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헌터 타이쿤-39화 (39/52)

제 39화

영광의 대분묘 (1)

정신을 차려보니 나와 이연채는 널찍한 복도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소원의 탑 - 욕망의 층(4층) 영광의 대분묘 진입】

[설명 : 영광스러운 명가(名家)의 고인들을 모신 곳입니다. 묘지기와 토용은 주인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들을 가만두지 않을 테니, 순장 당하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정숙해야 할 것입니다.]

영광의 대분묘는 버려진 묘지와는 딴판이었다.

그건 무덤이라기보다도 지하에 펼쳐진 대저택 같았다.

넓은 복도는 먼지 하나 없이 청결하게 유지되어 있고, 벽면에는 근엄한 얼굴을 한 남녀의 초상화가 줄줄이 걸려 있었다.

“뭐, 뭐야? 4층으로 바로 와버린 거예요?”

이연채가 당황해서 물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요.”

3층에서 밑으로 쑥 빠졌는데 4층으로 와버린 이유는 모르겠지만.

“돌아가려면...”

“우리가 빠진 구멍이 없는 걸 보니까 바로 돌아가는 건 힘들지도 모르겠어요. 연채 씨랑 나 말고 다른 길드원들이 어디 갔는지도 의문이고.”

“어? 그러게요? 다들 어디 간 거지?”

이연채는 그제야 다른 길드원들이 없다는 걸 눈치 챈 거 같다.

그래도 악몽에 빠지기 전보다는 오히려 기운 넘쳐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일단은 주변을 좀 살펴보는 게 어떨까요?”

“네. 길마!”

“그럼 가능한 조용히 탐색하도록 합시다.”

우리는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도중에 비싸 보이는 조각상이나 동물 박제가 걸려 있긴 했지만, 너무 뻔한 함정이라 손대지는 않았다.

“앗.”

“왜요?”

“저기서 뭐가 움직였어요.”

이연채는 복도가 굽어지는 쪽을 가리켰다.

실눈을 뜨고 노려보니, 정말로 무언가가 슥슥 움직이고 있었다.

이연채와 나만 남겨진 상황에서 적과 싸워야 한다면 굉장히 어려워질 텐데.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내가 떨면 이연채도 두려워할 테니까.

이연채도 나와 똑같이 생각했는지 담담하게 활을 쥐었다.

“길마... 어떻게 할까요?”

“일단은 자극하지 말고 천천히 뒤로 물러납시다.”

하지만 희끗한 물체는 우리를 확실히 포착한 건지 복도 저 끝에서부터 확실히 거리를 좁혀왔다.

“한 발 먼저 쏠까요?”

“그래... 아니, 잠깐만요!”

이연채는 화살을 쏘려다가 멈칫했다.

희끗한 물체는 거리를 좁혀 오며 점차 선명해졌다.

“요 녀석!”

“알!”

내 품으로 폴짝 달려든 건 웰시였다.

나와 이연채는 거의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요 녀석. 놀라게 하고 말이야.”

“알! 알!”

“알았어. 나도 반가워. 그치만 조용히 하자. 여기 어딘가에 묘지기가 돌아다닌다고 하니까.”

웰시는 작게 짖고는 혀를 빼물고 헥헥거렸다.

이연채는 살짝 무릎을 굽히고 웰시를 귀여워해주었다.

셋이 되니까 좀 낫구나.

게다가 웰시가 있으면 갑자기 기습당할 염려는 없으니까.

웰시는 복도 앞뒤를 왔다갔다하면서 정탐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이연채도 예리한 눈으로 사방을 훑다가 웰시가 놓친 것을 발견해냈다.

“아, 길마. 저기 방이 있는데요.”

조각상 옆으로 방문이 살짝 가려져 있었다.

복도 저편에서부터는 마찬가지로 조각상과 방문이 교차하여 이어져 있었다.

이건 함정인가, 타개책인가.

“웰시?”

“알!”

문 안으로 머리를 들이민 웰시는 괜찮다며 작게 짖었다.

안에 뭐가 있는지도 좀 알려주면 좋겠는데, 웰시에게 그런 것까지 바라는 건 너무 욕심 부리는 거겠지.

나는 문고리를 돌려보았다.

- 철컥

문은 잠겨 있었다.

뒤로 물러나서 스태프를 치켜들었다가, 단번에 내리쳤다.

- 깡!

문고리가 박살남과 동시에 문이 저절로 열렸다.

방 안 쪽은 어두웠다.

하지만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복도의 불빛이 방 안으로 스며들자, 이연채는 기겁하며 활을 겨누었다.

“깜짝이야. 뭐, 뭐에요. 저거?”

“흙으로 만든... 인형?”

토용(土俑).

진시황의 병마용으로 유명한 사람 모양의 흙인형들이 방 안에 가득 차 있었다.

- 드르륵.

“저거 움직이는데요?”

“도망칩시다!”

“알!”

우리는 바로 방문을 닫고 달렸다.

하지만 토용들은 우리를 놓칠세라 문을 열고 복도까지 따라 나왔다.

나는 죽어라 달리면서 웰시를 흘겨보았다.

“요 녀석! 괜찮다면서!”

“알알알!”

“괜찮은 줄 알았다고? 아이고, 나참.”

움직이기 전까지는 그냥 흙인형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 쿵! 쿵! 쿵!

복도 곳곳의 방문에서 두들기는 소리가 울렸다.

저 방마다 토용들이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 쾅!

어딘가에서는 기어코 문을 열고 나왔는지 우리를 쫓는 토용들의 수가 점점 더 많아졌다.

“이익!”

이연채는 달리면서도 틈틈이 몸을 돌려 화살을 쏘았다.

