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외전2. 테세우스와 엘리자베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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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외전2. 테세우스와 엘리자베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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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외전2. 테세우스와 엘리자베타 (2)
2022.05.10.
“……그런 이유로 현재 후작님께서는 매일같이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시는 듯합니다. 아무래도 상사병이 아닌가 걱정이 됩…….”
헤르베르트 후작저의 집사는 발드르 공작의 서슬 퍼런 기색에 서서히 말끝을 흐렸다. 곁에 서 있던 발드르 공저의 집사가 그런 그에게 눈을 부라렸다.
‘아주 배가 부른 걱정이로구먼!!’
최근 날로 수척해지는 리오넬이 걱정되어 혈육인 공작을 찾아온 터였다. 우애 좋기로 소문난 형제이니만큼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한데…… 시기가 좋지 않았다.
곁에 있던 마이클 로젠이 목을 길게 빼고 발드르 공작의 표정을 살피더니 슬그머니 목을 도로 집어넣으며 최대한 기척을 죽였다.
공작은 턱을 당겨 한껏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후작저의 집사를 응시하다가 평소와는 달리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고트로프에서 연락이 왔느냐? 가령 아델라이드 황녀가 영영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다거나.”
그제야 후작저 집사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당황하여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기다리면 어련히 알아서 돌아올 아델라이드 황녀가 그리워서 상사병이 난 리오넬이 걱정이 된다, 이것이냐?”
“…….”
후작저 집사의 말문이 막히자 공작이 아주 신랄하게 일갈했다.
“별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구나.”
우리 공작 전하께서 이런 분이 아니신데.
“그 자식은 어려서부터 제 덩치만큼 강골이니, 상사병으로 며칠 밤새고 몇 끼 굶는다고 하등 문제 될 것 없다. 그러니 너는 신경 쓰지 말고 네 일이나 하거라.”
“예? ……아, 넵!!”
공작은 다신 이따위 일로 저를 찾아오지 말라는 듯 매몰차게 시선을 돌려 버렸다.
공작저의 집사는 쫓겨나듯 공작의 방에서 나온 후작저 집사를 데리고 나오자마자 낯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낮게 윽박질렀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지!”
“죄송합니다. 한데…… 무슨 일 있습니까? 공작님께서 심기가 왜 저리…….”
그러나 공저의 집사는 엄격한 표정으로 복도 끝을 눈짓했다. 쓸데없는 것은 묻지 말고 돌아가란 의미였다.
한편, 홀로 집무실에 남은 테세우스는 기가 막힌다는 듯 몇 번이나 혀를 찼다.
아주 배가 불렀지. 기다리면 온다는데 그새 애가 닳아서, 뭐? 상사병? 리오넬이 곁에 있었다면 ‘아예 고트로프까지 따라가지 그랬느냐?!’ 하고 쏘아붙였으리라.
감정이 격해진 것을 느낀 테세우스는 안경을 벗고 얼굴을 손으로 훑어내렸다. 검푸른 눈동자가 끝도 없이 가라앉았다. 기억은 물살처럼 그를 또 휩쓸었다.
즉위식 직후였다.
한낮의 햇살이 그녀의 등 뒤로 쏟아졌다. 밝게 타오르는 금발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리자 보석보다도 고귀한 빛을 품은 눈동자가 눈길을 사로잡고, 그 아래 유려한 선을 그리는 콧날과 입술이 눈에 담겼다.
이렇게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그녀가 있는데도, 감히 그녀에게 닿을 수조차 없다니. 멀쩡하게 서 있다가 한순간 발아래가 이지러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원흉이 모두 깨끗이 사라지지 않았는가?
테세우스는 그녀의 입술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저와 재결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엘리자베타의 움직임이 일순 멎었다.
불쑥 물어본 주제에 차마 그녀를 마주 볼 자신이 없어서 그녀의 목 언저리에 눈을 고정한 채 등 뒤로 감춘 주먹만 쥐었다 펴길 반복하는데, 느릿한 목소리가 들렸다.
‘황족의 배우자에 대한 법안이 여전히 건재하오. 그리고 작금의 나는 발드르 공작의 힘이 필요하지.’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이것은, 에두른 거절이 아닌가?
