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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꼬리를 흔드는 대형견 (65/127)

65화. 꼬리를 흔드는 대형견2021.11.13.

한편, 황후 암살 미수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던 뷔에타 후작성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 갔다. 무엇보다 황후가 직접 후작 부부를 찾아가 이번 일로 심려가 컸겠다고 위로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암살자가 자결하면서 사건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뷔에타 성의 시녀가 둘이나 그 일에 휘말리지 않았는가. 자칫 뷔에타 후작 부부가 혐의를 뒤집어쓰기라도 한다면, 영지의 무수히 많은 이가 줄줄이 엮여 큰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다들 덜덜 떨며 향방을 지켜보던 차에 황후가 후작 부부의 무혐의를 에둘러 인정하자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16553296888579.jpg“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16553296888579.jpg“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이런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황후 폐하.”

후작 부부는 바싹 마른 얼굴로 사죄와 감사 인사를 번갈아 했다.

16553296888591.jpg“그런 말 마시오. 두 분 모두 고생 많았소.”

며칠 더 푹 쉬고 가라는 뷔에타 후작 부부의 청을 정중히 거절하고, 아델은 이튿날 수도로 떠날 준비를 했다.

16553296888598.jpg“하루쯤 더 쉬었다가 가시지 그러십니까. 얼굴이 창백하십니다.”

리오넬이 아델의 얼굴을 살피며 말하자 아델은 어깨를 으쓱이며 여상히 답했다.

16553296888591.jpg“내 얼굴은 원래 이랬어. 그리고 후작 부부 얼굴 좀 봐. 불쌍해 죽겠다. 내가 가야 발 뻗고 잠을 잘걸?”

그녀의 말에 리오넬은 차마 아니라고 답하지 못했다. 그가 봐도 확실히 그랬기 때문이었다.

16553296888591.jpg“지금 후작 부인이 흘리는 눈물은 기쁨의 눈물일 거야. 상전은 누구나 불청객인 법이지.”

아델이 웃으면서 농담조로 중얼거리자, 리오넬은 이번에도 못 들은 척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아델은 눈을 가늘게 떴다.

16553296888591.jpg“내 보좌관은 그래도 내 편을 들어야 하는 법인데! 내가 불청객이란 것을 인정한다 이건가?”

그러자 리오넬도 함께 눈을 가늘게 뜨며 항변했다.

16553296888598.jpg“혼잣말하신 것에도 호응해 드려야 한단 말씀이십니까?”

16553296888591.jpg“혼잣말 아니었는데?”

16553296888598.jpg“혼잣말이셨습니다.”

진중한 얼굴로 농담을 받아 내는 모습에 아델이 소리 내어 웃자, 리오넬은 황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리며 입술을 말아 물었다. 아델은 웃음을 갈무리하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레녹스와 데스포네 공작도 굳은 얼굴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비록 증거 부족으로 레녹스와 데스포네 공작의 덜미를 잡지는 못했지만, 아델은 이 여정으로 제법 값진 것을 얻었다. 바로 아델, 그녀를 향한 기사들의 선망 어린 시선이었다.

16553296888579.jpg“황후 폐하! 말에 훌쩍 뛰어오르시면 몸이 상하실지도 모르니, 발 받침대를 사용하십시오.”

16553296888579.jpg“아니, 그보다는 마차가 낫지 않으시겠습니까?”

16553296888579.jpg“황후 폐하, 짐은 이것이 다입니까?”

연신 그녀 주위를 배회하며 필요한 것이 있느냐 묻는 건장한 장정들이 꼭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대형견 같아서 아델은 몰래 피식 웃었다. 곁에 서 있던 리오넬도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아델은 이런 기회를 뻥 차 버릴 만큼 허술하지 않았기에 근엄한 얼굴을 가장하며 제 주변으로 몰려든 기사들을 다시 한번 칭찬했다.

16553296888591.jpg“역시 에흐몬트의 기사들답구나.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어찌 이리 속속 알아채는 게야? 내가 그대들 덕분에 금방 나았어!”

  * * * 그로부터 며칠 뒤, 예고도 없이 발드르 공가의 문을 두드린 사람이 있었다. 하물며 황제조차 공가의 주인과 독대하려면 미리 방문 일정을 잡는 것이 일반적이니, 이 얼마나 격 없고 예의 없는 사람인가? 그러나 공가의 집사는 찾아온 이에게 반가운 얼굴로 정중히 머리를 조아렸다.

16553296888579.jpg“어서 오십시오, 그랜드 공작 전하.”

엘리자베타도 오랜만에 보는 집사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16553296913481.jpg“그동안 잘 지냈는가? 이런, 내가 가고 편했는지 얼굴이 더 좋아졌군?”

16553296888579.jpg“그런 말씀 마십시오.”

