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화
강남 지하 던전 (2)
나는 우선 김서운을 구멍 위로 올려 보내고 이 아래로 장비비를 불렀다.
무른 재질의 바위를 장팔사모 창날로 몇 번 슥슥 파니 복숭아 씨앗 같은 광물은 금방 튀어나왔다.
“혀, 형님...! 이거...!”
장비비는 그것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볼때기를 푸들푸들 떨었다.
홍천마산삼을 봤을 때도 시큰둥하던 애가.
“형님! 던전 코어잖아! 던전 코어라구!”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만 던전 코어는 아니야.”
던전 코어는 이것보다 열 배에서 스무 배 정도는 더 크다.
이게 복숭아 씨앗 정도 크기라면, 던전 코어는 가을 배 정도로는 크다.
설정집에서도 던전 코어를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한 손으로 쥐기 힘들 정도라는 설명이 있었으니 이건 확실하다.
하지만 장비비는 납득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던전 코어인데 그냥 작은 거 아니야?”
“여기 지하 던전이 이렇게 넓은데 던전 코어만 작다는 것도 이상하잖아.”
“응... 그건 그러네.”
장비비는 아쉬운 눈치였다.
그도 그럴게, 던전 코어는 【헌터헌터 타이쿤】에서 얻을 수 있는 영약 중에서도 최고니까.
A 등급 이하의 헌터라면 등급을 한 단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효능을 가지고 있었지.
이 던전 코어란 건 던전을 탐사하다보면 아주 낮은 확률로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던전 코어를 헌터에게 흡수시키면 그 던전 코어가 있던 던전은 무너져서, 사라진다.
그러니 던전을 꾸준히 레이드해서 얻는 이익과 던전 코어로 한 번에 헌터를 성장시키는 이익을 잘 비교해서 결정해야 한다.
던전 코어를 그대로 묻어둘 것인지, 아니면 사용하여 흡수시킬 것인지.
이게 던전 코어가 아니라면 딱히 의미 없는 고민이지만.
“그럼 뭔데, 이거?”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대장장이 길드에 가서 금철두 씨한테 감정을 맡겨야 할 것 같아.”
나와 장비비는 일단 그걸 들고 구멍 위로 올라갔다.
타카라 교수는 한참 김서운에게 치료 스킬을 불어넣고 있던 참이었다.
“그 생도는 괜찮습니까?”
“아, 예. 길드 마스터님. 다행히 경상으로 끝날 것 같습니다. 이만하면 푹 자고 일어나면 다 나을 겁니다. 그런데 그건, 혹시 던전 노드가 아닙니까?”
“던전 노드요?”
나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다른 이들의 표정도 비슷한 걸로 봐서는 다들 잘 모르는 것 같다.
“길드 마스터께서 알고 가져오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닙니까?”
“우연히 캐서 가져온 건데... 혹시 교수님께서는 이게 뭔지 아시나요? 방금 던전 노드라고 하셨는데.”
타카라 교수는 설명하길 좋아하는 교수답게 곧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최근에 발견된 물질입니다.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개념들을 좀 설명해야 하는데, 허허... 던전은 생물이라는 말은 들어보셨지요?”
“네. 들어본 것도 같네요.”
나는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타카라 교수는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던전의 몬스터가 리젠 되는 것은 흔히 세포 분열로 비유되곤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던전이 하나의 큰 생물이라면, 던전 코어는 던전 곳곳에 마기를 돌리는 심장인 셈이지요.”
이연채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이 정도는 아카데미에서도 가르치는 내용인 것 같다.
타카라 교수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던전은 대다수의 생명체에 비하면 지나치게 큽니다. 그래서 던전 코어라는 하나의 심장만으로는 아무래도 과부화가 걸릴 테니, 무언가 보조하는 수단이 있지 않겠냐는 가설이 늘 있어왔습니다만, 최근 영국에서 던전 노드가 발견되면서 그 가설이 유력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요.”
그럴 듯한 설명이었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어떻게 던전 노드가 던전 코어와는 별도의 물질이란 걸 확신한 걸까?
“그건 간단합니다. 헌터가 흡수해도 그 던전이 무너지지 않았으니, 던전 코어가 아닌 거죠.”
“아...!”
“그 외의 작동원리와 효능은 거의 동일합니다. 뭐, 쉽게 말하자면 던전 코어의 하위호환이라고 보셔도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던전 코어보다는 조금 성능이 떨어지는 영약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자세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혹시 필요하시다면 나중에 연금술과 교수도 연결해드릴 수 있습니다.”
타카라 교수는 또 굽실거렸다.
참 좋은 분인데 저러다가 허리를 삐끗하시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던전을 나왔다.
다행히 김서운은 던전을 나올 쯤에는 정신을 차렸다.
타카라 교수는 김서운을 전문 치료사에게 보이겠다며, 내게 인사를 했다.
“나중에 시간 괜찮으시면 제 연구실에도 한 번 들러주시죠. 좀 주제넘은 말일 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같은 지원가끼리 서로 절차탁마할 여지도...”
그는 굉장히 조심스레 말했지만, 나로서야 당연히 두 손 들어 환영할 일이었다.
지원가로서 경지가 한참 높은 그와 교류하면서 한 수 배울 수 있다면 무조건 이득일 테니.
나는 기꺼이 그와 명함을 교환하고 언제 한 번 연구실에 찾아뵙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우리는 그렇게 던전을 한 바퀴 돌아보고 길드 아지트로 돌아갔다.
