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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뷔에타 성의 암살자 (61/127)

61화. 뷔에타 성의 암살자2021.10.30.

그 시각, 기사들 역시 황후를 칭송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16553296093594.jpg“와이번을 향해서 손을 이렇게 휘저어서 놈의 날개를 찢어 버리시더라고!”

이미 한 번 과장된 이야기가,

16553296093594.jpg“그깟 와이번 따위가 우리 황후 폐하께 상대냐 되겠냔 말이다. 그저 손가락 한 번 까딱하셨을 뿐인데 놈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거야!”

이렇게까지 부풀었고,

16553296093594.jpg“황후 폐하께서 우리 모두를 살리고 싶었다고 말씀하실 때, 나는 그 눈에 맺힌 눈물을 봤다. 폐하는 우리를 위해 피를 토할 때까지 눈물을 흘리시며 버티고 계셨던 거야!”

도대체 눈물은 어디서 보았는지는 몰라도, 사신같이 살벌하던 모습은 이렇게 와전되었다. 까마득한 검은 재앙과 시뻘겋게 아가리를 벌린 마수에 맞서는 기사들에게 죽음이란 너무나 익숙하고 쉬우면서도 두려운 것이었다. 좀 도와주지. 제발 도와주지. 우리랑 함께 싸워 주지. 사선을 넘나들 때마다 수천수만 번씩 마법사의 도움을 구하던 간절한 바람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오늘, 황후가 당연하다는 듯 그들과 함께 싸웠다. 기사들의 가슴이 뜨겁게 들끓었다.

16553296093594.jpg“황후 폐하께서 머무시는 방 주변의 호위를 정하겠다.”

앙리 자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사들이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외쳤다.

16553296093617.jpg“제가 하겠습니다!!!”

어찌나 많은 이가 황후의 호위로 자원했는지, 리오넬마저 당황할 정도였다. 뭐든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보다 못한 법이라 리오넬이 기사 개인의 컨디션을 고려하여 필요 인원을 제외하고 상당수를 돌려보냈음에도 충분히 많은 인원이 남았다.

16553296093594.jpg“장관님. 이렇게 기사들이 많은데, 장관님께서는 가셔서 쉬시지요.”

뷔에타 후작이 직접 찾아와 제안하였으나, 리오넬은 정중히 거절했다.

16553296093625.jpg“저는 괜찮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16553296093594.jpg“말씀하시지요.”

16553296093625.jpg“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복도뿐 아니라 황후 폐하께서 머무시는 방의 테라스 앞까지, 등불이 밤새 꺼지지 않도록 관리해 주십시오.”

16553296093594.jpg“밤새 불을 밝히란 말씀이십니까?”

16553296093625.jpg“그렇습니다. 더불어 이 문은 안쪽에서 잠글 수 없도록 걸쇠를 잠시 떼어 두겠습니다.”

16553296093594.jpg“알겠습니다.”

16553296093625.jpg“황후 폐하께서 머무시는 방을 드나드는 이들도 철저히 관리 부탁드립니다.”

16553296093594.jpg“예, 물론입니다. 시녀들은 새벽에 교대할 것이고, 의원은 같은 사람이 올 것입니다.”

후작은 과연 리오넬 발드르는 호위조차 완벽하다고 혀를 내두르며 몸을 돌렸다. 그가 멀어지자 앙리 자칼이 다가와 속삭였다.

16553296093594.jpg“테라스뿐 아니라 작은 창문까지 모두 감시를 붙여 두었습니다.”

직접 정원까지 살펴보며 기사들을 배치한 덕에 황후가 머무는 방은 밀실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지만, 리오넬은 잠시도 긴장을 놓지 않았다.

16553296093625.jpg“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자는 일단 잡아 두라고 모두에게 전해.”

16553296093594.jpg“예, 알겠습니다.”

황후의 암살을 노리는 자에게는 그녀가 의식을 차리지 못한 지금이 바로 절호의 기회일 터였다. 리오넬은 오늘 밤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를 암살자로부터 반드시 아델을 지켜 내리라 다짐했다. * * * 자정을 알리는 괘종 소리가 느릿느릿 들릴 무렵, 시녀는 무거운 눈꺼풀을 애써 들어 올렸다. 자정부터 황후 폐하의 곁을 지키기로 했기 때문이다. 뻑뻑한 눈을 문지르며 옆에 있던 동료를 깨우려던 시녀의 코끝에 별안간 비릿한 냄새가 훅 치밀었다.

16553296093594.jpg“음?”

왜인지 등골이 오싹해지며 몽롱하던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시녀가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려는 순간,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속삭였다.

16553296093594.jpg“소리 지르면 죽일 거야.”

16553296093594.jpg“!!”

그 목소리가 어찌나 섬뜩한지, 시녀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윽고 촛불이 어둑한 방을 밝혔다. 시녀는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입을 틀어막아야만 했다. 이미 깨어나 있던 다른 시녀도 마찬가지였다.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누군가의 위에 앉아, 소리 없이 나타난 악마가 그녀들을 향해 웃고 있었다.

16553296093594.jpg“곧 황후에게 갈 거지?”

