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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헌터 타이쿤-34화 (34/52)

제 34화

길드 마스터의 평범한 하루

지난달에 나간 임대료랑 급여가 이만큼이고...

반대로 벌어온 파견수당이랑 의뢰수당, 전리품 매각대금이 이만큼...

나는 마우스휠을 내리면서 컴퓨터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세계에 소환됐는데 서무에서 해방되지는 못하는구나.

그래도 결재 받는 입장에서 결재하는 입장이 되기는 했다마는.

“길드 마스터. 이것도 결재 부탁드릴게요.”

송서영이 서류철을 또 한 무더기 가져와서 쏟아냈다.

“이, 이건 또 뭐에요?”

“인형튤립 생육조건에 따른 검토 보고서 간단하게 작성해달라고 하셨잖아요.”

셀파가 화원 안팎에서 기르는 인형튤립들 말이었다.

듣고 보니 그랬었지.

서류 양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프로 사무원 송서영이 정리한 자료는 일목요연해서 한 번 훑기만 해도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역시 화원 안에서 기르는 게 제일 생산성이 높네요. 아, 따로 부탁했던 실험 결과는...”

“여기 뒤 페이지에 있습니다. 저는 이게 될까 싶었는데 의외로 되더라구요.”

“정말 됐어요? 솔직히 저도 될까 싶었는데.”

화원 밖의 화단에서 기른 인형튤립을, 셀파가 노래를 부를 때만 화분 째로 들어서 화원 안으로 들이는 실험이었다.

“여기 보시면 아시겠지만, 화원에서 기른 인형튤립의 생육 속도를 절반 정도 따라잡았어요.”

“그 정도면 엄청 괜찮네요. 그럼 앞으로도 꾸준히 화단에 인형튤립을 재배하는 걸로 합시다.”

화원 안팎에서 동시에 인형튤립을 기르면, 한 달 안에는 화원을 지을 때 들인 코인을 회수할 수 있을 거다.

다만 셀파가 좀 힘들겠네.

막내가 도와주면 괜찮겠지. 어차피 신수련은 길드 아지트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고.

그 외에도 송서영이 가져온 서류에는 호랑 길드와 정보 교환 건, 잡지사 인터뷰 건, 전리품 처분 건도 있었다.

조그마한 길드지만 신경 써야 할 게 뭐가 이리 많은지.

“전리품은 여기저기서 매수 제안이 많이 들어온 모양이네요.”

“네. 특히 호롱불아귀의 촉수는 가격이 꽤 좋아요. 전량 매도할까요?”

“그건 그렇게 해주시고, 코라니의 코뿔과 송곳니는 금철두가 있는 대장장이 길드로 넘겨주세요. 아마 연채 씨 화살촉을 그걸로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좀 사치스러운 화살촉이 되겠지만, 이연채를 챙겨줄 필요도 있다.

신수련이 합류함으로써 원래 애매하던 이연채의 포지션이 더 애매해졌으니까.

암살자가 파티의 공격력을 담당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우리 길드에서는 S급 전사인 장비비가 제일 딜을 잘 뽑아내고, 이번에 C급 마법사 신수련까지 들어왔으니.

F급 암살자인 이연채가 무기력감을 느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써주는 것도 길드 마스터의 의무겠지.

동기 부여와 화합은 때론 성능 상의 효율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

송서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게 처리할게요. 마지막으로, 홍천마산삼은 어떻게 할까요?”

홍천마산삼은 심마니재단의 의뢰를 초과달성해서 얻은 보상이었다.

『홍천마산삼』

「설명 : 삼십 년 기른 천마산삼을 밭째로 구워서 만든 홍천마산삼입니다. 지력과 화력을 빨아들여 효능이 더욱 커졌습니다.」

「효과 :

1. 종합 능력치를 영구적으로 약간 증가합니다.

2. 마력과 지력을 영구적으로 상당히 증가합니다.

3. 지(地), 화(火) 속성의 친화력이 약간 증가합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벌써 여기저기서 팔아달라고 아우성이에요.”

코인 주고도 못 구하는 거라더니, 과연 효과가 좋긴 하다.

