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4화 (4/150)

〈 4화 〉 4화 밤나들이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파지직!

요한이 가볍게 땅을 박차고 오를 때마다 그의 발끝이 닿는 지면 위로 푸른 스파크의 꽃이 피어 올랐다.

후웅.

그 순간, 요한의 몸은 바람이 되어 숲을 빠르게 가로질렀다.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던 사슴은 그림자가 자신의 머리 위를 가로지르자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 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적막 뿐. 그림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도, 도련님!”

산을 내려와 별장으로 돌아오자 윌라드가 기겁을 하며 달려오더니 요한을 살폈다.

평소 깔끔한 그의 복장과 다르게 흙먼지가 잔뜩 묻은 윌라드의 옷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병사들과 시녀들 역시 윌라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밤새 찾아다닌 건가? 괜히 미안하네.’

“도련님! 폭풍우치는 밤에 혼자 말도 없이 나가시면 어떡합니까? 저희 모두 도련님이 혹시 잘못되셨으면 어떡하나 심장을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미안하다. 피치 못 할 사정이 있어서.”

미리 말했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막았을 윌라드였기에 부득이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미안함이 앞서는 요한이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꼭! 다음부터는 언질이라도 해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도련님······.”

“그래, 약속할게.”

“그런데 도련님,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왜 알몸으로 돌아오신건지 대관절 이해가······.”

윌라드는 서둘러 자신의 자켓을 벗어 요한의 몸에 덮어주었다. 그리고 시녀들은 그런 요한의 몸을 훔쳐보며 얼굴을 붉혔다.

‘어머어머~! 세상에~ 도련님의 몸이 저렇게 좋았다고?’

‘이야~ 물건일세······.’

‘히잉~ 이럴 줄 알았으면 박박 우겨서라도 목욕 시중을 들어가는건데······!’

요즘들어 환복이건 목욕 시중이건 요한이 혼자 전부 해결하는 바람에 시녀들은 요한의 알몸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없었기 때문이었다.

“크흠!”

시녀들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자 윌라드가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시녀들이 빠르게 달려가 요한의 옷을 가져왔다.

그렇게 요한은 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자신의 방에서 지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똑똑똑.

“들어와.”

노크 소리와 함께 요한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아닌 요안나였다.

몇달 전,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심신을 치유한 요안나는 다시 별장의 시녀가 되길 선택한 것이다.

“식사 전에 출출하실까 싶어 차와 다과를 준비하였습니다.”

요안나는 자신이 가져온 쟁반을 조심스럽게 테이블 옆에 내려놓고는 요한을 힐끔 바라보았다. 아직까지도 요한의 방금 전 알몸이 잔상처럼 남아있었던 탓이다.

그러자 요한이 지도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그렇게 힐끔보지 말고 뚫어져라 쳐다봐도 좋다. 나도 하루 일과 중에 거울보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거든.”

“아,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결례를······.”

“딱히 실수라고 할 게 있나. 예쁘고 잘생긴 이성에게 시선이 가는거야 자연스러운 일이잖아. 오히려 기분 좋은데?”

“······!”

요안나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개를 숙이자 요한이 다소 무거워진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도 내가 두려우냐.”

“그, 그것이······.”

“솔직하게 대답해도 좋다. 그런 걸로 해코지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하지 않겠다고 가문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마.”

요안나는 지난 몇달동안 자신이 보고 겪었던 요한의 모습을 떠올렸다.

“저희는 요한 도련님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천것들입니다. 그래서 요한 도련님이 저희에게 무슨 짓을 하시든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이 무섭고, 많이 아팠지만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도련님은 달라지셨고 그게 당연한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말 없이 요안나의 말을 경청했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도대체 어느쪽이 도련님의 진짜 모습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저희같은 천것들에게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는 도련님은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솔직히 당황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도련님의 모습 덕분에 지금의 제가 웃으며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무섭지만··· 저는 지금의 도련님이 훨씬 좋습니다!”

요안나는 밝게 웃었다. 그러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자각하고는 얼굴을 붉히며 다급히 손을 저었다.

“그, 그게 좋다는게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러니까······!”

“그래, 지금이 더 낫다는 게 거짓은 아닌 모양이구나.”

‘적어도 말을 더듬지 않는 걸 보면 말야.’

미소가 이토록 예쁜 녀석이었다는 걸 왜 이제서야 알게 된 걸까? 요한은 진심으로 요안나의 미소가 오래가길 바랐다.

휙.

요한은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요안나에게 던져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네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 날에는 가족들과 함께 외식이라도 하거라. 출근은 하지 않아도 좋다.”

“네?! 하, 하지만!”

“다른 녀석들도 챙겨주는 것이다. 너만 특별 취급하는 게 아니니까 부담갖지 말고. 참, 나가는 길에 윌라드 좀 불러줄래?”

“네. 도련님.”

꾸벅 인사를 하고 문밖을 나선 요안나는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금액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 외식 비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꾸욱.

콩닥콩닥······.

요안나는 주머니를 품속에 꼬옥 끌어안았다. 그러자 빠르게 뛰고 있는 심장의 두근거림이 두 손을 통해 느껴졌다.

‘내, 내가 미쳤나봐!’

솔직히 1년 전만 하더라도 세상에서 제일 밉고 원망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런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금 이 두근거리는 심장은 뭐라 설명해야 할지 요안나는 알 길이 없었다.

‘아니야.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자. 난 그냥 내 일만 하면 되는거야.’

요안나는 고개를 흔들어 잡생각을 털어버리고는 곧바로 윌라드를 호출하기 위해 달려갔다.

***

“부르셨습니까. 도련님.”

“이리로.”

