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헌터 타이쿤-18화 (18/52)

제 18화

전리품

길드 아지트 앞에 기자들이 며칠째 진을 치고 있었다.

인터뷰도 해줄 만큼 했고 사진도 찍을 만큼 찍어준 거 같은데, 또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걸까.

기자들이 한 번은 사무실 안까지 들어오려다가 송서영에게 걸려서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혼난 적이 있었는데, 그런 다음부터는 그래도 건물까지는 들어오지 않게 됐다.

하지만 건물 밖에 서 있는 것까지 뭐라 할 수는 없으니까.

기자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뻑뻑 담배를 피거나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거나 했다.

“담배 피지 마세요! 거기 금연 구역이에요!”

담배 냄새가 올라오자 송서영은 창문을 홱 열고 아래로 소리쳤다.

기자들은 꾸벅 고개를 숙이면서 얼른 담뱃불을 껐지만, 누구도 이만 돌아갈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오히려 은근슬쩍 카메라 렌즈를 만지작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송서영을 혀를 차고는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누가 봐도 날이 선 게 느껴져서, 잠시 간식을 먹으러 사무실에 들렀던 이연채는 움찔하고 어깨를 움츠렸다.

“저는 다시 훈련실 들어가겠습니다...!”

이연채는 초코바 몇 개를 쥔 채 살금살금 발을 디뎌서 훈련실로 돌아갔다.

경력 있는 동기 박정하는 호랑 길드로 파견 가버려서 혼자 눈치를 보는 게 좀 안쓰럽다. 나중에 도넛이라도 사다줘야겠다.

한편, 사무용 컴퓨터에 틀어놓은 뉴스에서는 장비비가 아라크네의 몸통을 수직 절단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내보내고 있었다.

정작 그 장본인은 저기 소파에 누워서 쌕쌕 낮잠을 자고 있는데.

나는 장비비에게 이불을 올려 씌워주고 나서, 다시 컴퓨터 앞으로 돌아가 이어폰을 꼈다.

마침 남자 앵커가 우리 길드 아지트를 화면에 띄워놓고 말하고 있었다.

“여기가 현재 유서준zl존 길드의 새로운 길드 아지트라는데요. 아, 유서준 길드 마스터는 이렇게 부르는 걸 싫어한다고 했죠?”

여자 아나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유서준 길드 마스터는 인터뷰에서 ‘길드를 쇄신한다는 의미에서 곧 길드명을 바꿀 예정이다. 그 때까지는 유서준 길드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한 바 있습니다.”

“그럼 유서준 길드라고 하죠. 이 유서준 길드, 오랫동안 길드 랭크 세계 1위를 유지하다가 최근에 불미스러운 일을 겪은 적이 있었죠? 소원의 탑에 도전했다가 길드원들을 모두 잃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맞습니다. 유서준 길드는 결국 소원의 탑 정복에 성공했지만, 길드원들이 모두 실종되거나 봉인되면서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와도 비견되던 길드 빌딩이 경매 매물로 나오면서 결국은 길드 해산 수순을 밟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추측을 했던 분들도 이제는 의견을 바꾸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자료 화면이 다시 장비비와 아라크네의 전투씬으로 바뀌었다.

장비비가 장팔사모를 휘둘러 아라크네를 끝장내는 장면이었다.

남자 앵커는 감탄하며 장비비를 가리켰다.

“저 분은 S급 전사 장비비 씨 아닌가요? 소원의 탑에서 실종되었다가 수문장이 된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여자 아나운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바로 며칠 전에 유서준 길드 마스터가 비밀리에 특수 작전을 펼쳐서 장비비 헌터를 구해냈다고 합니다.”

“그럼 유서준 길드 마스터는 장비비 헌터를 영입하고서 곧바로 이렇게 화려하게 부활전을 펼쳐낸 거군요? 대단합니다. 역시 세계 1위 랭크 길드를 운영했던 저력일까요?”

비밀리에 특수작전을 벌였느니 하는 소리는 대체 어디서 들은 거야.

장비비를 구해낸 건 술래잡기와 웰시코기와 아이스크림 덕분이었는데. 그걸 저 사람들이 알았더라면 절대 특수작전 운운하는 소리는 못했을 거다.

어쨌건, 앵커와 아나운서는 서로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대담을 이어나갔다.

그 다음에는 아라크네와 더블 게이트에 대한 설명, 초동 대응에 실패한 길드와 정부에 대한 비판, 그리고 고치에서 구해낸 시민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전반적인 논조는 유서준 길드의 부활을 기대한다는 것이었다.

