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헌터 타이쿤-48화 (48/52)

제 48화

파워업과 영성

자세히 보니 양철 허수아비가 휘두른 몽둥이는 골판지를 둘둘 말아서 까맣게 색칠한 것이었다.

맞으면 아프지는 않지만 상당히 기분이 더러울 것 같다.

신수련은 머리를 문지르고는 후긴을 노려보았다.

"이씨..."

물론 후긴은 코웃음도 치지 않았다.

“빨리 빨리 안 갑니까악! 다시 처음부터 돌고 싶습니까악!”

“아, 아니요...”

“말끝은 다악, 나악, 까악으로 통일한다고 말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악!”

“했습니다악!”

신수련이 눈을 질끈 감고 외치자, 이미 한 바퀴 뜀뛰기를 마친 장비비가 킥킥 웃었다.

후긴은 곧장 장비비를 날개로 가리켰다.

“장비비 훈련생! 지금 동료 훈련생이 힘들어 죽으려고 하는데 웃음이 나옵니까악!”

“아니, 그게 아니라...”

“길드는 일체입니다악! 장비비 훈련생은 어서 가서 신수련 훈련생과 일체의 관계를 형성하도록 합니다악!”

장비비는 한참 투덜거렸지만, 후긴의 눈총을 견뎌내진 못했다.

제멋대로인 녀석도 훈련실 내에서 훈련 교관의 말을 어기기는 어려운 것 같다.

장비비는 신수련에게 가서 그녀의 발목에 자신의 발목을 끈으로 묶었다.

박정하와 이연채는 그 옆을 지나가며 일부러 열심히 뜀뛰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후긴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리로 호루라기를 삼켜서 후루룩 불었다.

훈련생... 아니, 길드원들은 양철 허수아비가 때리는 풍선 몽둥이를 피하거나 맞아가면서 뜀뛰기를 재개했다.

교관이 없을 때랑 없을 때랑 차이가 엄청 심하구나.

일이 따로 있기도 했지만, 나만 길드 마스터라고 열외하는 것도 어쩐지 좀 미안한데.

나는 문 앞에서 어물쩍거리면서 기다렸다.

그래도 훈련은 곧 끝났다.

【오늘의 훈련 종료!】

[헌터 박정하의 종합 능력치와 경험치가 상당히 증가했습니다.]

[헌터 이연채의 종합 능력치와 경험치가 상당히 증가했습니다.]

[헌터 신수련의 종합 능력치와 경험치가 상당히 증가했습니다.]

[헌터 장비비의 종합 능력치와 경험치가 미세하게 증가했습니다.]

“흐아.”

훈련이 끝나자마자 다들 한숨을 내쉬며 엎어졌다.

그래도 종합 능력치와 경험치가 상당하게 증가하는 걸 보니 확실히 후긴이 훈련을 잘 시키기는 했다.

훈련 효율이 이 정도라면 당분간은 파견이나 의뢰 없이 훈련만 받아도 되겠다.

【클래스 레벨 업!】

[헌터 박정하의 전사 클래스 레벨이 Lv.2에서 Lv.3으로 바뀌었습니다.]

“앗!!! 레벨업! 했습니다!”

박정하는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정말요? 축하해요!”

“추, 축하 드립... 니다아...”

이연채는 손뼉을 쳤고, 신수련은 지쳐서 헐떡이는 탓에 간신히 말을 보탰다.

장비비가 무어라 한 마디 하기 전에, 후긴이 나섰다.

“본 교관의 지시에만 잘 따르면 박정하 훈련생처럼 금방 레벨업할 수 있습니다악! 알겠습니까악?”

박정하라는 실제 사례가 바로 앞에 있으니까 아니라고 반론할 수도 없고.

결국 길드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앞으로도 훈련에 성실하게 임하겠노라고 외쳐야 했다.

사실, 오늘 하루 훈련 했다고 박정하의 전사 레벨이 바로 오른 건 아닐 거다.

그 동안 여러 번 레이드를 하고, 소원의 탑도 4층까지 오르면서 차곡차곡 경험치를 쌓아뒀기에 레벨업이 된 거겠지.

그래도 까마귀 교관 후긴의 훈련이 종합 능력치는 물론이고 경험치도 더해주는 알찬 훈련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으니까.

소원의 탑에 재도전하기 위한 파워업은 후긴에게 맡겨두면 되겠다.

셀파가 던전 노드를 던전 코어로 길러내는 시간을 어림잡아서 한 달.

일정표를 일주일마다 5일 연속 훈련으로 잡아두면 버닝 이벤트로 훈련 효과가 더 높아질 테니까, 이번 한 달은 훈련의 달로 설정해야지.

나는 살그머니 문을 닫고, 마지막으로 사무실로 향했다.

훈련으로 지친 길드원들에게 냉장고에 넣어둔 음료수라도 가져다줄 생각이었다.

- 타다다닥

송서영은 언제나처럼 진지한 얼굴로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길드의 위상이 높아진만큼 일도 많아졌는데, 아직도 사무원이 송서영 하나였네.

