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각자의 계획2021.10.26.
리오넬이 아델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자, 주변을 서성이던 뷔에타 후작이 얼른 다가와 말했다.
“후작성으로 모시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기사에게 미리 가서 준비하라고 명령하며 얼른 말에 올랐다. 리오넬은 아델을 안은 그대로 말에 올라 데스포네 공작을 향해 다급히 물었다.
“마력을 쓰다 피를 토하셨는데, 어찌해야 합니까?!”
데스포네 공작은 힘없이 늘어진 황후를 쏘아보며 내키지 않는 듯 입을 열었다.
“브룬힐 알렉사. 네가 가라.”
그의 명령에 따라 브룬힐이 말에 오르자 리오넬은 앙리에게 깊게 잠긴 목소리로 명령했다.
“뒷수습을 맡기마.”
“걱정 마십시오.”
뷔에타 후작과 리오넬이 황후를 모시고 후작성으로 빠르게 달려가자, 남은 이들의 머리 위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기사들은 잔뜩 충혈된 눈으로 바닥에 흩뿌려진 붉은 핏자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묘한 분위기를 견디다 못한 마법사 중 한 사람이 요란하게 헛기침을 하더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부단장님이 아니었다면 탑 파괴하는 데 한나절은 걸렸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러자 가까이 있던 데스포네 공작이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레녹스를 치켜세웠다.
“암! 암암! 그렇고말고! 너, 말 한번 잘했다! 레녹스! 아주 수고 많았어! 그대가 없었다면, 피해가 아주 극심했을 거야!”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공작 전하! 전하의 마력에 비하면 제 마력은 아주 미천한 것을요.”
“이런, 겸손한 사람 같으니!”
기사들이 자화자찬하는 그들을 일제히 노려보았다. 앙리 자칼은 두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들끓는 가슴을 서서히 가라앉히며, 황후의 호위를 맡았던 기사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황후 폐하께서 어쩌다 이 지경까지 무리를 하신 것이냐!”
갑작스러운 그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추궁을 받은 기사는 잠시 당황하였으나, 얼른 침통한 표정으로 답했다.
“마력으로 마수들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고 하시며……. 안색이 시시각각 창백해지시기에 저희가 그만하시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음에도, 끝내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또다시 왈칵 눈물이 치민 기사들이 거친 손으로 연신 눈을 비볐다.
“황후 폐하가 아니셨으면 우리 1소대는 전멸이었어.”
“오우거가 달려들 때, 난 죽었다고 생각했지.”
“저렇게 피를 토하실 정도로 최선을 다하시고서도…… 우리한테 미안하다고 하셨다.”
덩치가 산만 한 장정들이 눈물을 감추려 괜히 먼 산을 바라보았다. 레녹스를 치켜세우며 으스거리던 마법사들도 선명한 핏자국 앞에 할 말을 잃었다.
“우리 황후 폐하께서는 신묘한 마법 기술을 많이 알고 계신 듯해. 안 그런가?”
뷔에타 기사단의 기사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정말이지 비현실적인 광경이었습니다! 아까 폐하께서 와이번을 한 번에 박살 내시는 것을 보셨습니까??”
“정말 걱정입니다. 우리 황후 폐하, 괜찮으시겠지요?”
그들은 수습을 위해 몸을 돌려 걸어가면서도 황후의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데스포네 공작은 멀어지는 기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돌려 황후가 남긴 핏자국을 노려보았다.
“…….”
‘에흐몬트 나름의 방식이라니, 집어치우시오!!’
건방지게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일갈하던 황후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내 발등을 찍었구나.’
그는 눈을 질끈 감으며 탄식했다. 허수아비를 만들려 고심 끝에 고른 것이, 이렇게 발등을 찍을 줄이야. 아델라이드, 목구멍에 걸린 가시 같은 그 여자가 감히 그의 세상에 돌을 던졌다. 감히. * * * 리오넬은 제 입술에서 피가 나는지도 모르고 입술을 짓씹고 있었다. 말의 움직임에 아델의 머리가 힘없이 흔들렸다. 리오넬은 말을 몰면서도 연신 제 품에 안긴 그녀를 살피며 팔에 힘을 줬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 지우지 못한 핏자국, 작고 가녀린 몸. 피가 싸늘하게 식어 온몸에 쥐가 나는 것 같았다. 달려도 달려도 후작성은 왜 이리 먼 것인지.