화살이 머리에 꽂힌 토용은 도자기처럼 파삭 깨지면서 흙먼지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우리를 추격하는 토용은 이연채의 활통에 든 화살보다 훨씬 많았다.

“계속 달려요!”

“앗! 길마! 저 앞에요!”

복도 저 너머에 이끼로 뒤덮인 판초를 쓴 묘지기가 서 있었다.

그 손에 들린 것은 날카로운 낫. 한 눈에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무기였다.

나나 이연채가 감히 맞서기 힘든 상대임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다시 뒤돌아 도망치자니, 그쪽에서는 토용들이 끈질기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 어떡하죠?”

“스쳐 지나갑시다!”

“그게 될까요?”

“되게 해야죠!”

묘지기는 낫을 치켜든 채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우리도 속도를 높여서 묘지기를 향해 달려갔다.

“연채 씨!”

“에이얏!”

이연채는 한 번에 화살 세 발을 연달아 쏘았다.

- 캉! 캉!

묘지기는 낫을 휘둘러 화살 두 발을 연이어 쳐냈다.

마지막으로 날아간 화살도 묘지기가 낫으로 튕겨내려는 순간.

나는 스태프를 내뻗으며 외쳤다.

“영광을 위하여!”

《독려 Lv.2》

〈주변 동료들의 공격력과 공격속도를 증대시킨다.〉

화살은 번쩍이며 순식간에 속도를 높여 나갔다.

묘지기가 휘두른 낫은 화살이 가른 궤적만 허무하게 베었다.

《치명타 Lv.2》

〈일반 공격보다 강한 치명타로 적을 공격한다.〉

- 팟!

화살은 묘지기의 어깨에 강하게 박혀 들어갔다.

그 바람에 판초가 펄럭였는데, 천 밑으로 드러난 것은 앙상한 뼈였다.

“뼈...?”

“지금 그런데 신경 쓸 시간 없어요! 달려요!”

나는 이연채의 손목을 잡고 달렸다.

묘지기가 뒤늦게 낫을 휘두르려 했지만, 웰시가 붕 뛰어올라 묘지기의 눈을 가렸다.

미봉책이었지만 한 순간의 시간을 벌어주기엔 충분했다.

우리는 묘지기의 옆을 달려 지나갔다.

- 부웅

낫질이 아슬아슬하게 등허리를 스쳐간 기분이 들었다.

심장이 콩알만하게 쪼그라드는 줄 알았다.

“길마! 더 빨리요!”

이연채가 내 손을 풀고 반대로 내 손목을 잡아서 훅훅 달려 나갔다.

맞다. 그녀가 나보다 체력이나 민첩성은 한참 낫지.

"으가가각!"

나는 반쯤 이연채에게 끌려서 달렸다.

- 타다다닥!

묘지기는 곧 우리를 쫓아왔다.

그 뒤에 토용들이 수백 개나 추격에 가담했다.

이대로 계속 쫓길 수는 없다.

묘지기라면 몰라도 흙인형인 토용은 지치지 않을 테니, 쫓기며 달리다가는 우리가 먼저 지쳐서 파국을 맞이할 뿐이다.

“어디로든 숨어야 해요!”

“길마! 그럼 저기 방이요!”

“어디... 아! 여기!”

나는 반사적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문은 열려 있었다.

순간 어떻게 할지 고민했지만, 어차피 길게 고민할 시간은 없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이연채와 웰시를 들이고 바로 문을 닫아 잠갔다.

“흐억... 헉... 헉...”

숨을 고르고 문에 몸을 기댔다.

하지만 웬일인지, 묘지기와 토용들은 문을 두들기지 않고 그대로 복도를 지나갔다.

이대로 추격을 떨쳐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 문고리를 잡고 있는데, 이연채가 내 어깨를 두들겼다.

“저... 길마. 방 안 좀 봐보세요.”

“네? 왜요? 토용이라도 있어요?”

“그게 아니라...”

나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방 안을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길드원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지금 우리 길드의 길드원들에 더해, 유서준zl존 길드의 길드원들까지도.

***

방 안은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파티홀이었다.

아무리 정신이 없었다고 해도 어떻게 이런 별세계가 펼쳐져 있는 걸 몰라봤나 싶었다.

어안이 벙벙해서 주위를 살피고 있는데,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다가왔다.

“대표님~ 이제 오셨어요?”

“수련 씨...?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이긴요? 길드 빌딩을 되찾은 기념으로 파티하고 있는 거잖아요?”

길드 빌딩이라니.

그러고 보니 파티홀 곳곳에 힘내 너구리가 뽈뽈거리면서 다니는 게 눈에 띄었다.

신수련은 마침 지나가던 웨이터를 불러 샴페인 잔을 받아서 내게 주었다.

“사실 정말로 소원의 탑을 정복할 줄은 몰랐는데. 이런 날이 오긴 오네요. 대표님께는 개인적으로도 정말 감사해요. 엄마한테도 결국 한 방 시원하게 먹여줬고. 으히히.”

“아... 네에...”

“피곤하신가 봐요. 하긴. 나야 한 번 인사하는 거지만 대표님은 999번째 인사하는 거겠다. 그럼 전 저 쪽 가서 놀 테니까 대표님은 편하게 쉬세요. 참. 오늘 옷 멋있으세요.”

나는 고개를 숙여 내 옷을 살펴보았다.

복장은 내가 입고 있던 망토와 모험정장이 아니라, 턱시도로 바뀌어 있었다.

혹시나 해서 고개를 돌려보니 이연채도 파티에나 어울릴법한 드레스 차림이었다.

“길마. 이거...”

“꿈인 거네요.”

그것도 이연채와 내가 꾸었던 것처럼 악몽이 아니라, 깨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달콤한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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