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디안의 두려움2021.07.13.
왁자지껄하던 상인들이 부른 배를 두드리며 상아궁을 떠나고, 시녀들은 구입한 물건을 정리했다. 정리를 끝낸 시녀들마저 물러가자 디안은 덩그러니 방에 홀로 남았다. 마음이 이상하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분명 좀 전까지는 이렇지 않았는데. 물건을 고르고 구매를 확정 지을 때, 상인들의 추임새와 칭찬, 시녀들의 아부로 시끄러울 때는 괜찮았는데. 그녀를 왕처럼 떠받들던 사람들이 사라짐으로써 그녀가 왕이었던 시간이 끝나 버린 것이었다. 디안은 가까스로 숨을 들이켰다 내쉬며 술렁이는 가슴을 가라앉히고자 애썼다. 하지만 그래도 도통 진정되지 않자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이기 시작했다. 황제는 어젯밤, 불현듯 찾아왔다가 불현듯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찾아왔다. 기묘한 행동이었다. 다시 돌아온 그는 디안에겐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잠만 잤다. 어딜 다녀왔는지, 무슨 연유로 이러한 것인지 설명할 마음조차 없어 보였다. 그러니 물어보지도 못했다. 왜 갑자기 그랬을까? 왜 갑자기 목덜미의 냄새를 맡고, 생전 묻지 않던 질문을 하셨을까? 순간 그저 술렁이기만 하던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오금 저릴 만큼 무서운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그녀는 참지 못하고 밖으로 달려가 로레인을 불러 댔다.
“로레인, 로레인!!”
“예, 궁주님. 부르셨어요?”
“지금 당장 황후궁 시녀들에게 가서 내가 물을 것이 있으니 들키지 않게 한 사람만 데려와, 어서!!”
“예, 예!”
* * * 방을 불안하게 서성이던 디안은 로레인이 돌아오자 득달처럼 달려가 황후궁 시녀의 어깨를 와락 붙잡았다.
“구, 궁주님!”
“폐하께서 어제, 황후궁에 가셨어?!”
“예, 예?”
“폐하께서! 어제! 황후궁에 가셨냐고?!!”
무섭게 다그치는 디안의 기세에 시녀는 덜덜 떨며 아는 대로 고했다.
“예. 오셨어요.”
“……몇 번.”
“그, 그러니까…….“
“몇 번!!!”
“두, 두 번이요! 두 번이요, 궁주님.”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듯한 기분에 디안은 신음했다. 두려움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알고 싶은 마음과 모르고 싶은 마음이 치열하게 부딪히는 가운데, 디안은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언제 오셨어? 두 번 각각 말해.”
흡사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였다.
“모두 저녁때였어요. 황후 폐하께서 주무시기 전에 목욕을 하셨는데 그 직후 오셨고요. 그리고 화가 나신 것처럼 나가시더니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다시 오셨어요. 이십 분도 되지 않아 나오셨고요.”
“두 번째 오셨던 시각은?!”
“열 시쯤이요.”
“……열 시.”
“네, 그쯤이었어요.”
확실하다는 듯 시녀는 고개를 끄덕여 가며 답했다. 그녀의 어깨를 꽉 쥐고 있던 디안이 힘이 풀린 것처럼 천천히 손을 내리자 시녀는 몸을 사리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힘이 빠진 듯 멍하니 서 있던 디안은 휙 몸을 돌려 침실로 돌아와 카를이 누웠던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운 뒤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심장이 자꾸만 쿵쿵 뛰었다. 디안의 눈동자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떨렸다.
“황후궁에 가셨다가 이곳에 오셨다. 그리고 그 얼굴로 다시 황후에게 다녀오신 거야. 그 얼굴로.”
흥분이 가득 묻은 보라색 눈동자, 거칠어진 숨. 난 당신의 그 얼굴을 알아. 나만 아는 것이지. 나만 알아야 하는 것이지. 왜, 왜? 왜 그런 얼굴을 하고 황후궁으로 뛰어가셨어요?! 디안은 화가 치밀어서 베개를 쥐어뜯었다. 한참 베개에 화풀이하던 그녀는 불현듯 벌떡 일어나 거울로 달려갔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보았다.
