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헌터 타이쿤-50화 (50/52)

제 50화

한강 게이트

나는 택시를 타고 길드 아지트로 돌아가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이번 일정 덕분에 감정불가 상태이던 묘지기의 대낫과 판초를 감정할 수 있었다.

추가로 길드 아지트 건물 4층도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임차하기로 했지.

웰시 덕분인지는 몰라도 강준열은 내게 상당한 호의를 베풀어주었다.

내가 네크로맨서가 된다고 했으면 그는 더 큰 호의를 베풀어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결국 네크로맨서로 전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거기에는 강준열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길드원들을 모두 되찾아오겠노라고 - 이 세계에 소환된 직후 송서영에게 포부를 밝히기도 했고, 장비비와 약속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사실은... 소원의 탑에서 실종된 길드원 전원이 장비비나 셀파처럼 생존해있으리라고 기대한다는 게 어리석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그건 너무 낙관적이고 동화 같은 생각이다.

그렇기에 내가 네크로맨서가 된다면, 결과에 적당히 타협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길드원을 해골이나 영체로 되살려서 이 정도면 적당히 해피엔딩이지, 하고 만족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예감이.

그러나 나는 해피엔딩에는 타협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방법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네크로맨서의 방법은 아닐 거다.

비이성적이고 서투른 결단일지도 모르겠지만, 원래 포부란, 그리고 약속이란 그런 게 아닌가.

좀 어리석어도 우직한 거.

완전무결한 해피엔딩은 가능할 거다.

이 세계에 내가 소환된 이유가 있을 거고.

그리고, 길드원들이 소원석에 빈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테니까.

나는 차창 밖의 소원의 탑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야경 속에서 소원의 탑은 묵묵히 다음 도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

한동안은 꾸준한 일정이 반복되었다.

이미 S급 헌터로 훈련 효과가 미미한 장비비는 셀파와 함께 순찰을 나갔고, 나머지 길드원들은 까마귀 교관 후긴과 함께 지옥 훈련 중이다.

다들 힘들어하긴 했지만 그만큼 종합 능력치와 경험치가 확실하게 들어오기 때문에 훈련에는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사실 확실한 보상이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후긴의 훈련에 참여하는 한편, 가끔씩 시간을 내서 타카라 교수의 연구실에도 들렀다.

그는 또 허리를 굽실굽실하면서도 친절하게 내게 지원가로서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었다.

소원의 탑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던 어느 날이었다.

송서영이 걸려온 전화를 받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왜요? 무슨 일이에요?”

“한강에 자이간트, 거인이 나타났대요. 지금 상황이 심각해서 중견급 이상 길드에는 전부 협조 공문을 돌리고 있다나 봐요.”

【긴급 퀘스트 : 한강에 나타난 거인】

[설명 : 한강 밑에서 자이간트가 나타났습니다. 자이간트는 15층 아파트와 맞먹을 정도로 커다란 거인으로, 느리지만 강력하고 포악합니다. 서둘러 토벌하지 않으면 시민들에게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보상 :

1. 코인 + 250

2. 명성 + 16

3. 차원관리부와 관계도 + 2]

[승낙하시겠습니까?]

승낙하는 수밖에.

나는 곧장 일어나서 훈련실로 향했다.

훈련이 도중에 끊겨서 연속 버닝 효과를 놓치게 됐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길드원들은 활력 포션을 하나씩 마시고 장비를 착용했다.

나와 신수련은 좀 더 괜찮은 로브를 하나씩 장만했고, 이연채는 아라크네 아머 위에 묘지기의 판초를 덧입고 대낫을 어깨에 걸쳤다.

길드 건물을 내려가자 군용 트럭이 두 대나 와 있었다.

“유서준 길드 마스터님! 어서 타시죠! 급합니다!”

계급장에 다이아몬드 세 개.

대위로 보이는 남자가 급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적당히 나누어 군용 트럭에 올랐다.

트럭은 곧바로 출발했다.

대위는 여기저기 전화를 하면서 다른 부대의 지휘관과 상황을 공유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피해가 만만치 않은 듯했다.

자이간트가 출몰한 지역을 담당하던 길드의 헌터들은 이미 후방으로 실려 갔고, 도와주러 온 다른 길드의 헌터들도 줄줄이 깨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나는 대위가 통화를 마치기까지 기다렸다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어떻게 자이간트가 한강 밑에서 올라올 때까지 모를 수가 있었던 거죠?”

“빌런 소사이어티에서 손을 쓴 것 같습니다. 아마 은신 마법 같은 걸로 게이트 발생 자체를 숨긴 듯한데...”

여하튼 탐지에도, 초동 대응에도 실패했다는 말이었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자이간트는 【헌터헌터 타이쿤】에서도 플레이 타임이 300시간을 넘겨야 겨우 등장하는 강력한 몬스터다.