   * * * 그 무렵 황후가 머무는 방 앞. 방문을 지키고 선 기사들의 표정이 한결 편안했다. 방금 다녀간 의원이 황후의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기 때문이다. 밤이 더욱 깊어지고 간간이 들리던 풀벌레 울음소리마저 사라지자, 등불의 심지가 타오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사이 교대할 시간이 되었는지, 시녀 두 사람이 나타났다. 벽에 기대어 서 있던 리오넬이 직접 몸을 일으켰다. 후작 부인에게서 교대할 시녀들을 미리 소개받은 그가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문 앞을 지키던 기사들이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 길을 열어 주었다. 그런데 그때, 리오넬이 시녀들을 잠시 불러세웠다. 시녀들의 안색이 어쩐지 파리해 보였기 때문이다.

16553296093625.jpg“무슨 일 있느냐?”

16553296093594.jpg“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그의 질문에 그녀들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세차게 젓는 순간, 안에서 기척을 느꼈는지 근무하던 시녀들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16553296093594.jpg“그럼 저희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시녀들은 리오넬이 붙잡을세라 얼른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리오넬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가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안에서 문이 열리자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가서 선득한 시선으로 시녀들을 빤히 내려다보며 천천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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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3296093625.jpg“아무 문제도 없는가?”

16553296093594.jpg“어, 없습니다.”

시녀들은 얼른 고개를 저으며 가늘게 떨리는 손끝을 등 뒤로 감추었다. 잠시 그대로 멈춰 서서 시녀들을 응시하던 리오넬은 직접 아델에게 다가가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숨소리도 안정적이고, 상태도 괜찮아 보였다. 리오넬은 미심쩍은 눈길로 방 안을 샅샅이 둘러보았지만,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뒷덜미를 잡아당기는 듯 선득하고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리오넬은 마지못해 방을 나섰다. 시녀들이 황후를 간병하는 동안, 리오넬은 간간이 문을 열고 방 안의 동태를 살폈으나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렇게 이 밤이 무탈하게 지나가나, 하고 모두가 생각할 무렵이었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시녀 하나가 다급한 얼굴로 외쳤다.

16553296093594.jpg“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하셨습니다!”

리오넬과 기사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16553296093594.jpg“차가운 물과 물수건, 그리고 야, 약이 피, 필요합니다…….”

시녀가 더듬거리며 안절부절못하자 리오넬이 침착한 어조로 되물었다.

16553296093625.jpg“진정해라. 황후께서 열이 나신단 말이냐?”

16553296093594.jpg“예? 아, 예…….”

16553296093625.jpg“물수건과 약은 어디에서 가져오면 되느냐?”

16553296093594.jpg“아, 아래층에 가면 대기 중인 시녀가 있습니다…….”

16553296093625.jpg“가서 찬물이 든 대야와 물수건을 가져오고 의원을 불러와라.”

리오넬이 눈짓하자 복도 끝을 지키던 기사 2명이 서둘러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향했다.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동동거리던 시녀가 도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그녀를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리오넬이 문고리를 잡았다.

16553296093625.jpg“직접 황후 폐하를 봬야겠다.”

그러자 시녀는 화들짝 놀라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16553296093594.jpg“……열을 내리려 속 침의만 입혀 드린 상황입니다.”

그때,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기사 하나가 물이 가득 든 대야와 수건 몇 장을 든 시녀를 데리고 복도에 나타났다. 달려온 시녀를 바라보며 리오넬이 미간을 찌푸렸다. 후작 부인에게서 소개를 받은 이가 아니었다.

16553296093625.jpg“아는 자인가?”

리오넬이 묻자 두 여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방을 지키던 시녀가 새로 나타난 이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96093594.jpg“……예.”

16553296093594.jpg“어서 비켜 주세요. 열이 나신다 들었습니다!”

새로 나타난 시녀가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는 참 묘한 인상이었다. 지극히 평범하여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으면서도, 뒤돌아서면 기억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16553296093594.jpg“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시녀는 리오넬이 빤히 바라보는 것이 불편한지 고개를 숙이며 열린 문 너머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시녀의 등 뒤로 리오넬의 시선이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 * * 천천히 문이 닫히자, 시녀는 대야와 수건을 내려놓고 문을 걸쇠를 찾았다.

16553296093594.jpg“…….”

그러나 걸쇠가 뜯겨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녀는 문 잠그기를 포기하고 작게 욕을 중얼거리며,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는 두 시녀에게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갔다.

16553296093594.jpg“소리 지르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목숨을 지키고 싶으면 끝까지 제대로 협조해야 할 거야.”

시녀, 아니 암살자가 싱긋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녀가 유능한 암살자로 이름난 이유는, 상황에 맞추어 감쪽같이 자연스러운 죽음을 선사하기 때문이었다. 황후가 갑작스레 열이 난다는 것도, 속 침의만 입고 있어 기사들을 들일 수 없다는 것도 모두 그녀가 시킨 거짓말이었다. 암살자는 몸을 빙글 돌려 황후를 바라보며 품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 폐를 망가뜨리는 약물로, 마시면 며칠간 고열을 앓다가 서서히 죽기 때문에 누구도 황후가 암살당했다는 것을 의심하지 못할 터였다. 암살자는 약병의 뚜껑을 연 다음 빠르게 황후에게 다가가 그녀의 턱을 한 손으로 붙잡았다. 이 여자만 죽이면, 다시는 이 짓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거액을 손에 쥘 수 있으리라. 1분. 단 1분이면 된다. 암살자가 득의양양하게 미소 지은 그 순간, 예고도 없이 방문이 벌컥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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