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헌터 타이쿤-15화 (15/52)

제 15화

동물원 게이트 (1)

장비비는 내 손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형님! 가자!”

“그, 그래.”

얼떨결에 대답했지만, 차분히 생각해봐도 일단은 게이트를 확인하는 게 급선무겠지.

이 구역을 담당하는 길드가 따로 있겠지만 인명피해가 나오기 전에 그들이 도착한다는 보장이 없다.

발생한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는 던전, 탑과 달리 게이트는 어떤 곳이든 갑자기 나타나기 때문에 민간인 피해가 큰 편이다.

게이트가 발생할 때 근처에 있는 헌터들에게 조력할 의무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서영 씨. 서영 씨는 먼저 돌아가세요.”

“저... 저도 같이...”

“위험할 수도 있어요.”

송서영은 헌터가 아니라 사무원이다.

그녀는 내 암시를 알아들었는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요. 제가 있어도 도움은 안 되겠죠. 저는 돌아갈 테니까, 조심하세요. 길드 마스터. 비비도 조심해야 해.”

“응! 내일 또 봐!”

우리는 송서영을 뒤로 하고 동물원 안쪽으로 달렸다.

출구로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을 거슬러나가는 건 꽤 힘든 일이었다.

“지나가겠습니다! 헌터입니다! 길 좀 비켜주세요!”

그렇게 외쳐도 사람들은 길을 터주지 않았다.

이리저리 밀고 당기느라 다들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나는데. 잘못하다가는 대형 압사 사고가 나는 수가 있다.

불안은 적중하기 마련인 건지, 바로 저 앞에 할머니 한 분이 넘어지는 게 보였다.

그 뒤에서 떠밀리던 남자가 그 위로 엎어지고, 그 뒤에서 떠밀리던 사람들도...

“비비야! 저기!”

“응!”

장비비는 내가 가리키는 곳을 보고는 높이 뛰어올라서 사고의 장소 앞에 정확히 착지했다.

쿵 하는 소리가 나자 다들 멈칫했다.

“여기 할머니가 넘어졌어! 다들 밀지 마!”

장비비는 뒤에서 계속 떠밀리던 사람들을 등으로 떠받치면서, 넘어진 남자와 할머니를 동시에 일으켰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다행히 할머니는 크게 다치지 않은 듯 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혼란은 한창이다.

여기저기에서 비슷한 사고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하나씩 구해서는 끝이없다.

나는 근처에 있던 팬더 카트 위에 올라갔다.

아주 높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훤히 내려다보일 정도는 되었다. 반대로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기에도 적당한 높이였고.

사람들의 이목은 절로 내게로 쏠렸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 있는 힘껏 외쳤다.

“여러분! 질서를 유지해주세요! 저는 유서준입니다!”

유서준이 누군데?

하는 물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유... 유서준zl존 길드의 길드 마스터 유서준입니다!”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명성은 잃었어도 인지도는 남아 있는 거야.

나는 어깨를 쫙 펴고 다시 외쳤다.

“저는 S급 전사 장비비와 함께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왔습니다! 우리 유서준zl존 길드는 사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할 테니, 시민 여러분께서는 부디 질서를 유지해서 침착하게 빠져나가주시기 바랍니다!”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차차 진정하는 모습이었다.

우리 길드가 몰락했다고는 해도 아직 이름값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S급 전사가 왔다는 말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여하튼 사람들 중에서도 책임감 있는 분들이 나서서, 밀치거나 소리를 지르는 이를 제지해주었고, 직원들도 인파 정리를 도왔다.

“형님! 이제 안으로 가자!”

넘어진 사람들을 틈틈이 구해오던 장비비가 내게 달려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순간 동물원 안쪽에서부터 사람들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저기 안쪽에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

북적이던 동물원은 어느새 텅 비어있었다.

팝콘 마차는 엎어져서 내용물을 사방에 뿌려놓았고, 길가에는 난리통에 떨어진 핸드폰이나 지갑이 널려 있었다.

우리 안의 동물들은 잔뜩 겁먹은 듯했다.

원숭이들은 끽끽 울며 불안해했고, 호랑이와 사자도 벽에 몸을 붙인 채 이리저리 고개만 돌렸다.

“아!”

장비비는 한참 뛰다가 갑자기 멈추어 서서 외쳤다.

“왜?”

“내 장팔사모! 안 들고 왔어!”

“아참!”

브런치 먹는다고 무기를 안 들고 왔었지.

물론 장팔사모 없이도 장비비는 강하지만, 무기 없이 싸울 것을 강요하는 건 조금 망설여진다.

“괜찮겠어?”

“음... 괜찮을 거야! 그치만 위험해지면 형님은 바로 도망가! 내가 지켜주기 힘들 수도 있으니까!”

“내가 널 두고 도망가겠니. 도망을 가도 같이 가야지.”

“응! 역시 형님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나와 장비비는 눈을 마주치고 씩 웃었다.

다짐을 새로이 다지던 순간.

“뿌우우우!”

급박한 코끼리 울음소리가 울렸다.

무척 고통스러워하는 듯한 울음소리였다.

우리는 얼른 코끼리 우리 쪽으로 달려갔다.

몇 번인가 비어 있는 동물 우리들을 지나쳐, 한 번 방향을 꺾었는데.

거기에는 거미줄이 안개처럼 뿌옇게 끼어있었다.

사방이 온통 희뿌연 거미줄투성이였다.

