 임무가 실패했을 때 리스크가 크기도 하지만.

“파견보다는, 일단 의뢰가 들어오면 임무를 맡기려고 계획하고는 있는데요.”

“사실 의뢰도...”

의뢰 수주도 결국은 길드 명성이 좌우한다.

사무원의 능력도 반영이 되긴 하지만, 일단은 길드 명성이 어느 정도 되어야지.

던전과 탑, 게이트 관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성이다.

몬스터가 출몰하는 이 세계에서 사람들이 현대 문명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전성이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 덕분이니까.

뛰어난 헌터 한둘에게 의뢰를 맡기는 것보다, 대체인력과 경력이 풍부한 길드에 의뢰를 맡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럼 결국 명성을 어느 정도 회복할 때까지는 어디든 파견을 보낼 수밖에 없겠네요.”

“단독으로 괜찮은 의뢰를 수주하는 건 길드 명성이 높아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파견으로 차근차근 명성을 쌓아야겠죠.”

“문제는 바로 그 파견처가 마땅치 않다는 건데...”

문제는 꼬리를 물고 돌고 돈다.

어쩔 수 없이 당분간은 악조건을 감수해야 하는 건가.

“이야기는 잘 들었어요!”

뒷좌석에서 갑자기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백호랑이 벌떡 일어서 있었다.

“어...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요?”

“당신들이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답니다! 여기 수플레 팬케이크는 아주 맛있어서 나도 좋아하거든요!”

“아가씨. 입에 메이플 시럽이 묻었습니다.”

노집사는 백호랑에게 냅킨을 건네주었다.

백호랑은 냅킨으로 입가를 톡톡 두들기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나갔다.

“운 좋게 수문장을 재영입한 것 같군요! 아니! 정정하겠어요! 나를 애먹인 수문장을 운만으로 공략할 수는 없었을 테니, 운과 실력이 모두 받쳐줬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죠!”

그녀의 손가락은 장비비를 가리키고 있었다.

호랑 길드를 잔뜩 방해한 장본인이니 원한을 품을 수도 있을 텐데, 백호랑은 딱히 그걸로 다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조종당한 건 어쩔 수 없다는 걸까. 은근히 대인배일지도.

“여하튼, 수문장이 소원의 탑 입구에서 떨어진 건 호랑 길드에도 좋은 일이죠! 드디어 우리도 소원의 탑을 오를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래서요? 대체 용건이 뭐죠?”

송서영이 끼어들어서 날카롭게 물었다.

저번 환영회에서도 그랬지만 둘이 사이가 꽤 나쁜 편인 건 같다. 아니, 그보다도 송서영이 일방적으로 백호랑을 싫어하는 것 같다고 할까.

송서영이 그러거나 말거나 백호랑은 팔짱을 끼고 외쳤다.

“길드원의 파견처가 마땅치 않다면, 이 백호랑이 자비를 베풀어주겠어요! 우리 호랑 길드만한 파견처는 없을 테니까요!”

그건 사실이다.

내 길드가 몰락하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호랑 길드라면, 파견처로 더할 나위 없겠지.

백호랑의 호탕한 성격으로 보건데 조건을 후려칠 것 같지도 않고.

일단은 수락하고서 조건을 논의해보려고 하는데, 송서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길드는 그 쪽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어요.”

백호랑은 오호호 웃었다.

“지금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닐 텐데요!”

“비비한테 막혀서 소원의 탑 입구도 못 들어간 당신네가 자존심을 운운할 땐가요?”

“그... 그건...!”

백호랑도 그 말에는 당황해서 말을 흐렸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싸움이 커진다.

나는 적당히 둘 사이에 나서서 중재하기로 했다.

“이제 그만합시다. 내 생각엔 호랑 길드의 제안도...”

“길드 마스터! 호랑 길드는 우리 유서준zl존 길드의 추억이 담긴 건물을 뺏어갔어요!”

송서영은 타협 따윈 없다는 듯 외쳤다.

그 말에는 백호랑도 발끈했다.

“뺏어갔다니! 경매에서 제 값을 치르고 산거랍니다! 내가 낸 돈으로 당신들이 위로금도 내고 해약금도 내고 그런 거 아닌가요!

“원래 그 가격에 팔릴 건물이 아니었어요!”

“나보다 비싸게 살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더 비싸게 팔 자신이 있었으면 더 비싸게 팔아보지 그랬나요!”

점점 더 감정이 격화된다.

내가 다시 끼어들려고 하는데, 장비비가 먼저 친구인 송서영 편을 들어서 백호랑을 째릿하고 노려보았다.

백호랑은 저번에 당했던 기억이 떠오르는지 찔끔 떨고는 흥하고 콧소리를 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어요! 하지만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시길!”

그녀는 소악당처럼 외투를 펄럭이고 돌아갔다.

