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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화. 루시오 고트로프 (109/127)


109화. 루시오 고트로프
2022.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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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루시오.”

이 녀석이 보기보다 과한 데가 있었네.

봄꽃이 핌과 동시에 밀려드는 수레의 행렬에 아델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겨울, 태후가 보낸 서신에 적혀 있던 문구가 떠올랐다.

[황제가 손수 마련한 네 결혼 준비가 과하기로 이루 말할 데가 없으니, 넌 이번 결혼만큼은 깨지 말고 잘 살거라.]

도대체 뭐 얼마나 과하면 서신에서 신랄함이 뚝뚝 묻어 떨어지나 싶었는데, 밀려드는 수레를 보니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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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로프를 통째로 옮겨 올 모양인데……?”

수레 행렬을 멍하니 지켜보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소란한 수레바퀴 소리에 묻혔다. 이 기나긴 행렬의 끝엔 고트로프의 황제가 있을 것이니, 기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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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문을 듣고 나타난 엘리자베타와 테세우스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혼집이 될 헤르베르트 후작저의 정원엔 채 정리하지 못한 선물들이 산처럼 빽빽하게 쌓여 있었다.

황궁 총관리인 긱스 부인이 나타나 도와주지 않았다면, 헤르베르트 후작저에 다 들이지도 못할 것 같은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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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가족실에 두는 것이 낫겠네. 거기로 가져가게. 이보게! 이건 고트로프식 실크야. 유리 다루듯 조심히 다루게.”

노부인은 많은 물건 사이를 유연하게 누비며 명령을 내리기 바빴고, 리오넬도 그 틈에 끼어 있었다. 아델은 현재 마법사단 관저로 출근하여 부재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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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후작님. 이 물건 다 들어가려면 황궁 정도 크기는 되어야겠군요.”

노부인이 스치듯 흘린 말에 리오넬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후작저를 빙 둘러보며 눈썹을 굳혔다.

안 그래도 아델이 살기에 비좁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그녀는 늘 황궁에서만 살던 사람인데.

집이 좁아 선물을 둘 곳도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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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입니다.”

바쁘게 움직이던 긱스 부인이 심각해진 그의 표정을 보고 얼른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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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좁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는데.”

어딘지 풀이 죽은 듯한 후작의 목소리에 긱스 부인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시퍼런 눈을 연신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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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보다 더 크게, 수도 어디에다 지으시렵니까?”

헤르베르트 후작저보다 더 큰 저택은 수도 내에서 발드르 대공저밖에 없었다.

과거 데스포네 공작저였던 위버링겐 백작저는 현재 전체적인 개보수 공사에 돌입한 상태로, 공사 중 저택 규모가 줄어들었다. 아델이 쓸데없이 크기만 하다며 별관 두 채를 허물라 명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긱스 부인의 말에도 리오넬의 표정은 풀릴 줄 몰랐다.

결국 긱스 부인은 작게 혀를 차며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버렸다. 리오넬과 쓸데없는 고민을 같이해 주기엔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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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부부 침실에 가져다 놓게. 오, 이건 최상품 약재이니 약재방에 쌓아 두고,”

잠시 뒤, 급한 일을 처리하고 달려온 아델이 정원 한쪽에서 유유자적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 황제와 대공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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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오셨습니까? 대공.”

그녀의 등장에 테세우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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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게, 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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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이곳에서 무얼 하십니까?”

아델이 황당하다는 듯 물었으나 두 사람은 답하지 않고 그저 웃었다.

한데 저택의 주인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도대체 리오넬은 뭘 하고 있기에 이 두 귀빈을 방치하는 걸까?

아델이 낯을 굳힌 채 주위를 둘러보는데, 눈치 빠른 엘리자베타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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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헤르베르트 후작은 저기에 있소. 내가 우린 신경 쓰지 말라 먼저 말했으니 염려치 말고.”

엘리자베타와 테세우스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끽하며 시시각각 심각해지는 리오넬을 구경하던 차였다.

마침 아델이 온 것을 발견한 리오넬이 그들을 향해 걸어오자, 황제가 웃으며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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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가 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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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아델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엘리자베타를 부르자,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아델의 귓가에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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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헤르베르트 후작은 그대의 위상에 걸맞은 남편이 못 된다는 걱정에 허우적거리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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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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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긱스 부인이 지나가는 말로 저 선물들을 다 넣으려면 황궁 정도는 되어야겠다고 했는데, 그 뒤로 저렇게 사색이 된 거요.”

