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헌터 타이쿤-24화 (24/52)

제 24화

호롱불아귀의 미로 (1)

소원의 탑. 도개교 앞.

장비비를 조종했던 인형술사는 어디론가 도망간 건지, 지금은 수문장 자리가 텅 비어있다.

“흠!”

한 때는 수문장이었던 장비비가 이제는 선봉장으로서 장팔사모를 들고 앞장섰다.

『아라크네 아머』를 입은 박정하와 이연채, 그리고 물론 나도 각자의 장비를 쥔 채 걸어 들어간다.

거기에 하품을 폭폭 해대는 웰시까지 쫄랑쫄랑 따라오고.

그렇게 네 명과 한 마리가 전부 소원의 탑 안으로 넘어온 순간.

- 쿵!

활짝 열려있던 도개교는, 우리가 들어오자마자 문을 올려 입구를 막아버렸다.

다들 흠칫하고 어깨를 떨었다.

하지만 장비비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욕망의 층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니까. 그리고 수호자가 나올 때까진 아무 일도 없어.”

백호랑과 교환한 정보에서도 탑에 진입한 직후에는 안전하다고 하긴 했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니까.

우리는 천천히 나아가면서 이곳저곳을 살폈다.

탑 내부는 동유럽 어딘가에 있을 법한 고성(古城)의 느낌이 났다.

춥고 어두운 오래된 성.

복도는 생각보다 좁아서 한 줄로 지나가야했다.

한동안 돌바닥을 밟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래도 이삼 분 정도 걸으니 점차 복도가 넓어지더니, 어느 순간 커다란 공터가 나왔다.

천장에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달려 있어서 우리의 이목을 끌었다.

적지에서 이렇게 주의를 흐트러뜨리면 안 되는데, 어쩐지 저 샹들리에가 무척이나 가지고 싶어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흐어…….”

박정하는 아예 그 쪽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이연채도 헤롱헤롱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길드원들이 저러는 모습을 보니까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머리를 흔들어 이상한 욕망을 쫓아내고, 웰시에게 마음껏 짖어대라고 했다.

“알! 알알! 알알알!”

웰시가 크게 울음소리를 내자 박정하와 이연채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물론 장비비는 처음부터 아무렇지도 않아했다.

“다들 정신력이 너무 약해! 이제부터 출근 전에 삼십 분, 퇴근 후에 삼십 분씩 구보하면서 정신력을 좀 키워야겠어.”

“그런 끔찍한 소리 좀 하지 마.”

어쨌거나 우리가 모두 정신을 차리고 무기를 들자, 샹들리에의 빛무리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것은 사방으로 삐죽빼죽거리며 움직이더니 이내 사람의 형체로 변했다.

아마도 장비비가 말한 수호자겠지.

“도전자인가...”

그는 아주 늙은 왕이었다.

화려한 황금 왕관을 쓰고, 자주색 망토를 두른 채, 보검을 차고 있었다.

눈썹이 짙고 눈이 커서 젊었을 적에는 잘생겼을 것 같지만 지금은 피부에 주름이 자글자글해서 오래된 나무껍질처럼 보일 정도였다.

“강한 전사가 하나 있고, 약한 자들이 셋... 그리고는 유령견이 하나인가. 짐이 보기에, 그대들이 소원의 탑을 오르기에는 아직 수준이 미흡한 듯하다.”

“소원의 탑에 도전하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합니까?”

“그렇지는 않지. 소원을 가진 자라면 누구든 소원의 탑에 도전할 수 있고말고.”

늙은 왕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어 웃고는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렇지만 그대들이 바라는 것이 소원인지 욕망인지는 두고 봐야겠지. 짐이 그대들에게 묻는다. 소원과 욕망이 서로 다른 것은 무엇인가?”

장비비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글자가 달라.”

“그렇다. 물론 글자도 다르지.”

