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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보좌관 공고를 낼 것이오 (21/127)

21화. 보좌관 공고를 낼 것이오2021.06.12.

붉은 하늘과 내리치는 섬광. 하늘을 찢고 나타난 검은 탑이 하얗게 부서져 타올랐다. 압도적인 재앙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을 목격한 모두가 너도나도 이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탑이 출현한 이래, 사람들은 절망적인 순간을 극적으로 바꿔 놓은 ‘마법사’라는 존재에 열광했다. 마법사를 연호하고, 존경하고, 심지어는 추앙하기에 이르렀다. 극단적인 사람들은 아예 그들을 신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나타나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앞다투어 달려 나와 감사를 표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바야흐로 마법사의 시대였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기사들의 존재는 마법사의 등장 이후 아주 작아져 있었다. 한편, 권력에 가까운 귀족들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16553287796357.jpg“황후 폐하께서 홀로 탑을 파괴하신 것이라고?”

16553287796357.jpg“세상에. 그럼 황후께서 마법사셨다는 말씀이군요? 하늘로 날아가서 직접 탑을 파괴했다고 하던데,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입니까?”

16553287796357.jpg“그러게요. 탑이 땅에 닿기 전에 파괴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까? 아무튼, 탑을 파괴하셨다니 키퍼보다는 스트라이커겠지요?”

16553287796357.jpg“흐음. 데스포네 공께서 황후 폐하를 포섭하려 하시겠는데요. 단독으로 탑을 파괴하셨다니! 혹 레녹스 푸아티에보다 급이 높은 것 아닙니까?”

16553287796357.jpg“그것도 묘한데요? 황후께서 데스포네 공의 포섭 제안에 응하시면요? 디안 푸아티에의 오라비인 레녹스 푸아티에와 한 집단에 속하게 되는 것인데. 이거, 관계가 어떻게 되는 겁니까?”

16553287796357.jpg“관계는 무슨? 그냥 개판이지.”

16553287796357.jpg“말 좀 조심하시오. 누가 듣소?”

면박당한 귀족은 멋쩍은 얼굴로 커흠흠, 헛기침을 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16553287796357.jpg“그런데 말이오.”

16553287796357.jpg“…….”

16553287796357.jpg“고트로프에서는 마법사이기까지 한 황녀를 왜 에흐몬트로 보냈을까요? 그것도 혈혈단신으로.”

그의 의문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87796357.jpg“그러게 말이오. 듣자 하니 적통 황녀라 하시던데.”

16553287796357.jpg“고트로프 실세는 태후라 하던데, 모녀가 사이가 나빴나 보죠. 가서 죽어 봐라, 이거 아니겠습니까? 권력 앞에 핏줄이 뭐 얼마나 중요하던가요?”

16553287796357.jpg“그런 말은 조심하라니까 참!”

16553287796357.jpg“커흠흠.”

  * * * 불어오는 늦여름 바람에 여름의 뒤를 바짝 쫓아온 가을이 한 줄기 묻어 잎사귀에 한 줌 내려앉았다. 리오넬은 눈을 가리는 앞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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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푸르게 맑았다. 좀 전의 붉은 하늘이 거짓말처럼 여겨져서 허탈하기까지 했다. 재앙을 간신히 면한 사람들의 환희가 물결쳐 일렁이는 이때에 허탈하다니, 말이나 될 감정인가? 하지만 그 이외의 것으로 이 마음을 대신할 수가 없었다. 지옥 속에서 얼마나 길게 버틸 수 있을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이 고작 몇 시간 전이다. 한데, 황후는 검은 재앙을 올려다보더니 심각함이라고는 조금도 묻어 있지 않은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16553287824281.jpg‘5급에 가까운 4급이니 기다릴 것 없겠어.’

  그녀가 했던 모든 말이 뇌리에 각인이라도 된 것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가는 몸이 훌쩍 들리려는 것을 다급히 잡았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어깨는 놀라울 정도로 가늘고 여렸지만, 투박하고 거친 그의 손을 밀어낸 것은 강력한 마력이었다. 리오넬은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마력의 강렬한 느낌이 아직도 손에 남아 저릿했다. 에흐몬트에서 마법사란, 국방부 장관인 그조차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존재였다. 마법사들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정보를 독점했으며, 은밀하게 움직였다. 마력을 제대로 느껴 본 것도 사실 이번이 처음이었다. 리오넬은 몇 번이나 이 장면을 되돌리고 또 되돌렸다. 낙하하는 황후를 받아 보겠다고 달려 나가 두 팔을 벌린 것은 사실 이성적인 판단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불타는 탑은 마치 커다란 원통 같았다. 부서지는 탑을 가로질러 내려오는 황후는, 거대한 재앙보다도 더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찬연하게 쏟아지던 불꽃, 그리고 그 불꽃보다 강렬한 금빛 눈동자. 폭포처럼 쏟아지던 검은 머리카락.

