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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황후의 반격 (59/127)

59화. 황후의 반격202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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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축을 울리며 달려오는 엄청난 군마의 기세에, 최후저지선으로 몰려들었던 마수들도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리오넬과 장교급 기사들은 빠르게 전세를 눈으로 훑었다. 탑을 중심으로 쏟아져 나온 마수가 까마득했다. 2급 탑에서만 볼 수 있는 오우거도 눈에 띄었다. 마법사단 수장인 데스포네 공작은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다. 레녹스를 필두로 한 마법사단 역시 한참 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16553295752068.jpg“앙리, 우측면을 맡아라! 릴, 너희가 좌측이다! 라린, 가서 마법사들에게 지원 요청을 해!”

리오넬의 명령에 기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기사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마법사들이 탑까지 닿을 수 있도록 길을 내는 것. 새카맣게 몰려나온 마수의 바다를 갈라 내야 한다. 기사들은 뾰족한 창처럼 조금씩 조금씩 탑을 향해 진격했다. 뒤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아델은 고개를 돌려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태평한 얼굴로 후방에서 머물 뿐이었다. 그 모습에 욕지기가 치민 아델은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렸다. 그때, 날카로운 발톱을 앞세운 와이번이 진격하고 있는 기사들을 향해 하강했다. 아델은 서둘러 와이번 주위의 마력을 제어해 속박한 다음, 놈을 높은 상공까지 끌어 올렸다가 마수가 득실거리는 지점으로 내리꽂았다. 섬뜩한 굉음과 함께 와이번과 그 아래 깔린 마수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즉사했다. 보고도 못 믿을 광경에 기사들은 환호하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찰나의 침묵 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리오넬이 숨을 들이켜며 크게 소리쳤다.

16553295752068.jpg“다시, 진격하라!!”

뒤늦게 도착한 데스포네 공작도 이 장면을 목격하고 말을 잃었다. 그때, 황후가 천천히 몸을 돌려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을 얼마나 한심스럽게 보고 있는지 멀리서도 느껴질 만큼 싸늘한 눈빛이었다.

16553295752078.jpg“이렇게 뒷짐 지고 있어도 되는 것입니까?! 황후 폐하께서도 기사들을 지원하시는데, 저희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됩니다!”

참다못한 브룬힐 알렉사가 강하게 항의했으나, 데스포네 공작은 되레 성을 냈다.

16553295752082.jpg“시끄럽다!! 우리는 늘 하던 대로 움직일 것이니!!”

그 순간에도 근위대 1, 2군은 묵묵히 탑을 향해 전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상자와 사상자가 발생했으나, 그래도 흔들림 없이 대열을 유지하며 마수들에 맞섰다. 리오넬은 아수라장 같은 상황에서도 전세를 살피며 기사들의 위치를 조정했다. 근위대가 그토록 오랜 기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리오넬 발드르의 뛰어난 전술 덕분이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난전 속에서도 기사들은 무조건적인 신뢰로 리오넬의 명을 따라 검을 휘둘렀다. 벌써 전투가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마법사들은 요지부동이었다. 황후인 그녀가 끊임없이 기사들을 도와 마수들을 향해 마력을 쏟아붓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결국, 아델이 참지 못하고 데스포네 공작을 향해 달려갔다.

16553295752086.jpg“데스포네 공! 지금 보고만 있으면 어쩌자는 겁니까? 어찌하여 단 한 명의 마법사도 기사들을 지원하지 않는 겁니까?!!”

16553295752082.jpg“무슨 말씀이십니까, 황후 폐하? 우리는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기사들이 탑까지 길을 열면,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달려갈 참입니다!”

16553295752086.jpg“와이번, 오우거에 이어 웨어울프, 웨어독이 저렇게 득실거리는데 어떻게 기사들만 피를 흘려 길을 연단 말입니까?!”

16553295752082.jpg“고트로프에서는 어떻게 탑을 파괴했는지는 모르나! 에흐몬트는 에흐몬트 나름의 방식이 있는 겁니다!!!”

그때였다.

16553295752078.jpg“황후 폐하!”

