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헌터 타이쿤-26화 (26/52)

제 26화

호롱불아귀의 미로 (3)

출구를 막고 있는 녀석을 자세히 살펴보면, 호롱불아귀와는 다른 점이 꽤 있었다.

색깔도 더 어둡고 몸체 곳곳에 우둘투둘한 가시가 돋아나있다. 게다가 촉수 끝에 광원체가 횃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횃불아귀...”

저게 이 미로의 층지기였다.

다시 말해, 저 녀석을 쓰러뜨려야 이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거지.

[포만감 : 81]

불가사리를 잔뜩 먹어둔 덕에 포만감 수치는 아직 괜찮다.

하지만 전투 도중에는 포만감이 빠르게 감소하니까, 지금 불가사리를 더 먹어두는 게 낫겠지.

우리는 불가사리를 먹고 포만감을 90까지 끌어올렸다.

“속전속결로 끝내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횃불아귀는 커다란 입을 쩍 벌렸다가 쿵 닫았다가 하면서 이 쪽으로 슬슬 다가오기 시작했다.

“비비야!”

“맡겨둬, 형님!”

장비비는 장팔사모를 팔 밑에 착 붙인 채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는 입을 쩍 벌린 횃불아귀 앞에서 뛰어올라, 창을 반원으로 휘두르며 외쳤다.

“꺼져라!”

《사자후 Lv.8》

〈주변의 적들을 겁에 질리게 한다.〉

횃불아귀의 턱이 안 쪽으로 쑥 들어갔다. 활활 타오르던 촉수 횃불도 불길이 이리저리 흔들려댔다.

겁에 질린 횃불아귀는 장팔사모를 피하지 못했다.

창끝이 그 윗 턱을 찔렀다.

- 터엉!

하지만 우둘투둘한 가시가 돋아난 껍질은 장비비의 공격을 버텨냈다.

어두운 외피에 생채기가 좀 나긴 했지만, 거의 티가 나지 않았다.

- 뚥. 끓.

횃불아귀는 예의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촉수를 휘둘러 횃불을 움직였다.

장비비는 허리를 꺾어 횃불을 피해냈지만, 횃불아귀는 몸을 뒤로 휙 돌려 꼬리로 장비비를 후려쳤다.

“윽...”

장비비는 비틀거리면서 다시 장팔사모를 쥐었다.

“이게...!”

그녀는 다시 달려들어 횃불아귀와 맞붙었다.

장팔사모로 후려치고, 베고, 찌를 때마다 풍압이 여기까지 전해져왔다.

공세는 장비비에게 넘어왔고, 횃불아귀는 오로지 난타당할 뿐이었다.

하지만 횃불아귀는 촉수를 움직여 눈과 아가미는 철저히 보호하면서, 딱딱한 외피로 공격을 받아냈다.

생각보다 외피가 훨씬 단단했다.

나는 일단 장비비에게 물러나라고 지시하고, 그녀의 포만감 수치를 확인했다.

[포만감 : 67]

순식간에 포만감이 20 넘게 줄어들었다.

이러면 곤란한데.

“비비야. 저 녀석 원래 저렇게 단단했어?”

“응... 길드원끼리 왔을 때는 다른 애들이 후딱 해치워서 잘 몰랐는데, 생각보다 엄청 단단하네. 그치만 조금만 더 두들기면 될 것 같아!”

장비비는 믿어달라는 투로 말했지만, 그녀는 기본적으로는 전사 클래스의 상위직인 선봉장이다.

물론 딜도 잘 뽑아내는 편이지만, 전사 포지션의 한계가 있는 법이지.

하지만 우리 중에서 가장 공격력이 강한 이는 장비비다.

원래라면 딜을 담당해야 할 암살자 포지션의 이연채는 F급에 불과해서, S급 전사인 장비비보다 공격력이 한참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장비비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면 무척 곤란해진다.

- 뚫. 쑭.

우리가 멈칫거리자, 횃불아귀는 몸을 흔들면서 다가왔다.

가시는 부러지고 몸통 여기저기에 흠이 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녀석은 쌩쌩했다.

“길마, 어떡하죠?”

“아무래도... 다 같이 공격하는 게 낫겠어요.”

횃불아귀는 몸통은 그냥 맞아주면서도 눈과 아가미는 철저히 보호했다.

달리 말하면 거기가 약점이라는 거겠지.

장비비에게 횃불아귀의 주의를 끌게 하고, 여럿이 달려들어 마구 때린다보면 약점을 공략할 기회가 나올 거다.