집사는 한때 발드르 공가의 안주인이었던 엘리자베타를 매우 존경했다. 그녀는 신분보다 능력을 높이 사는 열린 사람이었으며, 공가의 안주인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이였다. 그래서 엘리자베타가 과감히 공작과 이혼하겠다고 했을 때, 집사는 홀로 피눈물을 흘렸었다. 엘리자베타가 피식 웃으며 걸음을 내디딜 무렵,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열고 나타난 이는 익숙한 듯 낯선 사람이었다. 투명한 안경 너머 검푸른 눈동자를 마주하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엘리자베타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16553296913481.jpg“오랜만이오, 발드르 공.”

테세우스는 깔끔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굽이치는 금발, 오만할 정도로 당당한 표정, 여유로운 미소. 참 한결같은 사람이다. 이혼을 제안하던 날도, 이혼하여 공가를 나가던 날도 그녀는 이런 모습이었다. 테세우스는 제 감정을 꾹 누르며 인사를 건넸다.

16553296913531.jpg“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랜드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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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타와 테세우스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16553296913481.jpg“장관께서 황후 폐하의 보좌관이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소.”

16553296913531.jpg“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엘리자베타는 리오넬을 떠올리며 팔짱을 꼈다.

16553296913481.jpg“흠……. 장관이 파격적인 데가 있다고 늘 생각하긴 했는데, 그래도 황후께서 낸 보좌관 공고에 직접 응할 줄은 몰랐소.”

테세우스도 그녀의 말에 작게 실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96913481.jpg“아무튼…….”

엘리자베타는 말끝을 흐리며 테세우스의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 일전 황제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수도에 왔을 땐 황궁에서 머물러서 그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으니, 이혼 후 테세우스와 제대로 마주 앉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그는 변함이 없었다. 하긴, 어차피 정략혼이었으니 괜찮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엘리자베타는 숨을 한 번 들이켜며 제가 찾아온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밝혔다.

16553296913481.jpg“더 이상 이 정체된 판을 두고 볼 수가 없소.”

16553296913531.jpg“…….”

16553296913481.jpg“밑 빠진 병에 물을 들이붓는 심정이오. 힘닿는 데까지 구휼을 하였으나,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악순환만 계속되고 있소. 내가 이 정도이니 다른 지역 영주들 상황은 안 봐도 뻔하지.”

엘리자베타는 긴 숨을 몰아쉬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단단해진 눈빛으로 테세우스를 직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16553296913481.jpg“지긋지긋하여 다 두고 도망을 갔었소. 그래, 그건 도망이었지.”

카를과 데스포네 공작의 머리털 하나 마주하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16553296913481.jpg“한데…… 이젠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더군. 그랜드 숲 곳곳이 불타 버렸소. 난민들이 추위를 피하려고 불을 피웠거든. 그러나 그들을 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들 입장에선 얼어 죽으나 처벌받아 죽으나 매한가지 아니오?”

엘리자베타의 말을 경청하던 테세우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가 엘리자베타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16553296913531.jpg“더 이상 도망치지 않으시겠단 말씀이십니까?”

16553296913481.jpg“도망치고 나서야 깨달았지. 이 나라 안에서 내가 도망갈 곳은 없다는 것을.”

그 말에 테세우스는 허탈한 얼굴로 웃어 버렸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테세우스와의 결혼도, 이혼도 모두 도피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엘리자베타는 카를과 마주치고 싶어 하지도, 대적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마치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선’을 지키려는 것처럼. 테세우스는 늘 그녀가 그 선을 깨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차마 겉으로 내보이진 못했지만 말이다.

16553296913531.jpg“그렇다면 황제 폐하와 정면으로 마주하셔야 할 것입니다.”

테세우스의 말에 엘리자베타는 잠시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으나, 이내 결심한 듯 단단한 목소리로 답했다.

16553296913481.jpg“그래야겠지.”

그녀의 수긍에 테세우스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쉬며, 지금껏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드디어 내뱉었다.

16553296913531.jpg“그렇다면 감히 청합니다. 구심점이 되어 주십시오.”

그때, 집사가 급편을 들고 들어와 테세우스에게 건네주었다. 엘리자베타도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지만, 현재 그들은 엄연한 타인이었다. 괜히 찻잔을 매만지며 시선을 내리고 있는데, 테세우스가 불쑥 편지를 그녀에게 건넸다. 엘리자베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테세우스를 바라보았다.

16553296913531.jpg“한 번 읽어 보시지요.”

테세우스의 말에 엘리자베타는 찻잔을 내려놓고 편지를 받아 들었다. 발신인은 리오넬로, 뷔에타에서 있었던 일을 일목요연하게 담은 편지는 앞으로의 판도가 지금과는 다를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엘리자베타는 황금빛 눈을 빛내던 황후를 떠올렸다. 그리고 소파에 느긋하게 몸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16553296913481.jpg“황후 폐하께서 우리 대단하신 숙부께 제대로 크게 한 방 먹이셨네. 이것 참, 우리 숙부님 화가 많이 나시겠는데. 가뜩이나 못마땅한 조카 얼굴도 곧 보셔야 할 텐데 말이지.”

