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헌터 타이쿤-37화 (37/52)

제 37화

버려진 묘지 (1)

요리 스킬이 셀파와 내게 부여된 이유는 미식 공헌자로 셀파가, 괴식 공헌자로 내가 선정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셀파가 미식 공헌자로 선정된 거야 그렇다 쳐도 왜 내가 괴식 공헌자가 된 거지.

난 괴식팀을 거들기만 했는데. 지휘했다고 그런 걸까.

어쨌건 생각지도 못하게 범용 유틸 스킬을 하나 얻었으니 기분은 좋다.

요리는 추후 스킬 트리를 어떻게 올리느냐에 따라서 아군을 강화시킬 수도 있고, 적군을 약화시킬 수도 있단 말이지.

이건 길드 아지트로 돌아가서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나는 이만 보상을 갈무리하고 이 층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거인 주방장의 부엌은 워낙 넓어서 터벅터벅 걸어서 반대편 문으로 나가는 데에만도 시간이 꽤 걸렸다.

- 삐그덕

문 저 너머의 공간은 이 곳, 거인 주방장의 부엌과는 모든 게 크기가 다른 데도 이어져 있어서 원근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곳으로 줄줄이 빠져나와 복도와 계단, 그리고 다시 문.

1층과 2층은 탐식욕의 층이었다면 3, 4층은 수면욕의 층이다.

여기서부터는 새로운 욕망을 시험 받는다는 건데.

나는 길드원들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아직! 거뜬합니다!”

“저도 괜찮을 거 같아요.”

다행히 다들 활력은 충분한 듯해서, 3층까지는 정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위험하면 곧바로 퇴각하기로 하고.

【소원의 탑 - 욕망의 층(3층) 버려진 묘지 진입】

[설명 : 한 때는 명예로웠으나 지금은 모두에게 버려진 묘지입니다. 이 곳에서 배회하는 망령들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산 자의 육신을 뺏으려 들 것이니, 절대로 잠에 들지 마시길.]

그 곳은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광활한 공간이었다.

황량한 고원 곳곳에 비석이 널려 있었다.

한 때 봉분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되는 곳은 평탄해져서 흙바닥과 구분하기 힘들었다.

갈라지거나 부서진 비석만이 간신히 여기에 묘지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이렇듯 버려진 것을 슬퍼하는 걸까.

바람이 불면 저 멀리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 때마다 닭살이 절로 돋았다.

“어쩐지 기분 나빠...”

“저도 빨리 나가고 싶어요.”

이연채와 신수련은 어깨를 두 손으로 감싸 가리면서 소름 끼친다는 표정을 지었다.

“빠르게 달려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반면 박정하는 기운차게 외쳤다.

장비비와 셀파, 웰시도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다.

아무래도 체력이나 정신력 수치에 따라서 불쾌감을 느끼는 정도가 다른 것 같다.

“일단은 갈 수 있는 데까지는 가 봅시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비석에 하나씩 표시를 해두면서 진로를 잡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바람이 불 때마다 희끗희끗한 것이 시야 끄트머리에서 보였다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흐릿한 연기 같은 게 구불구불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상당히 징그러워 보였다.

“망령들입니다요.”

셀파가 덜덜 떨면서 속삭였다.

요정과 귀신은 사이가 좋지는 않다지.

하지만 우리에게는 요정뿐만 아니라 유령견도 하나 있었다.

“알알!”

웰시가 세차게 짖어서 망령들을 쫓아냈다.

망령들은 가까이 다가오려다가도 개 짖는 소리를 듣고는 슥 물러나곤 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우리를 따라왔다.

웰시가 달려가서 쫓아내도, 그 때만 슬쩍 물러날 뿐이고 잠깐 돌아보지 않는 사이에 바짝 다가섰다.

망령들이 흐느끼는 소리가 커짐에 따라 우리들의 말수는 점점 적어졌다.

