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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헌터 타이쿤-49화 (49/52)

제 49화

네크로맨서 길드

나는 방파제 블록에 걸터앉아서 황해를 바라보았다.

철썩, 철썩 파도가 칠 때마다 바다 냄새가 몰려왔다.

묘하게 쾌쾌한 냄새였다. 습도도 불쾌할 정도로 높아서 후텁지근했고.

도대체 왜 여기서 보자고 했는지 모르겠네.

“그 분은 오려면 아직 멀었답니까?”

내가 고개를 돌려 묻자, 부르카 같은 천으로 전신을 다 가린 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 과묵한 작자였다.

때마침 바닷바람이 불자, 천이 들리면서 그 안에 있던 새하얀 뼈마디가 드러났다.

어쩐지 묘지기를 떠올리게 돼서, 나는 옆에 가지런히 놔둔 『묘지기의 대낫』과 『묘지기의 판초』를 만지작거렸다.

이 곳이 평범한 어촌이 아니란 건 마을에 들어오기 전 삼엄한 경비 초소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마을 안에는 이렇게 천을 둘러쓴 해골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움직이고 있었고.

여러 개의 네크로맨서 길드들을 한데 모아서 아예 마을을 만들어버렸다는 것 같은데.

그것도 참 대단한 일이지 싶다.

잠깐 생각에 빠져 있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서 돌아보니 볼이 홀쭉하고 빼빼 마른 남자가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강준열 씨 되시죠?”

“... 안녕하시오. 유서준 씨.”

이 남자는 유쾌한 아버지에 비해서 무척 음산한 분위기를 풀풀 풍겨댔다.

내가 강시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도 그는 그냥 시큰둥하게 받고 말았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소. 당신이 아버지와 친하다고 해서 내가 편의를 봐줄 거라고 기대하지는 마시오.”

“하지만 어르신은 강준열 씨가 분명 도와줄 거라고 하셨는데요.”

“늙은이 특유의 허풍이지. 난 그럴 생각 없소.”

강준열은 완고했다.

강시철은 자기 아들이 저렇게 나오면 이렇게 대응하라고 했지.

나는 뒷주머니에 쑤셔 넣은 개껌을 들어올렸다.

“알...”

웰시가 튀어나와서 반쯤 감긴 눈으로 낑낑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직 해가 지기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있는지라, 유령견인 웰시는 많이 졸린 모양이었다.

웰시를 본 강준열은 끙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웰시? 너, 왜 이 사람 옆에 있는 거야?”

“아르르...”

“뭐? 이 사람이 널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 같아? 넌 이용당하는 것뿐이야! 아버지가 널 이용한 것처럼, 저 사람도 널 이용하는 것뿐이라고!”

“알! 알알!”

“큭... 그렇게 저 사람이 좋은 거냐?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강준열은 눈시울이 벌게지도록 웰시와 말다툼을 하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나도 알아. 넌 똑똑한 코기니까 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거. 그래서 그 때도 너는 내가 아니라 아버지를 선택했지.”

“알...”

“위로해줄 필요 없어. 나도 그 때보다는 좀 성장했으니까. 어쩌면 적어도 너에 대해서만큼은 내가 틀렸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거든.”

이 분위기가 도무지 감당이 안 되어서 슬쩍 멀어지려고 하는데, 강준열은 내 팔을 꽉 쥐었다.

“유서준 씨.”

“네, 네?”

“웰시를 꼭 행복하게 해주시오.”

“무... 물론입니다.”

강준열은 내 대답이 영 시원찮다는 표정이었지만, 웰시의 눈치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버지는 밉지만, 웰시의 얼굴을 봐서라도 어느 정도는 편의를 봐주도록 하겠소. 원하는 게 뭐요?”

나는 얼른 시지프 위셔에 대해 다룬 이계의 서적을 읽고 싶다고 말했다.

강준열은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반출금지, 복사금지, 메모금지. 눈으로만 읽고 나가는 조건이라면 좋소.”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준열은 천을 뒤집어 쓴 해골에게 말했다.

"열어라."