나는 장비비에게 내 몫의 불가사리까지 넘겨줘서 먹게 하고, 스태프를 들어 횃불아귀를 겨누었다.

스태프 끝의 마력석이 번쩍이며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갑시다!”

“와아앗!”

장비비가 다시 달려들어 횃불아귀를 후려쳤다.

횃불아귀는 비틀거리면서 벽면에 기댔지만, 역시 큰 상처를 입지는 않은 듯했다.

그 사이 박정하와 이연채는 반대편 벽면에 바싹 붙어서 횃불아귀의 꼬리 뒤로 돌아갔다.

횃불아귀는 그게 신경 쓰이는지 꼬리를 흔들었지만, 장비비에게 얻어맞고 있는지라 그들을 쉽사리 견제하지는 못했다.

“받아랏!”

이연채는 박정하 뒤에서 열심히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비스듬하게 벽면을 스치고 날아가, 아가미 바로 위에 꽂혔다.

횃불아귀는 몸을 비틀며 급히 촉수로 아가미를 보호했다.

그러자 장비비가 눈을 노리고 장팔사모를 휘둘렀다.

- 끼이읽!

창날이 수직으로 눈을 긁고 지나가자, 횃불아귀는 무시무시한 비명을 내질렀다.

분노해서 그런 건지 촉수에 매달린 횃불이 확하고 밝아졌다.

“더 밀어붙여요!”

“알알알!”

나도 가세해서 스태프로 횃불아귀의 위턱을 후려쳤다.

웰시는 이리저리 뛰고 짖어대며 녀석의 정신을 사납게 하고.

- 뚥. 뚥.

횃불아귀는 뒤에서 깔짝거리는 박정하와 이연채부터 어떻게 하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장비비가 강력한 공격을 선보여서 어쩔 수 없이 앞을 신경 써야 했다.

그 사이 이연채는 몇 발이나 더 화살을 아가미에 꽂아 넣었다.

화살 자체의 공격력이 낮아서 횃불아귀의 약점을 타격해도 아주 대단한 데미지를 넣지는 못했지만, 앞뒤로 얻어맞는 중인 횃불아귀는 통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도 그리 여유롭지는 않았다.

선두에서 횃불아귀의 주의를 끌며 격렬하게 움직이는 장비비의 포만감 수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포만감 : 44]

[포만감 : 39]

[포만감 : 35]

불가사리를 먹어가면서 싸웠음에도 포만감이 급감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장비비는 주린 배를 쥐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슬슬 승부수를 띄워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망라 스킬로 장비비, 박정하, 이연채, 그리고 웰시의 시야까지 바꿔가며 훑어보았다.

전후좌우의 시야를 하나씩 살펴보면 횃불아귀도 무척 지쳐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유효타를 때려 넣기에 딱 좋을 때라는 것도.

“비비야. 잠깐 물러나 봐.”

“응? 응!”

“그리고는...”

《망라(網羅) Lv.1》

〈근처에 있는 부하들과 연결하여 소통할 수 있다.〉

내 지시를 받은 박정하는 주저 없이 방패를 들어서 횃불아귀의 꼬리를 때렸다.

그러자 횃불아귀는 바로 반격에 나섰다.

녀석은 꼬리를 들어올려, 그대로 박정하를 후려쳤다.

- 쿵!

"흡...!"

박정하는 방패를 들어 막으려고 했지만, 횃불아귀의 꼬리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엎어졌다.

나는 급히 그의 시야를 확인했다.

다행히 단단한 아라크네 아머 덕분에 크게 다치지는 않은 듯 했다.

방패는 꽤 많이 금이 갔지만, 박정하는 타박상을 좀 입은 게 다였다.

“조금만 더 힘내요!”

“물론입니다! 길드 마스터! 하루 종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금방 끝내자구요! 연채 씨!”

“네! 길마!”

아가미를 노리던 이연채는 바로 가까이 있는 꼬리를 향해 연신 화살을 쏘아댔다.

횃불아귀는 화살을 쳐내기 위해 꼬리를 흔들었다.

나는 이연채의 시야를 확인하고, 화살이 꼬리에 튕겨나가기 직전에 스태프를 들어올렸다.

“영광을 위하여!”

《독려 Lv.1》

〈주변 동료들의 공격력과 공격속도를 증대시킨다.〉

쏘아진 화살이 급격히 빨라져서, 꼬리 끝의 궤적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나갔다.

화살은 그대로 꼬리 옆면을 찍었다. 물론 비늘을 뚫지는 못했지만, 횃불아귀를 성내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 뚜르륽!

그러자 박정하는 방패로 다시 꼬리를 때리며 도발했다.

