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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황후궁과 상아궁 (16/127)

16화. 황후궁과 상아궁2021.05.25.

리오넬은 불에 덴 듯한 손바닥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말아 쥐며 고개를 들어 황후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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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완벽한 모습만 보여 주던 황후의 일그러지고 흐트러진 민낯이 잔상처럼 뇌리에 남았다. 곧게 서서 폭풍을 온몸으로 받아 내는 나무는 멀리서 볼 땐 고고했으나, 가까이에서 보니 사정없이 흔들리고 휘어져 있었다.

16553286807156.jpg‘그토록 해사하게 웃던 사람인데.’

상처 난 민낯을 억지로 가린 채 사력을 다해 가느다란 어깨를 편 그녀를 볼 때마다 그래서 그렇게 가슴이 선득했나 보다. 하지만 그는 이내 자조적인 표정으로 작게 고개를 저었다. 황후를 안쓰럽게 여기는 제 마음이 참으로 헛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 * * 무슨 정신으로 황후궁에 도착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아델은 옷도 벗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기어 올라갔다. 긱스 부인이 시녀들을 내보내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아델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몸을 말았다. 새삼 느끼지 못했던 이불 냄새가 났다. 늘 맡던 냄새가 아니었다. 유모는 늘 이불을 햇볕에 말려 주었다. 햇살 먹어 바삭바삭한 이불, 은은한 비누 냄새에 섞여 든 공기 냄새, 햇살 냄새. 그것은 말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몸이 기억하고 마음이 품은 것이었다. 눈물이 흘러 이불을 적셨다. 황태녀 직위를 내려놓았던 날도 울지 않았다. 오랜 친구들을 모두 남겨 두고 해협을 넘던 날도, 그들이 그리웠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그냥 그랬다. 아델라이드는 눈물에 인색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멍하니 크게 뜬 눈에서 눈물이 고일 새도 없이 담을 넘었다. 이까짓 일이 뭐라고 이러는지 화가 났다. 그래도 눈물이 멈추지를 않아서 아델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제 몸보다 커다란 구멍이 가슴에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언제든 아델을 집어삼킬 준비가 되어 있는 끝도 없이 깊고 커다란 구멍이. 발끝이 낭떠러지에 닿았다. 몸을 휘청이면 깊고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아델은 깊고 검은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까마득한 구멍에서 바람이 휘몰아쳐 올라왔다. 삶이 가혹하게 휘몰아쳐 가느다란 어깨를 자꾸만 떠밀었다. 고트로프의 마녀, 고트로프의 흑표범. 그 별명을 지어 준 사람들은 알까? 이 거대하고 아득한 공허 앞에 덜덜 떠는 가느다란 어깨를. 동서남북, 하늘과 땅의 구분마저 사라진 아득한 공간. 도대체 무엇이 옳은 것인지, 어떤 길로 걸어야 하는지조차 잃어버린 자의 서러운 울음을. 거세게 흔들린 영혼이 도저히 어찌할 바를 모르고 검은 구멍 앞에서 달이 기울도록 떨었다. 시간은 느리게 길을 걸었다. 먹먹한 어둠도 시간을 따라 걷고 걸었다. 밤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또한 지나가는 것.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의 걸음에 어느새 옅은 빛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서서히 밝아 오는 빛은 어둠의 등을 바짝 따라붙어 있는 힘껏 어둠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날이 밝았다. 시체처럼 누워 있던 아델은 새벽녘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잠을 잤는지, 아니면 밤을 꼴딱 지새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몸을 담갔다. 얼굴에 묻은 화장을 손으로 문질러 지워 내고 한참이나 몸을 씻다가 홀로 중얼거렸다.

16553286807159.jpg“자, 유모. 내게 말해 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유모를 그리자 주름진 눈이 달처럼 휘었다. 어머니의 의견과 반대되는 일을 할 때마다 아델은 늙은 유모를 붙잡고 매달렸다. 그러면 그녀는 푸근한 가슴으로 아델을 끌어안고 도닥이며 답했다.

16553286807163.jpg‘편안하시려면, 폐하의 의견을 따르시는 게 유리하죠.’

16553286807159.jpg‘…….’

16553286807163.jpg‘저한테 화내지 마세요. 그럴 거면 제게 왜 물으십니까? 길은 정해 놓으셨잖아요.’