노집사는 내게 꾸벅 인사를 하고 백호랑을 쫓아갔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한숨을 내쉬었다.

송서영은 그제야 머리가 좀 식었는지 내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

“... 죄송해요. 길드 마스터. 제가 잠시 이성을 잃었나 봐요.”

본인도 본인이 잘못했다는 자각은 있는 건가.

나는 한숨을 참고 말했다.

“내 생각에는 호랑 길드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호랑 길드가 우리 자리를 차지했다곤 하지만, 딱히 원한이 있는 건 아니고. 오히려 선의를 베풀고 주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서영 씨, 아니, 송 주임님 생각은 어때요?”

잠깐 머뭇거리던 송서영은 고개를 푹 숙였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죠.”

백호랑한테는 이쪽에서 연락을 넣어야겠다.

원래라면 사무원인 송서영이 해야 할 일이지만, 서로 얼굴을 붉혔으니 연락하기가 좀 곤란하겠지.

“호랑 길드에는 제가 직접 연락해 볼게요. 연락처 좀 알려줘요.”

그러자 송서영은 두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그건 사무원이 할 일인 걸요. 제가 하겠습니다.”

“그래요?”

“제가 잘못한 일이니 제가 수습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길드 마스터. 감정이 앞서서.”

송서영은 얼굴이 귀 끝까지 아주 새빨개졌다.

이렇게까지 되어서 말하는 걸 보니 정말 반성하는 것 같긴 하다.

“그만큼 길드를 아껴주셨으니까 그러셨겠죠. 이해해요.”

송서영은 조금 놀란 듯 살짝 입을 벌렸다.

호통을 들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정말이에요. 이해해요. 나도 가끔은 억울하고 밉고 그러거든요. 내 아까운 길드 건물. 그걸 호랑 길드 녀석들이 홀라당 뺏어갔네, 하고."

"그러셨군요... 길드 마스터도..."

"그렇지만 호랑 길드도 다 제 돈 주고 산 거기도 하고. 그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죠."

송서영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나는 한 마디를 더 하기로 했다.

"뭣하면, 잠시 맡겨두는 거라고 생각하죠."

"맡겨둔다고요?"

"우리는 반드시 돌려받을 거잖아요. 우리 길드 건물, 지위, 명성, 전부 다. 길드원들을 되찾아올 때까지 잠시만 호랑 길드에 맡겨두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 알겠습니다. 믿어요. 길드 마스터."

"네. 믿어주세요."

나와 송서영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장비비가 그제야 겨우 호들갑을 떨었다.

"싸우지 마! 형님! 서영아! 같은 길드원끼리는 싸우면 안 돼!"

"싸운 거 아니야. 의논한 거지."

"그럼 둘이 화해해!"

"싸운 거 아니라니까..."

그래도 장비비는 억지로 나와 송서영이 악수를 하게 했다.

"이제 안아주고! 미안해, 해!"

"그건 좀."

"얼른! 안 하면 화해 안 한 거야!"

장비비는 막무가내였다.

어쩔까 하는데, 송서영이 먼저 주춤주춤 내 쪽으로 다가와서 팔을 벌렸다.

나는 입술을 벙긋거려서 물었다.

'정말로 하시게요?'

'비비 고집은 쇠고집이에요. 그냥 하는 척만 해요.'

'그래도...'

'얼른요.'

나는 엉거주춤 팔을 벌려서 송서영을 안는 시늉을 했다. 거리를 한껏 벌려서 가능한 불쾌한 감정이 안 들게는 노력했는데...

"미안해, 도 해!"

"미... 미안합니다..."

"아녜요... 제가 죄송하죠..."

"이걸로 화해 끝!"

나와 송서영은 장비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후다닥 떨어졌다.

아직 여름이 오려면 한참 남았을 텐데 왜 이리 덥지.

"그럼 이제 놀러 가자!"

"놀러?"

"화해 했으니까 놀러 가야지!"

또 억지를 부리네.

그렇지만 이번 주말까지는 장비비의 응석을 받아주기로 했으니까.

나는 송서영에게 작게 속삭였다.

"제가 비비랑 같이 갈 테니까, 서영 씨는 적당히 빠지셔도 돼요. 주말인데 쉬셔야죠."

"아, 아니에요.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 비비랑은 오랜만에 만난 거기도 하고."

"그런가요? 그래요, 그럼."

장비비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뭐야! 둘이 또 싸우는 거야?"

"싸우는 거 아니야. 화해 했잖아. 그런데 놀러 간다며, 어디 가고 싶은데?"

"음... 동물원!"

그렇게, 우리는 일정에도 없는 동물원 나들이에 나섰다.

그런데, 일정에도 없는 일에는 예정에도 없는 일이 나타나는 걸까.

***

"게이트다! 게이트가 열렸다!"

이제 막 티켓을 끊고 입장했는데, 동물원 안 쪽에서 다급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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