“주름이 늘었어. 윤기도 없고. 폐하께선 내 피부를 좋아하시는데.”
상인 대신 피부 관리사를 불렀어야 했다. 몸매도 괜찮은지 허리를 만져 보던 손길이 어느새 아랫배로 향했다. 평평한 배엔 군살 한 점 없었다. 배만큼은 이렇게 날씬한 것이 반갑지 않았다.
“왜 안 생기는 거야. 도대체 왜.”
황궁 주치의 말로는 그녀도, 황제도 불임이 아니라고 했다. 둘 다 건강하다고 자신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이 확인해 준 사실이었다.
“그런데 왜…….”
디안은 절망적인 어조로 중얼거리며 간절히 빌었다. 우는지도 모르고 울면서 온 마음을 다해서. 제발, 아이가 생겨야 한다고. 나를 좀 살려 달라고. * * * 한편, 황후궁.
“상아궁 시녀가 시녀 한 사람을 데려갔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나 보네.”
“어찌할까요?”
펜을 쉬지 않고 움직이던 아델은 그 물음에 손을 멈추고 시선을 들었다. 옆에서 명령장 작성을 돕던 긱스 부인이 설원같이 시린 얼굴로 담담히 그녀를 마주 보았다.
“새로운 시녀들을 뽑을까요?”
“아는 자들이 있소?”
“믿을 만한 이들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리하라고 하면 긱스 부인은 누구보다 빠르게 물갈이를 해 줄 것이다. 하지만 아델은 쉽게 허락의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자갈을 먹은 것처럼 입안이 거칠었다. 지금 누굴 불러들인들 완전히 믿을 수가 있겠는가? 차라리 누구의 끄나풀인지 알고 있는 자들이 낫다.
“아니, 괜찮소.”
“?”
“이걸 터뜨리면 한동안 좀 시끄러울 거요. 그러니 그 문제는 좀 더 두고 보지. 어차피 나를 보필하는 것은 그대이니, 시녀들이 디안 푸아티에에게 뭘 이르든 중요한 것은 없지 않겠소.”
“예. 알겠습니다.”
“하던 것이나 계속합시다.”
아델은 간결한 문서 한 장을 작성 중이었다. 황후가 궁법서 조항에 맞게 명령의 근거를 자세히 기록하는 동안, 긱스 부인은 계산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델은 긱스 부인이 두세 번 확인까지 해 가며 계산을 끝낸 값을 명령장에 적어 넣었다. 아델이 깃펜을 우아하게 내려놓자, 긱스 부인은 인주 묻은 인장을 공손히 바쳤다. 황후는 에흐몬트에 온 이래 처음으로 자신의 인장을 꾹 눌러 찍었다. 붉은 인장이 찍힌 문서를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 보던 아델은 자조적인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황후로서의 첫 명령장이 이런 것이라니…….”
자조적인 혼잣말과는 달리 그녀의 두 눈은 투지로 빛나고 있었다. * * * 그날 오후, 중신 회의장.
“……하여, 현재 칼뱅 백작령의 주민들은 인근 바루톨트 백작령으로 피난 중에 있으며 바루톨트 백작과 오를리앙 자작이 중간 지대에서 마수를 저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칼뱅 백작령의 탑은 현재 추정 규모 3급, 비행형 3급 마수 가고일의 출몰을 확인했다 합니다.”
테세우스는 맞은편에 앉아 있는 레녹스 푸아티에와 데스포네 공작을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레녹스는 시종일관 권태로운 표정으로 남자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가 보고를 끝내자마자 백작이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추정 규모 3급. 그건 도대체 누가 추정한 겁니까? 가고일이 아니라 가니에르를 본 것 아닙니까? 가고일은 그렇게 쉽게 잡히지 않습니다. 마법사도 없이 기사 나부랭이들끼리 무슨.”
듣고 있던 근위대 부단장 앙리 자칼이 벌떡 일어나며 화를 냈다.
“지금 말 다 했소?! 그렇게 잘 구분하고 판단하면서 왜 여기 앉아 있는 거요?!!”