  유모는 아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16553286807163.jpg‘묻지 말고 황녀님 길을 걸으세요. 다른 길로 걸었다면 더 나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하실까 두려우신가요? 그런데 말입니다, 삶은 과정일까요, 결과일까요? 위인들의 삶은 결과로 포장되지만, 그것은 그들이 죽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우린 살아 있잖아요. 과정인가 결과인가는 개인이 선택할 문제예요.’

  유모가 아델을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속삭였다.

16553286807163.jpg‘하고 싶은 일을 하되, 따르는 모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세요. 황녀님 같은 분들이 짊어질 운명의 몫이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 세상은, 황녀님 같은 분들이 바꾸는 것이지요.’

  호탕한 그녀의 웃음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자 문득 가슴 저 아래에서 웃음이 끓어올랐다. 욕실 벽에 부딪혀 돌아오는 저음의 음산한 웃음소리에 한순간 등골이 서늘해진 시녀들이 욕실 밖에서 술렁거렸다.

16553286807163.jpg“무서워…….”

어린 시녀 하나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으나 다른 시녀들도 그녀를 책망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한 가지의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은 황후 폐하는.

16553286807163.jpg“정말 무서워…….”

소름이 돋는다. 본인 말고 주위 사람들이. * * * 손발이 하얗게 부르트도록 몸을 담그고 나온 아델은 말끔해진 얼굴로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첫째, 황제는 칼뱅 백작을 부른 것에 대해 화를 냈으나, 황후로서 백작을 불러 금괴를 건넨 일은 결코 잘못한 일이 아니다. 다 죽어 가는 사람들을 사지에 몰아 둔 그 몰상식하고 비인간적인 행위의 이유나 알아보자. 둘째, 빌어먹을 첫날 밤은 개나 줘 버려라. 안아 달라면 안아 줘? 키스를 할 테니 눈을 감아? 생각할수록 열 받네. 앞으로 볼 화장은 죽을 때까지 하지 않겠다. 셋째, 디안 푸아티에. 그녀가 아델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어제부로 명확해졌다. 황후건 뭐건 간에 이미 제가 차지하고 있던 궁과 황제를 빼앗긴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 기분, 존중한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하룻강아지도 제 밥그릇을 빼앗기겠다 싶으면 채 나지도 않은 이를 드러내는 법이니. 그러나 ‘아, 그렇구나. 그럼 내가 비켜 줄게.’ 하는 것은 이쪽도 사양이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정을 봐주는 것도 호의적인 상대에게나 하는 것이지 대놓고 날을 세우는 상대에게 호의는 무슨, 호구 잡힐 일 있나. 아무튼 결론은.

16553286807159.jpg“황제의 힘과 별개로 내 힘을 길러야겠다.”

황제의 총애를 가져오기 위해 얼굴을 예쁘게 다듬고 디안 푸아티에와 사랑 경쟁을 하는 것은 죽어도 못 하겠다. 아델은 깊고 긴 숨을 몰아쉬었다. 결론을 내리고 나니 술렁이던 가슴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손을 올려 제 어깨를 만져 보았다. 리오넬 발드르. 어깨를 받쳐 오던 강인하고 부드러운 힘과 단단한 손바닥이 떠올랐다. 그가 나타나 잡아 주지 않았더라면, 꼴사납게 계단까지 굴렀을 것이다. 눈을 내리깔고 침묵하던 아델은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한숨을 내쉬었다.

16553286807159.jpg“배우자 운이 영 꽝이잖아.”

어머니가 총애하던 점쟁이는 아델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16553286807163.jpg‘아델라이드 황녀님께서는 운을 타고 나셨습니다. 부모 운보다는 배우자 운이 크고, 자녀 운도 훌륭하십니다. 아아, 물론 부모 운도 대단하시지만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은 아델은 결국 신랄하게 중얼거렸다.

16553286807159.jpg“거봐. 완전 돌팔이 사기꾼이라니까.”

  * * * 어제저녁, 궁으로 돌아온 황후의 얼굴은 창백했다. 원래도 창백한 사람이 더 하얗게 질리자 보는 사람의 심장이 철렁할 정도였다. 긱스 부인은 긴 시간을 황궁 총관리인으로 일했다. 비록 시녀 개개인에 대한 영향력은 사라졌다 해도 황궁엔 그녀와 함께 일했던 오랜 동료들이 남아 있었다. 부인은 서둘러 그들에게 달려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고 물었고, 새벽이 밝기 전 일의 전모를 들을 수 있었다.

