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헌터 타이쿤-33화 (33/52)

제 33화

역지사지합시다

심마니재단의 의뢰와 백운산 코라니 토벌전.

결과만 보자면 좋게좋게 끝난 셈이지만, 신수련에 대한 길드원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등을 맡길 동료가 믿을 수 없다면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건 같은 길드원이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장비비는 신수련을 지옥훈련 시키는 걸로 끝냈지만, 송서영은 아예 퇴출을 주장했다.

“길드 마스터의 지시를 어겼다고요? 그거 명령불복종 아닌가요? 정말 위급한 때에 또 명령불복종한다면 정말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는데, 신수련 헌터가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데리고 있을 인재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송서영이 냉기를 풀풀 풍기며 말하자, 신수련은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안 그럴 게요. 한 번만 봐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왜 저한테 이러세요? 어차피 결정 내리시는 건 제가 아니라 길드 마스터에요.”

“대, 대표님. 저 다시는 안 그럴게요. 저 여기서 나가면 진짜 갈 데도 없어요. 엄마가 죽인다고 했단 말이에요.”

신수련은 울먹이면서 내게 다시 빌었다.

나는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반성하고, 똑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않는다면 용서해주고 싶다.

그녀가 반성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는 이상 알 수 없다.

하지만 울타리 앞에서 코라니 떼와 싸울 때 그녀는 나름대로 반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몸을 사리지 않고 싸웠고, 또 열심히 싸웠다.

그리고 좀 계산적으로 따져보자면 C급 마법사인 그녀를 놓치기는 아깝기도 하다.

신수련 덕분에 약간 아쉬웠던 파티의 공격력이 넉넉하게 보충됐으니까. 또 《섬광탄》이나 《매연탄》 같은 활용도 높은 마법도 전략에 추가할 수 있고.

게다가 신수련이 차원관리부 차관 신경애의 딸이라는 점은, 은근히 신경 쓰이는 차원관리부에 접점을 만들어 둔다는 차원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 했다.

결국 우리 길드를 이끌어나가는 길드 마스터로서 결론을 내리자면, 신수련은 길드에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녀를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는 거지.

헌터는 언제나 위험 앞에 선다.

그런데 등을 맡길 동료가 지시를 멋대로 무시하고 움직인다면, 그건 송서영의 말대로 커다란 위험을 안고 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신수련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신수련을 어떻게든 바꿔놓기는 해야 한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신수련에게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신수련 씨.”

“네!”

“저는 신수련 씨가 우리 길드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마음대로 행동하시면 곤란해요.”

신수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안 그럴 게요. 진짜 한 번만 믿어주세요.”

“믿어드릴게요.”

“정말요?”

“대신 신수련 씨도 믿음을 주셔야 해요.”

신수련은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를 따라 고개를 끄덕이고 웃어주었다.

“그럼 한 번 시험해 봐도 되겠죠?”

“시험이요? 네에... 무, 물론이죠...!”

***

광명시 가학산 동굴 던전.

망라 스킬의 활용도를 살펴보기 위해 박정하와 한 번 돌았던 곳이었는데, 이번에도 호랑 길드에 부탁해서 파견을 나왔다.

사실 우리 길드원들이 우르르 몰려오기에는 영 수지가 맞지 않는 파견처지만, 이번에는 신수련에게 특별한 경험을 심어준다는 목적이 따로 있었으니까.

신수련은 묵직한 갑옷과 방패를 든 채 부들부들 떨었다.

근력 한계에 아슬아슬하게 걸리는 장비라서 상당히 무겁긴 할 거다.

마법사인 그녀는 마법사 전용 장비가 아닌 범용 장비를 착용한 채, 나와 박정하 사이에서 걷고 있었다.

우리 셋을 전위로 하고, 후위에 이연채와 감독역으로 장비비가 있었다.

전리품이 많이 나오는 곳은 아니라서 짐꾼 셀파는 화원(花園) 관리하라고 보냈지.

어쨌든 통상적인 배치와는 전혀 다른 진열이었다.