이걸 팔면 당장 아지트를 옮길 정도는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능력치를 영구적으로 증가시켜주는 귀한 영약을 딴 사람한테 팔 수는 없지.

이건 무조건 우리 길드원한테 줘야한다.

그럼 누구한테 주지.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역시 장비비였다.

그래. 장비비한테 먹일까?

하지만 선봉장인 비비는 마력과 지력 능력치가 그다지 필요치 않은데. 주요한 효능 중 하나를 낭비하게 되는 건 좀 아깝다.

그럼 마력과 지력이 중요한 신수련에게 먹이면 어떨까?

화(火) 속성 친화력을 높여준다는 측면에서도 화염계열 마법사인 그녀에게 홍천마산삼을 먹이는 건 커다란 이점이 있다.

“전 반대에요.”

송서영은 손날을 교차해서 엑스 자를 그렸다.

“길드 마스터가 용서하고 믿어주시긴 했지만, 아직 신수련 헌터가 그만큼의 신뢰를 되돌려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막말로, 홍천마산삼을 먹고 도망가 버리면 어떡해요?”

“으음... 그럴 수도 있긴 하겠지만...”

“차라리 길드 마스터가 복용하시는 건 어떠세요?”

“제가요?”

송서영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과 지력이라면 지원가인 길드 마스터께도 꼭 필요한 능력치잖아요. 어차피 길드 마스터가 계속 레이드에 참여하실 거라면, 이 기회에 능력치를 올려두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음……. 일단은 생각해볼게요.”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 이건 일단은 보류로.

뻐근한 목을 돌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좀 작지만 따끈따끈할 정도로 열기가 담긴 손.

“비비구나.”

“응! 순찰 다녀왔어!”

장비비는 그대로 내 어깨를 주물주물 주물러주었다.

“서영이가 또 괴롭히고 있었어?”

송서영이 대답 잘하라며 째릿 눈치를 준다.

“괴롭히긴. 서영 씨가 도와줘서 내가 얼마나 편한데.”

“저엉말?”

“정말이지. 서영 씨 없었으면 어떻게 길드를 꾸려나갔을지. 상상만 해도 암담하다.”

장비비는 흐흐 웃으며 내 어깨를 팍팍 때렸다.

“좋아! 앞으로도 둘이 친하게 지내! 그럼 난 이만!”

미니 냉장고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물고 수면실로 타박타박 걸어갔다.

참 좋은 인생이야. 볕 좋을 때 순찰 돌고 돌아와서 낮잠을 때릴 수 있다니.

“낮잠 자는 건 좋은데, 자기 전에 이빨 닦고 자.”

장비비는 못 들은 척 휘파람을 부르면서 도망갔다.

“자일리톨 껌이라도 씹든가!”

답은 돌아오지 않고, 송서영이 대신 대답했다.

“양치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자일리톨 껌을 씹어도 별 효과가 없어요.”

“그래도 안 씹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조금이라도?”

“낫지 않아요.”

“…….”

송서영은 단호하게 말하고는 자기 자리에 갔다가,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서 산더미 같은 서류를 내려놓았다.

“이, 이건 또 뭐에요?”

“차원관리부 동향 보고서 요청 하셨잖아요.”

“... 조금만 쉬었다가 확인할게요.”

“내일부터 다시 소원의 탑 공략 나간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시간이 괜찮으실지...”

나는 화원을 살펴보고 온다며 도망쳤다.

“의남매가 나란히 도망을...”

이라는 말은 무시하기로 했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되는 법이다.

화원은 사무실과는 공기부터 달랐다.

인형튤립들이 뿜어내는 신선한 공기. 싱그러운 흙냄새. 커다란 창 너머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볕.

“좋다…….”

숨을 크게 들이켜고 있는데, 저 쪽에서 화분을 만지작거리던 셀파가 뒤뚱뒤뚱 달려왔다.

“나으리! 어인 일이십니까요?”

“그냥 좀 쉬러 나왔어.”

“그럼 저기 앉아서 쉬시지요.”

분수대 앞에는 흔들의자가 놓여 있었다.