엘리자베타가 눈을 찡긋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아델은 눈을 깜빡이며 황제와 대공을 번갈아 보며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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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두 분께서는 그런 후작을 구경하고 계셨고요.”

정곡을 찌르자 테세우스는 작게 헛기침을 했고, 엘리자베타는 능글맞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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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문 장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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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아델이 못마땅하다는 듯 낮은 목소리를 내자, 엘리자베타는 얼른 테세우스의 등을 떠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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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흠. 그럼 나는 이만 황궁으로 돌아가겠소. 대공, 가지.”

그러면서도 엘리자베타는 미련이 남는 듯 리오넬을 힐끔거렸다. 그리고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는 그에게 기어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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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게, 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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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지요.”

보다 못한 테세우스가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아델은 멀어지는 황제와 대공의 뒷모습을 떨떠름한 시선으로 일별한 뒤, 리오넬을 마주했다. 언뜻 보면 평상시와 다름없는 모습이었으나, 기려한 이목구비가 굳어 있는 것이 어딘지 미묘한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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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

그녀를 부르는 음성도 힘이 빠져 있었다.

아델은 몰래 한숨을 쉰 뒤, 허리에 손을 얹으며 위풍당당한 기세로 수많은 물건을 쭉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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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기도 많이 보내셨네. 내가 필요한 것이 이렇게 많을 것이라 생각하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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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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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리오넬 헤르베르트만 있으면 되는데 말이지.”

아델은 말을 툭 던져 놓고 눈동자만 굴려 리오넬을 바라봤다.

그는 입술을 꾹 깨문 채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는데, 광대 언저리가 은은하게 붉어져 있었다.

아델은 주위를 둘러보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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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곳이 마음에 들어.”

새롭게 단장한 후작저에는 시선이 닿는 곳마다 아델을 위한 그의 정성이 가득했다.

작고 소박한 나무 한 그루에도, 바위틈에 자라는 꽃 한 송이에도 그의 손길이 묻어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흘러감에 따라 정원은 제 나름의 색을 내었고, 아델은 그게 좋았다.

보랏빛 봉오리가 벙그는 등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곧 주렁주렁 늘어진 보라색 꽃이 흐드러지겠지. 그럼 그 아래 앉아서 오수를 즐길 것이다. 그와 함께.

아델이 리오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앞에서 리오넬은 문득문득 작아졌다. 위압감 넘치는 모습으로 대군을 호령하던 그가, 죽음과도 같은 거대한 재앙 눈앞에 두고도 칼을 치켜들던 그가 그녀 앞에서는 어깨를 늘어트리고 눈을 기울이곤 했다.

그게 아픔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델은 그가 그럴 때마다 기이한 고양감에 휩싸였다.

소박한 면 치마, 보잘것없는 들꽃다발을 바라 놓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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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기에서, 그대 옆에서 살 거야. 내가 정했어.”

조심스럽게 잡아 오는 크고 단단한 손에 아델이 입을 맞췄다. 무너질 듯 흐려지는 검푸른 눈동자를 잡아먹을 듯 바라보며.

* * *

루시오가 보낸 혼인 축하 선물을 정리하는 데엔 꼬박 2주일이 걸렸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사이 비가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정리가 끝났을 무렵, 고트로프의 황제가 에흐몬트 수도 관문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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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니 고트로프 선대 황제가 몹시 궁금해지는군.”

위풍당당하게 황궁을 가로지르는 키 큰 청년을 보며 엘리자베타가 중얼거리자, 곁에 있던 테세우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국의 황제를 마중하기 위해 나와 있던 중신들도 루시오 황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짧게 친 검은 머리카락 아래, 멀리서도 선명한 금안이 태양처럼 번뜩였다. 이목구비는 수려했으나, 쉬이 범접하기 힘든 기운을 담고 있었다. 요요하면서도 날카로운 분위기가 누이 아델라이드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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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오 황제가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엘리자베타를 응시하며 다가왔다. 엘리자베타 역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마치 울창한 산림을 거니는 한 마리의 수컷 흑표범 같은 루시오 황제의 곁에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체격이 큰 사내가 함께하고 있었는데, 마치 흑표범을 수호하는 붉은 곰 같았다.

이윽고 루시오 황제가 몇 걸음 앞에서 멈추자 엘리자베타는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채 그를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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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 오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에흐몬트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고트로프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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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해 주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변성기를 갓 지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제야 그의 나이를 실감한 중신들이 짧게 숨을 끊어 뱉으며 저들끼리 눈빛을 주고받았다.