어서 가서 막지 않으면 정말 대참사가 나는 수가 있다.

그런데 급한 마음과는 달리 가는 길은 엄청나게 막혔다.

하필 퇴근 시간인데다가, 한강다리가 모두 통제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 빠앙! 빵! 빵!

운전병이 몇 번이고 클락션을 울렸지만 앞의 차들도 비켜줄 곳이 없어서 나갈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는 길바닥에서 시간 다 보내겠다.

“대위님. 어떻게 헬리콥터라도 보내달라고 하면 안 됩니까?”

“그게... 제 소관으로는...”

관료제란. 어쩔 수 없긴 하지.

나는 신수련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신수련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 핸드폰을 받았다.

“왜요? 대표님?”

“어머니 번호 아시죠?”

“엑...”

“수련 씨한테 전화하라고 안 해요. 통화는 내가 할 테니까, 번호만 입력해줘요.”

신수련은 다다닥 번호를 입력하고 얼른 내게 핸드폰을 되돌려주었다.

통화는 곧바로 연결되었다.

“누구시죠?”

“유서준 길드의 유서준입니다.”

“제 번호는 어떻게... 아니, 그 애가 알려줬겠군요.”

신경애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했다.

“유서준 씨한테도 소식이 들어간 걸로 알고 있는데, 괜한 일로 전화하진 않았겠죠. 무슨 일인가요?”

“지금 한강으로 가는 중인데 길이 너무 막힙니다. 여기로 헬리콥터 한 대만 보내주세요.”

“어디 계신데요?”

“여기가...”

차원관리부 차관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헬리콥터는 십 분도 지나지 않아서 날아왔다.

우리는 군인들과 인사하고 도로변으로 걸어 나가서 줄사다리를 붙잡고 올라갔다.

- 타타타타타

헬리콥터는 빠르게 한강으로 날아갔다.

자이간트의 모습은 멀리서부터도 확실히 보였다.

한강의 수심은 자이간트의 정강이까지를 간신히 적실 정도였다.

자이간트는 털이 덥수룩한 가슴을 마구 두들기며 고릴라처럼 옥옥옥 하는 소리를 냈다.

“덤벼라!”

“날 봐라!”

한강공원에 모인 전사들이 방패를 두들겨 도발을 하며 간신히 녀석의 시선을 잡아두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자이간트는 진작 강을 벗어났을 거다.

하지만 자이간트의 시선을 계속 끌기엔 전사들은 너무 작고 또 그다지 거슬리지도 않았다.

전사들 중 몇몇이 창을 던졌지만, 그건 자이간트에게는 이쑤시개보다도 작았다.

- 옥옥옥!

자이간트는 창을 맞아가며 한 걸음, 한 걸음씩 한강공원으로 다가갔다.

녀석이 발을 옮길 때마다 한강에 거친 파도가 일었다.

“더 가까이 오게 해선 안 돼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이 위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모피 코트를 두르고 진두지휘를 하는 건 백호랑이었다.

지금까지 자이간트를 막아낸 게 호랑 길드였던 모양이다.

“빗자루 비행단, 출격!”

백호랑의 지시에 따라 열 명이나 되는 마녀들이 빗자루 뒤에 암살자나 마법사를 태우고 날아올랐다.

마녀가 빗자루를 운전하며 자이간트의 주변을 빙빙 맴돌면, 마녀 뒤에 앉은 헌터들은 자이간트의 급소마다 공격을 퍼부었다.

- 쾅!

- 파파팟!

- 퍼엉!

자이간트는 화가 나서 팔을 휘둘렀지만, 마녀들은 잽싸게 빗자루를 틀어서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곤 다시 자이간트의 전후좌우를 날아다니며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부어댔다.

치명타는 나오지 않았지만, 피해가 누적되면서 자이간트는 주춤거렸다.

녀석이 뒷걸음치자 한강 물이 출렁거렸다.

“와아아!”

헌터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기엔 이르다.

백호랑도 그걸 잘 알고 있는지 오히려 총공격을 명령했다.

바싹 붙어서 모여 있던 마법사들이 줄줄이 공격마법을 뿜어냈다.

같은 속성의 마법끼리 엉켜서 더욱 강한 마법이 되었다.

자이간트의 정강이 밑의 강물이 얼어붙자, 곧장 불길이 날아가 녀석의 머리를 태웠다.

넝쿨은 불길에 타오르면서도 자이간트의 사지를 결박했다.

멈추어선 자이간트를 향해 금속과 암석이 쉴 새 없이 발사되었다.

가끔 마력을 전부 소모해 쓰러지는 마법사도 있었지만, 흰색 완장을 찬 지원가들이 이리저리 오가며 그들을 세심하게 살펴주었다.

- 오오옥!