‘내가 지옥으로 걸어 들어왔구나.’
엉겨 붙어 굳어 가는 핏자국을 보니, 또 그 말이 떠오른다. 결코 그를 향한 말이 아니었음에도, 마치 그녀의 날개를 꺾어 지옥으로 끌고 들어온 것이 저인 양, 그 말이 사무쳤다. 뷔에타 후작성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어수선했다. 피난 갔던 이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식을 듣고 달려 나온 후작 부인이 아니었다면, 리오넬과 브룬힐은 인파 때문에 후작의 저택으로 들어가는 데 애를 먹었을 것이다. 황후를 모실 방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리오넬이 아델을 침대에 눕히자 의원과 브룬힐이 다가왔다. 리오넬은 뒤로 물러나며 브룬힐에게 물었다.
“괜찮으시겠는가?”
“……내상이 너무 심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장관님, 일단 나가셔야 치료를 시작하니 어서 나가시지요.”
후작 부인의 채근에 리오넬은 방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필요한 물품을 챙기기 위해 후작 부인이 다급히 어디론가 달려간 사이, 밖에서 리오넬을 기다리던 후작이 그가 쉴 방을 직접 안내해 주겠다고 말을 건넸다. 그러나 리오넬은 그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앙리 자칼 경이 돌아오면 제게 오라 일러 주십시오.”
시퍼렇게 벼린 검 한 자루 같은 기세에 후작도 더는 권하지 않았다. 리오넬은 벽에 기대어 서서 날 선 눈으로 방문만을 바라보았다.
‘그’ 리오넬 발드르가 황후의 보좌관이 되었다는 소문은 뷔에타에도 전해졌다. 그 소식을 들은 날, 후작은 이렇게 말했다.
‘발드르 공가가 몰릴 대로 몰렸나 보군. 공제가 직접 황후의 보좌관직에 응하다니.’
황후가 스트라이커라는 소식도 함께 들려오기는 했으나, 직접 확인한 바가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보니, 공제가 보좌관이 됨으로써 공가는 오히려 기회를 잡은 것 같았다. 피를 토하며 쓰러진 황후를 향한 기사들의 눈빛을 후작도 똑똑히 보지 않았나. 후작은 몸을 돌리며 생각했다.
‘드디어 이 정체된 판에 균열이 가는구나.’
* * * 의원과 브룬힐은 지극정성으로 황후의 상태를 살폈다. 내상을 입기는 했으나, 황후는 다행히도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능력 이상의 운동을 하면 몸에 무리가 오듯, 마력도 마찬가지로 과하게 발동하면 몸에 무리를 준다. 브룬힐의 역할은 마법사로서 황후의 상태를 의원에게 자세히 설명하여 치료를 돕는 것이었다. 그녀는 의원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했고, 잠시 후 의원은 알맞은 처방을 내렸다.
“……당분간 유동식을 드시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셔야겠습니다. 회복을 돕는 약을 지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답니까?”
브룬힐이 당황하며 묻자, 의원은 다소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되물었다.
“그럼 다른 마법사들은 이럴 때 보통 어찌합니까?”
“……괜찮아질 때까지 쉬지요.”
그녀의 말에 의원은 거보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더니 시녀들에게 몇 가지를 이르고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방문을 연 순간, 의원은 마주친 한 쌍의 검은 눈동자에 그대로 압도당하고 말았다. 의원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리오넬이 몸을 일으키며 저벅저벅 다가오자, 의원은 저도 모르게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고 말았다. 결코 그의 태도나 낯빛이 위협적이어서가 아니었다. 다만, 다듬어지지 않은 야성이 그의 온몸에서 넘실거려 의원을 압박한 것이다.
“좀 어떠신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나직한 물음에 의원은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서둘러 답했다.
“내상을 입기는 하셨으나, 생명이 위독하신 정도는 아닙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시면 쾌차하실 것입니다. 회복에 도움이 되는 약을 지어 올리겠습니다.”
“충분한 휴식이란 어느 정도를 뜻하는가.”