코끼리 우리 안은 시야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촘촘하게 거미줄이 짜여 있었는데, 이따금 코끼리 울음소리가 나는 걸 보니 아마 거미들이 산 채로 코끼리를 뜯어먹고 있는 듯 했다.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허공에 달린 거미줄이었다.

촘촘하게 지어진 거미집에 고치가 수십 개나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는데, 모두 사람 크기였다.

가끔 고치들이 바둥거리는 걸 보니 아직 살아있는 것 같지만, 저 안에서 얼마나 숨을 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고치 근처의 거미줄에는 수백은 족히 될 법한 새끼 거미들이 몰려 있었는데, 새끼 거미라고는 해도 어지간한 대형견 크기였다.

“비비야! 일단 사람들부터 구하자!”

“응! ... 윽! 이거 뭐야!”

“어느새?!”

우리의 몸에도 거미줄이 엉켜 있었다.

오는 길목에도 거미줄을 쳐두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모르고 허겁지겁 달려왔으니 몸에 거미줄이 잔뜩 붙을 수밖에.

손으로 떼어내려고 해도 거미줄은 유연하게 늘어나기만 할 따름이었다.

“내 장팔사모만 있었으면...”

나는 물론이고 장비비까지 애를 먹었다.

그렇다면 이 거미줄이 보통 거미줄이 아니란 건데.

【경고 : 상태이상!】

[당신은 아라크네의 거미줄에 붙잡혔습니다. 공격속도와 이동속도가 현저히 감소합니다.]

“아라크네? 이런...”

“형님! 일단은 움직여야 돼!”

고치 근처에 몰려 있던 새끼 거미들이 이 쪽으로 하나둘씩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움직였다. 버겁기는 해도 움직일 수는 있었다.

장비비는 거미줄이 잔뜩 붙은 채로도 동물 우리의 쇠창살을 부러뜨려서 가져왔다.

역시 S급 전사가 있으니까 든든하다.

나와 장비비는 반토막 난 쇠창살을 스태프처럼 들었다.

상당히 묵직하긴 하지만 어떻게든 휘두를 수 있을 것 같다.

슬슬 우리를 둘러싸던 새끼 거미들 중 한 놈이 달려들었다.

펄쩍 뛰어서 내 얼굴로 날아오는 녀석을, 장비비가 쇠창살로 강하게 때렸다.

- 캉!

호쾌한 안타에 새끼 거미의 몸체가 터져서 진녹색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내 옷에도 진액이 조금 묻었다.

어쨌든 이걸로 겁을 먹고 물러섰으면 했지만, 새끼 거미들은 오히려 분노해서 마구 덤벼들었다.

나는 쇠창살을 잡고 각오를 다졌다.

- 캉! 캉! 카앙!

하지만 내가 나설 차례도 없었다.

녀석들은 장비비의 상대가 되지 못했으니까.

장비비는 쇠창살을 붕붕 휘둘러 새끼 거미들을 날려 보냈다.

“하찮은 벌레들! 너희들은 백 마리가 오든 천 마리가 오든 똑같아!”

날아오는 거미는 쇠창살로 박살내고, 기어오는 거미는 발로 밟아 터뜨리는 장비비는 그야말로 일당백이었다.

《만인지적》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더욱 강해진다.〉

그래. 만인지적 특성도 있었지.

새끼 거미들은 새까맣게 몰려들었지만, 장비비는 장판교 앞의 장비처럼 오히려 더 강인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덤벼라!”

사자후를 내뿜은 장비비의 기합에 새끼 거미들은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나도 그 틈을 타서 마구 쇠창살을 휘둘렀다.

역시 장비비처럼 시원하게 거미를 터뜨릴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 콰직

장비비는 다리가 부러져서 빌빌 거리는 새끼 거미 위에 쇠창살을 수직으로 내리찍어 찌부러뜨렸다.

그리고는 쇠창살을 풍차처럼 좌우로 돌려가면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새끼 거미들은 등을 돌려 도망가려고 했지만, 장비비는 그 때마다 사자후를 내뿜어 강제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사자후에 겁먹어 잠깐 멈추면 그걸로 끝이다.

쇠창살은 살기 넘치는 바람 소리를 내며 새끼 거미들을 도살했다.

- 터터터터터텅!

장비비의 진로 앞에 있던 새끼 거미들은 차례대로 몸이 터져나갔다.

거미의 체액이 마구 튀어올랐지만, 장비비는 신경 쓰지 않고 포효했다.

“죽여주마!”

전장에서 날뛰는 장비비는 내게 애교를 부리던 장비비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보였다.

어느 쪽이 본모습이냐고 하면 둘 다 본모습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지만.

장비비가 내 편이라서 다행이라고 말할 수밖에.

역시 S급 전사는 위용이 남달랐다.

거미줄에 엉켜서 상태 이상이 걸린 데다가 주무기인 장팔사모가 없는데도, 장비비는 새끼 거미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했다.

하지만 나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새끼 거미들만이 우리의 적이 아니다.

코끼리를 잡아먹은 아라크네 성체가 이 거미줄 어딘가에서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 테니.

게다가 게이트가 어디에 있는지도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게이트를 닫지 않으면 계속 몬스터가 유입될 테니까, 한 시라도 빨리 아라크네를 처리하고 게이트로 향해야 하는데.

“형님! 위!”

장비비가 급히 내 머리 위를 가리켰다.

혹시 새끼 거미가 급습하나 해서 얼른 자리를 피했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방금 내가 서 있던 곳에는 자주색 소용돌이가 탐욕스럽게 허공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더블 게이트.

한 지역에 동시에 두 개의 게이트가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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