16553286807163.jpg‘황제 폐하를 뵙고 나오실 때 이미 표정이 좋지 않으셨고, 디안 푸아티에에게 제대로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계단에서 넘어질 뻔하신 것을 국방부 장관께서 잡아 주셨지요.’

  긱스 부인은 아델이 이러다 몸져눕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새벽녘에 일어나 몸을 씻고 나온 황후가 보란 듯이 거나하게 아침을 드시기 시작했던 것이다.

1655328683502.jpg“천천히 드십시오.”

16553286807159.jpg“음.”

황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손과 입을 쉬지 않았다. 잘 익은 베이컨, 툭 건드리면 고소한 노른자가 쏟아지는 수란, 신선한 과일 주스. 아델은 음식의 풍미를 느끼며 배가 부를 때까지 식사를 이어 갔다. 입가심으로 주문한 진한 커피를 막 들어 올릴 때였다. 웬일로 시종이 아델을 찾아왔다.

16553286807159.jpg“무슨 일인가?”

긱스 부인의 물음에 그는 정중히 고개를 조아리며 품에서 붉은 봉투를 꺼냈다.

1655328683502.jpg“일전 말씀하셨던 추경과 관련한 것입니다. 긴급예산 추경이 완료되었으니 확인해 보시라는 말씀을 전합니다.”

아델이 입도 대지 않은 커피잔을 소서에 내려놓자 긱스 부인은 얼른 시종에게서 봉투를 가져와 그녀에게 내밀었다. 붉은 봉투 속에는 빳빳한 종이 한 장이 접혀 있었다. 아델은 종이를 펼쳐 황후궁 예산을 확인했다.

16553286835042.jpg“…….”

방 안의 모든 사람이 황후의 얼굴을 주시했다. 위에서 아래로 시선이 한 번 움직였음에도 인형 같은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문서를 가져온 시종은 괜히 불안하여 손가락을 뒤로 꼼지락거렸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황후가 고개를 들며 긱스 부인에게 물었다.

16553286807159.jpg“황궁 총예산 내역에 대한 열람 권한이 내게 있는가?”

1655328683502.jpg“예, 있습니다.”

16553286807159.jpg“보고 싶으니 가서 가져오게.”

부인은 정중히 고개를 조아렸다.

1655328683502.jpg“알겠습니다, 황후 폐하.”

긱스 부인이 몸을 돌려 나가는 사이, 황후는 종이를 옆으로 툭 떨어뜨려 놓으며 커피잔을 다시 우아하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자꾸만 불안하게 그녀의 눈치를 보는 시종에게 무심한 목소리로 물었다.

16553286807159.jpg“이 문서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황제께서 보내셨는가?”

16553286807163.jpg“아, 아닙니다. 상아궁에서 왔습니다.”

16553286807159.jpg“상아궁……. 그곳에서 이런 일도 하는 모양이구나.”

16553286807163.jpg“그, 그것이…….”

16553286807159.jpg“자네는 잠시 기다리게. 그에게 대기실을 내주고 내가 부를 때까지 대기토록 해라.”

16553286807163.jpg“아, 네, 알겠습니다.”

시종은 깜짝 놀라며 황급히 대답했고 시녀들은 그를 데리고 종종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아델은 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한쪽에 나뒹굴고 있는 종이를 노려보았다. 아침 잘 먹고 체하겠네. 짐승은 약해진 틈에 잡는 법이다. 어제 그렇게 한 방 먹였으니 오늘 확인 사살을 하여 완전히 끝장을 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16553286807159.jpg‘황후궁의 긴급예산 추경을 첩에게 맡기는 황제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오늘도 아주 진귀한 꼴을 보는군.’

고작 말 한 마리 값도 되지 않는 금액. 그것이 긴급 추경 된 예산이라고 적혀 온 금액의 전부였다. 잠시 후, 아델은 긱스 부인이 가져온 총예산 내역을 싸늘한 시선으로 확인하였다.

1655328683502.jpg“도대체 적혀 온 금액이 어떠했기에…….”

