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화
헌터 협회의 의뢰
헌터 협회는 소원의 탑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었다.
사실 서울 어디에서든 고개를 쳐들면 소원의 탑이 보이지 않으랴마는, 헌터 협회의 정문은 공교롭게도 소원의 탑 정문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위치였다.
특히 협회장실에는 소원의 탑 쪽으로 돌출된 발코니가 있어서, 소원의 탑의 압도적인 위용이 더 실감나게 느껴졌다.
내가 지금 바로 그 발코니에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협회장 남궁무진은 바위 같은 인상의 남자였다.
그것도 통째로 화강암으로 된 봉우리 같은 바위.
농담 한 마디 허투루 하지 않을 것 같은 그 남자는, 지금 십분 째 장비비와 눈싸움 중이었다.
“어! 방금 깜빡였다!”
“어쿠쿠. 이것 참. 또 졌구나.”
“이것까지 이겼으니까 하겐다즈 열 박스 사주는 거야!”
“알았다. 알았어.”
장비비는 신이 나서 엉덩이를 들썩였다.
얘는 아주 신났네.
하지만 이대로 계속 있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남궁무진은 장비비와 눈싸움이나 하고 있을 것 같다.
나는 장비비에게 고개를 돌려서 말했다.
“비비야. 아이스크림, 지금 나가서 먹고 와도 돼.”
“지금?”
“그래. 협회장님, 그래도 되겠죠?”
“음.”
남궁무진은 정장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신용카드를 장비비에게 주었다.
저걸 그냥 줘도 되나. 장비비가 아이스크림만 사진 않을 것 같은데.
나중에 영수증을 보면 눈물 좀 나겠는데... 아니, 다시 생각해보면 명문 남궁가의 가주이자 길드협회장이신 분이 백만 원짜리 영수증 보고 눈물을 흘릴 것 같진 않기도 하고.
어쨌든 장비비는 희희낙락해서 법인 카드를 받아들고 나갔다.
남궁무진은 장비비가 나갈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강한 헌터는 참 귀중한 존재지.”
그렇게 말하는 남궁무진 그 자신이 S급 헌터이기도 했다.
백호랑이 말했던, 내 길드원이 아니면서 S급에 이른 헌터의 드문 예였다.
내가 그를 길드원으로 포섭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헌터 협회장이라 길드로 영입하는 게 불가한 대상이었으니까.
어쨌거나, 그는 내게 시선을 맞추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장막 뒤의 존재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는데, 의외로 평범하군 그래. 아니. 이런 말을 하려고 부른 건 아니었지. 미안하군.”
“본론부터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원의 탑을 정복하는 의뢰를 맡기려 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아니네만.”
“... 예?”
“나는 소원의 탑 탐사를 의뢰했네. 정복과 탐사는 전혀 다른 거야.”
다르다면 다르지만, 그걸 굳이 그렇게 구분한다는 건...
“소원의 탑을 정복하는 건 반대하시는 거군요?”
“그래.”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유 대표도 알 텐데. 너무 많은 희생이 있었으니까.”
남궁무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발코니 너머의 소원의 탑을 가리켰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유 대표 길드니까 무어라 할 수는 없지만, 헌터 협회장 입장에서도 소원의 탑은 참 가증스럽고 두려운 존재야. 귀중한 헌터들을 커다란 입으로 한 번에 삼켰으니.”
“좋습니다. 그럼 그 가증스럽고 두려운 소원의 탑에 탐사를 의뢰하신 이유는 뭡니까?”
“소원의 탑이 가증스럽고 두려운 만큼, 그것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야 하니까.”
본래 탑은 던전이나 게이트와는 다소 다르다.
던전은 주기적으로 클리어하지 않으면 리스폰된 몬스터가 넘쳐흐르고, 게이트는 그 존재 자체가 갑작스레 다른 차원의 몬스터를 내뿜는 것이다.
이에 반해 탑은 그 안에 흉악한 몬스터와 위험한 함정, 처절한 시련을 품고 있기는 하지만 그 밖으로 그것들을 내보내지는 않는다.
그러니 시민과 위정자들에게 있어 탑은 다소 안전한 위험인 셈이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기 마련이지. 그리고 소원의 탑은 그 존재 자체가 예외 중의 예외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네. 갑자기 탑 바깥으로 몬스터들이 뛰쳐나온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
“그러니 그 안을 탐사해달라는 거군요.”
“그래. 가능하면 샅샅이 탑을 탐사해서 보고서를 작성해주게. 등반과 정복을 원하는 건 아니니 고층까지 오를 필요는 없어. 저층 몇 개 정도, 그것도 유 대표 판단에 따라서 가감을 정하면 되네.”
남궁무진 협회장의 의뢰는 내게도 나쁠 것이 없었다.
어차피 그 탑을 정복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탐사 의뢰를 받아서 임무로 수행하면 겸사겸사 코인도 벌고 명성도 얻을 수 있으니 일석삼조다.
그는 내가 소원의 탑을 정복하는 걸 내키지 않아하는 듯하지만, 그건 어차피 당장 가능한 일도 아니고 그가 직접 나를 말릴 것 같지도 않으니 큰 문제는 없겠지.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그러게.”
“이 의뢰를 굳이 저희에게 의뢰한 이유는요?”