  * * * 엘리자베타의 말처럼 데스포네 공작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달아 있었다. 감히 그의 세상에 돌을 던진 발칙한 것. 그는 뷔에타에서 수도로 돌아오는 내내 황후를 주시했다. 영악하기 그지없는 황후는 틀림없이 그의 날 선 시선을 눈치챘을 텐데도 일부러 모르는 척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게다가 리오넬 발드르를 주축으로 한 기사들은 수도로 오는 내내 끊임없이 황후 주변을 맴돌며 공작의 신경을 긁어 댔다. 자칼 가의 장남, 웰링턴 가의 장남, 브룩스 가의 차남…… 저들은 어디 가서 죽어 버려도 아무도 모를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뷔에타에서의 일은 과거 황후가 칼뱅 백에게 건넨 금괴 건과 더불어 무서운 속도로 소문이 날 것이 틀림없었다. 엘리자베타, 그 버릇없이 건방진 것이 사사건건 발드르 공작과 함께 훼방을 놓더니, 이제는 저 영악한 황후마저 가세한 것이다. 문제는 황후가 그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도 더 위협적이라는 데 있었다. 비단 황후의 올곧은 성격이나 마법사로서의 천부적인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데스포네 공작은 황후의 출정을 명하며 거칠게 일렁이던 황제의 자색 눈동자를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16553296959437.jpg‘저걸 어쩐다…….’

아델을 바라보는 데스포네 공작의 눈빛이 음험한 음모로 넘실거렸다. * * *

16553296888591.jpg“리오넬, 혹시 내 얼굴에 구멍이 났는지 좀 봐 봐.”

황후의 말에 리오넬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16553296888598.jpg“다행히 괜찮습니다.”

16553296888591.jpg“지금은 괜찮아도 곧 구멍 나겠어. 어떻게 오는 내내 저렇게 날 노려보나? 몸조심해야지.”

농담처럼 건넨 말에 리오넬은 목소리를 낮추며 진지하게 답했다.

16553296888598.jpg“황후궁 주변의 경비를 강화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아델에게 내밀었다. 아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그가 내민 작은 케이스를 받아 들었다.

16553296888591.jpg“이게 뭐야?”

16553296888598.jpg“한번 열어 보십시오.”

뚜껑을 여니 작은 종이가 여러 장 들어 있었다.

16553296888598.jpg“독 검사지입니다. 가지고 계시다가 필요하신 때에 사용하십시오. 부족하시면 더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다만, 은밀히 사용하셔야 합니다.”

작은 것 하나까지 섬세하게 살피는 그의 마음이 기꺼웠다. 아델은 웃으면서 케이스를 품에 쏙 집어넣었다.

16553296888591.jpg“잘 쓸게.”

  * * * 그리고 며칠 뒤. 황제는 오전 내내 시종을 들들 볶으며 아침부터 성곽에 사람을 보내 뷔에타로 떠났던 일행이 돌아오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어제 오전 데스포네 공작이 보낸 보고가 도착한 이래, 황제의 신경은 날카로울 때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서신에는 레녹스 푸아티에를 주축으로 한 정예 마법사들이 뷔에타의 탑을 파괴하였다는 내용이 장황히 적혀 있었다. 어차피 예상했던 내용이기도 하거니와 궁금한 내용은 따로 있었기 때문에, 카를은 이 부분은 대충 읽고 넘겼다. 그리고 편지의 거의 마지막 즈음, 비로소 그가 찾던 내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16553296980057.jpg‘황후.’

카를의 심장이 황후라는 단어 하나에 쿵쿵 뛰었다. 그는 숨을 참으며 문장을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읽었다. [암살자가 침실까지 침입하여 황후 폐하를 시해하려 하였으나 미수에 그쳤고, 황후께서는 관대하게도 이를 덮으라 하셨습니다.] 카를의 미간이 팍 찌푸려졌다. 그는 숨을 참으며 다시 한번 그 문장을 읽었다. 쾅! 카를은 와락 주먹을 쥐며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16553296980057.jpg“도대체 경비를 얼마나 허술하게 하였으면 황후의 침실까지 암살자가 기어들어 갔단 말인가?!”

편지를 받은 그 날 이후로 내내 황후 생각만 해서인지, 카를은 잘 꾸지 않던 꿈까지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피를 흘리며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미친 듯이 달려가 그녀를 흔들었으나, 굳게 닫힌 눈꺼풀은 열리지 않았다.

16553296980057.jpg“아직도 성곽에선 소식이 없느냐!!”

불길한 꿈 때문인지 가슴이 자꾸만 불안하게 뛰었다. 황제가 역정을 내자 시종은 어깨를 움츠리며 서둘러 답했다.

16553296888579.jpg“다시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시종이 황급히 문을 나서는데, 마침 복도 끝에서 다른 시종 한 사람이 달려왔다. 다행히도 황제가 그토록 기다려마지않던 소식을 가져온 것이다.

16553296888579.jpg“황후 폐하께서 2성곽을 통과하셨습니다!”

황제가 환해진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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