해골은 삐걱거리면서 움직이다가 방파제 아래로 손을 뻗어서 무언가를 돌렸다.

- 쿠르릉

굉음과 함께 방파제 한쪽 벽이 폭삭 주저앉았다.

그와 동시에 물보라가 반대편으로 몰아치면서, 바다의 밑바닥까지 인위적으로 빈 공간이 만들어졌다.

강준열은 계단 난간을 짚고 먼저 내려갔다.

무어라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라, 나도 묵묵히 그를 따라 내려갔다.

바다 밑바닥에는 돌려서 여는 원형 문이 있었다.

그 밑의 해저 터널을 잠시 걷다가 보면 철문의 격벽으로 막힌 공간들이 나왔다.

바늘 하나 꽂아 넣을 틈도 없이 꽉 닫힌 철문이었지만, 어쩐지 그 밑으로 쾌쾌한 냄새가 흘러나오는 듯해서 나는 숨을 멈추고 그 공간들을 지나쳤다.

한참 걷다보니 그런 냄새도 슬며시 사라지고, 작은 도서관이 나왔다.

사서와 독자는 없었지만, 선반에는 고풍스러운 책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이게 전부...”

“이계의 서적은 아니오. 일 할 정도나 그럴 거요.”

그렇다고 해도 많은 양이다.

“혹시 시지프 위셔를 다룬 책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글쎄. 직접 찾아보셔야지.”

강준열은 의자에 앉아서 그윽한 눈으로 웰시만 바라보았다.

도와줄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시지프 위셔에 관한 책을 찾아야 했다.

선반을 좀 뒤적여보니 이계의 서적 옆에는 대개 번역서가 바로 붙어 있어서, 그나마 찾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아. 이거 같은데. 위셔 가문에 관한 대략적이고 상세한 기록.”

나는 원서와 번역서를 모두 들고 책상 앞에 앉았다.

웰시가 관심 있다는 듯이 얼굴을 책상 위에 올려놓아서, 웰시만 바라보던 강준열도 불가항력이라는 듯 내 쪽으로 다가왔다.

“위셔 가문. 표지를 보니 이제 기억이 나오. 죽음을 극복하려고 한 무모한 자들이었지.”

“죽음을 극복하는 건 네크로맨서의 숙명 아닌가요?”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셨겠지만, 그건 틀린 말이오. 네크로맨서가 스스로 죽음을 뛰어 넘어서려 한다면, 그게 뱀파이어나 리치와 다를 게 뭐가 있겠소.”

강준열은 처음에는 시큰둥한 어조였지만 점차 자기의 말에 도취되어 가는지 뜨거운 침을 튀겨가면서 열변을 토했다.

“네크로맨서는 죽음을 다루는 자요. 그 죽음은 타자, 대상의 것이라야 하지. 자신의 죽음을 다루려고 하는 순간 네크로맨서는 몬스터가 되는 거요. 그 미묘한 욕망의 경계선을 넘어서면 안 되는 건데, 아버지는...”

강준열도 은근히 말이 많은 것 같다.

본인은 아버지인 강시철을 싫어한다고 했지만, 이런 걸 부전자전이라고 하는 거겠지.

나는 그의 말을 설렁설렁 들으면서 번역서를 훌훌 넘겼다.

역대 가주와 뛰어난 가문의 일원에 관한 기록이 인명 순으로 정리되어 있었기에 시지프 위셔를 찾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지프 위셔. 위셔 가문의 19대 가주. 정령술과 사령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가문의 비원(悲願)을 달성할 영재로 촉망 받았다. 하지만 아끼던 아내와 사별한 후로부터는 아집과 망상에 사로잡혀 독주하기 시작했고, 이후 악마의 속임수에 넘어가 자식들을 제물로 아내를...”

나는 여기까지 읽고 웰시의 눈을 가려주었다.

웰시는 안 그래도 졸려하던 터라 내가 눈을 가려주자마자 낑하고 울고는 소환 촉매인 개껌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준열은 어째서인지 혀를 찼다.

“기생오라비 같은 게...”

“네?”