아델은 작은 수군거림을 들어넘기며 어깨를 반듯하게 폈다.

위풍당당한 모양새로 에흐몬트 황궁을 가로지르는 동생의 모습이 뿌듯했다. 입술을 끌어당겨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 있으니, 엘리자베타와 인사를 끝마친 루시오가 그녀를 마주 보았다.

남매의 날카로운 눈매에 갇힌 금안이 부드럽게 휘었다.

아델은 그녀를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은 동생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곁을 지키고 선 리오넬 역시 마찬가지로 정중히 예를 다했다.

루시오의 금빛 눈동자가 많은 감정을 담은 채 리오넬의 단정한 얼굴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 * *

루시오 황제는 에흐몬트 황궁에서 엘리자베타와 함께 성대한 정찬을 즐긴 뒤 곧장 헤르베르트 후작저로 향했다.

고트로프 황제는 에흐몬트에 도착하기 전 이미 황궁이 아닌 아델라이드가 머무는 후작저에서 지내겠다 선언했는데, 귀빈이 오면 으레 황궁에서 대접하는 것이 예법이었으나 이미 태후가 선례를 만들어 놓은 탓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이 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후작저의 사용인들이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엘리자베타가 긱스 부인을 파견해 주었다.

루시오 황제를 저택으로 모시는 일은 리오넬이 맡았다. 아델은 후작저로 먼저 돌아가 고트로프 황제를 맞이할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여정엔 기벨린 루한이 동행했는데, 리오넬은 거한의 사내가 타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마차를 준비해 루시오를 모셨다.

기벨린이 험상궂게 웃으며 리오넬을 향해 눈을 찡긋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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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뵙습니다.”

일전 에흐몬트의 모든 것들을 쓸어 버릴 기세로 콧김을 뿜어 대던 사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익살스러운 말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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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타시지요, 폐하.”

루시오가 먼저 마차에 오르자 리오넬이 기벨린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기벨린은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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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나는 말을 타고 이동할 겁니다. 두 분께서 말씀 나누시지요.”

어깨를 으쓱이며 얼른 멀어지는 모습에서 결코 두 사람과 함께 마차를 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결국, 리오넬은 넓디넓은 마차에서 루시오와 단둘이 마주하게 되었다.

일전 태후의 눈길이 서늘하고 날카로운 칼날과 같았다면, 루시오의 눈길은 눈송이처럼 서늘하되 날카롭지는 않았다. 눈길이 서늘한 것은 어쩌면 이 집안사람들 특유의 분위기인 듯싶기도 했다.

루시오는 물끄러미 누이가 선택한 사내를 살펴보았다. 검푸른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꼭 밤바다를 연상케 했다.

언제나 고트로프 제국을 위해 살던 그의 누이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선택하고자 했던 남자.

그것만으로 루시오는 이미 리오넬을 인정했다. 아니, 기실 리오넬은 루시오의 인정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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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후작저에 머물겠다 하여 여러모로 번거로웠을 텐데, 흔쾌히 수락하여 고맙소.”

루시오가 다정스레 입을 열자 리오넬은 웃으며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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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거롭다니, 그런 말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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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궁금하여, 내가 무리한 길을 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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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오는 눈을 휘어 웃으며 리오넬에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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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게 되어 진심으로 반갑소. 꼭, 만나고 싶었소.”

리오넬은 서서히 빨라지는 맥동을 느끼며 그가 내민 손을 조심스럽게 마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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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야말로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그 뒤로 루시오는 말이 없었지만, 리오넬은 그것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반듯하게 앉아 창밖의 세상을 물끄러미 살피는 루시오의 모습에서 처음 발드르 공가의 마차를 타고 황궁 밖을 나왔을 때의 아델이 겹쳐졌다. 아마도 그는 제 누이가 살아갈 세상을 눈에 담고 있으리라.

한때 리오넬은 아델이 고트로프를 떠난 이유가 오직 고국의 안녕을 위해서일 것이라 짐작했었다.

그러나 루시오를 실제로 마주해 보니 그녀의 선택이 사실은 동생을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마차의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자, 창밖을 내다보던 루시오가 정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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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모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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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루시오는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어느덧 마차가 멈춰 서고, 밖에서 문이 열렸다. 들이치는 빛과 함께 누이가 서 있었다.

루시오의 눈이 길게 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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