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헌터 타이쿤-17화 (17/52)

제 17화

동물원 게이트 (3)

헌터들은 고치를 지키던 거미들을 쉽사리 압도했다.

아라크네를 비롯해 대다수의 몬스터들이 전부 장비비에게 몰렸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어쨌든 그들의 실력도 상당히 준수한 편이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동물원을 담당 구역으로 맡을 정도니까 실력이 있는 게 당연하겠지.

나는 상처 입은 어깨를 쥔 채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흥분이 가셔서 그런지 슬슬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저기...”

“아. 많이 다치셨네요. 얼른 치료해드릴게요.”

지원가인 듯한 남자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은은한 빛이 환부에 닿자, 출혈이 멎어드는 게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뭘요. 오히려 저희가 감사하다고 해야죠.”

남자는 살짝 고개인사를 하고는 다른 헌터들에게로 돌아가 상처를 봐주었다.

다른 헌터들은 익숙한 듯 치료를 받으면서 장비에 묻은 거미줄을 털어냈다. 다시 싸우기 위한 재정비였다.

“덤벼라!”

한편, 그 사이에도 저 쪽의 전투는 이어지고 있었다.

아라크네는 수하들을 동원해서 장비비를 압살하려 했지만, 장비비는 엿가락처럼 휘어진 쇠창살을 기가 막히게 휘둘러댔다.

- 텅! 텅, 텅, 텅!

쇠창살이 살짝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애벌레고 거미고, 번데기까지 전부 박살이 났다.

그 앞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장비비가 몰아칠 때마다 진녹색 체액이 용오름처럼 튀었다.

아라크네는 분해하며 새끼 거미들을 내몰았다.

그 수가 족히 수백. 거미 무리는 바닥 타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글바글하게 모여들었다.

“히얍!”

장비비는 크게 쇠창살을 휘둘러서 거미들을 내몰았다.

풍압에 쓸린 새끼 거미들은 이리저리 날아갔지만, 여기저기 널린 거미줄에 발을 걸고 다시 모여들었다.

벌레들은 쓸어도 쓸어도 두 개의 게이트에서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으, 이제 벌레는 지긋지긋해!”

장비비는 쇠창살을 부여잡고 숨을 헐떡였다.

낭패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본 거미들은 엄니를 열었다가 닫았다가 하면서 비웃었다.

"우습게 보지 마!"

장비비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위로 뛰어올랐다.

아라크네를 노리고 날아든 것이다.

그러자 지금껏 계속 장비비를 피해오던 아라크네가 드디어 맞상대에 나섰다.

장비비가 지칠만큼 지쳤다는 계산이 선 걸까.

녀석은 엄니를 벌린 채 앞다리를 들어 장비비를 향해 치켜 들었다.

장비비는 씩 웃고는 허공에서 몸을 돌렸다.

휘어진 쇠창살이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바람을 갈랐다.

“걸렸구나!”

아라크네는 뒤늦게 속았다는 걸 알고 몸을 빼치려 하지만, 쇠창살이 그대로 아래로 내려찍힌다.

- 콰직!

커다란 앞다리 두 개가 쇠창살을 맞고 그대로 부러져, 잘려나갔다.

아라크네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대며 허겁지겁 도망갔다.

“어딜 도망가!”

장비비는 바로 그 뒤를 쫓으려 했지만, 모체를 지키기 위해 새끼 거미들이 그 앞을 막았다.

어느새 번데기에서 변태를 마친 나방도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벌레 놈들... 좋아, 얼마든지 덤벼라! 이 연인(燕人) 장비비가 상대해주마!”

오만한 도발에 벌레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사자후를 쓰면 더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을 테지만, 그렇게 되면 겁에 질린 적들이 우리 쪽으로 도망갈 수도 있으니까.

장비비는 우리를 위해 불리한 싸움을 감수하고 있었다.

- 콰콰쾅!

다시 한 번 신들린 무위가 펼쳐졌지만, 그녀도 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동물원은 이미 하나의 거대한 거미집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움직여도 아라크네의 거미줄이 팔과 다리에 걸려서 점점 더 몸을 둔하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도 도우러 가야겠어. 어서 가자.”

헌터들이 급히 재정비를 마치고 일어섰다.

나는 고개를 저어 그들을 말렸다.

“그보다도 고치에 묶여있는 민간인들부터 구출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저 분이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그럼 우리도 다 죽는다구요.”

“지금 여러분이 가세해도 아라크네를 토벌하는 건 힘들 거예요.”

아라크네는 자기가 위험하다 싶으면 부하들을 내밀고 뒤로 쏙 빠진다.

녀석이 작정하고 거미줄을 타고 다니며 도망만 친다면 그 꽁무니에 닿는 것도 어렵겠지.