언제나 바쁘게 일하는 송서영을 위해서라도 사무원을 하나 더 영입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송서영이 먼저 나를 알아채고 목례를 했다.

“아, 길드 마스터. 혹시 지금 바쁘세요?”

“아뇨. 바쁜 건 아닌데, 왜요?”

“강남 지하 던전 임대료 관해서 말씀 드릴 게 있어서요.”

송서영은 비슷한 규모의 다른 던전에 비해 강남 지하 던전의 임대료가 너무 낮게 설정되어 있다고 말했다.

“계약 기간까지 딱 두 달 남았거든요. 그러니까 두 달 후부터는 임대료를 인상해도 되는데, 시세를 살펴보면 현재 임대료의 150%까지는 무리 없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요? 그래도 갑자기 너무 올리는 건 좀...”

백호랑은 다소 격정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바보가 아니다.

그녀가 임대료를 낮게 책정해두었다면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

내 추측이지만, 아마 강남 아카데미와의 관계를 고려한 게 아닐까 싶다.

“음, 알겠어요.”

송서영은 내 말을 듣고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서영 씨 의견도 존중해요. 제 의견이 맞다고만 할 수도 없으니까 좀 더 생각해볼게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지만요. 저는 사무원의 입장에서 생각한 것뿐이에요. 길드 마스터는 길드 마스터의 입장에서 더 넓게 보시고 판단해주시면 돼요.”

송서영은 자신이 하는 일이 길드 마스터가 판단할 때 하나의 자료를 더해주는 것 뿐이라며, 정리된 자료를 넘겨주었다.

정말 송서영은 어디 외국계 대기업에 가도 승승장구할 거야.

“전성기 때 유서준zl존 길드는 외국계 대기업보다 한참 나았죠.”

“아... 그건 그랬겠네요.”

“뭐어, 전 지금도 낫다고 생각해요.”

송서영은 서류철을 들어 입을 가리고 살짝 웃었다.

기쁘긴 한데 좀 민망하기도 하고 멋쩍기도 하네.

무어라 재치 있는 말을 돌려줄까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장비비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형님~ 서영아~ 목말라.”

나는 얼른 냉장고 안에서 시원한 주스를 꺼내주었다.

“안 그래도 가져다주려고 했는데.”

“그거 말고 아이스크림 없어?”

“없을 건데...”

어제 사다놓은 건 어젯밤에 장비비가 다 꺼내 먹었다.

오늘은 좀 바빠서 마트에 들릴 시간이 없었지.

“그냥 주스 마시면 안 될까?”

“땀 흘리고 먹는 아이스크림이 진짠데...”

장비비는 시무룩해져서 어깨가 추욱 늘어졌다.

“길드 마스터. 냉동실 한 번 열어보세요.”

송서영이 내게 속삭이듯 입술 모양을 움직이고는 냉동실을 가리켰다.

냉동실을 열어보니, 액셀런트와 티코가 있었다.

이게 웬 거야.

난 안 사놨는데. 송서영이 사다 놓은 걸까?

“아이스크림 있네! 그것도 맛있는 걸로만! 형님 최고!”

장비비는 반짝 웃고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었다.

나는 송서영에게 고맙다고 눈인사를 하고는 주스와 견과류 봉지를 꺼내 훈련실에 있는 길드원들에게 가져다주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근데 오늘 훈련 진짜 너무 빡셨어요.”

이연채는 간식을 먹으면서 다리를 두들겼다.

“이따 집으로 돌아갈 거 생각하면 벌써 피곤하다. 수련 후배님 부러워요.”

“왜요?”

“바로 여기서 퇴근하면 되잖아요.”

“뭐, 그렇긴 하죠? 오늘은 침대 누우면 바로 꿀잠 잘 수 있을 거 같은데. 으흐흐.”

말을 꺼낸 이연채는 물론이고 박정하도 은근히 신수련을 부러워했다.

피곤한 상태에서 보내는 퇴근길은 꽤 지치니까.

뭣하면 묵어가도 되긴 하는데.

내 입으로 먼저 말하면 왠지 악덕 사장 같으니까, 참자.

사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잔뜩 벌린 코인으로 샤워실과 수면실을 업그레이드 할 예정이었다.

그 외에도 식당이나 오락실 같은 편의시설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건물주와 한 번 만나서 4층을 추가로 임대하는 것도 물어봐야겠다.

***

늦은 밤.

나는 웰시의 개껌을 들고 건물 앞 빈 화단으로 나왔다.

“아르르!”

웰시는 빈 화단 앞을 둘러서 가져다 놓은 화분 위를 뛰놀았다.

화분에는 인형 튤립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지만, 유령견 웰시는 그것들을 스쳐 지날 뿐이니 저 하고 싶은 대로 풀어놓았다.

“힘이 넘쳐 보이기는 하는구먼. 영성이란 것 때문인가?”

스르륵하고 나온 강시철이 툭하고 한 마디를 던졌다.

