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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힘없는 황후보단, 사랑받는 연인이 낫죠 (2/127)

2화. 힘없는 황후보단, 사랑받는 연인이 낫죠2021.04.06.

황궁의 모든 문을 마음대로 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정확한 타이밍에 도착했다. 그랜드 공작이 방문하는 즉시 황제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하라고 했던 디안의 명을 그녀의 시녀가 빠르게 수행한 덕분이었다. 황제 카를의 등장에 디안의 얼굴이 슬프게 일그러졌다.

16553283989138.jpg“폐하…….”

곧이라도 꺼져버릴 듯한 가냘픈 음성에 카를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아름다운 얼굴이 그녀로 인해 변하는 모습은 보고 또 봐도 놀라운 일이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은 것을 가진 이가 그녀의 부름에, 그녀의 슬픈 얼굴에 반응한다는 것은 늘 짜릿했다. 붉은 물감이 번진 듯 붉은 기가 가득한 여린 디안의 눈매에 카를이 날 선 시선으로 제 누이를 바라봤다. 엘리자베타는 자조적인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16553283989143.jpg“국정을 운영하다 말고 첩이 어디 있는지 찾아다니십니까?”

디안은 애써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83989138.jpg“공작 전하의 말씀에 틀림이 없어요. 제가, 자꾸만…… 폐하의 앞날에 방해가 되네요.”

그녀의 말에 카를은 무언가를 인내하듯 인상을 찌푸리며 억눌린 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그는 사나운 표정으로 누이를 노려보며 차갑기 그지없는 말투로 못을 박았다.

1655328398915.jpg“적당히.”

16553283989143.jpg“…….”

1655328398915.jpg“내 심기를 그만 건드리란 말이오.”

16553283989143.jpg“……심기를 건드리고 자시고도 없습니다. 결혼식을 보고 나면 저는 제 영지로 돌아갈 것이니.”

그 말에 황제는 싸늘하게 몸을 돌려 방을 나가 버렸다. 디안도 얼른 그의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이 사라진 문을 가만히 노려보던 엘리자베타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용암을 삼킨 듯 울화가 치밀었다. 가슴을 꾹꾹 눌러 대던 그녀는 깊고 긴 숨을 몰아쉬었다. 과거 디안이 했던 말이 또 떠올랐다.

16553283989138.jpg‘폐하는 태양이에요. 그분의 가까이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빛을 받죠. 제아무리 당신이 폐하의 누이라 한들, 그분의 심기를 거슬러서야 되겠어요? 전, 그분의 유일한 달이에요.’

  보석 위로 쏟아져 부딪힌 햇살이 산산이 조각났다. 돌아가신 선대 황후가 간신히 낳은 황자는 돌 이전에 죽었다. 그 뒤 그녀는 끝끝내 아들을 낳지 못했다. 그리하여 엘리자베타의 아버지, 선대 황제는 모후의 시녀에게서 아이를 보았다. 그가 카를 울리히였다. 엘리자베타는 두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카를 이외의 황자가 있었다면 아마 그는 황제가 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카를의 신분적 결함은 그의 정치적 입지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이외의 적장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것은 다른 의미로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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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6553283989138.jpg“폐하. 인제 그만 가세요.”

디안은 카를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운 카를은 눈을 감았다. 가느다란 손길에 잠이 올 것 같은 나른함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디안은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수려하게 잘생긴 얼굴. 이마, 눈썹, 코, 입술,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없다.

16553283989138.jpg‘카를 울리히 에흐몬트.’

그 이름마저도 완벽했다. 그러니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조심스럽게 카를의 머리카락을 쓸던 디안의 손길이 점점 느려지더니 종국엔 멈췄다. 머리에서 느껴지던 나른한 감각에 취해 있던 카를이 눈을 뜨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그가 눈을 떴을 때, 디안은 먼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색 눈동자는 공허하고, 붉은 입술은 힘없이 벌어졌으며 눈가는 붉었다. 그 모습에 카를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1655328398915.jpg“디안.”

그의 낮은 목소리에 디안은 황급히 정신을 차리며 사과했다.

16553283989138.jpg“아, 예……. 폐하. 죄송해요.”