아델을 호위하던 기사가 다급히 그녀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탑을 향해 진격하던 기사들을 향해 몰아치는 오우거 떼가 보였다. 족히 3m는 될 법한 거대한 마수들이 지축을 울리며 달려들자, 그때까지도 훈련된 군마들마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대열이 무너질 것을 직감한 리오넬이 빠르게 명령했다.

16553295752068.jpg“앙리!! 2군 1소대와 함께 오우거를 처리해라!! 전원,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앙리 자칼의 소대가 오우거를 향해 칼을 겨누자, 나머지 인원은 그 틈에 뒤로 물러나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리오넬의 눈빛이 아프게 일그러졌다. 전멸을 막기 위한 선택이지만, 앞으로 나선 기사들의 희생은 불 보듯 뻔했다. 앙리 자칼을 필두로 한 2군 1소대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터질듯한 가슴을 모른 척 눈을 부릅떴다. 뒤로 물러나려는 말의 고삐를 세게 쥔 그들의 눈앞으로 두고 온 가족들이 스쳐 지나갔다.

16553295752086.jpg“에흐몬트 나름의 방식이라니, 집어치우시오!!”

그 모습을 본 황후가 기어이 폭발하며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16553295752086.jpg“이게 무슨 방식이야?!! 그대들이 단 한 번도 진심으로 탑과 마수를 파괴하려 들지 않은 것이 눈에 보이는군!!”

황후의 거침없는 비난에 데스포네 공작의 두 눈에서도 불길이 치솟았다. 이 버릇없는 것이?!! 그러나 그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황후가 몸을 돌리며 일갈했다.

16553295752086.jpg“잘 봐라!! 마법사와 기사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싸워야 하는지!!!”

그리고 순식간에 저지선까지 말을 몰아 훌쩍 뛰어내렸다.

16553295752078.jpg“황후 폐하! 말에 오르십시오, 위험합니다!”

따라온 호위 기사들이 놀라 만류했으나, 황후는 증폭기인 검을 바닥에 힘차게 꽂아 넣으며 대꾸했다.

16553295752086.jpg“너는 지금 저들에게 달려가서 전해라. 내가 붙잡고 있는 틈에 놈들을 죽여서 길을 만들라고.”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으나, 말을 들은 기사 하나가 얼른 동료들을 향해 달려갔다.

16553295752086.jpg“너희는 나를 엄호하라.”

아델은 남아 있는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린 뒤, 크게 숨을 들이켰다. 이것을 하고 나면 당분간 고생을 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보아하니 데스포네 공작은 끝내 낡아 빠진 기존의 방식을 유지할 모양이었으니. 그리고 황제에게 대항해 힘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이 여정에서 그녀는 반드시 공을 세워야만 했다. 공기처럼 흩어져 자욱하던 마력의 흐름이 아델에게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빨려 들어가듯 그녀에게 빨려든 마력이 땅에 박힌 검으로 이동했다. 그녀 주위로 기류가 요동치다 못해 거센 바람이 불어닥쳤다. 증폭기인 검을 타고 땅으로 스며든 마력이 그녀의 의지대로 마수들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일제히 땅에서 뻗어 나와 마력이 흐르는 것을 찾아 달라붙었다. 앙리 자칼과 기사들에게 달려들던 오우거 떼도 아델의 마력에 발이 묶여 일제히 앞으로 고꾸라졌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놀라 기사들이 눈을 치뜬 그때, 아델의 명을 받고 달려온 기사가 뒤에서 커다랗게 외쳤다.

16553295752078.jpg“황후 폐하께서, 마수들을 붙잡고 있을 테니 그 틈에 놈들을 죽여 길을 열라 하셨습니다!!!”

마법사의 도움 없이도 리오넬의 지휘 아래 이미 반 이상 진격한 정예 기사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16553295752068.jpg“1군 앞으로!! 2군 2소대, 오우거를 함께 처리해라!! 나머지는 뒤를 맡아라!!”

리오넬은 누구보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여 최적의 명령을 내렸고, 기사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발이 묶인 마수의 급소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내 기사들이 거침없는 속도로 마수를 해치우며 탑을 향해 달려갔다. 순식간에 탑으로 향하는 문이 열린 것이다.

16553295752078.jpg“황후 폐하!!”

문제는 아델이었다. 꼿꼿하던 자세가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검을 잡고 있던 손이 어느새 검에 의지하는 것처럼 변했다.