자이간트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마법 세례에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래도 녀석의 맷집만은 어마어마했다.

“계속 밀어붙여요!”

백호랑은 초조해하지 않고 계속 화력을 투사하게 했다.

마법사들은 마력 포션과 활력 포션을 잔뜩 들이켜며 마법을 쏘아댔다.

- 슈슈슉

- 콰쾅!

결국 자이간트는 무릎 한쪽이 꺾여서 무너졌다.

- 첨벙!

귀가 따가울 정도로 거대한 물보라 소리였다.

백호랑은 그제야 전사와 암살자, 지원가로 구성된 부대들을 내보냈다.

그들은 모터보트를 타고 자이간트에게로 다가가, 작살줄을 쏘았다.

보트 몇 대는 물보라를 견디지 못하고 뒤집어졌지만 노련한 헌터들은 작살줄을 타고 자이간트의 몸 위로 넘어갔다.

자이간트는 자신의 몸 위에 올라간 헌터들을 때려잡으려고 손을 치켜들었다.

“정해진 표적대로 발사!”

백호랑은 지휘봉을 척하고 휘저었다.

아군오사를 피하기 위해 미리 표적을 정해둔 것 같다.

마법이 줄줄이 눈을 노리고 쏘아졌다.

마법사들의 맹공이 이어지자, 자이간트는 치켜든 손으로 눈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그 틈을 타 특공부대들은 자이간트의 등이나 목 뒤, 또는 정수리까지 올라갔다.

그들은 자리를 잡자마자 각자의 무기로 자이간트를 곳곳에서 사정없이 찔러댔다.

- 오오옥!

자이간트는 괴로워하며 몸을 비틀었다.

그 탓에 헌터 몇이 한강으로 풍덩 빠졌지만, 근처에서 배회하던 모터보트에서 얼른 그들을 구조해냈다.

백호랑의 지휘에는 빈틈이 없었다.

하지만 강력한 한 방이 부족했다.

이대로 차근차근 베어나가도 이 자이간트를 쓰러뜨리는 건 문제없겠지만, 문제는 한강 저 밑에 있다는 게이트다.

시간을 더 끈다면 그 밑에서 자이간트가 한 마리 더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나는 백호랑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지휘봉을 붕붕 흔들던 백호랑은 깜짝 놀라서 핸드폰을 꺼냈다.

“유서준, 당신! 전화해준 건 고맙지만 전 지금 바쁘답니다!”

“저도 한강이에요. 올려다보세요. 헬리콥터 보이죠?”

백호랑은 내 말대로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시선이 닿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 구경만 하고 있는 건가요! 어서 와서 돕도록 하세요!”

공을 다툴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역시라고 하면 역시겠지만.

“그럼 잠깐 마법 좀 멈춰주세요.”

“앞으로 삼분 간 마법 포격은 중지하도록 하겠어요. 그 정도면 될까요?”

“충분하죠.”

나는 백호랑에게 한 가지를 더 요청하고 전화를 끊었다.

“조종사님. 여기 낙하산 배낭 있죠?”

“예. 거기 뒤쪽에 있긴 있는데요... 혹시...”

“다들 배낭 메고 준비합시다. 딱 삼 분 안에 다 끝내야 하니까 서둘러요.”

나는 웰시를 제외한 여섯 명의 길드원을 둘씩 짝지었다.

낙하산 배낭을 메는 역할과 직접 공격을 담당하는 역할로.

나와 장비비, 신수련과 이연채, 셀파와 박정하.

“준비된 조부터 뛰어내립시다!”

“전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신수련은 부들부들 떨었다.

사실 나도 좀 떨린다.

백호랑에게 부탁해서 보험을 들어두긴 했지만, 이 높이에서 떨어져 내린다는 게 보통 강심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

“그럼!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박정하가 씩씩하게 나섰다.

역시 든든한 전사답다.

그는 횃불아귀의 방패를 몸에 착 붙이고, 등 뒤에 셀파를 매달았다.

“그럼, 내려갑니다!”

“나으리아아아아아아아!”

셀파의 비명소리는 아득히 멀어졌다.

나는 곧바로 스킬을 발동했다.

《망라》

《투시안》

먼저 떨어져 내린 셀파와 박정하의 시야에 하나씩 연결해서 자이간트의 몸을 살펴보았다.

끔찍하도록 두꺼운 혈관과 근육 너머로 무언가가 한순간 보였다.

낙하가 너무 순간이라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희끗하게 보인 그것은 자이간트의 옆쪽 옆구리 어딘가에 있었다.

- 깡!

박정하는 방패로 자이간트의 무릎을 때리고 튕겨나갔다.

셀파가 때맞추어 낙하산을 펼쳤다.

하지만 속도가 늦춰지면서 반대로 자이간트의 시선을 끌었다.