늙은 왕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들어둔 대로, 여기서는 어떤 대답을 하든 무방한 것 같다.

“허나 그 밖에도 다른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짐은 왕좌에서 태어나, 왕좌에서 죽을 때까지 이 세상의 모든 욕망을 질리도록 누려봤다. 그럼에도 짐은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했으니, 소원과 욕망이 다르다는 것을 이로써 논한다. 알겠는가?”

늙은 왕은 말을 이어나갔다.

“이 곳은 욕망의 층. 나는 욕망을 관할하는 수호자로서 그대들에게 오욕(五慾)의 시련을 내린다. 그대들이 욕망에 길을 잃지 않고 소원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 짐이 지켜보겠노라.”

그는 보검을 나에게 겨누었다.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영롱하게 번쩍였다.

【늙은 왕 마이트라스의 시련】

[설명 : 탐식욕, 수면욕, 재물욕, 명예욕, 색정욕의 다섯 가지 욕망을 극복하고 각층의 층지기에게 여의주 조각을 모아오세요.]

[보상 :

1. 욕망의 층 초월권

2. 마이트라스와의 관계도 + 5

3. 마이트라스는 무언가를 알려줄지도 모릅니다.]

“무언가를 알려줄지도 모른다니...”

“올라오라. 그리하면 알려주지.”

그는 마지막으로 보검을 자신을 향해 휘둘렀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와, 그의 몸을 삼켰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빛무리 뿐이었다.

“…….”

늙은 왕 마이트라스는 존재감이 강한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나면 묵직한 책을 읽은 때와 비슷하게 약간은 감상적이게 된다.

하지만 이 안에서 허비할 시간은 없으니까.

일단 시련의 내용은 잘 기억해두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준비 태세를 다졌다.

“아이템이랑 장비 다 한 번씩만 체크하세요. 문제 있는 사람은 바로 보고 하시고.”

다들 문제는 없었다.

나는 저 너머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공터 저 편으로 이어진 복도는 아주 어두컴컴했다.

샹들리에가 밝게 비추는 이 쪽에 비하면 공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준.

본격적인 소원의 탑 등반에 나서려니, 저 새까만 어둠이 조금은 무섭게 느껴졌다.

들어가기는 들어가야 할 텐데.

“이제 들어가 볼까요... 근데 좀 떨리네요.”

발을 옮기려던 길드원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길드 마스터! 동굴 던전에서도! 멋있게! 싸우시지! 않았습니까!”

“동물원 게이트에서도 그러셨고요.”

“걱정 마, 형님! 여차하면 내가 형님을 안고 뛸 테니까.”

“알알!”

그래. 혼자 가는 게 아니라, 다 같이 가는 거였지.

나는 스태프를 바닥에 힘차게 두들겼다. 그러자 스태프 위의 끝부분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아라크네에게서 얻은 월(月) 속성의 마석을 조금 떼어 붙인 거라, 성능은 확실했다.

금철두가 뚝딱뚝딱 강화해줘서 치명타 확률도 부가 속성으로 붙어있었지.

“좋아요. 들어갑시다.”

우리는 어둠 안으로 들어갔다.

곧, 홀로그램 창이 미로의 시작을 알렸다.

【소원의 탑 - 욕망의 층(1층) 호롱불아귀의 미로 진입】

[설명 : 욕망의 층(1층) 호롱불아귀의 미로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허기가 커지고 포만감이 줄어듭니다. 포만감이 0이 되면 탐식욕에 미쳐 아귀가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하세요. 포만감을 올리기 위해서는 미로 곳곳에 숨겨진 불가사리를 섭취해야 합니다. 하지만 불가사리를 노리는 건 당신만이 아니니 조심하시길.]

[포만감 : 78]

아직 길은 외길인데.

저 앞의 진로는 아직 어둠에 쌓여 있다.

“웰시야. 저 쪽에 갈림길이 나 있니?”

“알!”