“아무 것도 아니오. 웰시도 자러 갔으니, 계속 읽어보시오.”

하지만 이후의 내용은 별 게 없었다.

시지프 위셔는 아내와 자식들의 묘지 앞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판초를 입고, 대낫으로 풀을 베며 그렇게 살았다고 한다.

그가 묘지 앞의 움막에서 연구한 기록은 거의 다가 죽음을 넘어서기 위한 연구가 아니라 꿈에 관한 연구였다고.

꿈에서는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저지른 모든 것이 꿈이었기를 바랐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시지프 위셔 본인 말고는 아무도 모르겠지.

나는 번역서에 적힌 원서의 페이지를 펼쳐보았다.

거기에는 풀이 깔끔하게 베어진 묘지를 지키고 있는 시지프 위셔의 모습이 펜화로 그려져 있었다.

대낫을 들고 판초를 입은 중년의 남성은 등을 돌리고 서 있는 모습조차 애달파보였다.

[『묘지기의 대낫』과 『묘지기의 판초』의 기원을 이해하였습니다.]

[『묘지기의 대낫』과 『묘지기의 판초』을 감정할 수 있게 됩니다.]

[『묘지기의 대낫』과 『묘지기의 판초』의 성능이 다소 증가합니다.]

원서 앞으로 홀로그램 창이 연이어 떠올랐다.

나는 두 아이템을 하나씩 잡아보았다.

아이템 성능에 관한 내용이 곧바로 머릿속에 들어왔다.

『묘지기의 대낫』은 공격력을 어마어마하게 올려주는 아이템이었다.

그 대신 공격속도에 상당한 패널티를 부여받기는 하지만, 그래도 A급 암살자가 쓰기에 손색이 없는 무기였다.

『묘지기의 판초』는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을 증가시키는 방어 아이템이었다.

방어력만 놓고 보면 『아라크네 아머』보다 좀 아쉽지만 별다른 패널티도 없고 아라크네 아머 위에 겹쳐 입을 수도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게다가 두 아이템을 같이 착용하면 영성(靈性)에 추가로 보정을 받는다고.

기원을 알게 되어서 그런지 대낫과 판초는 이전보다 훨씬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것들이 그 시지프 위셔의 유품이오?”

“네. 그렇다는 것 같네요.”

나는 강준열에게 간추려서 설명을 해주었다.

강준열은 역시 네크로맨서답게 굉장히 흥미를 보였다.

“원래 사령술에 재능이 있던 자의 유품이자, 또 죽음과 여러모로 연관된 물건이고. 영성까지 추가 보정을 받는다면...”

강준열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내게 제안을 건넸다.

“혹시 네크로맨서의 길을 걸어볼 생각은 없소?”

“네? 제가 말입니까?”

“시지프 위셔의 유품을 쓴다면 네크로맨서로서 금방 대성할 수 있을 거요. 나도 나름대로 도와주겠소. 웰시도 그러면 기뻐하겠지.”

“하지만 전 딱히 네크로맨서와 연관이 없는데요.”

강준열은 내가 쥔 개껌을 가리켰다.

아. 웰시가 있었지.

유령견을 데리고 다니니까 네크로맨서... 그게 그렇게 되나.

지원가 클래스 레벨을 10까지 올리고 나서의 일이지만, 상위 클래스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는 지금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

강준열이 도와주고 또 강시철이 나름대로 조언을 해줄테니 네크로맨서로 진로를 굳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지만 싸우는 지원가, 무투승 타카라 교수도 내게 이것저것 알려주겠다고 제안을 했었는데.

네크로맨서냐.

무투승이냐.

나는 또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섰다.

하지만 강준열이 설명한 여러 이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크로맨서를 선택하고 싶지는 않았다.

웰시를 다루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모순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죽은 이를 되살려 싸우게 하는 것보다, 동료들과 함께 같이 싸워나가고 싶었다.

"감상적이시군."

강준열은 코웃음을 쳤지만, 이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웰시가 당신을 따르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하겠소."

"네크로맨서를 비하하려는 건 절대 아닙니다."

한 가지 더, 강준열에게 설명하기 힘든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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