긱스 부인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아델은 내려놓았던 종이를 집어 아예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16553286807159.jpg“한번 보시오. 어떤지.”

노안으로 초점이 맞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린 채 목을 길게 빼고 내용을 확인하던 긱스 부인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황후를 바라보았다.

1655328683502.jpg“황후 폐하, 이건!”

16553286807159.jpg“고작 말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것 아닌가? 그것도 명마가 아니라 그냥 흔해 빠진 준마.”

아델은 벌써 석 잔째 마시고 있는 커피를 또 한 모금 마시며 중얼거렸다. 왼손으로 황궁 전체 예산이 적힌 책자를 찬찬히 넘기며 다른 쪽에 배치된 예산을 확인하던 그녀의 시선이 한 지점에서 고정된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달칵, 잔을 내려놓은 아델은 아예 커피잔을 옆으로 밀어 놓고 책자를 몸쪽으로 끌어당겼다. 오른손 검지로 잔잔하게 적힌 내역을 짚어 가며 읽던 그녀는 어느 순간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등을 의자에 깊숙하게 기대앉았다.

16553286807159.jpg“내 상식으로 보자면, 상아궁에 배치된 금액이 황후궁에 배치된 금액이어야 맞는데. 에흐몬트 황궁에 오래 있었으니 한번 보시오.”

아델이 긱스 부인 쪽으로 책자를 밀자 부인이 고개를 기울여 내역을 확인했다.

1655328683502.jpg“……황후궁에 배치되는 금액의 수준을 상회합니다.”

아델은 고개를 끄덕이며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16553286807159.jpg“왔던 시종을 들라 하시오.”

  * * * 디안 푸아티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86884297.jpg“그러니까, 다시 책정하라고?”

16553286807163.jpg“……네, 네, 궁주님.”

시종은 직감적으로 잘못 걸렸음을 깨달았다. 황후와 궁주 사이에 끼어서 애먼 동네북이 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이런 역할을 잘못 맡아 골로 가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숱하게 들어 왔는가? 어떻게 해야 빠져나갈 수 있을까? 그럴 방법은 있을까? 가다가 오줌이라도 지리고 쓰러져야 하나……. 참담한 심정으로 온갖 생각을 하고 있던 그에게 디안은 뭔가를 휙휙 휘갈기더니 도장을 꾹 찍어 내밀었다.

16553286884297.jpg“자, 이 정도면 만족하실지 모르겠네.”

16553286807163.jpg“버, 벌써 말입니까?”

16553286884297.jpg“그럼 한나절 걸릴 일이니?”

재촉하는 디안의 성화에 시종은 얼른 봉투를 넘겨받았다.

16553286884297.jpg“지금 가져다드리거라. 알겠느냐? 지금, 당장.”

16553286807163.jpg“……알겠습니다.”

시종은 떨리는 마음으로 고개를 조아리고 몸을 돌렸다. 봉투를 움켜쥔 손이 축축하게 젖어서 그는 서둘러 봉투를 품에 넣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16553286807163.jpg‘적으니 더 증액하라는 요청에 이렇게 빨리 응해 버리면, 그렇게 쉽게 더 증액할 수 있었는데 왜 적게 줬냐고 하실 거야. 읽자마자 꼭 무슨 묘소에서 튀어나온 귀신처럼 싸늘하게 웃으셨는데……. 이건…… 제대로 증액한 것일까?’

그는 눈을 질끈 감으며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 * * 충분히 증액이 되어 황후께서 ‘이대로 족하다.’라고 하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불쌍한 시종의 곤욕은 끝나지 않았다. 그의 예상대로 황후께서는 1차로 너무 빨리 돌아온 것에 화를 내셨다. 물론 그에게 화를 낸 것은 아니지만, 고래 싸움에 끼인 격인 시종의 입장에선 그것조차 무서웠다.

16553286807159.jpg“이렇게 빨리 도착했다는 것은, 아예 예산 추경 전결권이 상아궁에 있다는 의미로구나?”

아델은 황제가 제정신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2차로 적힌 금액에 대로했다. 황후는 가차 없이 종이를 버린 뒤 시종에게 명했다.

16553286807159.jpg“다시 다녀오너라.”

16553286807163.jpg“……예…….”

시종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황후궁을 터덜터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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