16553287824281.jpg‘아무튼, 호의는 고맙게 받겠소. 더불어, 어제 일도.’

  웃음이 스며든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는 듯해서 리오넬은 작게 머리를 흔들었다.

16553287796357.jpg“도련님!”

마중 나온 집사의 부름에 리오넬은 그제야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생각에 잠긴 사이 어느새 발드르 공저 입구에 도착한 것이다.

16553287824296.jpg“형님은 안에 계시나?”

16553287796357.jpg“예.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말을 시종에게 넘겨준 리오넬은 서둘러 테세우스의 집무실로 향했다. * * * 한편 그 무렵, 데스포네 공작은 다급한 걸음으로 마법사단 관저의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16553287853033.jpg“레녹스!!!”

공작의 목소리에 레녹스 푸아티에가 빠르게 달려 나왔다.

16553287853039.jpg“공작 각하!”

레녹스를 이끌고 단장 집무실로 들어가 문을 거칠게 닫은 뒤, 데스포네 공작은 빠르게 몸을 휙 돌리며 은밀한 목소리로 다급히 물었다.

16553287853033.jpg“황후가 마법사라고?”

그에 얼굴에는 미처 숨기지 못한 초조함과 불안,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을 맞닥뜨린 불쾌함이 드러나 있었다. 레녹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16553287853039.jpg“그렇습니다.”

16553287853033.jpg“다른 마법사의 도움도 없이 혼자 탑을 박살 냈다는 것도 사실이고?”

16553287853039.jpg“……예, 그렇습니다.”

데스포네 공작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무언가를 치열하게 계산하는 듯 안락한 소파에 몸을 묻고 두 손을 모은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얼마나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미간을 찌푸리던 공작이 ‘흐음’ 하는 소리를 내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16553287853033.jpg“황후께서 마법사라?”

끝이 살짝 올라가는 느른한 말투에 레녹스는 시선을 돌리며 속으로 탄식했다. 붉은 하늘을 가로질러 내려온 검은 재앙, 5급에 가까운 4급 탑은 그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니었다. 콧대를 세우던 기사 놈들이 몇 나자빠진 뒤에 멋지게 등장하여 깨부숴 줄 생각이었다. 로브를 휘날리며 그의 무대가 될 장미 정원으로 향하던 레녹스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하지만 그가 도착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탑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탑을 휘감아 치솟는 불길을 본 레녹스는 된서리를 맞은 것처럼 온몸이 얼어붙었다. 황후라고 했다.

16553287853039.jpg‘……황후?!’

  황후가 그것을 깨부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먼 나라에서 쫓겨나듯 시집온 황후가 마법사, 그것도 스트라이커였다니?! 그것은 황제조차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16553287853033.jpg“참…… 대단한 인재셨군. 고트로프 태후께서 중요한 것을 빼먹고 말씀을 안 하셨네.”

데스포네 공작이 긴 백금발을 쓸어올리며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그 미묘한 어조에 레녹스는 오싹한 소름과 진득한 식은땀이 함께 등골을 타고 내려가며 온몸이 싸늘하게 식었다.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 * * 공작이 나가자마자 레녹스는 상아궁으로 달려갔다. 피신했던 고용인들이 복귀 중인 상아궁은 어수선했다. 레녹스는 상아궁에 들어서자마자 시녀 한 사람을 붙잡고 다그쳤다.

16553287853039.jpg“궁주님은 어디 계시느냐?!”

16553287796357.jpg“집무실에 계십니다.”

시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레녹스는 집무실이 있는 2층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집주인인 양 스스럼없는 모습이지만, 상아궁의 누구도 그를 제지하지 못했다. 쾅! 이윽고 레녹스는 노크도 없이 무례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책상에 앉아 있던 디안이 짜증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16553287874866.jpg“제발 좀……!”

16553287853039.jpg“너 나가.”

그러나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레녹스는 대기 중이던 로레인에게 명령했다. 로레인은 눈을 껌뻑이며 디안을 바라보았고, 디안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레인이 집무실 밖으로 나가자 레녹스는 디안에게 바짝 다가서며 그녀의 배를 응시했다.

16553287853039.jpg“너 아직도 임신 못 했지?”

그 말에 디안이 발작하듯 반응했다.

16553287874866.jpg“제발, 그 말 좀! 임신이 내가 원하면 원하는 대로 되는 거야?!!”

16553287853039.jpg“너 이제 어쩔 거야?!”