“대표님. 불평하려는 건 아닌데, 전 마법사인데요...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아니, 벌이라고 생각하면 못 한다는 건 아닌데...”

신수련은 어지간히 힘들었는지 숨을 고르면서 한 마디를 뱉었다.

지금까지 별 말 없이 따라왔으니 그녀로서는 참을 만큼 참은 거겠지.

하지만 나는 가볍게 어깨만 으쓱였다.

“알알!”

웰시가 나 대신 대답해주었다.

던전은 기본적으로 어두운 곳인 데다가 음기가 넘쳐서 유령견 웰시에게는 강변의 산책로나 마찬가지였다.

“으으...”

개소리만 돌려받은 신수련은 한숨을 푹 쉬고는 계속 몸을 움직였다.

어쨌든 열심히 따라오는 걸 보니 반성은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제멋대로인 성격은 고치고 싶다고 단번에 고쳐질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전사로서 싸운다는 게 어떤 것인지만이라도 그녀에게 이해시키고 싶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지금 신수련에게 필요한 건,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신수련에게 전사로서 던전을 돌아볼 것을 주문한 것이었다.

신수련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끙끙거리면서 방패를 끌었다.

“후우... 무거워어...”

“길마.”

이연채가 내게 속삭여서 전방에 지네 몬스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렸다.

나는 스태프를 바로 세우고, 끝을 두들겨 마석광을 빛냈다.

“준비하세요. 특히 수련 씨.”

“네에...!”

스스슥.

어둠 속에서 지네가 빠르게 다가왔다.

신수련은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왤케 징그러워!”

멀쩍이 뒤떨어져 볼 때는 그냥 일개 몬스터였겠지만, 앞에 서면 긴 더듬이와 번질거리는 등갑, 쉴새없이 움직이는 수백 개의 다리가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것도 후위와 전위의 차이였다.

지네는 바스락거리면서 거리를 좁혀왔다.

나는 박정하에게 눈짓을 하고 슬쩍 뒤로 빠졌다.

자연스레 신수련이 앞에 남겨지자, 지네는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꺅! 타, 타, 타올...”

“마법 금지.”

“대표니임!”

신수련은 울상을 지으면서도 방패를 내밀었다.

하지만 그렇게 슬쩍 방패를 내밀어주는 건 넘어오라는 거나 다름없었다.

지네는 어물쩍 방패를 타고 넘어, 신수련의 갑옷 위에 올라탔다.

“아아아아아악!”

신수련은 비명을 질러대다가 거의 졸도할 뻔 했다.

지네 다리가 입에 살짝 들어간 거였다. 저건 심하지.

“정하 씨. 좀 도와주세요.”

“예! 길드 마스터!”

박정하는 함성을 내지르며 지네의 몸을 방패로 후려쳤다.

진녹색 진액이 팍하고 터지며 신수련의 갑옷과 방패를 흠뻑 적셨다.

“흐아... 흐아아아...!”

“좀 불쌍한데요. 길마.”

이연채가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결국 신수련은 자기 수통을 꺼내서 직접 얼굴을 닦고 입을 헹궈야했다.

그녀는 지네 비린내를 풍기면서 훌쩍거렸다.

“집에 가고 싶어...”

“수련 씨 집에서 쫓겨났잖아요.”

“... 저 방금 되게 나쁜 말 할 뻔 했어요.”

“잘 참았어요.”

신수련은 남은 물을 자기 얼굴에 뿌리고는 슥슥 세수하고 나서 한숨을 푹 쉬었다.

“아직 시험, 남은 거죠?”

“던전을 한 번 돌 때까지는 계속되는 거죠.”

“알았어요. 가요, 그럼!”

못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은근히 근성 있잖아.

“그런데 갈지 말지는 내가 정합니다.”

“가도 되는지 말씀드리는 걸 여쭤보는 걸 허가받아도 되겠습니까!”

“갑시다.”

우리는 계속 앞으로 이동했다.

신수련의 수난도 계속됐다.

나와 박정하, 이연채는 벌레들에게 위압감을 행사하는 『아라크네 아머』를 착용하고 있다.

