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화
영광의 대분묘 (3)
관에서 몸을 일으키고 보니, 주변의 풍경은 지하의 저택이 아니라 황량한 고원이었다.
나는 얼떨떨한 머리를 흔들고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버려진 묘지를 방황하다가 웰시가 관을 발견한 것까지는 현실이었고, 영광의 대분묘로 추락한 것에서부터는 꿈이었던 거겠지.
“그럼 영광의 대분묘는 어디 있는 걸까요?”
“꿈은 현실의 반영이라고 하니까, 아마 꿈에서 겪었던 것과 비슷할 거예요.”
꿈에서는 이 관에서 곧장 영광의 대분묘로 추락했다.
그러니 이 관이 영광의 대분묘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비비야. 정하 씨. 이 관 좀 들어봅시다.”
“알았어!”
“셋에 들어 올리겠습니다!”
“하나... 셋!”
끙차. 기합 한 번에 관이 끌어올려졌다.
“입구다!”
예상대로, 관 아래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 크기의 구멍인데, 사다리가 걸쳐져서 위아래로 오갈 수 있는 구조였다.
“웰시. 아래 좀 살펴줄래?”
“알!”
웰시는 저 밑으로 훌쩍 뛰어내리곤 알차게 짖었다.
“알! 알!”
“괜찮다고? 이번에는 토용 같은 것도 없는 거 확실해?”
“알알알알!”
“알았어. 믿어, 믿을게. 성질은.”
조명 스태프를 가진 내가 먼저 내려갔고, 그 다음은 장비비였다.
나머지 길드원들도 차례대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소원의 탑 - 욕망의 층(4층) 영광의 대분묘 진입】
[설명 : 영광스러운 명가(名家)의 고인들을 모신 곳입니다. 묘지기와 토용은 주인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들을 가만두지 않을 테니, 순장 당하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정숙해야 할 것입니다.]
사다리 밑의 공간은 꿈속에서 본 영광의 대분묘와 똑같았다.
넓은 복도와 초상화, 조각상, 동물 박제, 그리고 저 멀리 줄줄이 늘어선 방문.
방문 너머에는 토용들이 가득 차 있고, 복도 어딘가에는 뼈만 남은 묘지기가 판초우의를 입은 채 낫을 들고 서성이겠지.
대분묘의 주인, 명가의 고인들이라는 작자들은 더 안 쪽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게 틀림없다.
그리고 이 층의 공략점도 거기 있을 터.
“조용하고 신속하게 갑시다.”
괜히 토용이나 묘지기와 싸울 필요는 없으니까.
우리는 살금살금 발끝을 세워 복도를 걸어 나갔다.
말 한 마디 없이 정숙을 유지한 덕분인지, 토용이나 묘지기와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한참 복도를 따라 이리저리 걷다가 도착한 곳은 막다른 길이었다.
복도가 끝난 곳에는 마법사 동상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뭐지? 이 길이 아닌가?”
“갈림길 같은 건 없었는데.”
“방 쪽으로 다른 길이 연결되어 있는 건지도 몰라요.”
다들 한 마디씩 하는데, 가만히 있던 셀파가 무언가 떠올렸다는 듯 손뼉을 쳤다.
“그렇지. 나으리. 저 동상을 옮기면 됩니다요.”
셀파의 말에 우리는 우르르 몰려가서 동상을 옮겼다.
옆으로 동상을 들어다가 놓았을 때였다.
마법사 동상 밑의 벽돌이 소리를 내며 그 옆의 벽돌과 자리를 바꾸었다.
그리고 그 벽돌은 그 옆의 벽돌과 함께 움직이더니, 같은 방식으로 근처의 벽돌의 위치를 바꾸어놓기 시작했다.
- 덜컹.
- 쿠르릉.... 쿵.
- 찰칵. 척.
육중한 태엽 돌리는 소리가 울렸다.
벽돌은 한참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아예 벽 전체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이중 벽이었다.