16553287874866.jpg“내가 뭘!!!”

16553287853039.jpg“황후가 마법사다.”

16553287874866.jpg“……!”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서 있는 디안에게 레녹스가 바짝 다가서며 으르렁거렸다. 마치 이 모든 것이 제 누이의 탓이라고 다그치듯이.

16553287853039.jpg“황후가 빌어먹을, 스트라이커라고.”

16553287874866.jpg“……황후가 스트라이커?”

16553287853039.jpg“그래.”

그 말에 옅은 하늘색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레녹스의 진득한 불안이 순식간에 그녀에게까지 옮겨붙는 듯했다. 디안은 거칠게 고개를 젓고는 몸을 돌린 채 창밖을 보며 숨을 가라앉혔다.

16553287874866.jpg“그럼…… 탑을 없앤 사람이…….”

16553287853039.jpg“황후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따라붙은 대답에 디안은 눈을 질끈 감았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난감하고 짜증스러웠다. 그저 사지 멀쩡한 인형 정도가 좋았는데. 숨만 쉬고 자리나 보전해 줄 허수아비가 필요했는데. 빌어먹을 마법사라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16553287853039.jpg“데스포네 공께서 대단한 인재라고 하셨어! 나를 더는 쓸모없다 여기시면 어쩌지?”

불안한 듯 발을 동동 구르는 오라비의 말에 디안은 조소했다.

16553287874866.jpg“오라버니가 쓸모없었으면 우릴 데려오지도 않았을 분이에요.”

16553287853039.jpg“그런 말 말고 나를 봐 봐.”

남매는 불안한 침묵에 휩싸인 채 서로를 응시했다. 디안은 오라비의 눈을 바라보며 가슴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이런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그녀는 배에 힘을 단단히 주었다.

16553287874866.jpg“황후가 마법사다?”

16553287853039.jpg“그래.”

16553287874866.jpg“그래서?”

16553287853039.jpg“뭐?”

16553287874866.jpg“그래서?”

16553287853039.jpg“……미쳤어?”

16553287874866.jpg“정신 산만해. 그만 좀 징징거려. 징징거리면 뭐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만하라고요.”

디안은 피곤한 듯 고개를 저으며 레녹스를 지나쳐 소파로 걸어갔다. 그리고 레녹스가 멍하니 바라보는 가운데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16553287874866.jpg“오라버니는 마법사 아녜요? 그것도 에흐몬트에서 최고로 강력한 스트라이커.”

16553287853039.jpg“그렇지.”

16553287874866.jpg“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요. 눈 똑바로 뜨고 마법사단이나 잘 지키란 말이에요. 폐하는 제가 잘 지킬 테니. 바뀌는 것은 없어요. 에흐몬트에 마법사가 없던 것도 아니고. 다들 놀라긴 하겠지만 그뿐. 흔들리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16553287853039.jpg“…….”

디안의 표정은 어느새 차분해져 있었다. 그녀의 확신 어린 말에 레녹스도 불안한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16553287853039.jpg“그래, 그렇지? 네가 임신은 못 했어도 폐하께서는 아직 네 치마폭에 쌓여 계신 거야, 그렇지?”

16553287874866.jpg“그 말 좀, 제발!!! 네가 임신할 거 아니면, 입 닥치라고!”

16553287853039.jpg“알았어, 알았어. 조심할게, 조심해야지.”

디안은 계속해서 그녀를 추궁하는 오라비를 빤히 쳐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누이는 서로를 응시했다. 따뜻한 봄도, 더운 여름도, 청명한 가을도 아닌 시리도록 차가운 겨울 하늘의 눈동자. 두 사람은 그들의 눈동자 색처럼 차갑던 계절의 하늘을 맨몸으로, 서로의 온기만으로 버텨 살아남았다.

16553287874866.jpg“어차피 이 제국의 주인은 폐하세요. 황후가 황후궁이나 지켜야지 어딜 나다니겠어요?”

16553287853039.jpg“그래, 그렇지! 혼자서 뭘 어쩌겠어.”

16553287874866.jpg“우리가 어떤 시간을 견뎠는데, 고작 이런 일로 무너져?”

레녹스의 눈이 어둡게 침잠했다.

16553287853039.jpg‘무릇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되고, 없는 자는 그 가진 것까지 빼앗기리라.’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이 명제를 두 사람은 정면으로 깨부쉈다. 그리고 지금도 온몸과 마음을 바쳐 깨부수는 중이었다.

16553287853039.jpg“이 빌어먹은 세상. 가진 것들은 더 많이 가지고 그것을 당연한 듯 누리지. 하지만 그것들이 탯줄처럼 쥐고 태어난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 안 그래?”