“그것은 차도를 지켜보아야 할 문제이므로 지금 당장 확답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수고했다.”
“다시 오겠습니다.”
의원은 꽁지에 불이 붙은 짐승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브룬힐도 의원의 뒤를 이어 밖으로 나왔다.
“마력으로 인한 내상이 후유증을 남기지는 않는가?”
리오넬의 질문에 브룬힐은 잠시 고민하는 듯 말을 아끼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본 바로는 없었습니다. 무리하신 정도인 것 같으니 일단은 의원의 처방을 믿고 좀 기다려 보시지요.”
브룬힐이 따라 나온 시녀의 안내를 따라 복도 끝으로 멀어지는 동안, 리오넬은 우두커니 서서 열린 문틈을 바라보았다. 시녀들 틈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얼굴이 여전히 창백했다. 좀 가까이 다가가 상태를 직접 살펴보고 싶었으나, 차마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가 아델과 맺고 있는 관계는 딱 여기까지였으므로. 필요한 물품을 가지고 돌아오던 후작 부인이 리오넬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초조함이 묻어나는 얼굴, 애가 닳은 눈빛을 한 저 남자가 리오넬 발드르인가?
‘정치적인 이유로 보좌관이 되었다더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모양이야.’
후작 부인은 낯빛을 바꾸며 우아한 태도로 걸음을 옮겼다.
“장관님.”
부인이 그를 부를 때까지도, 리오넬은 그녀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만큼 열린 문 너머의 황후에게 온 신경이 쏠려 있었던 것이리라.
“아, 후작 부인.”
그도 제 상태를 깨달았는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자세를 바로 했다. 연륜이 묻어나는 부인의 눈빛에 리오넬은 감춘 무언가를 들킨 것처럼 당혹스러웠다.
“우선은 장관님께서도 피로를 푸신 뒤에 황후 폐하를 보필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제가 장관님 방에 입으실 만한 깨끗한 의복을 준비해 두었어요.”
“감사합니다만, 일단 부관이 올 때까진 제가 이곳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다면 의자라도 내어 드려야겠군요.”
후작 부인은 사람을 시켜 리오넬에게 의자를 내어 준 뒤, 시녀들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굳게 닫힌 방문을 노려보는 리오넬의 검은 눈이 애달팠다. * * * 황후의 의복과 몸 상태를 청결하게 해 달라는 의원의 주문에 따라, 시녀들은 황후의 몸을 조심스럽게 닦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혔다. 내상을 입은 환자였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다 보니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되었다. 할 일을 끝마친 후작 부인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얼굴을 굳혔다. 뒤따라 나오던 시녀들도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켰다. 덩치 큰 기사 수십 명이 복도를 따라 일렬로 늘어서서 넓은 복도가 꽉 찬 느낌이었다. 살금살금 걸어와 숨소리마저 죽이고 있었던 모양인지, 방 안에 있던 이들은 그들이 온 것조차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문을 바라보던 기사들이 문을 열고 나타난 후작 부인을 향해 일제히 눈을 반짝였다. 그들을 바라보는 후작 부인의 눈초리가 대번에 사나워졌다. 며칠 간의 강행군과 이어진 마수와의 사투로 기사들은 먼지투성이에 피까지 뒤집어쓴 상태였다. 물론, 그녀의 영지를 위해 달려와 힘껏 싸워 준 이들이니 이 모습마저 감사했다. 하지만!
“황후 폐하께선 안정이 필요하십니다. 환자를 돌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청결이지요.”
부인의 위엄 있는 말에, 덩치 큰 장정들이 숨을 삼키며 일제히 시선을 내렸다. 갑옷은 벗어 두고 왔으나, 먼지와 핏자국으로 엉망이었다. 손은 말할 것도 없었다. 기사들은 입술을 꾹 말아 물며 손을 몸 뒤로 감추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후작 부인의 시선이 리오넬에게 닿자, 그 역시 작게 헛기침을 하며 제 손을 등 뒤로 숨겼다,
“황후 폐하를 보필하셔야 한다면, 최소한의 인원만 남겨 두고 다들 어서 가서 씻으세요. 뷔에타를 위해 달려와 주신 여러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푸짐한 식사와 따뜻한 잠자리를 준비하였으니, 어서 정해 드린 숙소로 돌아가세요.”