웰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나아가서 스태프를 들어보니 역시 갈림길이 있었다.

이게 미로의 시작인 것 같다.

“비비야. 여기서 어디로 가야되는지 기억 나?”

“그것까진 기억 못하지. 갈림길이 몇 개였는데.”

사실, 장비비가 기억한다고 해서 미로가 그대로 남아있으리란 보장도 없고.

여기서는 일단 찍을 수밖에 없겠지.

나는 오른쪽 길을 골라잡으며 다시 한 번 포만감 수치를 확인했다.

[포만감 : 77]

1분에 포만감이 1씩 줄어들고 있었다.

그래도 미리 장비비의 이야기를 듣고 배불리 먹고 온 덕분에 최초 포만감 수치는 꽤 높았다.

그리고 칼로리바도 잔뜩 챙겨왔지.

준비를 꼼꼼히 해둔 덕에 새까만 미로 속에서도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나는 스태프를 들었고, 웰시는 내 바로 앞에서 왔다갔다 하며 혹시라도 적이 나타나지 않는지를 살폈다.

장비비는 내 곁, 박정하는 후미에서 진열을 지켰다.

이연채는 분필을 왼손에 들고 미로의 벽면에 계속해서 죽 그었다. 돌아갈 때는 그걸 보고 돌아가면 될 테니까.

“아! 이거!”

이연채는 분필을 긋다말고 벽에 붙은 불가사리를 떼어냈다.

별처럼 생긴 불가사리는 동물이라기보다도 딱딱한 과일처럼 생겼다.

“이게 그 불가사리인가 봐요. 먹어도 돼요, 길마?”

“먹어봐요. 포만감이 얼마나 오르는지 확인해봐야 하니까.”

이연채는 아삭아삭 불가사리를 씹어 먹었다.

“의외로 맛있는데요? 사과랑 리치랑 반반 섞은 맛이에요.”

“포만감은 얼마나 올랐어요? 아, 잠깐만요.”

나는 망라 스킬로 이연채의 시야에 연결해보았다.

[포만감 : 87]

이연채 시야에 비치는 포만감 수치도 망라 스킬로 확인할 수 있었다.

불가사리 하나를 먹으면 포만감이 10 정도 회복된다고 보면 될까.

하는 김에 칼로리바도 먹어봤는데, 이건 세 개를 먹어야 포만감이 겨우 1 올랐다.

“나중에 다시 도전한다고 쳐도, 미리 왕창 식량을 싸오는 건 어렵겠네요.”

“짐을 많이 챙겨오면 그만큼 미로를 돌아다니는 것도 늦어질 테니까요.”

“알!”

웰시가 우리의 대화를 끊듯 크게 짖고는 어둠 속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아직은 뭔가 보이지 않는데.

아니... 이제 보인다.

저 쪽 골목 어귀가 희미하게 밝아져오고 있었다.

“호롱불아귀인가봐요.”

이연채가 분필을 집어넣고 활을 꺼내며 말했다.

“어떡할까요, 길마?”

“전투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합시다. 호롱불아귀와 싸우는 게 아니라, 포만감을 채우면서 출구를 찾아내는 게 이 시련의 목적일 테니까요.”

나는 갈림길 반대편을 가리켰다.

길드원들은 나를 따라 급히 그 쪽으로 뛰어갔다.

다시 뒤를 돌아보니, 호롱불아귀가 우리가 있던 곳을 지나치고 있었다.

나는 얼른 스태프의 광량을 희미하게 조절했다.

- 꽯. 뙓.

호롱불아귀는 이름대로 머리 앞에 호롱불을 달고 있어서 그 주변은 꽤 밝았다.

퍼런 불빛 아래 드러난 녀석은 아래턱이 툭 튀어나오고 눈과 이빨이 드러나 있어서 굉장히 못생겨보였다.

그래도 지느러미로 허공을 헤엄쳐 다니는 모습은 꽤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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