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헌터 타이쿤-25화 (25/52)

제 25화

호롱불아귀의 미로 (2)

“으으... 역겨워...”

“쉿.”

“앗, 네.”

이연채는 얼른 입을 가렸다.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던 호롱불아귀는 다시 앞으로 호롱불을 향하고는, 우리가 왔던 길로 가버렸다.

“감각이 그렇게 예민한 편은 아닌 것 같네요. 이대로 따돌리면서 갑시다.”

[포만감 : 72]

아직 포만감은 여유가 있다.

미로를 더듬어나가며 출구를 찾다가, 이연채가 불가사리를 하나 더 발견했다.

“다들 여유가 있으니까, 이건 일단 챙겨두도록 하죠.”

계속 미로를 돌며 출구를 찾는다.

막힌 곳이 없다는 전제 하에 벽에 손을 대고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출구가 나올 거다.

그 사이 호롱불아귀를 다섯 번 정도 피해갔다.

웰시의 색적 능력 덕분이었다.

모두 웰시를 칭찬해줘서, 기분이 좋아진 웰시는 공중 뛰어넘기를 선보였다.

[포만감 : 65]

스태프의 빛이 있기는 하지만, 사방이 어두운 곳에서 계속 빙빙 돌고 있자니 은근히 숨이 막힌다.

밀폐된 곳은 아니지만 빛 닿는 곳이 적다보니 갇혀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정신력이 강한 편인 장비비와 박정하, 웰시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고.

나는 조금 피곤함을 느끼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연채가 많이 힘들어 해서, 잠시 쉬며 칼로리바를 먹었다.

그런데 원래 양이 많은 장비비는 칼로리바를 열 개는 먹어야 포만감이 1 오를까말까 했다.

이건 생각지 못한 맹점이었다.

[포만감 : 58]

배가 고픈 건 아닌데, 좀 출출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포만감이 50 이하로 떨어지면 어떻게 될지 조금 두려워진다.

이 호롱불아귀의 미로 안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탐식욕이 강해지고 포만감이 줄어드는 속도도 빨라진다는데.

불가사리도 두 개 이후로 새로 발견하지 못했다.

무언가 방책을 생각해내지 못하면 일단 한 번 돌아가서 재정비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앗... 길마.”

이연채가 분필을 긋다가 나를 불렀다.

“왜요?”

“여기, 한 번 지나쳤던 곳이에요.”

반대편 벽면에 분필이 그어져 있었다.

우리가 왔던 길을 그대로 왔다는 건 아니고, 한 번 길을 교차해서 들어온 것 같다.

하지만 호롱불 아귀를 피해 이리저리 다니다보니 갈 수 있는 길이 제한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피하는 게 능사는 아닌 것 같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구!”

장비비는 장팔사모를 탕하고 땅에 두들겼다.

때마침, 웰시가 어둠을 향해 으르렁거리며 호롱불아귀의 등장을 경고했다.

“좋아. 비비야. 해치워버려.”

“하이얍!”

나는 그녀가 달려가는 쪽을 향해 스태프를 쭉 내밀었다.

순간 광량이 확 커지면서 주변으로 넓게 빛이 뻗어나갔다.

퍼런 불을 띄우고 헤엄쳐 오던 호롱불아귀는 갑작스러운 빛무리에 놀라서 아가미를 뻐끔거렸다.

어두운 곳에 사는 녀석이니 호롱불보다 밝은 빛에는 취약한 걸까.

장비비는 그 틈을 노려, 장팔사모를 사선으로 휘둘렀다.

스킬도 필요 없었다.

장팔사모 창질 한 방.

- 뙓.

호롱불아귀는 짧은 단말마 소리를 내고는 유명을 달리했다.

장비비는 신이 나서 발광체가 달린 촉수를 들고 돌아왔다.

“형님. 전리품이야.”

“잘 했어.”

“이히히.”

나는 장비비가 내미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도 고민에 빠졌다.

잠깐 연결한 망라 스킬로 확인한 장비비의 포만감은 52였다. 전투하는 동안에는 포만감이 더 빨리 줄어든 것이다.