레녹스의 얼굴에 희미한 광기가 스며들었다. 그리고 디안은 광기에 젖은 오라비의 목줄을 손쉽게 잡아채며 그의 귓가에 주문을 외우듯 속삭였다.

16553287874866.jpg“그럼요 오라버니. 황후가 마법사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결국 마지막에 웃는 것은 우리일 테니.”

  * * * 조력자 없이 홀로 탑을 파괴하는 것을 두고 아델은 이렇게 정의했다.

16553287824281.jpg‘객기.’

마력의 중추인 탑이 사라지면 한순간 폭주했던 마력이 숭덩숭덩 빠져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객기를 부린 뒤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가라앉는 몸을 이끌고 아델은 필사적으로 발을 움직여 궁 안 자신의 방으로 달려 올라갔다. 그리고 침대에 몸을 묻고 죽은 듯이 잠을 자기 시작했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어찌나 아픈지 저도 모르게 끙끙 앓았다. 누군가가 옷과 신발을 벗기는 것 같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못했다.

16553287824281.jpg“으윽. 허으윽.”

긱스 부인은 자꾸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몸을 들썩이는 황후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았다. 이마에 손을 대어 보니 열이 나는 것 같지는 않아서 염려스러운 마음을 접고 방을 빠져나왔다. 황후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곧 긱스 부인도 알게 되었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궁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16553287796357.jpg“황후 폐하께서 탑을 파괴하셨대!”

16553287796357.jpg“혼자서?”

16553287796357.jpg“그래! 혼자 파괴하셨다고 해. 근위대기사들이 흥분해서 난리도 아니야.”

16553287796357.jpg“그럼 다른 마법사들은?”

16553287796357.jpg“늦게 왔다나? 황후 폐하께서 파괴하고 난 뒤에 도착했다던데?”

16553287796357.jpg“황후 폐하 아니셨으면 근위 기사들의 피해가 컸을 거라더라.”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머리를 맞대고 쑥덕였다. 관록의 전직 총관리인은 이 상황을 요령껏 눈치껏 이해했다. 주름진 눈이 번뜩였다. 그녀는 은밀히 사람을 불러 한 통의 편지를 건네주었다.

16553287959927.jpg“지금 당장 그랜드 공작 전하께 이 편지를 전하여라.”

16553287796357.jpg“예, 부인.”

16553287959927.jpg“빠르게 다녀오너라.”

그녀의 심부름꾼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무리 없이 황궁을 빠져나갔다. * * * 같은 시각, 황제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붉은 하늘, 검은 탑. 황궁이 삽시간에 소란해졌으나 그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저 정도의 탑은 충분히 제거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황궁 안이니 적당한 시점에 탑을 없애라고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할 무렵이었다. 문득 아주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불던 바람의 세기가 약해지고, 핏빛이던 하늘이 조금은 옅어진 듯한 묘한 간극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보았다. 하얗게 타올라 부서지는 탑을. 마법사단이 파괴했구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곧이어 들려온 소식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16553287959939.jpg‘……탑을 파괴한 것이 누구라고?’

16553287796357.jpg‘황후 폐하께서 홀로 파괴하셨다 합니다.’

  황제는 순간 할 말을 잃고 저도 모르게 멍하니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황후의 어깨를 잡은 손에 전해지던 전기의 충격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고트로프의 태후가 제대로 보낸 정보는 딸의 성별과 이름뿐인 것 같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고트로프의 태후는 딸의 고삐를 도저히 잡을 재간이 없어서 에흐몬트로 보내 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을 마친 카를은 은밀한 일을 도맡아 하는 그림자를 불러들였다.

16553287959939.jpg“고트로프로 가서 황녀 아델라이드의 행적에 대해 알아 와라.”

  * * * 다음 날 아침, 화제의 중심인 황후 아델라이드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아직 채 잠잠해지지 않은 수도를 다시 한번 술렁이게 할 명령을 내렸다.

16553287824281.jpg“보좌관 공고를 낼 것이오. 자격 기준은 스무 살 이상의 미혼 남성. 약혼자가 있는 경우 제외하겠소. 면접을 통해 선발할 것이고, 몇 명을 뽑을지는 미정. 선발 요건은.”

16553287959927.jpg“선발 요건은?”

16553287824281.jpg“오로지 내 마음이오.”

긱스 부인은 눈을 접으며 매혹적으로 웃는 황후에게 정중히 고개를 조아린 뒤 그녀의 명을 착실하게 이행했다. 황후 아델라이드가 일으킨 파도가 에흐몬트 사교계에 정면으로 충돌한 것은 명이 떨어진 지 3시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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