“S급 헌터 장비비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소원의 탑 내부를 알고 있는 인물이니 말이네.”
“그것뿐입니까? 호랑 길드에 의뢰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백호랑은 소원의 탑 정복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장비비가 나를 따라온 직후부터 몇 차례 탐사대를 탑 안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 시도가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현재 길드 랭킹 1위는 백호랑의 호랑 길드.
굳이 탐사를 의뢰하려고 한다면 이미 탐사를 진행 중인 호랑 길드에게 협조를 구하는 게 더 합리적일 텐데.
우리에게 들어온 이 의뢰는 우리에게 너무 좋게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 없는 호의는 없는 법이니까.
“음…….”
남궁무진은 눈을 번뜩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묵직한 기세가 나를 짓눌렀지만, 나는 안간힘을 써서 태연한 척 했다.
그러자 남궁무진은 기세를 한결 낮추며 말했다.
“꽤나 버티는구먼.”
“뭐라도 하셨습니까? 전혀 몰랐군요.”
남궁무진은 내 너스레에 껄껄 웃었다.
“생긴 것처럼 평범하지는 않다는 거지. 그래, 그러니까 그런 대단한 길드를 만들어냈던 거겠지.”
“제 질문에 아직 답을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 유 대표 길드에 의뢰를 넣은 이유 말이지. 그건 유 대표 길드를 외압에서 지키기 위해서네.”
“저희 길드를 지키기 위해서라고요?”
선뜻 이해되지 않는 이유였다.
“바로 얼마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유명했던 길드. 하지만 지금은 길드원 넷에 사무원 하나밖에 남지 않은 길드. 그렇지만 길드원 중 하나가 그 귀한 S급 전사인 길드. 누구라도 그 길드에 군침을 흘리지 않겠나?”
“욕심을 낼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가지고 싶다고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닐 텐데요.”
“외국의 정부와 빌런 단체들은 수단과 방법을 굳이 가리지 않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차원관리부가 이미 유 대표 길드에 눈독을 들이고 있네.”
차원관리부라.
이건 【헌터헌터 타이쿤】에서는 게임 내에 구현되지 않아 설정으로만 알고 있다.
분명, 헌터와 몬스터 등에 관한 사무를 관할하는 정부부처였지.
지금껏 직접 마주친 일은 없어서 별 생각 없었는데, 생각보다 그 쪽의 권력이 강한 모양이다.
이건 나중에 송서영에게 물어봐야겠다.
“어쨌든, 당분간 헌터 협회가 직접 의뢰한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하면, 누구든 유 대표 길드를 건드리기 전에 한 번쯤은 재고해보겠지. 그래서 유 대표 길드에 먼저 의뢰를 내놓은 거네.”
나로서는 그 말의 진위를 판별하기가 어려웠다.
그 때, 장비비가 두 손에 커다란 비닐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형님! 아이스크림 사 왔어!”
“일찍 왔네.”
“형님이 기다릴까봐! 자! 형님은 새벽햇살! 협회장 아저씨는 배뱀배! 나머지는 다 내 꺼!”
남궁무진은 허허 웃으며 장비비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를 신뢰하는 건 좀 이를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장비비처럼 강한 헌터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적어도 그와 내가 대적하게 될 일은 없지 않을까.
헌터 협회는 사실 툭 까놓고 말하자면 헌터들의 이익집단이기도 하고.
나는 그의 의뢰를 수락하기로 했다.
【헌터 협회장 남궁무진의 의뢰】
[임무 : 소원의 탑은 미지의 공간입니다. 그 곳이 어떤 곳인지, 그 곳에 무엇이 있는지 면밀히 탐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해 헌터 협회에 가져와주세요.]
[보상 :
1. 코인 + 1,000 ~ 10,000 (성과에 따라)
2. 명성 + 100 ~ 1,000 (성과에 따라)
3. 헌터 협회와의 관계도 + 8]
***
남궁무진은 소원의 탑이 가증스럽고 두려운 존재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매우 위험한 곳이라고는 생각한다. 한계까지 육성시킨 내 길드원들이 사실상 전멸 당했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그러니 소원의 탑을 탐사하기 전에 앞서서 취합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취합해야 한다.
다행히도 내게는 소원의 탑을 잘 알고 있는 정보원이 있었다.
소원의 탑 고층까지 도전해본 소중한 경험을 가진 정보원이.
“그게 누군데?”
“너잖아.”
“나야?”
장비비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맞다. 나였지!”
“너한테 정보를 얻는다는 게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하는데...”
“걱정 마! 형님! 내가 올라간 곳까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장비비는 사무실 한쪽에 이면지를 펼쳐놓고는 사인펜으로 커다란 직사각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게 소원의 탑이야!”
“그렇지. 백층까지 있었지?”
“응. 그치만 지하에 23층, 지상에 77층이 있어서 사실상 77층이 꼭대기였어.”
“복잡하네... 그럼 입구로 들어가면 지하부터 들어가는 거야?”
“아니. 일층부터 들어가지.”
그럼 지하는 뭐하러 있는 거지 싶었지만, 그 점에 관해서는 장비비도 알지 못했다.
“하여튼, 일층부터 십층까지는 공략이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 거기는 욕망의 층이었거든.”
"욕망의 층?"
그건 처음 들어보는 낯선 단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