‘예.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폐하.’
테세우스는 된서리를 맞은 것처럼 딱딱하게 굳은 낯으로 간신히 대답한 후, 도망치듯 궁을 빠져나왔다.
공저로 돌아오는 마차에서 그는 제 목덜미를 괜스레 문지르며 위아래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슬프고 막막해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등을 쓰다듬던 손길이, 목을 감싸 오던 팔의 온기가 여전한데, 그녀에겐 그 모든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형제가 똑같네, 똑같아.”
시름에 잠겨 있던 테세우스는 어디선가 들려온 중얼거림에 눈살을 찌푸렸다. 눈길을 돌리자 마이클 로젠이 고개를 서류에 처박은 채 쯧쯧 혀를 차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미련스레 끙끙 앓기만 하는 게 형이나 동생이나 아주 똑같아. 말이나 똑바로 해 보지.”
저게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린가 싶어 테세우스의 눈이 가느스름하게 변했지만, 마이클은 바쁘게 도장을 쾅쾅 찍더니 해사한 얼굴로 기지개를 쭉 켰다.
“으아, 다했다! 어? 왜 그러세요?”
서슬 퍼런 테세우스와 눈이 마주친 마이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알아챘다는 듯 얼른 말을 덧붙였다.
“혼잣말한 거였어요. 요새 저희 애들이 아내 속을 많이 썩이거든요. 요 녀석들 생각이 나서 그만…….”
아닌 것 같은데.
“자자, 그럼 저는 서류를 전달하러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마이클은 활짝 웃으며 얼른 서류를 챙겨 들고 줄행랑을 쳐 버렸다. 어찌나 후다닥 도망을 치는지, 테세우스는 그제야 마이클이 저와 리오넬을 두고 들으라는 듯 말을 흘렸다는 것을 확신하고 이를 악물었다.
잘라 버릴까…….
‘말이나 똑바로 해 보지.’
한데, 그래 봬도 나름 참모라고,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테세우스는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서둘러 서류들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외출하십니까?”
집사가 창밖을 일별하며 물었다. 어둠이 낙조를 지그시 밟아 누르는 시간이었다. 테세우스는 답하지 않고 그의 곁을 스쳐 가 버렸고, 집사는 얼른 그의 뒤를 따랐다.
* * *
엘리자베타는 무척이나 바빴다. 오가는 이가 워낙 많아 황제궁 집무실 문은 닫힐 새가 없었다.
그래도 땅거미가 지자 황제를 찾는 사람의 수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엘리자베타는 의자에 몸을 묻으며 긴 숨을 몰아쉬었다.
시종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촛대에 불을 밝히는 것이 보였다.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창 너머로 어둠이 몰려와 있었다.
타닥거리는 벽난로의 장작 소리, 촛불이 심지를 태우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엘리자베타는 잠시 넋을 놓고 어두운 유리창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보았다.
긱스 부인이 눈치껏 시종들을 내보내고 조용히 문을 닫아 주었다. 어둠이 몰려들자 불쑥 그가 떠올랐다.
며칠 전, 테세우스가 갑작스럽게 그들의 재결합을 언급했다. 마치 오늘의 안부를 묻는 것처럼 담담하고도 별다를 것 없이.
엘리자베타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즉위식에서 제국의 황제가 소녀처럼 얼굴을 붉힐 수는 없었기에 최대한 표정을 관리했다. 최근 그녀도 밤마다 생각했던 일이라, 대답은 술술 나왔다.
‘황족의 배우자에 대한 법안이 여전히 건재하오. 그리고 작금의 나는 발드르 공작의 힘이 필요하지.’
그러니 그 빌어먹을 놈의 법안을 어서 파기해 버리고, 나와 재결합해.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나와 재결합해’였는데, 어찌나 낯이 간질거리는지 엘리자베타는 시선을 내리깔고 애꿎은 입술만 짓씹었다.
이윽고 다시 한번 용기를 끌어모은 그녀가 뒷말을 이으려는데, 테세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폐하.’