이건 원래 없던 건데. 누가 가져다 놨나?

“제가 갖다 놨어요. 대표님도 편하게 쓰세요.”

구석에 쭈그려서 잡초를 뽑던 신수련이 몸을 일으켰다.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걸 보니, 꽤 열심히 일하고 있던 모양이다.

뭐 이런 일을 시키냐며 성질을 부리고 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동굴 던전에서 역지사지의 경험을 한 번 겪어본 후에는 뭐든 성실하게 임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녀 옆으로 가서 잘 자란 인형튤립을 살펴보다가 슬쩍 물었다.

“참. 내일부터 소원의 탑 공략에 나선다는 얘기는 들었죠?”

"네. 연채... 후... 선, 선배님한테 들었어요."

"괜찮겠어요? 사실 소원의 탑 공략에 나선다는 게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우리 길드와 호랑 길드를 제외하면 현재 소원의 탑 공략에 나선 길드는 전무하다.

소원의 탑은 이전의 헌터계를 호령하던 유수의 헌터들이 줄줄이 실종되거나 봉인된 마경이니, 섣불리 도전하기 어려워하는 것도 당연하다.

당장 헌터 협회장인 남궁무진도 소원의 탑 정복에는 반대하는 입장이고.

그렇지만 신수련은 의외로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이 용서해주고 받아주셨는데 제가 또 뺄 수는 없죠. 그리고... 음, 아니에요."

"왜요? 왠지 그리고 다음의 말이 본심인 거 같은데."

"으흐흐. 그게요. 제가 대표님이랑 같이 소원의 탑 정복에 성공하면 온갖 부와 명예가 따라오지 않겠어요? 그리고 엄마한테도 한 방 먹여줄 수 있을 거고."

그게 본심이었나. 뭔가 탐욕적인 것 같으면서도 소박한 본심이었다.

"어머니한테 한 방 먹일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잘 따라와주시면 부와 명예는 약속해드릴 테니까 걱정 마세요."

"그, 그럼 혹시... 그 부의 일부분을 조금만 가불해주실 수 있을까요? 헤헤..."

"왜요? 숙식은 길드에서 해결해주고, 지금 따로 돈 쓰실 일이 없을 텐데? 잠깐. 저 흔들의자 어떻게 산 거예요?"

"짜잔."

신수련은 번쩍번쩍 빛나는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아니... 사채 써서 신용등급 박살난 사람이 어떻게 신용카드를 만들었어요?"

"대표님 길드 들어갔다고 하니까 만들어주던데요. 헤헤헤."

사람은 바뀐다.

하지만 바로 바뀌지는 않는다.

사람이 바뀌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신수련의 신용카드를 낚아챘다.

그리고 반으로 또각.

"악...! 그거 흔들의자 산다고 딱 한 번 긁은 건데요...!"

"앞으로는 돈 쓸 일 있으면 무조건 나한테 말해요. 내가 보고 판단할 테니까. 그리고 이따가 비비 일어나면 지옥훈련 코스 한 번 더 시켜달라고 하세요."

신수련은 소리 없는 절규를 내질렀다.

곧, 장비비가 낮잠을 다 자고 일어나 신수련을 훈련실에서 굴려댔다.

혼자 열심히 훈련 중이던 이연채는 후배가 훈련에 참가해서 상당히 기뻤는지 자진해서 지옥훈련에 참가했다.

파견 의뢰를 마치고 돌아와서 잠깐 사무실에 들렀던 박정하도 의도치 않게 훈련실로 끌려갔고.

오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갔다.

나는 훈련실에서 길드원들이 열심히 구르는 모습을 구경하며, 소원의 탑 공략 계획을 다시 한 번 검토했다.

저번에 공략한 1층 - 탐식욕의 층은 『호롱불아귀의 미로 지도』로 가뿐히 통과할 수 있겠지.

그 다음 층인 2층 - 탐식욕의 층은 온갖 미식(美食)과 괴식(怪食)의 향연이 난무한다던데.

여기서는 밭요정 셀파의 역할이 중요하게 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예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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