지네들은 어지간해서는 우리를 피해갔고, 자연스레 신수련에게 몰렸다.

“우우뷉!”

신수련은 또 방패를 타고 넘어온 지네 다리를 퉤 뱉고 구역질을 했다.

허리를 숙이자, 그 새를 틈타 지네는 그녀의 목 쪽으로 더듬이를 뻗었다.

“……!!!”

신수련의 안색이 새파래져 있는데, 이연채가 활시위를 당기며 외쳤다.

“그대로 멈춰 있어요!”

자기를 노린 게 아니라는 건 알아도, 자기를 향해 화살이 날아온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동료를 무조건적으로 믿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지.

신수련은 뻣뻣이 굳었다.

오히려 그게 도움이 됐다.

이연채의 화살은 똑바로 날아가서 지네의 머리를 꿰뚫었다.

이번에도 진액이 좀 튀긴 했지만.

신수련은 맨손으로 진액을 닦아내며 잠깐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동료들의 뒤에서 마법을 날리던 그녀가, 이번에는 뒤에서 동료가 날린 화살에 도움을 받았으니.

그녀 나름대로도 느끼는 게 있겠지.

그 덕분인지 그 다음부터 신수련은 다소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방패를 내미는 게 아니라, 후려쳐서 지네의 접근을 막았다.

그러면 박정하나 이연채, 이따금은 내가 나서서 지네를 마무리 했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몰아붙이지 않더라도 서로 조금씩 역할을 나누고 협력하는 것으로도 레이드는 원활하게 진행됐다.

동굴 던전을 반쯤 돌았을 때는 신수련도 어색하지 않게 손발을 맞추었다.

이연채가 화살을 쏘지 않아도, 먼저 신수련이 방패로 때려서 거리를 벌리고 내가 머리를 쳐서 기절시키면 박정하가 마지막으로 마무리하는 식으로 전위에서 지네를 끝낼 수 있었다.

신수련은 우리와 합을 맞추고 있었다.

이제 더는 시험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지만, 신수련은 기진맥진해서도 끝까지 자기 발로 서서 방패를 들고 싸웠다.

그렇게 해질 무렵.

우리는 동굴 던전 밖으로 나왔다.

노을이 지는 풍경을 본 신수련은 감회가 깊어보였다.

그녀는 한껏 숨을 들이켜고는, 뒤로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대표님. 지금까지 저 좀 멋대로였죠?”

“그랬죠.”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이제 조금 알겠어요. 혼자서 하는 게 아닌데. 전위가 지켜주고, 동료들이 도와줘서 할 수 있는 거였는데. 전 그걸 모르고 있었나봐요.”

“이제라도 그렇게 알아주신다면, 그걸로 괜찮아요. 수련 씨는 이제 우리 길드 사람이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하 후배님. 연채 후배님도 고마워요. 도와줘서.”

“나는?”

“비비 선배님도요. 아. 웰시도.”

다들 멋쩍게 웃으며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분위기인데.

나는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만 정정하자면, 정하 씨랑 연채 씨가 수련 씨보다 선배인데요.”

“... 네?”

“그렇잖아요. 수련 씨가 입사가 더 늦는데. 수련 씨가 후배지.”

신수련은 억울한 듯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당장 아카데미 졸업 기수만 따져봐도... 그리고 나이도 제가 더 많은데!”

“수련 후배님. 길마가 서열 딱 정리해주셨는데 따르셔야죠.”

이연채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하자, 신수련은 벌린 입을 뻐끔거렸다.

박정하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그러고보니 후배 신고식을 안 했다며 떠들어댔다.

“알알알!”

맞아. 생각해보면 웰시보다도 아래 기수겠구나.

이게 나름의 벌이라면 벌일까.

어떤 동기에서든 같은 길드에서 지내는 동료가 되었다면, 벌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신수련도 이제 우리 길드 사람이니까.

"우리 막내 신고식하러 갑시다! 오늘은 내가 참치회 쏩니다!"

"아니, 제가 왜 막내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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