디안의 아름다운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녀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1655328398915.jpg“그랜드 공작이 뭐라고 한 것이냐.”

16553283989138.jpg“……황후께서 저를 언짢아하시면 어쩌죠? 제가 싫으실 거예요.”

여인은 흐려진 눈으로 울면서 애원하듯 말했고, 그에 황제는 권태로운 얼굴로 선언하듯 말했다.

1655328398915.jpg“황후는 너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을 거다.”

16553283989138.jpg“절 버리시면 안 돼요. 절 버리지 말아요, 폐하. 전 폐하만 계시면 돼요.”

1655328398915.jpg“그 말, 하지 마.”

16553283989138.jpg“예.”

16553283989138.jpg‘절 버리시면 안 돼요. 절 버리지 말아요, 폐하.’

디안은 그럼에도 주문과도 같은 그 말을 몇 번이나 더 속삭였다. * * * 카를 울리히 황제의 국혼은 디안 푸아티에의 주관 아래 준비되었다. 황후의 드레스부터 관에 이르기까지 디안 푸아티에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귀족들은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으나, 누구도 함부로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 울리히 황가의 유일한 여성은 황제의 이복누이인 엘리자베타 울리히 그랜드였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녀가 이혼을 했기 때문이다. 이혼을 금기시하는 제국의 문화상 이혼한 여성은 결혼을 주관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디안 푸아티에가 국혼 준비를 허투루 하는 듯 보이지도 않았기에, 귀족들은 강 건너 불구경을 하듯 이 장면을 지켜볼 뿐이었다.

16553284028636.jpg“너는 속이 퍽 좋구나.”

껄렁껄렁한 어조에 디안의 고운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시녀들을 응시하며 그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던 중 그녀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디안은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다가 다소 날카롭게 물었다.

16553283989138.jpg“너는 오늘 처음 보는데. 얼굴을 들어 봐라.”

디안의 명령에 지목된 시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16553283989138.jpg‘부드러운 금발에 색이 다소 짙은 파랑의 눈동자, 미색이 눈에 띌 정도는 아니지만…….’

잠시 시녀를 보며 생각에 잠겼던 디안은 시선을 돌리며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16553283989138.jpg“다들 나가. 잠시 오라버니와 독대를 하고자 하니.”

시녀들이 우르르 몰려나가자 디안은 오라버니인 레녹스 푸아티에 백작을 응시하며 작게 말했다.

16553283989138.jpg“금발에 푸른 눈은 시녀로 두면 안 된다고 했을 텐데요?!”

16553284028636.jpg“금발에 푸른 눈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골라내면 시녀를 어떻게 뽑아?”

16553283989138.jpg“그래도 제 말대로 하세요.”

디안은 두 눈을 부릅떠 오라비를 노려보며 명확하게 말했고, 결국 레녹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디안은 그제야 시선을 돌려 보고 있던 옷감 견본을 만지작거렸다. 그것은 결혼식 때 카를이 입을 예복의 옷감이었다.

16553283989138.jpg“아무래도 이것이 좋겠어…….”

16553284028636.jpg“속도 좋아. 이걸 무슨 마음으로 고르는 거냐?”

16553283989138.jpg“시녀들 앞에서는 입조심하세요. 말을 고르지 못하시겠으면 아예 찾아오질 말든지요.”

16553284028636.jpg“……한 가지 물어보자.”

16553283989138.jpg“…….”

16553284028636.jpg“황후가 와도 버틸 수 있겠어?”

그 말에 디안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오라비를 노려보았다.

16553284028636.jpg“황제께서는 네가 없으면 죽고 못 살 것처럼 하시지만, 정작 너에게 황후의 자리를 허락하지는 않으셨다. 황후가 오면, 버틸 수 있겠어? 아이도 생기지 않으니, 이거야 원."

본인은 걱정이랍시고 하는 말이지만, 레녹스 푸아티에의 말은 하나같이 가시를 세워 디안 푸아티에의 복장을 긁어 댔다. 디안은 당장이라도 그를 문밖으로 내치고 싶었다. 이곳이 황궁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디안은 냉수로 속을 달랜 뒤 아예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버렸다. 그리고 다시 물품을 고르며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16553283989138.jpg“오라버니.”

16553284028636.jpg“그래.”