가끔은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발이 걸려 넘어지거나 괜히 몸 한 쪽이 결리기도 했다.

“춥고, 배고프고, 졸려.”

우리들 중에서 제일 강건한 장비비가 그런 말을 할 정도였으니.

다른 길드원들은 이미 반쯤 녹초가 되어서 발을 질질 끌고 있었다.

더 이상 가는 건 무리겠다.

이만하면 대충 3층이 어떤지는 확인했으니, 더 욕심 부리지 않고 이쯤에서 돌아가기로 했다. 안전하게 귀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오늘은 이만 돌아가죠.”

그 말에 다들 반색했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도 편하지는 않았다.

어느새 우리 무리 끝에 달라붙은 망령들은 수십을 헤아릴 정도가 되었다.

그들은 흐느끼는 소리를 내며 팔을 흐느적거렸다.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는 않아도 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괴로웠다.

게다가 망령들이 달라붙은 탓인지는 몰라도 이상하게 피곤하고 졸리기도 했다.

“... 핫.”

"응냣..."

길드원들은 걷다가도 꾸벅꾸벅 졸기가 예사였다.

“여기서 잠들면 위험해요. 망령들이 육신을 빼앗을 수도 있다니까, 잠들 것 같으면 서로 깨워주기로 합시다.”

우리는 둘씩 짝지어서 서로가 졸 때마다 흔들어서 깨워주었다.

하지만 이연채는 유독 몇 번을 흔들어도 졸음기를 이기질 못했다.

- 털썩

결국 이연채가 졸다가 엎어졌다.

뒤에서 그녀를 밀어주던 장비비가 급히 그녀의 몸을 뒤집어서 볼을 꼬집어 주었다.

“일어나! 여기서 자면 안 돼!”

“저 너무 졸려...”

“아르를! 알! 알!”

웰시가 알알 짖어대며 혀로 핥아주는 시늉을 하자 이연채는 애써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그렇지만 그녀는 몇 번 눈을 끔뻑이다가 끝내 깊은 잠에 빠졌다.

소리를 지르고 때려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웰시야. 망령들이 연채 씨 몸에 못 들어가게 잘 지켜줘. 그리고 비비야.”

“응. 형님.”

장비비는 무리 끝으로 돌아가서 숨을 크게 들이켜고는, 망령들을 향해 우렁차게 외쳤다.

“꺼- 져라!”

《사자후 Lv.8》

〈주변의 적들을 겁에 질리게 한다.〉

쟁쟁 울리는 고함이 망령들을 후려쳤다.

망령들은 새된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흩어졌다.

이걸로 일단은 한숨 돌릴 수 있겠다.

“수고했어.”

“그치만 망령들은 곧 다시 돌아올 거야.”

“그 전에 얼른 움직여야지.”

이연채는 일단 내가 업기로 했다.

무슨 일이 터지면 박정하나 장비비는 바로 대처에 나서야 하니까, 아무래도 손이 비는 내가 업는 게 낫겠지.

예비군 훈련 때 배운 구급법을 이렇게 써먹을 줄이야.

“끙차.”

나는 이연채를 어깨에 짊어지고 일어섰다.

그녀의 무기는 짐꾼 셀파가 배낭에 넣어서 옮기기로 했다.

우리는 묵묵히 비석 사이를 걸었다.

하지만 들어온 문까지의 거리는 이상하게 걸어도 걸어도 좁혀지질 않았다.

마치 거대한 컨베이어벨트 위를 걷는 것 같다.

그렇게 지루한 풍경 속을 걷고 있자니, 나도 피곤해서 버티기 힘들 지경이었다.

잠을 이기기가 어렵다.

아니, 사실은 한참 전부터 편하게 곯아떨어지고 싶었다.

입술을 깨물어 정신을 차리려고 했지만 턱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득하게 깊은 구렁텅이로 편하게 떨어지는 기분.