16553295752078.jpg“황후 폐하, 괜찮으십니까?!”

호위 기사들은 검에 매달리다시피 몸을 수그린 아델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뷔에타 후작도 심각한 표정으로 아델 주위를 배회했다. 최전선에서 마수를 저지하며 길을 열던 리오넬 역시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황후의 모습이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식은땀이 등 뒤로 흘러내리고, 불길한 기운이 그의 마음을 잠식했다. 다행히 기사들이 만든 길을 따라 마법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레녹스는 그 인성과는 별개로 출중한 실력의 스트라이커였다. 탑에 도달하자마자, 키퍼들이 탑의 마력을 제어하고 레녹스를 필두로 한 스트라이커들이 탑의 핵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얼마 안 되어 곧 탑이 하얀 불길에 휩싸였다. 그 모습에 곳곳에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탑이 파괴되자 죽은 마수들의 사체에도 하얀 불길이 일렁이고, 살아 움직이던 놈들도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레녹스는 위풍당당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탑의 종식을 선언했다.

16553295797596.jpg“탑은 파괴되었다!!”

16553295752078.jpg“역시 부단장님이십니다!”

레녹스의 측근 마법사들이 그를 치켜세우자 기사들은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리오넬은 몸을 돌리며 기사들을 향해 외쳤다.

16553295752068.jpg“수고 많았다! 각 소대의 부상자들을 들것으로 실어 나르고, 사망자들을 수습해라! 장교들은 나를 따라와라.”

하급 기사들이 부상자들과 사망자들을 수습하는 동안, 나머지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황후가 있는 저지선을 향해 말을 몰았다. 리오넬의 시선은 줄곧 한 점에 닿아 있었다. 그는 조금 더 말을 채근하여, 빠르게 말을 몰았다. 황후만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그의 마음은 그녀에게 가까워질수록 초조하게 변했다. 검은 머리카락이 폭포처럼 쏟아져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땅에 박힌 검에 기대어 간신히 버티는 그녀는 이미 반쯤 고꾸라져 있었다. 황후를 호위하던 기사들이 멀리서 단장 리오넬이 달려오자 크게 반색했다.

16553295752078.jpg“황후 폐하! 다 끝났습니다! 모두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제야 미동도 없던 황후의 어깨가 조금 움직였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며 하얀 얼굴이 불쑥 드러나자 관록의 기사들도 침을 꿀꺽 삼켰다. 지옥에서 기어 나온 사신 같은 몰골로, 황후는 정면을 쏘아보았다. 레녹스와 일부 마법사들은 이 모든 공이 마치 제 것 인양, 어깨를 펴고 선두에서 말을 몰려 애를 쓰고 있었다.

16553295752086.jpg‘네놈들이 모든 공을 차지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지.’

탑이 부서지는 순간 쓰러져 기절하고 싶었지만, 아델이 죽을힘을 다해 정신을 붙잡고 버틴 이유는 오직 하나. 아델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꽉 붙잡고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눈을 부릅뜬 황후의 모습에 달려온 기사들과 마법사들도 숨을 죽이며 멈춰 섰다. 제일 먼저 다급히 말에서 내려 그녀를 향해 달려오는 리오넬의 모습이 길게 늘어진 듯 보였다. 점점 어둡게 변하는 시야를 모른 척, 아델은 입을 열었다.

16553295752086.jpg“모두 살리고 싶었는데 미안하다. 기다리지 말고 차라리 좀 더 일찍, 내가…….”

큰 소리가 아니었음에도, 그 말은 기사들과 일부 마법사들의 귓바퀴를 타고 귀로 흘러 마음에 고였다. 왈칵 치미는 뭔가에 눈이 벌게진 기사들이 입술을 세게 짓씹으며 황후를 바라보았다. 그때, 별안간 미간을 찌푸린 황후가 거세게 기침을 했다.

16553295752086.jpg“풉, 콜록!!”

동시에 핏방울이 허공으로 뿜어져 나와 공기를 붉게 물들였다.

16553295752068.jpg“황후 폐하!!!!”

피를 토한 아델의 몸이 끈 떨어진 인형처럼 천천히 허물어졌다. 그리고 그녀가 바닥에 처박히기 직전, 달려온 리오넬이 그녀의 몸을 절박하게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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