“그리하겠습니다, 부인.”
리오넬의 답을 들은 후작 부인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기사들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그런데 복도에만 기사들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계단에도 황후의 소식을 기다리는 기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아닌가?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이가 다 모인 듯했다.
“황후 폐하께서는 좀 괜찮으십니까?”
그나마 안면이 있는 귀족 가문 출신 기사가 조심스럽게 묻자, 후작 부인은 가벼운 한숨과 함께 방금 했던 말을 다시 한번 해 주었다. 그들을 지나쳐 계단을 내려오며 후작 부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지? 한두 명도 아니고 이 많은 인원이 황후 한 사람의 안부를 묻기 위해 이렇듯 모여들다니, 황후께선 언제 이들 모두의 신뢰를 얻으셨을까? * * * 데스포네 공작은 뷔에타 후작 부부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방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번잡스럽다는 이유로 시종 시녀들까지 물린 채, 홀로 생각에 잠겼다. 오늘 함께 온 이들은 리오넬 발드르를 주축으로 한 근위대 1, 2군. 그놈들은 기사 집단의 정수라고도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데스포네 공작은 레녹스를 위시해 그들에게 유난히 가차 없이 굴었다. 우두머리가 잡히면 게임이 끝나듯, 발드르 공가 그놈들을 꺾어 정예 1, 2군만 휘어잡으면 기사단 전체를 손아귀에 넣을 수 있을 거란 계산에서였다. 짐승을 길들이듯 가혹하게 굶겼으니 이제 먹이를 주며 그들의 주인은 바로 데스포네 공작이라는 것을 인식시킬 일만 남았는데…….
“이 영악한 것이 그걸 가로채려고 해?”
오늘 일을 기점으로 기사 집단은 틀림없이 황후의 편에 붙을 것이다. 서로의 이익이 맞아떨어지니, 결합은 단단하리라. 어디 그뿐인가? 탑이 두려워 숨죽이고 있던 수많은 귀족 가문마저 자석에 철이 달라붙듯 황후와 발드르에게로 달려갈 것이다.
“안 돼.”
데스포네 공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욕망으로 점철되어 번질거리는 두 눈에 악의가 넘쳐 흘렀다. 공작은 즉시 레녹스를 불러들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공작 전하?”
씻던 도중이었는지, 레녹스가 머리에 물기를 매단 채 공작에게 달려왔다. 공작은 작게 손짓하여 그를 좀 더 가까이 다가오게 한 뒤, 귀에 대고 속삭였다.
“황후, 그 빌어먹을 계집을 죽여야겠다.”
레녹스의 두 눈이 잘게 떨리며 커졌다. 공작은 그의 손에 작은 쪽지 한 장을 찔러 주었다.
“뷔에타에서 북서 방향, 말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슬럼에 사람을 보내. 황후가 제아무리 실력 좋은 마법사라지만 내상을 입어 쓰러져 있는 데다 탑이 사라져 마력도 쓸 수 없으니, 솜씨 좋은 그놈이라면 실패하지 않을 거다.”
레녹스는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펼쳐 보았다. 약도가 그려진 쪽지 끝단엔 작은 글씨로 암살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레녹스는 이유조차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지금 황후를 암살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할 거다.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하겠지. 성은 어수선하고, 리오넬 발드르가 제아무리 보좌관이라 한들 황후의 침실에 허락도 없이 상주할 수는 없을 테니 이보다 적당한 때가 없구나.”
레녹스는 차마 제가 지난밤에 한 짓에 대해 고할 수가 없었다. 황후와 발드르 공제가 이미 암살 시도에 대비하고 있으리라는 사실도. 공작이 그 사실을 알면, 모든 분풀이를 그에게 하리라. 데스포네 공작이 번뜩이는 눈으로 레녹스를 바라보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상으로 인한 후유증을 이기지 못해 죽은 것으로 하면 그림이 딱 좋겠어. 자, 어서 사람을 보내거라. 황후, 그 독한 것이 언제 눈을 뜰지 모르니 한시가 급하다.”
“예, 공작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