호롱불아귀가 포만감을 회복할 수단을 내놓지 않는다면, 녀석과 싸우는 건 포만감을 손해 보는 일일 수밖에 없다.

이걸 어떡한담.

“아참. 일단은 자리를 피합시다.”

화려하게 불을 밝히고 싸운 덕분에 호롱불아귀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광량을 다시 줄이고 어둠 속에 숨어서 지켜보니, 네 마리의 호롱불아귀들이 사거리에서 마주쳤다.

녀석들은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갑자기 서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핣! 뱛!

-쯃! 쓮!

“왜 서로 싸우는 거죠?”

“글쎄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정말 아귀다툼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싸움이었다.

호롱불아귀들은 한 마리가 남을 때까지 서로를 물어뜯어댔다.

남은 한 마리도 기진맥진해서 아가미를 헐떡이고 있었다.

- 꽯...

자기가 죽인 호롱불아귀의 사체를 먹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러지는 않았다.

동족포식을 하지는 않는다는 거지. 그렇다면 불가사리만을 주식으로 삼는 걸까.

녀석은 지느러미를 움직여서 고개를 돌리고, 어둠 속에 묻힌 미로 어딘가를 향해 다시 움직였다.

“제가...!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박정하가 목소리를 낮춰서 소리쳤다.

나는 손을 내밀어서 그를 제지했다.

“아뇨. 저 녀석은... 저 녀석을 따라가 보죠.”

“호롱불아귀를...! 말입니까...?”

“네. 아마도, 제 생각이 맞다면 저 녀석을 이용해서 불가사리를 찾을 수도 있을 거예요.”

길드원들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일단은 나를 따라줬다.

장비비와 박정하는 얼른 호롱불아귀들이 떨어뜨린 촉수를 주웠고, 이연채는 분필을 그으며 따라왔다.

우리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다친 호롱불아귀를 따라갔다.

녀석은 우리를 눈치 챈 것 같기도 했지만, 상처가 커서인지 우리와 맞서 싸우는 대신 그냥 자기 갈 길을 갔다.

한동안 어둠 속을 유영하던 호롱불아귀가 갑자기 천장을 향해 지느러미를 펄럭였다.

막힌 천장을 뚫어버리려는 건 아닐 테고.

“저거, 잡아요. 죽이진 말고.”

박정하가 쿵쿵 달려가서 방패로 호롱불아귀를 때렸다.

퍽하는 소리가 울렸다. 죽이진 말라니까.

- 뚨!

아. 죽진 않았다.

억울한 소리를 내긴 했지만, 호롱불아귀는 아파하며 벽에 몸체를 비벼댔다.

그 사이 이연채는 가볍게 뛰어올라서 천장에 붙은 것을 떼어냈다.

그것은 불가사리였다.

나는 그녀가 건네준 불가사리를 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호롱불아귀를 이용해서 불가사리를 찾을 수 있겠어요.”

“길마, 어떻게 아셨어요?”

“미로에 진입했을 때도 불가사리를 노리는 게 우리만이 아니라는 설명이 나왔거든요. 사실 잘 생각해보면, 이 녀석들이 여기서 먹을 게 그거밖에 없기도 하고. 동족포식도 하지 않으니까 말이에요.”

호롱불아귀는 이빨을 딱딱거리면서 불가사리를 훔쳐간 우리들에게 뙓뙓거렸다.

하지만 상처를 잔뜩 입은 몸으로 우리를 대적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결국 녀석은 몸을 돌려 다른 불가사리를 찾아 떠났다.

“얼른 쫓아갑시다.”

“조금 재밌다.”

“재밌다고요?”

“원래 남의 것 한 입 뺏어먹는 게 제일 재밌... 맛있잖아요.”

이연채는 쿡쿡 웃다가 입을 가렸다.

“가요, 길마. 이러다가 놓치겠어요.”

우리는 우르르 호롱불아귀를 쫓아갔다.