그의 태도가 이혼장을 받아들이던 그 날처럼 고요해서, 엘리자베타는 목이 졸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엘리자베타는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삶에 서서히 괴어든 테세우스 발드르는 지워지지 않는 자국처럼 남았다.
이혼하고 발드르 공작저를 나서던 날. 눈물 젖은 얼굴을 들킬까 차마 뒤돌아보지도 못했던 것을, 그 남자는 영영 모를 것이다.
그랜드 공작저에 칩거하며 넓은 침대에 홀로 누울 때마다 다정하게 그녀를 감싸 주던 온기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도.
그랜드 공작령에서 그녀가 발드르 공작의 재취 소식을 듣지는 않을까 얼마나 마음 졸였던가.
아직 젊고 아름다운 발드르의 수장을 노리는 영애들의 귀여운 수작질을 풍문으로 들을 때면, 엘리자베타는 질투로 온종일 까맣게 속을 태우곤 했다.
엘리자베타는 거친 손길로 제 가슴을 꾹꾹 누르고 쓸어내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오늘은 발드르 공작이 입궁하지 않았으니, 내일쯤엔 보고해야 할 것들을 가지고 올 것이다. 그럼 이번에야말로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하고 싶던 말을 해야지.
엘리자베타가 펜을 들어 서류에 서명하려는데, 긱스 부인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빠르게 다가와 엘리자베타에게 속삭였다.
“발드르 공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폐하를 알현할 수 있는지를 여쭙는군요.”
발드르.
들을 때마다 주문처럼 그녀의 간담을 술렁이게 하는 그 이름.
* * *
엘리자베타는 집무실 책상에 앉아 있고 테세우스는 책상맡에 선 채 두 사람 모두 잠시 말이 없었다.
테세우스는 온 용기를 끌어모아 엘리자베타의 자색 눈동자를 똑바로 직시했다.
감정이 멋대로 뒤집히며 끓어올랐다. 그는 이토록 절절 끓는데, 그녀는 말갛기만 한 것이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에서 겨우 뱉은 말은 초라한 원망이었다.
“당신에게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까?”
묻고 나자 손이 벌벌 떨렸다.
그것은 테세우스의 근원적인 공포였다.
처음 소녀를 만났을 때, 아름답게 자라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볼 때, 결혼식장에서, 그리고 발드르 공작저의 안주인이 된 그녀를 마주할 때도 언제나 두려웠다.
고귀하고 거리낄 것 없는 그녀에게 그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그래서 그날, 그녀의 침묵이 그토록 두려웠는지도 몰랐다.
그를 홀로 남겨 둔 채 발드르 공저를 떠나면서도, 그리고 그랜드 공작이 되어 아내가 아닌 동료가 되어서도 엘리자베타는 변함이 없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그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대답 같아서 괴로웠다.
테세우스는 이혼 후 몇 년의 시간 동안, 이 물음에 대해 홀로 고민했다.
제 심장을 살라 재와 그을음으로 속을 시커멓게 만드는 미련한 짓인 줄 알면서도 엘리자베타를 끊어 낼 수가 없어서, 그녀를 생각하다 보면 결국 그리되었다.
황족의 배우자에 대한 법. 그 때문에 엘리자베타를 잃었지만, 우습게도 그것 덕분에 엘리자베타가 오랫동안 홀로일 거라는 데 위안을 받는 어리석고 치졸한 남자가 바로 그였다.
결국 속으로 앓던 것을 내비치고 나자 둑이 터진 것처럼 감정이 터져 나왔다.
“저는 당신이 떠나고 단 한순간도 괜찮지 않았습니다. 당신에게 저는 그저 발드르 공작인지 모르겠지만, 제게 당신은…….”
눈가가 절로 뜨거워지고 목이 메었다. 테세우스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를 눈에 담았다.
불빛을 머금어 붉은 기가 도는 자색 눈동자가 둥글게 커져 있었다.
그럼에도 끝내 아무 말 없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허탈함이 밀려왔다. 테세우스는 안경을 쓰지 않은 쪽 얼굴을 훑어내리다 입과 턱을 손으로 감싸며 눈을 감았다.
막 황제의 자리에 오른 그녀에게 이 이상의 짐을 지울 수는 없었다.