“네, 이렇게 유서준 길드는 총 서른 한 명의 시민들을 구해냈습니다. 관할 구역을 맡은 길드가 초동 대처에 실패하면서 자칫하면 아찔한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는데, 참 대단하고 고마운 일을 해주었습니다. 앞으로 유서준 길드의 행보가 기대되는군요. 과연 유서준 길드가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을지, 이어지는 심층보도에서 더 자세히...”

여기서 또 뭘 이어나갈 게 있다는 거야?

며칠 동안 들들 볶았으니 이제 끝물이 아닐까 했는데, 우리 길드 소식이 뉴스 헤드라인에서 내려가려면 아직 한참 더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길드 마스터. 이것들 확인 좀 부탁드릴게요.”

송서영이 내 앞에 서류 파일을 내려놓았다.

대충 보니 우리 길드 앞으로 들어은 의뢰 목록인 듯하다.

이미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한 번 슥 읽는 것만으로 내용이 머릿속에 쏙 들어왔다.

“오. 파견 의뢰랑 임무 의뢰가 많이 들어왔네요?”

“길드 명성이 많이 올랐으니까요.”

하긴. 더블 게이트를 막고 아라크네까지 토벌했으니.

명성이 오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기자들이 귀찮게 굴긴 하지만, 길드의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나쁠 게 없긴 하죠.”

송서영은 한숨을 쉬면서도 시끌벅적한 게 조용한 것보단 낫다고 인정했다.

“그건 그렇죠. 그런데 어째 의뢰란 게 거의 다 해외에서 들어왔네요.”

“한국보다는 외국 사정이 더 급하니까요.”

생각해보면 내 길드도 그랬고, 세계 랭크 1위 타이틀을 이어받은 호랑 길드도 한국에 길드 아지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 덕분에 한국은 굉장히 안전한 편이지.

반면 다른 나라들은 길드와 헌터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고.

그러니까 탱킹과 딜링이 모두 되는 S급 전사 장비비는 그들 입장에서 어떻게든 모셔가고 싶은 인재일 거다.

“그만큼 조건은 확실히 괜찮긴 한데...”

파견 기간이 너무 길다. 짧아도 반 년, 길면 삼 년까지도 요청하는 경우가 있었다.

어떻게든 자기 나라에 오래 데리고 있고 싶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그나마 파견보다는 임무 의뢰가 나아 보인다.

그건 빨리 임무를 끝마친다면 빨리 돌아올 수 있는 거니까.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 임무 위주로 목록 좀 뽑아주세요. 일단은 목록 보면서 비비랑 같이 의논해보게요.”

“알겠습니다.”

송서영은 소파에서 자고 있는 장비비를 힐끗 보고 다시 물었다.

“이제 슬슬 깨울까요?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자고 있는데.”

“좀 더 자게 해주세요. 아라크네 토벌하느라 고생 많이 했는데.”

“그게 벌써 며칠 전인걸요.”

“오늘까지만 쉬게 합시다, 그럼. 저는 잠깐 나갔다 올게요.”

“어디 가시게요?”

“이것들 감정 좀 받게요.”

묵직한 소형금고를 들어보이자, 송서영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헌터의 클래스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전사, 암살자, 마법사, 지원가.

그런데 초보 헌터는 이 클래스 레벨을 10까지 올리면 그 클래스 안에서 상위 클래스로 전직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화단 밑의 네크로맨서 강시철은 지원가 레벨을 10까지 올린 후에 새로이 네크로맨서로 전직한 것이다.

사실 장비비도 전사라고 불리곤 하지만, 정확히는 선봉장이라는 특수 클래스를 가지고 있다.

선봉장도 대분류로 따지자면 전사에 속하니까 전사라고 호칭하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대개의 길드는 여러 클래스의 헌터들을 고루 영입하려 노력한다.

각 클래스마다 장단점이 있기에 클래스 조합을 맞춰야 서로 유기적으로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클래스의 헌터들만을 길드원으로 받아들이는 길드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길드 내의 결속력, 단합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네크로맨서 길드도 그렇지만 대장장이 길드가 그 대표적인 예다.

***

산중의 대장간.

가파른 능선 사이의 골짜기마다 철을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는 땀을 훔치며 대장간 입구 앞에 섰다.

팔에 털이 덥수룩하게 난 거한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서준... 내 티비에서 봤지.”

“네, 유서준입니다. 안녕하세요, 금철두 씨.”

금철두는 입술을 삐죽이고 딴소리를 했다.

“한창 잘 나갈 때는 우리 길드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양반이 왜?”