“덤벼라!”

《도발 Lv.1》

〈적의 이목을 자신에게 쏠리게 한다.〉

횃불아귀는 더 참지 못하고 뒤로 몸체를 돌렸다.

장비비가 한 발자국 물러나 있었기 때문에, 후방에서 계속 신경을 끌며 공격해대는 두 사람을 먼저 상대하려고 한 것이다.

몸을 틀면서 횃불아귀의 옆구리와 아가미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게 바로 노림수였다.

장비비는 곧장 장팔사모를 들어, 최대의 절기(絶技)를 선보였다.

《뱀가르기 Lv.10》

〈꿈틀거리는 장팔사모 창날로 적을 가릅니다.〉

뱀처럼 꾸물거리는 창날이 횃불아귀의 아가미를 향해 날아들었다.

횃불아귀는 급히 촉수와 횃불을 휘두르며 아가미를 방어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장팔사모 창날은 촉수를 가르고 횃불을 흩어버렸다.

- 뙑!

횃불아귀는 장비비 쪽으로 몸을 동그랗게 말아, 어떻게든 아가미를 지키려고 했다.

그러자 반대편의 아가미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미리 지령을 받고 기다리던 이연채가 화살을 쏘았다.

- 팡!

《치명타 Lv.1》

〈일반 공격보다 강한 치명타로 적을 공격한다.〉

화살이 아가미에 정확히 박혔다.

횃불아귀는 비명을 지르며, 반사적으로 그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 쪽에 빈틈 있음!”

장비비는 아가미 안으로 장팔사모를 푹 찔러 넣었다.

연약한 아가미 안쪽으로 들어간 장팔사모는 현란하게 움직이며 횃불아귀의 살을 헤집었다.

- 뚥...!

횃불아귀는 튀어나온 눈을 뒤르륵 굴리다가 가래 끓는 듯한 소리를 내고는 눈을 턱 감았다.

지느러미가 멈추자, 육중한 몸체는 곧장 바닥으로 떨어졌다.

쩍 벌어진 횃불아귀의 아가리에서는 마석과 구슬 조각이 나왔다.

『여의주 조각 (1/5)』

「설명 : 다섯 조각으로 깨진 여의주 조각입니다. 조각을 모아 여의주를 완성해서 이무기에게 가져다준다면, 이무기를 용으로 승천시킬 수도 있습니다.」

“예쁘다...!”

이연채는 언제 왔는지 내 옆에 쪼그려 앉아서 여의주 조각을 보고 방긋 웃었다.

박정하도 쿵쿵거리며 다가왔다.

“길드 마스터!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다들 잘 싸워준 덕분이죠. 그나저나 아까 꼬리에 맞았는데,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아라크네 아머 덕분에! 별로 다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흉갑을 두들기며 씩 웃었다.

나는 한숨 돌리고 말했다.

“다들 수고 많았어요. 리트라이를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러분이 다들 잘 따라줘서 한 번에 클리어했네요.”

“길마가 적재적소에 지시를 잘 내려주셔서 그랬죠, 뭘. 비비 선배님 덕분에 편하게 싸울 수 있었고요.”

“헷헷.”

다들 신이 나서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보였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포만감은 줄어들고 있으니까 회포는 길드 아지트로 돌아가서 풀기로 하자.

우리는 급히 여의주 조각과 마석, 횃불아귀의 촉수와 광원체를 챙겼다.

이 몸체도 굉장히 좋은 조합 아이템 소재가 될 것 같긴 한데, 이 커다란 걸 다 챙겨갈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이대로 놔두고 가면 다시 돌아왔을 때 몸체가 남아있을지 어떨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포만감 : 21]

고민하는 사이에 포만감이 또 낮아졌다.

어쩔 수 없이 몸체는 포기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연채가 갑자기 횃불아귀의 아가리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이미 죽은 녀석이라고는 해도,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머리를 들이미는 건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위턱이 턱하고 떨어지면 어쩌려고.

“연채 씨. 위험하니까 거기서...”

“길마. 이것 좀 봐보세요. 이 안에 배낭 같은 게 있어요.”

“배낭이요?”

나는 장비비와 박정하에게 횃불아귀의 입을 잡아달라고 부탁한 후에, 횃불아귀의 목 안쪽을 살펴보았다.

소화가 덜 된 불가사리 잔해들 사이에, 정말로 배낭 같은 것이 묻혀있었다.

슬쩍 고개를 들이밀던 장비비가 배낭을 보고는 소리쳤다.

“저거, 짐꾼 셀파의 배낭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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