장비비도 지금까지 아라크네를 잡지 못했는데, B급 정도 되는 헌터들이 가세한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차라리 민간인들을 구출해서 빠져나가는 게 나아요.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빠져나가야 장비비도 빠져나갈 수 있다. 그럼 후속 지원 온 헌터들과 힘을 합쳐서 다시 도전할 기회가 생기겠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헌터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 쪽한테는 한 번 도움을 받았으니까...”

나를 치료해주었던 지원가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헌터들은 동시에 거미줄을 타고 올라갔다.

휘청거리는 거미줄을 붙잡고 오르는 걸 보니, 다들 체술에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다.

그들은 거미집에 다닥다닥 붙은 사람 고치를 하나씩 떼어냈다.

“아래로 던질게요! 조심하세요!”

“던진다고요?”

“하나, 둘!”

이런...!

나는 지상에 남은 지원가와 함께 저 위 거미집에서 툭툭 떨어지는 고치를 받아주었다.

다친 어깨가 시큰거리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다. 다들 제각기 버거운 상황이니까.

거미집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린 고치는 다 해서 스물여덟.

헌터들은 스물아홉에서 서른한 번째 고치를 하나씩 더 짊어지고 내려왔다.

고치 안을 열어서 보니, 꽁꽁 묶여있던 사람들은 하나 같이 호흡곤란으로 안색이 새파래져 있었다.

역시. 조금만 더 갇혀있었으면 정말 위험했을 수도 있겠다.

그 중에서 절반은 그래도 움직일 수 있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몸을 가누는 것도 힘겨워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죠?”

“그러게. 저 많은 사람들을 다 어떻게 데려가지? 하나하나 업을 순 없잖아.”

헌터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가 또 한 번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음... 고치 째로 끌고 갑시다.”

고치를 썰매 삼아서, 거미줄 끈에 묶어서 끄는 거다.

이 지긋지긋한 거미줄은 잘 끊기지도 않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게 될까요?”

“해봐야죠. 아니, 해야죠.”

아라크네는 이미 우리 쪽을 눈치 채고 신경 쓰는 눈치다. 인질로 잡아둔 인간들이 전부 풀려나서 화난 것 같기도 하다.

장비비가 쇠창살을 휘두르며 주의를 끌고 있긴 하지만, 이리저리 뛰쳐나가는 녀석들을 전부 다 막지는 못했다.

“얼른, 서둘러요!”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은 걷게 한다.

걷지 못하는 사람들은 고치 째로 뉘여서 거미줄로 묶었다. 숨은 쉴 수 있게 얼굴 부분은 열어두었으니까 괜찮을 거야.

문제는 이걸 끌 수 있느냐인데.

“끄응...”

고치 썰매를 잡아당겨 보니, 나는 고작 두 명을 끄는 것도 버거웠다.

그래도 나머지 헌터들이 대여섯 명씩 끌기로 해서,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을 모두 고치 썰매에 태웠다.

“거, 거미가 옵니다!”

누군가가 외쳤다.

우리는 모두 이를 악물었다.

“달려요!”

헌터 둘이 앞서서 고치 썰매를 끌며 달렸다.

상태가 그나마 괜찮은 사람들은 그 뒤를 따라가고, 헌터 둘이 뒤에서 또 고치 썰매를 끌며 달린다.

“후욱... 후욱...”

몇 발자국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호흡이 저절로 거칠어진다.

살펴볼 것도 없이, 내가 제일 뒤쳐졌다.

거미 한 마리가 내가 끄는 고치 썰매 위에 다리를 얹기에, 급히 허리를 돌려 놈을 쇠창살로 후려쳤다

- 깡!

다행히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다.

거미는 머리가슴을 얻어맞고 벌러덩 뒤집어졌다.

“후욱...!”

더운 숨을 내뱉으며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다.

다른 이들은 이미 한참 앞을 달려가고 있었다.

나도 헐떡이면서 달려가지만, 그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다.

간격이 벌어지자, 나와 그들 사이에 애벌레가 끼어들었다.

“꺼져!”

- 깡!

애벌레는 머리를 두들겨 맞고는 체액을 뿌려댔다.

그대로 발로 차서 녀석을 밀고는, 다시 고치 썰매를 끌어당겼다.

“끄흐으응...”

가야 한다.

가야 하는데.

- 부웅웅

날벌레 특유의 날개 소리가 들렸다.

나방들이 내 등 뒤까지 바싹 따라붙고 있었다.

섬뜩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거미줄 끈을 놓칠 뻔 했다.

그래서 나는 반대로 더 세게 거미줄 끈을 쥐었다.

여기까지 왔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그러니까, 없는 마력을 쥐어짜며 억지로 외쳤다.

“물러서지...!”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 든다.

내장이 배배 꼬이다가 꽉 쥐여 짜이는 느낌.

이미 바닥난 마력으로는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입술을 악 물고 버텨냈다.

“물러서지... 않으리...! 물러서진, 않으리!”