유령 네크로맨서인 그에게 영성(靈性)이란 건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였다.

“어디에서 얻었다고 했지?”

“소원의 탑 3층, 버려진 묘지를 정복한 보상이었습니다. 보상을 획득하니 저절로 웰시에게 귀속되더라구요.”

“쭛쭛, 웰시.”

웰시는 강시철의 부름에 엉덩이를 쫄랑거리면서 달려왔다.

“헥헥헥.”

“어디 보자... 확실히 영기가 강해지긴 했어. 사령계 몬스터를 상대할 때 더 유리해지겠고. 다리도 빨라지고, 활동성도 좋아졌네. 그렇지만 이게 다가 아닐 것 같은데.”

“애초에 영성이라는 건 뭡니까?”

“정령으로 치자면 정령 친화력, 마법으로 치자면 속성 친화력과 비슷한 거지. 다만 영성은 영계(靈界), 다른 말로는 명계(冥界)에 대한 친화력이라고 할까.”

명계라고 하니 좀 으스스하다.

“그 영성이란 걸 웰시가 계속 키워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영체로서 더 강해지겠지. 쉽게 말하자면 강한 귀신이 될 거란 말일세.”

“음... 그럼 영감님도 그 영성이란 걸 원하십니까?”

“말하지 않았나. 나는 영체와 실체의 중간물질을 원한다고. 내가 영성을 키웠다간 영체로 쏠려서 영영 실체화할 수 없게 되고 말 게야. 난 그걸 바라진 않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떠올랐다.

해골인 시지프 위셔도 귀신인 강시철과 꽤 공통점이 있잖아.

나는 소원의 탑 4층 영광의 대분묘에 관한 일도 이야기해주었다.

강시철은 잠깐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내게 물었다.

“시지프 위셔가 자네에게 시험한 것이 수면욕이라고 했던가?”

"예. 꿈으로 도망갈 것인지를 시험하더군요. 그 전에도 악몽과 영원히 꾸고 싶은 꿈으로 시험하기도 했었고요."

"왜 꿈인지 했더니 그래서였던가."

"혹시 시지프 위셔를 아십니까? 저희 길드원들은 다 모르던데요."

강시철은 어깨를 으쓱했다.

"알기야 알지.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그는 이계의 유명한 마법사라네."

"이계요?"

"던전, 게이트, 탑 너머의 세계 말이야. 차원이 교란되는 건 두 개 이상의 세계가 겹쳤기 때문이고, 그렇다면 이계가 존재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어."

그건 그렇지.

"그런데 어르신은 어떻게 이계의 마법사를 아시는 겁니까?"

"이계의 서적 중 위셔 가문에 관해 다룬 것을 읽었다네."

"이계의 서적이요?"

"자네가 그걸 모르면 어떡하나? 이계의 서적이 간간히 발견되고, 때로는 길드의 중요한 자산이 되기도 하는데."

아. 그랬지.

사실 【헌터헌터 타이쿤】에서 이계의 서적이란, 마법서가 아니면 거의 효과가 없어서 인벤토리 공간만 차지하는 부속 설정집 같은 존재였다.

"나도 읽은 지가 오래 돼서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질 않지만, 위셔 가문은 대대로 죽음을 극복하려는 것을 숙명으로 삼은 가문이었다네. 그래서 마법사와 연금술사, 정령사, 주술사, 그리고 당연히도 네크로맨서까지 다양한 클래스를 가진 가문의 일원들이 이리저리 애를 썼지."

시지프 위셔의 유언, 깨지 않는 꿈을 꾸러 간다는 말은 유쾌한 유언이 아니라 결국 죽음을 넘어서지 못한 씁쓸한 자책이었을까.

하지만 그는 편법으로나마 사후의 존재가 되었는데... 소원의 탑에 매였다는 말을 할 때의 분위기를 떠올려보자면 해골로 남게 된 것을 그다지 기뻐하지는 않는 듯 했다.

"참. 그에게서 받은 아이템이 좀 있습니다."

『묘지기의 대낫』과 『묘지기의 판초』.

이것도 내게는 감정 불가라고 떠서 금철두에게 감정을 맡길까 했는데.

강시철이 시지프 위셔를 아는 걸 보니, 이것에 대해서도 뭔가 아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강시철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 자를 책으로만 읽어서 단편적으로만 아는 것 뿐이야. 그 책의 내용도 다 기억하는 건 아니고."

"그렇군요..."

"자네가 그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떻겠나? 그럼 그 아이템에 관한 설명이 있을 지도 모르지."

"구할 수만 있다면 그러지요. 그런데 그 책은 어디서 구할 수 있습니까?"

"내 길드에 있었네. 그러니 내가 읽을 수 있었지."

강시철은 이 기회에 자기네 길드를 구경하고 오라며 권했다.

음... 어차피 길드 아지트 층을 하나 더 임대하는 건에 관해서 건물주와 이야기 할 것도 있었으니까.

나는 강시철이 있던 네크로맨서 길드에 한 번 다녀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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