위장 벽 뒤에 나타난 건 빨간 색으로 칠한 방문이었다.
"웰시?"
"알!"
"괜찮다 이거지. 그럼..."
- 삐걱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 안은 천장이 반구 형태로 지어진 공간이었다.
웅장하고 위엄 넘치는 광경에 자연스레 로마의 판테온을 떠올리게 된다.
천장에는 화려한 벽화가 그려져 있고, 둥근 벽면을 따라서는 열두 개의 석관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었다.
석관은 단단히 잠겨 있었는데, 그 안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는 자들이 명가의 고인이자 대분묘의 주인이라는 점은 굳이 맞춰보지 않아도 명백했다.
나는 석관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석관에 새겨진 명패에는 각기 안치한 고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피블 위셔, 일라임 위셔, 초즌 위셔, 마라라 위셔…….
“위셔 가문의 사람들인가 봐요.”
이연채가 속삭였다.
“아는 이름이에요?”
“아뇨. 헤헤.”
나도 처음 들어보는 가문명이다.
혹시 【헌터헌터 타이쿤】 세계관에서 유명한 마법 명가인가 해서 신수련에게 물어봤지만, 신수련도 처음 들어봤다는 반응이었다.
“형님!”
“나으리~”
장비비와 셀파가 저 쪽의 석관 앞에서 나를 불렀다.
일단 의문은 접어두고 그 쪽으로 향하기로 했다. 이 방이 원체 넓어서 여기서 저기까지 가는 데에도 꽤 걸어야 했다.
“왜 그래?”
“이거였던 거 같아.”
“이름이 어쩐지 본 기억이 있습니다요.”
장비비와 셀파는 석관의 명패를 가리켰다.
시지프 위셔.
그는 우리가 들어온 문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바로 보이는 석관의 주인이었다.
문 쪽에서 가장 멀다는 점에서는 상석을 차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명패 밑에는 망치와 정으로 새긴 글귀가 있다.
[나는 이제 깨지 않는 꿈을 꾸러 간다.]
이게 유언이라면 시지프 위셔는 꽤 유쾌한 작자임이 틀림없다.
나는 무심코 음각된 글귀를 어루만져 보았다.
- 철컥
“어...?”
단단히 닫혀 있던 석관이 저절로 열리기 시작했다.
멀찍이서 다른 석관을 열려고 낑낑거리던 길드원들이 허겁지겁 이쪽으로 달려와 물었다.
“길마! 어떻게 하신 거예요?”
“저는! 방패로! 후려쳐도! 안 열리던데 말입니다!”
“피킹 스킬이라도 있으신 거예요?”
나는 얼떨떨해서 고개를 저었다.
그냥 손을 댄 것뿐인데.
관 뚜껑은 천천히 움직이다가 도중에 쾅하고 순식간에 열렸다.
그 바람에 석관은 안에 든 것을 사방으로 내뿜었다.
“윽... 먼지.”
장비비는 급히 소매로 코를 가렸다.
뿌연 먼지가 모락모락 일어났다.
- 훅, 훅훅
나는 망토 자락을 펄럭여서 먼지를 반대편으로 밀어냈다.
“오! 형님, 그거 멋있다! 연습한 거야?”
“안 했거든. 내가 애니?”
사실은 했다.
어쨌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나는 먼지를 걷어낸 후에 석관 안을 살펴보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관 안에 든 것은 한참 전에 다 썩어서 뼈만 남은 해골이었다.
하지만 시지프 위셔의 해골은 뼈마디마디마다 가지런히 연결되어서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었다.
어쩐지 스켈레톤 병사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 딱!
“아아악!”
해골이 갑자기 앞니를 부딪치자, 신수련은 비명을 지르며 이연채 뒤에 숨었다.
장비비와 박정하는 자연스레 앞으로 나오며 후위들을 지키고 섰다.
- 딱!