그거야 우리 길드 빌딩 안에 자체 대장간이 있었으니까.

시설 한계까지 풀 업그레이드한 대장간이 있는데 굳이 다른 대장장이 길드를 이용할 필요는 없잖아.

그렇지만 그걸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뭐해서 무어라고 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홀쭉한 남자가 뒤에서 나타났다.

“스승님. 멀리서 귀하신 분이 오셨는데 그렇게 홀대를 하시면 어떡합니까?”

“홀대라니. 내가 직접 나와서 맞이하고 있잖아.”

“안으로 들여야 맞이하는 거죠. 일단 안으로 들이시죠. 그게 예의 아닙니까.”

금철두는 이맛살을 찌푸리긴 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인 듯한 남자는 고개를 굽실거리면서 나를 안으로 안내했다.

건물 안도 꽤 더운 편이었지만, 다행히 응접실은 시원하고 쾌적했다.

제자는 쌍화차 두 잔을 내오고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갔다.

나와 금철두만 남은 응접실에 에어컨 소리만 울려 퍼졌다.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금철두는 이리저리 다리를 꼬다가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

“감정을 좀 받으려고 왔습니다.”

“감정 하는 대장장이들은 서울에도 많을 텐데.”

“그래도 금철두 씨만한 대장장이는 드물죠.”

칭찬을 듣기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지라, 목석같던 금철두의 얼굴도 조금은 풀어졌다.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역시 아라크네 토벌에서 나온 아이템을 감정하러 온 거지?”

“네. 아무래도 등급이 높은 아이템이다 보니 믿을만한 대장장이 분께 맡기고 싶더라구요. 그리고 바로 제작을 부탁드리고 싶은 것도 있고.”

나는 가져온 소형금고를 열어서 안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꺼냈다.

마석과 거미실 통, 그리고 유리병에 담긴 물방울.

금철두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물었다.

“아라크네 몸체는?”

“그 큰 걸 제가 들고 올 순 없죠. 일단 사설 금고에 맡겨놨는데, 의뢰를 받아주신다면 여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일단은 감정부터 부탁드리죠.”

금철두는 낮게 신음소리를 내면서 아이템을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음...”

그의 눈이 기이하게 빛났다.

《감정 Lv.9》

〈아이템의 특성과 본질을 파악합니다.〉

“일단 마석부터. 마석 순도가 참 높은데. 이렇게 불순물이 적은 건 오랜만이야. 순도가... 91퍼센트군. 속성은 월(月)이고.”

아슬아슬하게 90퍼센트를 넘겼다.

그렇다면 특상급 수준이니까, 상당히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겠다.

“『아라크네의 거미줄』은 소재 아이템으로 쓰이는 건 알 거고, 이것도 상태가 꽤 좋은 편이야. 방어구 소재로 하면 괜찮은 물건을 만들 수 있을 거 같군. 그리고는 『정수』인데...”

금철두는 유리병을 이리저리 비추어보더니 눈을 비비고 다시 살펴보았다.

그리고 한참 신음소리를 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겠어.”

“네?”

“모르겠다고.”

감정 레벨을 9까지 올린 양반이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다른 대장장이한테 찾아가 봐.”

“감정 레벨을 10까지 올린 대장장이가 있습니까?”

“없을걸. 내가 알기론.”

금철두는 은근히 뿌듯해하며 대답했다.

나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라서 한 마디 해주었다.

“왜 없습니까. 제 길드의 길드원인 대장장이 예릭이 있는데.”

“그 놈은 소원의 탑에서 사라졌잖아.”

“거기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지금은 없는 거잖아.”

우리는 서로를 한참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금철두는 은근히 침묵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성격인지,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봐야 정수가 정수지. 근력이건 체력이건 활력이건 마력이건, 마시면 능력을 증폭시켜주는 게 정수 아니야.”

“그런데 왜 모르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감정을 해봐도 뭐가 떠오르질 않으니까. 모르니까.”

“금철두 씨가 감정을 해도 뭐가 안 떠오르는 걸 냅다 마셔보라고요?”

금철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민하다가 물었다.

"그럼 금철두 씨에게 이걸 판다 칩시다, 금철두 씨도 이걸 마실 겁니까?"

금철두는 고개를 저었다.

이 사람이 진짜.

나는 유리병을 낚아챘다.

어디 다른 곳에 팔든지, 아니면 대장장이 예릭을 구할 때까지 남겨두든지 해야지.

내가 이런 뭔지도 모를 수상한 액체를 마시는 일은 없을 거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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