앙리 자칼의 노성에 레녹스의 두 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책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는 레녹스를 데스포네 공작이 붙잡았다.
“그만두게, 레녹스. 폐하께서 계신 자릴세.”
데스포네 공작의 만류에 레녹스는 거친 콧김을 내뿜으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용서해 주십시오, 폐하.”
그의 사과를 들었는지 말았는지 황제는 반응이 없었다. 회의가 시작된 이래 그는 줄곧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리오넬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려본다는 말이 어울릴 듯한 시선이었다. 늘 마음에 들지 않던 이였지만, 오늘은 유난히 더 거슬렸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국방부 장관?”
싸늘한 물음에 리오넬이 고개를 돌려 황제를 마주 보았다. 카를은 테이블에 양 팔꿈치를 세워 기대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대답, 잘하게.”
중신 회의장의 수많은 시선이 일제히 리오넬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답하기에 앞서, 마법사단 책임자 두 분께 질문을 좀 해도 되겠습니까?”
카를은 허락의 의미로 데스포네 공작과 레녹스를 가리켰고, 리오넬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푸아티에 백, 한 가지 묻겠습니다. 탑을 3, 4급으로 분류하는 가장 중요한 판단 척도가 무엇입니까?”
“……비행형 마수의 출몰 여부죠.”
“가니에르는 비행형 마수 아닙니까?”
레녹스는 그 물음에 과하게 짜증스럽다는 태도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댔다.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지 마십시오. 가니에르가 비행형이니 탑이 3급이다? 뭘 모르는 사람들은 그리 말하겠지만, 가니에르는 아주 드물게 4급 상위 탑에서도 출몰한다, 이 말입니다.”
“그 탑이 여전히 4급이라 주장하고 싶은 모양인데, 3급일 가능성 역시 충분하다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리오넬은 질문을 던진 뒤 좌중을 둘러보며 선명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황궁으로 탑이 내려왔던 그날. 저는 기사들을 이끌고 마법사단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탑은 시시각각 가까워지고 있었죠. 하지만 이윽고 나타난 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분이셨습니다.”
카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리오넬을 노려보았다. 투명한 막에 싸여 있던 이유 모를 불쾌함이 툭,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리오넬은 제게 쏟아지는 황제의 강렬한 시선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바로 황후 폐하셨습니다. 홀연히 나타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4급 정도는 혼자서도 처리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실제로 했던 말은 ‘5급에 가까운 4급이니 혼자 처리 가능하겠다.’였지만, 리오넬은 앞부분을 의도적으로 생략했다. 발드르 공가 측 사람들과 기사 가문 사람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단독으로 탑을 파괴하셨습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탑이 땅에 닿기 전에 상승기류를 타고 올라가셨지요. 덕분에 단 한 마리의 마수도 탑 밖으로 나오지 못했으며, 인명피해도 전혀 없었죠.”
리오넬은 데스포네 공작과 레녹스를 차례로 응시하며 한마디, 한마디 힘을 주어 쐐기를 박았다.
“에흐몬트에서는 한 번도 생각지 못하셨던 방법, 아닙니까?”
그날, 우르르 마법사들을 이끌고 탑으로 향했음에도 홀로 탑을 파괴한 뒤 유유자적 정원을 벗어나는 황후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무력감. 그 치욕을 되새기자 레녹스의 목구멍을 타고 악감정이 울컥 튀어나왔다.
“과연 리오넬 발드르 경. 황후 폐하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시나 봅니다. 자세히도 아시는군요.”
레녹스가 으르렁대듯 리오넬을 조롱하자 테세우스는 미간을 팍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았고, 몇몇 이들도 입조심 하라며 화를 내었으나, 리오넬 만큼은 몹시도 태연했다. 정작 레녹스 푸아티에의 말에 동요한 것은 리오넬이 아니라 카를이었다. 오만한 얼굴로 그를 밀어내던 아델의 얼굴이 떠올랐다. 황제는 거칠게 미간을 문질렀다. 리오넬 발드르, 저자가 마치 잘 안다는 듯 황후를 거론하는 사실이 못 견디게 거슬렸다. 황제가 날 선 목소리로 리오넬에게 물었다.