시지프 위셔의 해골은 한 번 더 앞니를 부딪치고는,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목뼈를 돌렸다.
그건 마치 우리를 둘러보는듯한 움직임이었다.
그것은 길드원들을 하나하나 주시하다가, 웰시를 한참 바라보았다.
“알!”
웰시가 성내듯 짖자, 시지프 위셔의 해골은 마지막으로 내게 텅 빈 눈구멍을 향하고 말을 걸었다.
“세 가지 꿈을 이겨낸 자여. 어찌하여 나를 깨웠는가?”
“세 가지 꿈...?”
대분묘의 시련은 꾸기 싫은 악몽과 꾸고 싶은 행복한 꿈, 두 가지라고 생각했는데.
아. 망라 스킬을 통해 이연채의 꿈에 관여한 것을 따로 셈한다면 세 가지가 맞다.
"형님! 선공할까?"
"아니. 잠깐만."
장비비와 셀파가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면 이전 공략에서는 이 해골이 영면에서 깨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세 가지 꿈을 이겨냈기에 시지프 위셔의 해골이 깨어났다는 거고... 달리 말하자면 히든 루트라는 건데.
게이머에게 있어 히든 루트는 곧 보상이란 말이지.
시지프 위셔의 해골이 이렇게 순순히 대화에 응하는 걸 보니 이건 적당한 보상을 요구해도 괜찮은 분위기 같고.
나는 저절로 올라가려는 입 꼬리를 애써 잡아 끌고 말했다.
“영광의 대분묘에서 설계한 시련을 뛰어넘었으니, 마땅한 보상을 원합니다.”
“이곳을 경배한 보상은 토용에게서 얻으면 될 것이고, 정복한 보상은 묘지기를 통해 얻으면 될 것이다. 어찌하여 깨지 않는 잠에 든 나를 깨웠는가? 그를 묻노라.”
“세 가지 꿈을 이겨냈으니 그에 대한 보상 또한 필요합니다.”
“음... 시련에는 보상이 따라야지. 그대는 세 가지 꿈을 이겨냈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기는 하다.”
- 딱!
해골은 앞니를 부딪치고 말을 이었다.
“허나 이것이 네 번째 꿈이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 있지?”
“이것도 꿈이라는 말입니까?”
“글쎄. 깨기 전까지는 알 수 없지. 그렇지만 이것이 네 번째 꿈이라면 시련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니, 보상은 이 시련이 끝난 후에 정산을 해주어야 할 터.”
- 딱!
해골은 음산하게 웃고 두 손을 위로 올렸다.
“이에 네 번째 시련을 내린다!”
- 쾅
우리가 들어온 문 쪽에서 강하게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신수련은 어깨를 움찔하고 떨었다.
“무슨...?”
"이런, 비비야!"
장비비는 곧장 장팔사모를 휘둘러 시지프 위셔의 해골을 내리쳤다.
하지만 그가 석관을 닫고 숨어드는 것이 더 빨랐다.
- 까앙!
석관은 장팔사모의 창날을 견뎌냈다.
이게 횃불아귀의 피질만큼만 단단해도 뚫는 데는 한참 시간이 걸릴 거다.
- 쾅!
다시 한 번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불길하게 경첩이 휘는 소리도 들렸다.
“다들 전투 준비! 전위, 문 앞으로!”
길드원들은 후다닥 진열을 갖추었다.
그 사이 문 두들기는 소리는 점차 급박해졌다.
- 쾅!
- 쾅!
- 쾅!
빨간 문은 세차게 흔들리다가 결국 박살나고 말았다.
밖에서 문을 두들기던 토용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시커먼 흙색의 토용들은 창칼을 들고 노도처럼 밀려들었다.
시지프 위셔의 해골은 석관 속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죽을 때까지 싸워라! 싸우다가 죽는다면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증명이 되겠지!”
고약한 해골 바가지.
두고 보자.
나는 입술을 씹으면서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영광을 위하여!"
우리는 전투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