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화
죗값은 얼마인가요?
나는 겁에 질린 신수련을 앞에 두고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했다.
강시철은 괜히 옆에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는데, 그 덕분에 신수련은 더 덜덜 떨어댔다.
“아니. 어르신. 한참 젊은 사람들 놀려먹는 게 그리 재밌으십니까?”
“허면 어쩔 건가? 어쨌든 도둑질을 하려다 걸렸으니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어? 경찰에 넘길 건가?”
글쎄.
생각해보면 그게 제일 무난한 방법이긴 하지.
하지만 신수련은 경찰 소리를 듣더니 질색을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겨, 경찰은 안 돼요!”
“죄송한데 도둑이 그런 말씀을 하셔도...”
“뭐든 할게요! 제발!”
강시철은 킬킬 웃으며, 이번에는 엄지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넣었다.
저 양반은 폼 잡을 때는 엄청 품위 있어 보이더니. 이럴 때는 완전히 왈패가 따로 없네.
소란이 커지면서 주변 원룸 건물에 불빛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신수련도 그렇겠지만 나도 괜한 뉴스거리를 만들기는 싫다.
나는 일단 그녀를 데리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근처 카페에 갔다가 괜히 어디 온라인 커뮤니티에 썰이 올라가느니, 조용한 우리 아지트가 낫겠지.
“커피라도 드실래요? 밤이라 좀 그런가?”
“주... 주세요.”
염치불구한다는 표현이 이럴 때 어울리는 걸까.
그렇지만 신수련의 뱃소리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는, 나를 조금 너그럽게 만들었다.
“컵라면도 있는데.”
“주세요!”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이지.
형사들도 취조할 때 설렁탕을 먹인다고 하고.
나는 컵라면과 커피, 그리고 간식용으로 놔둔 과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신수련은 배가 많이 고팠는지 후루룹 쩝쩝대며 그것들을 먹어치웠다.
가끔은 라면 면발을 들이키다가 콧물을 훌쩍이기도 했다.
처음 봤을 때랑 인상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 싶다.
그 때는 명품가방을 들고 화장도 세게 해서, 완전히 재벌 3세 같은 이미지였는데.
그것도 오냐오냐 키운 탓에 안하무인이 되어버린 가문의 골칫거리 같은 느낌.
하지만 오늘은 완전히 딴 사람 같다.
옷도 상하의 모두 츄리닝에, 얼굴에는 화장기가 하나도 없고, 무엇보다도 표정이 풀죽은 생쥐 같다.
이런 안쓰러운 모습을 보이면 대쪽같이 강하게 나가기도 어렵다.
나는 신수련이 다 먹기를 기다렸다가, 물을 한 컵 떠다주었다.
신수련은 물까지 들이켜고 입을 슥 닦았다.
“후우. 감사합니다.”
“그래서요.”
“힉?”
“왜 그렇게 놀라세요. 사정을 안 물을 수는 없잖아요.”
“그... 그렇죠.”
신수련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한 건 죄송한 거고, 제 인형튤립은 왜 훔치신 거예요? C급 헌터, 그것도 마법사이신 분이.”
“... 제가 빚이 좀... 있어서...”
“빚이요?”
“그게...”
아마 밤중이라 감수성이 폭발했던지.
신수련은 띄엄띄엄 자기 인생사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카데미에서는 천재 소리를 들으며 우수생으로 졸업하고, 십대 길드에 스카웃되었을 때만 해도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 파견을 다녀오고 나니 상사가 자신을 보는 눈이 조금씩 식어가는 게 보였다고.
파견처에서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에 관해 소소한 부탁과 당부를 했을 뿐인데.
게다가 레이드에서도 파티장은 자꾸 이상한 명령을 내려서, 그냥 무시하고 내키는대로 시원하게 화력을 퍼부었다.
그러다가 반쯤은 떠밀려 사직서를 쓰게 되었지만, 내가 이 정도 길드에 다시 못 들어갈까 그렇게 생각해서, 호기롭게 사직서를 쓰고 뛰쳐나왔단다.