“내 물었던 질문에 대한 답이 그것인가?”
황제의 적대적인 질문에도 리오넬은 동요하지 않고 차분히 답했다.
“황후 폐하께서는 비행형 마수가 출몰하면 3급에 대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칼뱅 백작에게 다른 영지로 피난을 가라 조언하시며 자금을 지원하신 것도 그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그 말에 회의장이 일순 술렁였다.
“칼뱅 백작에게 황후 폐하께서?”
“내 알기로 금괴를 주셨다 하셨소.”
“아아, 그래서…….”
“나는 몰랐소.”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데스포네 공작이 턱에 힘을 주며 몸을 뒤로 기대었다. 리오넬은 술렁임을 좀 더 방관하다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던 데스포네 공작을 마주 보았다.
“황후 폐하께서 제게 물으셨던 질문을 그대로 돌려드립니다. 에흐몬트 마법사단은 어찌하여 작금의 사태를 두고만 보는 것입니까? 구조할 마음이 없는 것입니까, 역량이 되지 않는 것입니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데스포네 공작의 두 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하지만 마법사들의 항의보다 리오넬이 빨랐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를 직시하며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
“폐하의 하문에 대해 국방부 장관으로서 답합니다. 구하십시오. 역량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마법사들을 파견하여 반드시 구해야 합니다.”
리오넬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뒤로 앙리 자칼이, 뒤이어 몇몇 가문의 사람들이 동조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묵직한 침묵이 가라앉은 가운데, 리오넬 옆자리를 지키고 있던 테세우스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저는 황후 폐하의 의견을 직접 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마찬가지의 이유로 적법한 황후께 응당 권한을 드려야 한다 생각됩니다. 추경 무산의 근거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테세우스의 말을 이어 리오넬은 황후궁 예산 추경 문제까지 건드렸다.
“정부가 되더니 어지간히 황후 폐하를 들먹이는군.”
레녹스의 나직한 비아냥은 사람들의 귓가를 선명하게 파고들었고, 테세우스는 드물게 격분하여 그에게 화를 냈다.
“입조심 해, 레녹스 푸아티에!”
레녹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오히려 그를 조롱했고, 회의장은 삽시간에 시끄러워졌다. 기질이 호전적인 에흐몬트 사람들답게 이내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다. 데스포네 공작 측 사람들은 시끄러운 틈을 타 리오넬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던져 댔고, 그에 반발하는 사람들의 고함으로 인해 중신 회장은 말 그대로 시장통처럼 변해 버렸다. 이 와중에 모든 화제의 중심인 리오넬은 무슨 소리를 들었냐는 듯 고고하게 자리에 앉았다. 권태로움이 느껴질 정도로 초연한 태도였다. ‘황후의 정부’라는 모욕을 들었음에도 낯빛이 조금도 흐트러짐 없었고, 숨도 고르다. 마치 당연한 사실일 뿐이라는 듯이. 싸움을 붙여 놓고 방관하던 카를은 그 모습에 짜증이 폭발했다.
“역시 이래서 사람이 잘 들어와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이지.”
갑작스러운 황제의 말에 한데 엉켜 소리를 질러대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적막한 침묵 속에서 황제는 노골적으로 리오넬을 노려보았다.
“평민들조차 아내가 남편을 내조한다던데……. 상황은 파악해 가며 연애질을 해야지.”
노골적인 비난이었다. 이 자리에 없는 황후를 시궁창에 처박는 발언이자 리오넬이 했던 합리적인 질문에 대한 회피이기도 했다. 그에 레녹스는 슬그머니 입술을 끌어 올려 웃었고, 테세우스는 이를 갈며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깨질 듯이 위태로운 침묵이 내려앉은 찰나였다. 다급한 인기척이 들리는가 싶더니, 시종 한 사람이 급하게 회의장으로 들어와 황제에게 직행했다. 몸을 의자에 기대고 앉아 있던 카를이 자세를 바로 하며 시종을 바라보았다. 시종은 품에서 빳빳한 문서 판을 꺼내 황제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눈으로 읽어 내리던 카를의 미간이 곧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황후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명령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