16553283989138.jpg“황후는 폐하에게서 그 어떤 것도 허락받지 못할 거예요.”

16553284028636.jpg“……그게 무슨 소리야?”

16553283989138.jpg“폐하는요, ‘황후’라는 단어에 극심한 거부감이 있어요.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

동생의 말을 잠시 곱씹던 백작은 눈을 가늘게 뜨며 반박했다.

16553284028636.jpg“거부감이 있든 말든, 황후라는 직함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다!”

16553283989138.jpg“그래 봐야 황제라는 이름 아래에 있는 존재죠. 난 말이에요. 폐하의 사랑을 놓치지 않을 거예요. 폐하께서 저를 사랑하시는 동안엔, 그분을 제외한 누구도 제 위에 있을 수 없어요. 설령 데스포네 공작 전하라 할지라도요. 폐하께서는, 저를 사랑하시기에 저를 황후로 만들지 못하시는 거랍니다.”

16553284028636.jpg“뭔 개소리야?”

레녹스가 기가 막힌다는 어조로 중얼거렸으나 디안은 피식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16553284028636.jpg“그리고 넌 남자를 몰라. 사랑은 식어. 언젠가는 식는 거다, 디안.”

16553283989138.jpg“알아요.”

16553284028636.jpg“알아?”

디안은 해사하게 웃었다.

16553283989138.jpg“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은 식죠.”

16553284028636.jpg“…….”

16553283989138.jpg“그런데 죽어 버린 사람에 대한 사랑은요, 식지 않아요. 죽음은, 그래서 영원불멸한 이름으로 남나 봐요.”

디안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제 목에 걸려 있는 로켓을 꺼냈다. 로켓의 뚜껑을 열자 그곳엔 낯설지만 디안과 똑 닮은 가냘픈 여인의 초상화가 있었다. 굽이치는 탐스러운 금발과 옅은 하늘색의 눈동자. 로켓 속 초상화의 여인. 그녀는 카를 울리히의 죽은 생모였다.

16553283989138.jpg“폐하는요, 저에게서 자신의 어머니를 보고 계신 거예요. 황후는, 이름부터 그에게서 멀어지는 존재랍니다. 선대 황후와 지금의 폐하가 얼마나 사이가 나빴는지, 잊으셨나요?”

그러니 저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식겠어요? 가진 것이라고는 직함뿐인 황후보단 사랑과 권력을 양손에 쥔 첩이 낫죠. 디안은 눈을 곱게 접어 웃으며 로켓을 닫았다.

16553284028636.jpg“황제는 그렇다 치고, 황후와는 어떻게 지내려고?! 어떤 여자인지 모르잖아? 그러게, 내가 그렇게 황제 결혼 전에 임신을 하라고 했는데도!”

16553283989138.jpg“그게 제 마음대로 되는 일이에요?!!”

디안은 결국 버럭 화를 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뜨거운 것을 억지로 삼키는 사람처럼 눈을 감고 감내하더니 이윽고 억눌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16553283989138.jpg“어떤 여자건 상관없어요.”

백작은 미간을 모으며 중얼거렸다.

16553284028636.jpg“뭔 소리야?”

16553283989138.jpg“태어나자마자 황녀였으니 모두가 그녀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받들었겠죠. 사람들이 그녀를 황녀로 만들어 주었을 거예요. 사람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 대접으로 만들어지는 존재니까요. 저는 거지도 왕처럼 느껴지게 만들 수 있어요.”

16553284028636.jpg“……어떻게?”

16553283989138.jpg“거지 앞에 수많은 사람이 고개를 숙이게 하면 돼요. 그럼 길을 가던 이들도 거지에게 고개를 숙일 거예요.”

레녹스의 얼굴을 한심한 듯 바라보던 디안은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옷감을 들어 올렸다.

16553283989138.jpg“암튼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이건 상관없다는 뜻이에요. 이곳에는 그녀를 대단하게 만들어 줄 사람들이 없을 테니까요. 이국의 황녀가 뭘 어쩌겠어요? 도움 한번 청하려면 바다 건너 왔다 갔다, 반년은 걸리겠군요.”