하지만 다시 들어간 길드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나가게 되었고.
이직과 구직을 반복하다보니 들어갈 수 있는 길드가 점점 줄어들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면접에서부터 잘리는 일이 생겼다.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닐까요? 저는 마법사라구요! 그것도 중견 등급!”
본인만 아직도 본인이 이렇게 된 이유를 모르는 것 같은데.
어쨌든. C급 마법사가 왜 우리 길드에 지원을 했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구나.
그렇게 면접만 보고 다니다보니 스트레스가 쌓여서 명품 쇼핑에 빠지게 되었고.
그러다보니까 사채에 손을 대게 되었다고.
빚에 쪼들리다보니 돈에 눈이 멀어서 마침 지나가던 길에 있던 인형튤립을 보고 슥삭하려고 했는데 화단을 지켜보고 있던 강시철의 환상 저주에 걸렸다는 거지.
이거, 그냥 평범한 인과응보 스토리 아닐까?
“역시 경찰서에...”
“한 번만 봐주세요. 제발요.”
신수련은 손을 싹싹 빌고는 있었지만, 그게 얼마나 진실한 사과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전과가 찍히는 걸 피하려고,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는 걸 수도 있고.
나는 어찌 됐든 죄를 지었다면 죗값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 네...”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었는데.”
웃으며 묻자, 신수련은 겁먹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죄, 죗값을 치르겠습니다아...”
***
송서영은 한참 복도에서 빗자루질을 하고 있는 신수련을 바라보며 볼펜으로 옆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니까, 간밤에 마법사를 영입하셨다는 거죠? 1코인에요?”
“정확히 말하자면 첫 한 달만 1코인에 일하기로 한 거예요.”
대신 도둑질하려고 한 건 불문에 부치기로 하고 숙식도 제공하기로 했다.
안 그래도 당장 방세가 밀려있다고 해서, 일단 그건 해결해주고 데려왔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1 코인보다는 꽤 주게 되는 거지만, 명목상 급여는 일단 그렇다는 거다.
“그리고 두 달 째부터는 199 코인을 주기로 했죠.”
“면접 보러왔을 때는 그 두 배를 부르지 않았던가요?”
“그랬죠.”
그리고 199코인은 이연채보다 딱 1 코인 더 적은 급여다.
그걸 신수련이 알게 되면 자기가 신입 헌터보다 적게 받는 거냐며 자존심 상해할 수도 있겠지만, 나도 일부러 그렇게 금액을 정한 거다.
사실 저 아가씨가 한 달이나 붙어있을지도 의문이고.
며칠 일하는 척하다가 슥 도망쳐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럴 확률이 높겠지.
“그러면 왜 그런 계약을 맺으신 거예요?”
“어쨌건 인연인데, 결국 훔치지도 못한 인형튤립 몇 송이 때문에 경찰서에 가는 것도 그렇잖아요. 며칠 일하다가 도망치면 그 며칠 일한 걸로 죗값 치른 셈 치게요.”
송서영은 묘한 콧소리를 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알았어요. 성격이 저래도 C등급 마법사라면 지금 우리 길드에는 귀중한 전력이 될 테니, 가능하면 오래오래 붙잡아주세요.”
"노력해볼게요."
마침 신수련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대표님. 청소 다 했어요.”
“수고하셨... 아니, 바로 저기에 쓰레기가 남아있는데요?”
사무실 바로 앞 복도에 아이스크림 봉투가 널려 있었다.
“아. 저게 왜 저기 있지.”
신수련은 슥 복도로 나가서 아이스크림 봉투만 주워서 돌아왔다.
역시 사람은 바꿔 쓰는 거 아니라더니.
나는 몸을 일으켜 복도로 나가보았다.
복도 곳곳에 먼지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청소 제대로 하신 건 맞아요?”
“... 아니! 애초에 왜 제가 청소를 해야 돼요! 저 마법사라니까요?”
“죗값, 치르신다면서요.”
“치를게요. 근데 이런 식으로 말고요.”