그렇게 외친 순간,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몸 안팎을 콕콕 찌르던 통증이 단숨에 사라지고 체력이 흘러넘친다.

《지원가 Lv.2》

《독려 Lv.2》

이제는 익숙해진 홀로그램창이 한 번씩 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곧장 몸을 돌려 쇠창살을 휘둘렀다.

어지럽게 날아들던 나방들이 쇠창살의 궤적에 걸려서 팍팍 터져나갔다.

이 녀석들은 빠르고 독을 가진 대신에 몸이 그리 단단하지 않았다.

나는 단숨에 독려 스킬을 한계 직전까지 중첩한 후에 계속해서 쇠창살을 허공에 그었다.

나방 무리는 웅웅 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녀석들이 물러선 만큼, 나도 뒤로 물러서며 숨을 골랐다.

승산이 높지는 않지만 아직 패색이 그리 짙은 것도 아니다.

나는 이제는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쇠창살을 다시금 쥐었다.

나방 무리가 나를 향해 쇄도해왔다.

나방 무리와 격돌하기 직전이었다.

- 화륵

때마침 무언가가 번쩍하고 터졌다.

반사적으로 눈이 감겼다.

뜨거운 열풍이 내 근처를 휘감고 있었다.

하지만 열기는 절묘하게 내 몸을 비껴갔다.

나는 소매로 코를 가리고서 천천히 눈을 떴다.

“타올라라!”

불길이 달려오던 거미와 애벌레 무리를 집어삼켰다.

그것들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며 안으로 오그라들었다.

단백질이 타오르는 냄새가 진동했다.

잿바람이 날렸다.

“콜록, 콜록!”

얼른 옷소매로 코를 가렸지만 기침이 터져나왔다.

아니. 웃음이었을지도.

사람들이 도망쳐간 곳에서 헌터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 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송서영.

분명 돌아가라고 했는데, 이 위험한 곳에 왜...

“이게 꼭 필요할 것 같아서 가져왔어요!”

그녀는 함께 온 헌터들에게 무어라고 손짓을 했다.

덩치가 큰 헌터 둘이 비단으로 묶은 병기를 같이 들어서 냅다 던졌다.

나방 무리가 급히 그 병기를 향해 날아갔지만, 장비비가 좀 더 빨랐다.

그녀는 허공에서 장팔사모를 낚아채고는 그대로 그것을 휘둘러 나방 무리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이거지!"

쿵하고 착지한 장비비는 아라크네를 노려보았다.

그녀를 향해 무수히 많은 벌레들이 진격해나갔지만, 장팔사모를 가진 장비비는 가볍게 창을 휘둘러 무리를 쓸어버리고는 아라크네를 향해 달려갔다.

그 무엇도 애병기를 든 장비비의 질주를 막을 수가 없었다.

《뱀가르기 Lv.10》

〈꿈틀거리는 장팔사모 창날로 적을 가릅니다.〉

장팔사모의 창날이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대기 시작했다.

아라크네는 거미줄을 마구 내뿜으며 반대로 도망치려 했지만, 장팔사모의 창날은 질긴 거미줄도 단번에 잘라냈다.

“이제 끝이다!”

거미줄을 갈라낸 장팔사모가 아라크네의 몸통을 위에서 아래로 갈랐다.

- 콰아악!

아라크네는 양쪽 다리를 쫙 펼쳤다.

커다란 다리가 부르르 경련한 것도 잠시, 교활했던 거미의 몸체는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촥하고 몸체가 양쪽으로 갈라지며 안에 있던 것을 내놓았다.

어른 주먹 크기의 영롱한 마석.

돌돌 말린 거미실 통.

그리고 은은하게 빛나며 떠오른 작은 물방울 하나.

게다가 꼼꼼히 따지자면 저 아라크네의 몸체도 모두 조합 아이템의 소재지.

복잡한 정산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송서영에게 부탁해서 일단은 아라크네의 몸 안에서 나온 아이템만 챙겨두도록 했다.

한편, 장비비는 장팔사모를 휘둘러서 창날에 묻은 체액을 털어냈다.

그 모습에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장비비는 곧바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나를 찾아서 달려왔다.

"형님! 엄청 힘들었어! 그래도 잘했지? 칭찬해줘!"

헤실헤실 웃으며 칭찬을 조르는 장비비의 얼굴은 약간이지만 웰시랑 닮아있었다.

"형님! 칭찬해달라니까!"

"그래, 그래, 잘했어."

"너~ 무 힘들었어! 오늘은 엄청 맛있는 걸 먹어야겠어!"

"당연하지.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뭐든 말해. 전부 다 사줄 테니까. 한우? 스시? 하겐다즈? 말만 해!"

장비비는 정말? 하고 웃었다.

진이 빠져서 웃는 것도 힘들었지만, 나도 마주 웃었다.

- 찰칵!

플래시 라이트 터지는 소리에 돌아보니, 후속 지원 온 헌터들 뒤로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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