  * * * 그리고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수도 관문 앞에 한 무리의 말을 탄 기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위엄 넘치는 검은 망토를 입은 그들에게선 장렬한 기백이 느껴졌다. 때는 늦여름이었다. 드넓은 평야엔 색색의 들꽃이 만발하고 머리 위로는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부는 바람에 이리저리 한 무리로 흔들리는 색색의 들꽃과 금빛으로 부서지는 햇살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검은 망토 입은 수십의 기사들은 아름다운 평원 너머에서 나타날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가장 앞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던 이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언뜻 푸르게 보이는 검은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그는 에흐몬트 국방부 장관이자 근위기사단장인 리오넬 발드르였다. 유서 깊은 발드르 공가의 직계이며, 눈이 휘둥그렇게 변할 만큼 수려한 아름다움을 가진 남자이기도 했다. 다름 아닌 에흐몬트의 차기 황후를 마중하는 일이었기에 특별히 그가 대표로 나오게 된 것이었다. 리오넬은 지평선 끝에서 시작된 검은 점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햇살 아래에서 오래 기다렸던 탓인지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16553284089906.jpg“저기, 오시는 듯합니다!”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은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인지 누군가가 밝은 목소리로 리오넬에게 말했다.

1655328408991.jpg“그래. 나도 보았다. 슬슬 나가 보자.”

리오넬이 가볍게 고삐를 흔들자 말은 구보를 시작했고, 그것을 신호로 뒤에 있던 기사들도 일제히 말을 몰았다. 햇살 아래에서 오랫동안 서 있었던 말들이 기분 좋게 달리기 시작하자 수풀 아래에서 날개를 접고 쉬고 있던 새들이 놀라 일제히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한편, 마차 안에서 지겨운 시간을 감내하고 있던 아델은 땅을 흔드는 말발굽 소리에 몸을 반쯤 일으켜 창가를 내다보았다. 수십 마리의 말이 지면을 박차는 소리가 경쾌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 무리의 기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를 마중하러 나온 이들이 틀림없었다. 벌써 두 달 가까이 배와 마차에서 시간을 보낸 그녀의 인내심은 이제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아델은 가까이에서 말을 몰고 있던 이에게 불쑥 물었다.

16553284089914.jpg“얼마나 더 가야 하는가?”

16553284089906.jpg“지금 보이는 것이 1관문입니다. 2관문을 통과해야 하니 한 시간 정도 더 가야 합니다.”

16553284089914.jpg“한 시간…….”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내내 열어 두었던 창문을 닫고 커튼도 쳐 버렸다. 시중을 들던 시녀가 깜짝 놀라 그녀를 쳐다보자, 아델은 직접 상자에서 옷 한 벌을 꺼내며 씩 웃었다.

16553284089914.jpg“옷을 갈아입어야겠구나.”

시시각각 커지는 말발굽 소리에 맞춰 마차의 속도는 서서히 느려졌다. 이윽고 마차가 완전히 멈춰 서자 아델은 일어서며 문을 바라보았다. 마차 밖에서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저벅저벅 마차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똑똑. 정중한 노크 소리와 동시에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655328408991.jpg“잠시 문을 열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깊은 울림을 내는 목소리였다. 아델은 대답하는 대신 마차의 문을 직접 열었다. 열리는 문 사이로, 가장 먼저 오묘한 푸른빛이 보였다. 오묘한 것이 예쁘네. 아델은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한편, 마차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리오넬은 갑작스럽게 열리는 문에 조금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커튼을 꼭꼭 쳐 어둑한 마차 속에서 불쑥 고개를 들고나오는 이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어둑한 마차 내부에서도 빛을 발할 만큼 선명한 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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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아델이 마차 밖으로 몸을 내밀고서야 자신이 그녀를 무례할 만큼 빤히 쳐다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리오넬은 얼른 정중한 태도로 손을 내밀었고, 아델은 그의 손 위에 가볍게 제 손을 얹었다. 아델이 그의 손을 잡고 막 계단을 내려오는데 바람이 불었다. 칠흑처럼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려 리오넬의 뺨을 훑고 지나갔다. 뺨을 간질이는 머리카락을 따라 그가 시선을 돌림과 동시에, 손 위에 얹혔던 무게가 사라졌다. 이국의 황녀가 땅을 딛고 서서 가만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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