신수련은 던전이든 탑이든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사실, 지금 바로 레이드에 참여시킨대도 신수련은 대단한 활약을 해주겠지.
그녀는 아직 등급이 낮은 박정하나 이연채에 비하면 몇 배나 뛰어난 자질을 가졌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그녀에게 잡일이나 시킨 건, 그녀가 조금 다른 경험을 해봤으면 해서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서도 여러 길드를 전전하다가 밀려나간 건 그녀 자신의 문제 때문이겠지.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인 태도.
그러니까 한 번쯤은 이런 잡일을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오지랖일지도 모르고, 꼰대질 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결국 못 버티고 도망간대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하지만 잠시라도 나와 인연을 맺어 길드에 들어왔다면, 그녀가 조금이라도 바뀌기를 바란다.
성격을 조금만 고쳐먹는다면 그녀의 재능은 더 빛을 발하게 될 테니까.
그러니 일단 그녀가 레이드에 참여하는 건 조금 뒤의 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스크림을 물고 나오던 장비비가 이야기를 들었는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신도둑!”
“신도둑이라니!”
신수련은 발끈해서 대들었다.
장비비는 코웃음을 쳤다.
“도둑질하러 들어왔다가 잡혔으니까 도둑놈이지! 그리고 신수련이니까 신도둑!”
“그... 그건... 어, 어쨌든 이렇게 죗값은 치르고 있거든?”
“제대로 안 해서 형님한테 혼나고 있었으면서.”
장비비가 일침을 넣자 신수련은 분해하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장비비는 그녀의 반응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말했다.
“형님. 나한테 맡겨줘. 내가 이런 녀석들 군기 잡는 건 자신 있다구.”
“네가 굴리면 수련 씨는 바로 도망칠 거 같은데.”
“음... 그럼 나랑 같이 임무 수행하는 걸로. 현장에서 같이 구르면서 가르쳐주면 되는 거잖아.”
장비비가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그녀 나름대로 생각이 있는 게 분명하다.
사실 장비비는 단순하게 보이지만 가끔은 상당히 예리할 때도 있단 말이지.
나로서도 한 번은 신수련의 능력을 직접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지라, 이번엔 장비비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안 그래도 4주 일정의 마지막 날에 임무 스케쥴을 잡아두었지.
동물원 게이트와 소원의 탑 1층 정복 이후로는 의뢰가 꽤 많이 들어와서, 어떤 의뢰를 수행할지 선택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게 이제 바로 며칠 뒤인데.
“송 주임님. 들어온 의뢰 추린 목록 좀 보여줄래요?”
“네. 길드 마스터. 여기요.”
여러 의뢰 중에서 그녀가 특별히 추려온 것은 세 개였다.
【심마니재단의 의뢰】
[임무 : 백운산 게이트가 닫힌 지 일 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이 산기슭 곳곳에 숨어서 심마니 활동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부디 몬스터들을 토벌하고 백운산의 천마산삼 자생지를 회복해주세요.]
[보상 :
1. 코인 + 1,000
2. 천마산삼
3. 심마니재단과의 관계도 + 10]
【부호왕 무함마드의 의뢰】
[임무 : 부호왕 무함마드는 S급 헌터 장비비가 자신의 사병들을 훈련시켜주기를 바랍니다. 그가 바라는 건 자신의 사병들이 S급 전사로부터 훈련을 받았다는 인증이므로, 훈련은 단기간에 끝나도 무방합니다.]
[보상 :
1. 코인 + 5,000
2. 사하라 왕실과의 관계도 + 20]
[주의 : 명성이 상당히 감소할 수 있습니다.]
【녹십자교단의 의뢰】
[임무 : 최근 서울의 밤거리에서 박쥐를 보았다는 제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녹십자교단은 이것이 뱀파이어 탄생의 전조가 아닐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뱀파이어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모으고, 가능하다면 그 박쥐를 포획해주세요.]
[보상 :
1. 코인 + 500
2. 명성 + 20
3. 녹슨 성수
4. 녹집자교단과의 관계도 + 2]
또 한 번 선택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