녀석은 낙하산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음! 어서 가요!”

“저 아직 준비가...”

“수련 후배님! 어서요!”

이연채는 억지로 신수련을 끌고 갔다.

서로 결속 장치로 연결되어 있어서 신수련은 버둥거리면서도 질질 끌려갔다.

“연채 씨. 왼쪽 옆구리를 노려요.”

“왼쪽 옆구리... 네!”

“저 아직 준비가아아아아아악!”

신수련의 비명소리가 그라데이션처럼 옅어졌다.

이연채는 묘지기의 판초를 펄럭이며 떨어져 내리다가, 자이간트의 팔을 대낫으로 베고 그대로 낙하하며 왼쪽 갈비뼈에서부터 아래로 쭉 그어나갔다.

- 콰카카카카칵!

묘지기의 대낫은 걸리는 살과 근육, 뼈까지 모두 베어버리면서 자이간트의 옆구리에 길게 베인 상처를 냈다.

- 오오옥!

자이간트는 괴로워하며 몸을 비틀었다.

《망라》

《투시안》

신수련은... 눈을 감고 있어서 도움이 안 되고.

이연채의 시야를 통해 다시 한 번 자이간트의 몸을 살폈다.

왼쪽 옆구리 안쪽에 희끗하게 보이던 것이 이번에는 명확히 보였다.

이연채는 그대로 대낫으로 자이간트의 허벅지까지 베어 내려가다가 멈추었다.

마찰 때문에 낙하산을 펼치지 않고서도 멈출 수 있었던 것이다.

“비비야. 우리도 가자.”

“왼쪽 옆구리를 노리면 되는 거지?”

“그래애애애애애액!”

내 비명소리는 아무리 내질러도 멀어지지 않았다.

내가 내지른 소리가 그런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생각해보면 나는 번지 점프도 한 적이 없었다.

바람이 살을 잡아당기는, 혹은 끌어내리는 듯한 느낌이 아찔했다.

“형님!”

장비비의 외침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자이간트는 손으로 상처를 쥐고 있는지라 왼쪽 옆구리가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눈을 두들기는 듯한 바람을 견뎌내고 다시 특성을 발동했다.

《투시안》

희끗한 물체는 자이간트의 새끼손가락 안쪽에 있었다.

“새끼손가락 말이지!”

장비비는 개헤엄을 치듯 움직여서 위치를 조정했다.

그리고는 장팔사모를 아래로 부여잡고 두 다리를 휘저었다.

“들어간다!”

나는 낙하산 배낭을 당겼다.

철컹, 하는 느낌이 나더니 낙하산이 펼쳐졌다.

위치는 딱 좋게 자이간트가 손으로 가린 옆구리 언저리였다.

- 푹!

장비비는 장팔사모를 찔러 자이간트의 새끼손가락을 자르고,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거추장스러운 낙하산 배낭을 강물 위로 던져버리고 그녀를 따라 갔다.

“형님, 여기서 어디야?”

“저기! 저 앞!”

우리는 거대한 푸딩 안을 파먹어 들어가는 개미처럼 꾸물꾸물 움직였다.

자이간트의 피가 무색무취의 맹물처럼 생겨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저거다!”

나는 희끗거리는 혈관벽을 가리켰다.

장비비는 사정없이 장팔사모를 휘둘러 혈관벽을 치워버렸다.

자이간트의 혈액이 뿜어져 나오면서 우리는 곤약 녹인 물에 흠뻑 젖은 모양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목표하던 물체는 찾아냈다.

새하얀 마석에 굵은 혈관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이얍!”

장비비는 바로 달려가서 혈관들을 모두 잘라버리고 마석을 빼냈다.

- 오오오오오옥!

자이간트가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는 게 느껴졌다.

우리가 녀석의 몸 안에 들어가 있는 만큼, 이 거대한 몸 전체가 울리는 게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몬스터의 마석은 던전으로 따지자면 던전 코어.

이걸 빼냈으니 자이간트는 곧 쓰러질 거다.

하지만 자이간트가 한강에 풍덩 빠지면 그 몸 안에 들어와 있는 우리도 곤란해진다.

“얼른 나가자!”

우리는 돌아온 길로 후다닥 달려 나갔다.

옆구리의 상처로 빠져나왔을 때는 자이간트가 슬슬 반대쪽으로 넘어지려던 참이었다.

나는 상처 바깥쪽을 내려다보았다.

여기서 한강으로 뛰어내리는 건... 이것도 높이가 꽤 되는데. 낙하산 배낭은 아까 버려버렸고.

“형님! 그냥 뛰어내리자!”

“그럴 필요는 없어요! 이 백호랑이 구하러 왔으니까요! 오호호호홋!”

백호랑은 빗자루를 탄 마녀 뒤에 앉아서 코웃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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