웰시가 시끄럽게 짖어대는 소리도 아련히 멀게만 느껴졌다.

길드원들이 내 주위로 몰려드는 게 보였다.

이대로 자면 안 되는데.

길드 마스터로서 길드원들을 안전하게 귀환시켜야 하는데...

눈을 마지막으로 감기 전, 나는 간신히 스킬을 발동시킬 수 있었다.

《망라(網羅) Lv.1》

〈근처에 있는 부하들과 연결하여 소통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꿈속에 빠져들었다.

***

자각몽이었다.

어릴 적의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모네 집에 얹혀살았다.

이모와 이모부, 사촌동생들은 그럭저럭 내게 잘 대해주었지만, 그래도 남의 가족이 나의 가족과 같을 수는 없었다.

은근한 소외감 때문인지 나는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어 했다.

용돈을 모아서 햄스터를 한 마리 샀던가.

하지만 돈이 모자라서 우리까지 사지는 못했다.

박스를 오려서 햄스터 집을 만들어주기는 했는데... 햄스터는 이틀 만에 내 눈 앞에서 박스 집을 찢고 도망쳐버렸다.

마침 열린 창문을 넘어 도망치는 햄스터의 뒷모습이 보인다.

어릴 적의 나는 얼른 햄스터를 쫓아가지만, 결국 찾아오지는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친구의 생일날.

초대 받은 친구의 집은 이모네 집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고 깨끗한 집이었다.

친구는 햄스터를 한 마리 길렀는데, 널찍한 우리 안에는 쳇바퀴와 장난감은 물론이고 나무 은신처와 모래밭까지 꾸며져 있었다.

그 때 어렴풋하게 느꼈다.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서는 이미 무언가를 가진 자여야 한다는 걸.

나는 도망친 햄스터에게 오히려 미안함을 느꼈다.

더 풍족한 친구네 집에서 길러졌다면 도망칠 필요 없이 아늑하게 지낼 수 있었을 텐데 하고.

그 후로는 내 것을 가지고 싶다는 욕심을 게임을 통해 풀었지.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타이쿤 게임, 그리고 【헌터헌터 타이쿤】.

어릴 적의 내가 터덜터덜 걸어서 이모네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쓸쓸한 모습과는 반대로 시끄러운 도시의 소리가 들린다.

우울 속으로 가라앉으라고.

자신의 애처로움을 소금처럼 핥으라고.

그러라고 이런 꿈을 보여주는 걸까.

내가 가만히 웃자, 반대로 어릴 적의 나는 귀신 같이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망령은 어린 내 모습을 훔쳐서 내게로 달려들었다.

- 내놔! 그 몸, 내놔!

나는 스태프를 휘둘렀다.

안개를 스치는 느낌이 났을 뿐이지만, 망령은 분한지 으르렁거렸다.

내가 스스로 몸을 바치지 않는 이상 망령도 내 몸을 뺏어갈 수는 없으니까.

멀리서 웰시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전부터 들려오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들으려고 하지 않아서 듣지 못했던 거지.

귀 기울여 들으니 웰시가 짖어대는 소리는 점차 더 명확해진다.

내 길드, 나와 함께 해주는 길드원들.

이 곳까지 그들이 함께 해주었다는 걸 내가 잊을 리 없으니, 망령이 끼어들 빈틈은 없다.

- 키이익!

망령은 제 꾀가 통하지 않자 분통을 터뜨리고는 멀리 사라져버렸다.

어릴 적의 내 모습은 연기와 같이 사라져버렸다.

아쉬움은 없다. 그 시절에 대한 약간의 그리움과 감상이 앙금처럼 조금 남았을 뿐.

이제는 손끝을 살짝만 움직이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나는 바로 일어나지는 않기로 했다.

한쪽 시야에 악몽을 꾸는 이연채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으니까.

《망라(網羅) Lv.1》

〈근처에 있는 부하들과 연결하여 소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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