황제를 보필하는 충성스러운 신하의 자리로나마 그녀의 곁을 지키려면 어서 요동치는 감정을 추스르고 갑작스럽게 찾아와 불쑥 추태를 보여 드려 죄송하다 사죄해야 했다.
그런데 별안간 인기척이 느껴졌다. 들이켜는 숨에 그리운 향이 묻어난다 싶은 순간. 따뜻한 손이 입과 턱을 감싼 그의 손을 잡아 내리고, 뒤이어 보드라운 감촉이 입술에 와 닿았다.
놀란 그가 눈을 뜸과 동시에 딱딱하게 경직된 그의 목덜미로 그녀가 팔을 둘러 왔다.
섬세한 손가락이 머리카락 사이를 살살 쓰다듬는다. 오소소 오르는 소름이 전율과 함께 온 신경을 녹일 듯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들고 왔던 서류가 발치로 떨어졌다. 생각이 조각나 이내 하얗게 부서졌다.
테세우스는 엘리자베타의 허리를 세게 끌어안으며 갈급한 사람처럼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엘리자베타의 손끝에서 이완되던 근육이 오늘은 더 바짝 조여들었다.
“자, 잠깐만!”
무섭게 파고드는 테세우스의 기세에 놀란 엘리자베타가 몸을 뒤로 빼며 단단한 가슴을 밀었지만, 차마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늘 온화하고 평온한 모습을 벗어 던진 그는 차라리 한 마리의 맹수 같았다. 검푸른 눈동자가 그녀를 가득 담은 채 이글이글 타오르고, 여전히 그녀의 허리를 붙잡은 단단한 손에 힘이 실렸다.
엘리자베타는 미친 듯 뛰는 맥동 사이로 온몸이 차분하게 이완되는 기이한 순간을 경험했다.
어째서 그가 늘 고요하다 생각했던 걸까. 그것은 단지 겉모습일 뿐, 돌이켜 보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그녀 앞에서 어느 한순간도 고요한 적이 없었건만.
엘리자베타가 손으로 그의 뺨을 천천히 쓰다듬다가 그의 귓가에 걸린 안경을 조심스럽게 벗겨 내자, 그의 눈동자가 좀 더 커졌다.
엘리자베타는 살짝 발돋움해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에 입을 맞추고 속삭였다.
“내가 언제 괜찮았다고 그랬어.”
“…….”
“왜 사람 말을 끝까지 안 들어.”
“…….”
엘리자베타가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발드르 공작의 능력으로 하루빨리 그 빌어먹을 법안을 폐기해 버려. 그러고 다시 결혼하자.”
웃음기 섞인 목소리에 이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잡아먹고 먹힐 듯한 입맞춤이 이어졌다. 먼 길을 돌아 비로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연인의 저녁이 밤으로 타올랐다.
* * *
한편, 밖에서 대기 중이던 긱스 부인은 한참이 지나도록 테세우스가 나오지 않자 사용인들을 복도 끝으로 물렸다.
“지금 폐하를 뵐 수 있겠습니까?”
황제를 찾아온 관료가 두어 명 더 있었으나, 관록의 노부인은 눈치껏 그들을 물렸다.
“당장 오늘 저녁에 해결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 아니지요?”
“예? 아, 그렇습니다.”
“내일 정오쯤에나 오세요.”
“정오요?”
그녀의 판단은 정확했다.
* * *
그리고 다음 날.
테세우스를 모시던 시종들은 저들끼리 소곤거렸다.
“우리 공작 전하께서 돌아오신 모양이야.”
“그러니까. 전에 없이 외박을 하고 오시더니…… 간밤에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
그리고 그 말을 엿들은 마이클 로젠은 부드럽게 풀려 있는 테세우스의 얼굴을 일별하며 또 크게 중얼거렸다.
“말을 어찌나 잘 듣는지, 아주 기특해 죽겠네!”
“…….”
“아, 저희 애들 말입니다! 그동안 그렇게나 속을 끓이더니 어제는 또 말을 참 잘 듣더라고요?”
테세우스는 마이클의 웃는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피식 웃어 버렸다.
그의 머리 위로 한겨울의 햇살이 포근하게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