가끔 다른 호롱불아귀를 만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상처 입은 호롱불아귀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놈에게 몰매를 때렸다.

상처 입은 호롱불아귀는 의도치 않게 자기가 구해지는 상황에 이빨을 딱딱거렸다.

“감사하는 걸까요?”

“이 연인(燕人) 장비비가 멋있다고 하는 거야.”

“내 생각에는 동족이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 빠진 것 같은데...”

어쨌거나 호롱불아귀는 필사적으로 도망치면서도 불가사리를 쏙쏙 찾아냈다.

상처를 치료하려면 뭐라도 당장 먹어야 할 테니.

아니면 녀석도 이 공간을 지배하는 탐식욕이라는 욕망에 지배당하는 걸 수도 있고.

어쨌거나 호롱불아귀가 불가사리를 찾아내면, 우리는 그걸 빼앗았다.

이것도 나름 분업이라면 분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이연채와 장비비는 상처 입은 호롱불아귀 앞에서 빼앗은 불가사리를 와사삭 베어물었다.

“음. 너무 달아.”

“이것이 나의 즐거움.”

- 뛟...! 뚧...!

호롱불아귀는 처절한 울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녀석이 찾아줘야 할 불가사리가 아직 많았다.

감히 태업을 부리려고 들 때면, 방패나 스태프 같은 걸로 살짝 어루만져 주면 됐다.

장팔사모는 너무 위험해서 안 되지.

그렇게 살짝 어루만져 주면, 호롱불아귀는 다시 다친 몸을 이끌고 열심히 허공을 유영하며 불가사리를 찾아주었다.

호롱불아귀는 이 어두운 미로 속에서 계속해서 살아온 존재.

특히 이 개체는 동족 세 마리와 싸워서 살아남을 정도로 노련한 녀석이었다.

다시 말해, 이 녀석이 불가사리를 찾아내는 건 아주 간단하고 손쉬운 일이었다.

[포만감 : 68]

[포만감 : 73]

[포만감 : 84]

우리는 호롱불아귀가 불가사리를 찾아내는 족족 먹어서 포만감을 올리고, 그래도 남는 건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하지만 포만감이 줄어드는 속도보다도 불가사리가 쌓이는 속도가 더 빨랐다.

상처 입은 호롱불아귀는 어떻게든 불가사리를 하나라도 먹고자 필사적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녀석이 너무 열성적으로 일해준 탓에 우리도 곤란하게 됐다.

"길드 마스터! 주머니가 꽉 차서! 불가사리를 더 넣을 곳이! 없습니다!"

"저도 그래요."

"이제 슬슬 물린다. 아귀야. 더 맛있는 거 없어? 없으면 만들어 와."

"알알알!"

- 뙈애앩!

상처 입은 호롱불아귀는 갑자기 비명소리를 지르더니, 그대로 죽어버렸다.

우리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호롱불아귀를 주물러보았지만 녀석이 다시 살아나는 일은 없었다.

"도대체 왜 죽은 거지?"

"그러게 말이에요."

"일단은! 다른 호롱불아귀를! 찾는 게! 어떠십니까!"

박정하의 제안은 그럴싸했다.

우리는 그 다음부터 호롱불아귀를 찾아서 반쯤 죽여 놓고 풀어주었다.

안타깝게도 상처 입은 호롱불아귀처럼 성실하고 근면하게 불가사리를 찾는 녀석은 없었다.

다들 불가사리를 서넛 정도 빼앗기고 나서는 뙑하고 소리를 지르고 죽어버렸던 것이다.

"어디 또 만만한 아귀 없나... 아, 길마. 저기 좀 보세요."

호롱불아귀를 찾느라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도착한 곳, 그 바로 앞 골목길 어귀가 무척 밝았다.

그 쪽으로 길을 돌아보니, 복도 저 끝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미로의 출구였다.

하지만 그 출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상처 입은 호롱불아귀야!"

장비비가 반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건 분명 상처 입은 호롱불아귀를 똑 닮은 존재였다.

하지만 녀석보다 훨씬 크고, 훨씬 더 흉악하게 생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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