***
길드 아지트로 돌아가자마자 나는 셀파와 함께 화원부터 들어갔다.
화단에서는 언제 봐도 어여쁜 인형 튤립들이 쑥쑥 자라고 있었다. 저게 다 코인이란 말이지.
갑자기 강남 던전주가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코인을 벌어오는 환금작물은 소중하다.
화원 시설 업그레이드에 따라 앞으로 규모를 더 키울 수도 있으니까 계속 신경을 쓰고 관리해줘야지.
셀파는 빈 화분을 두 개 들고 와서 분수대 앞에 놓았다.
“나으리. 여기다가 심어도 되겠습니까요?”
“그래. 그러자.”
셀파는 두 화분에 배양토를 담고, 하나에는 홍천마산삼을, 다른 하나에는 던전 노드를 심었다.
“그런데 나으리. 이게 정말로 자라날까요?”
“글쎄. 사실 나도 큰 기대는 안 하고 있어.”
홍천마산삼은 이미 한 번 구운 것이고, 던전 노드는 씨앗처럼 생겼지만 너무 단단해서 광물처럼 느껴진다.
밭정령인 셀파가 키울만한 ‘작물’에 해당한다고 보기 애매하다.
그래도 한 번 실험하는 데에 의의가 있는 거지.
어차피 실험해서 손해볼 건 없으니까.
내가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하니 셀파는 조금 마음이 놓인 듯 했다.
셀파는 목을 가다듬고 밭정령의 노래를 불렀다.
“얄리얄리 얄라셩~”
별빛 같이 반짝이는 것들이 셀파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화분과 화단을 적셨다.
약간 피톤치드 같은 냄새가 났다.
인형 튤립은 노래에 따라 꽃대를 흔들면서 눈에 띄게 성장했다.
곧바로 꽃을 피우는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홍천마산삼은 화분에 심어진 모습 그대로 변함이 없었다.
홍천마산삼을 복사하는 건 어렵겠고. 뭐, 사실 큰 기대 없이 실험해본 거니까.
그런데 의외로 던전 노드가 변화를 보였다.
얕게 묻어두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윗부분이 흙 위로 드러날 정도로 자란 것이었다.
“던전 노드도 작물 판정인가?”
“그, 그런 것 같습니다요.”
던전 코어를 화원에서 기를 수는 없었는데.
어쩌면 그건 던전 코어가 작물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이미 다 자라서 수확을 마친 작물이라서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아직 덜 자란 던전 노드는 화원에서 기를 수 있는 거지.
나는 흙을 걷어내고 던전 노드를 꺼내어 살펴보았다.
대략 복숭아 씨앗만 하던 것이 호두만큼 커졌다.
이걸 가을 배만한 던전 코어까지 성장시키려면 한 달 정도는 화원에 두고 셀파의 노래를 들려주어야겠지만, 확실히 키울 수 있다면 기다리는 거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
이렇게 되면 던전 노드를 투시안으로 찾아서 화원에서 던전 코어로 성장시킨 후 영약으로 쓴다... 그런 루틴을 설계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 되는데.
물론 던전 내에서 투시안을 계속 쓰고 다니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던전 노드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이 던전 노드만은 던전 코어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추후에도 우연과 행운이 따라준다면 비슷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거고.
“수고했어. 셀파. 네 덕분에 큰 수확을 거뒀네.”
“쇤네는 나으리께서 하란 대로 한 것뿐입니다요.”
셀파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분 좋게 웃음지었다.
피곤할 테니 오늘은 이만 쉬어도 된다고 했는데, 인형 튤립들을 살피겠다며 화원에 남는단다.
밭을 돌보는 데에 즐거움을 느끼는 밭정령다웠다.
요즘은 옥상에 텃밭도 가꾸고 있던데.
거기에서 키우는 쌈채소는 손바닥을 활짝 펼친 것처럼 자라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셀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화원의 문을 살그머니 닫고 나왔다.
그 다음으로는 중급 훈련실로 향했다.
살짝 문을 열고 살펴보니 지옥 훈련이 한참이었다.
까마귀 교관 후긴은 날개를 뻗어 신수련을 가리키며 깍깍거렸다.
“신수련 훈련생. 똑바로 안 합니까악!”
신수련은 울상을 지으면서 뜀뛰기를 했다.
두 발목이 끈으로 묶여서 토끼뜀을 하는 것도 상당히 어려워 보이는데, 거기에 양철 허수아비들이 쫓아다니면서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 팡!
신수련은 몽둥이를 머리에 맞고 털푸덕 넘어졌다.
나는 너무 놀라서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아무리 지옥 훈련이라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나는 당장 문을 열고 들어가 신수련을 구해오려고 했다.
하지만 신수련은 스스로 벌떡 일어났다.
- 팡!
양철 허수아비가 한 번 더 그녀의 머리를 때렸다.
하지만 신수련은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났다.
신수련 머리가 저렇게 단단할 리가 없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난 화에 제가 좀 헷갈리게 설명을 적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리하자면,
유서준이 얻은 것은 던전 코어가 아니라 던전 노드입니다. 던전 코어는 던전 노드에 비해 수십 배 작습니다.
지난 화에 마지막으로 적은 말은 유서준이 알고 있는 던전 코어(그것)가 복숭아 씨앗 정도 크기의 던전 노어(그것)보다 수십 배 크다는 말이었습니다.
전 화의 이 부분 설명은 좀 고민을 해보고 가독성 있게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