윌라드가 요한의 방을 찾아오자 요한은 윌라드에게 자신이 보던 지도를 가리켰다. 그에 윌라드가 의문을 가지고 요한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가 방에서 지도를 본 모습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이곳 도모스 자작령의 지도가 아닙니까?”

도모스 자작은 크림포드 백작가의 가신 가문이었다.

개국공신인 크림포드 백작가가 왕가와 함께 왕국을 세울 때, 크림포드 백작가에 크게 일조한 가문으로써 백작가에서의 입지가 상당한 가신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은 그 위세가 옛날만큼 못 하지만······.

어쨌거나 현재 요한이 머물고 있는 별장도 바로 이곳, 도모스 자작령에 위치하고 있었다.

“최근 도모스 자작령의 도적들이 크게 늘어났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있나?”

“예. 겔러핀 기사단장님이 도모스 자작님의 장남이신 사잔 소가주님을 폭행하고 추방당하신 이후로 도적들의 수가 증가했다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 지금 시점에서는 그렇게 알려져 있겠지.”

“예? 그게 무슨······.”

윌라드가 요한의 말을 의아해하자 요한은 지도를 가리키며 윌라드에게 물었다.

“자네가 이 별장에서 집사로 사역하기 전까지는 도모스 자작령의 물자를 운반하던 마부였다지?”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자작령의 지리도 훤히 꿰고 있겠군. 혹시 도적들이 근거지로 삼을만한 비밀 장소가 어디쯤일지 혹시 짐작할 수 있겠나?”

“비, 비밀 장소 말씀이십니까? 글쎄요. 어디 보자······. 정확한 건 아니지만 이곳과 이곳에 사람들은 잘 모르는 곡물 창고가 있습니다. 예전에 어떤 상회가 사용하던 창고인데 지금은 이곳을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가 않은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요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난감한 척 하면서도 윌라드는 대규모의 도적들이 숨어있을만한 비밀 장소들을 척척 골라냈기 때문이다.

“고맙다. 윌라드. 이 정도면 충분히 도움이 될 거 같다.”

“도대체 도적들의 근거지로 추정될만한 곳이 왜 도련님의 도움이 되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또 위험한 일을 하려고 하시는 건······.”

“도모스 자작이 이전부터 도적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건 자네도 알 거야. 이 정보를 가지고 찾아가면 도모스 자작도 꽤나 좋아하겠지. 아니면 어쩔 수 없고. 그래도 만약 성공해서 자작령의 도적들이 내 도움으로 줄어들었다는 걸 아버지께서 알게 되시면 내 입지도 지금보다는 나아질거고. 안 그래?”

“그렇군요! 역시 도련님! 부디 꼭 좋은 성과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그, 그래.”

요한은 진심으로 자신이 잘 되길 바라는 윌라드의 순수한 응원의 눈빛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 했다.

그날 밤.

‘무, 무슨 일로 이 밤중에 날 부르신걸까?’

두근두근.

요안나는 주책없이 날뛰는 심장을 애써 억누르며 요한의 방으로 향했다.

1년 전에는 매일같이 시녀들을 잠자리에 불렀지만 최근들어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첫 상대가 자신이라니······.

예전 같았으면 요한의 방으로 향하는 이 길이 지옥길과 다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두려움과 흥분이 반쯤 뒤섞여 미묘한 감정이었다.

그렇게 요한의 방문 앞에 도착한 요안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노크했다.

똑똑똑.

“왔어?”

덥썩.

“······!”

요안나는 요한이 자신의 손을 덥썩 잡아 침대로 끌고가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정말 이렇게 첫경험을 치른다고? 그것도 상대가 요한 도련님이라······.’

얼마 전에 본 요한의 조각같은 알몸이 떠오르자 요안나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그러나······.

“잘 들어. 침대에 누워서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있다가 혹시라도 윌라드가 찾아오면 말 없이 그냥 뒤척이기만 해. 그럼 알아서 돌아갈 테니까. 만약 내가 너무 늦게 돌아오면 그냥 자고 있어. 알았지?”

“네?”

이해할 수 없는 요한의 지시에 요안나가 당황하는 사이, 그녀의 앞에서 순식간에 야행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요한은 마지막으로 검은 복면으로 코와 입을 가리며 외출 준비를 마쳤다.

“그럼 부탁한다. 요안나.”

“······!”

요한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살짝 당황한 사이, 어느새 열린 창문으로 요한의 모습이 사라졌다.

“잘··· 다녀오세요······.”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요안나는 서둘러 창문을 닫고 침대에 눕더니 이불을 뒤집어 썼다.

***

파팟!

어둠 속을 빠르게 이동하면서 지도에 체크된 포인트를 확인하던 요한.

‘여기도 아닌가.’

확인한 포인트가 꽝일 때마다 지도를 꺼내 해당 포인트에 X표시를 새겼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남은 포인트보다 X표시가 훨씬 더 많은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다보니 요한의 마음도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본거지가 어디였는지까지 알아둘 걸 그랬나? 하기야, 나라고 이렇게 될 줄 알났나 뭐······.’

미래에서 그가 알게 된 정보는 도적 떼가 전멸했다는 사실 뿐이었다. 당시에는 이 사건에 크게 관심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녀석들이 토벌되기 전에 내가 먼저 놈들과 접촉해야 해.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녀석들을 위해서도······.’

지도를 돌돌말아 다시 품안에 넣은 요한이 땅을 박찼다.

파지직!

옅은 스파크를 남기며 순식간에 사라진 그의 신형이 다음 포인트를 향해서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였다.

그러나······.

‘젠장! 꽝인가. 하기야, 그렇게 쉽게 발견될 것 같았으면 도모스 자작이 골머리를 썩지도 않았겠지.’

마지막 남은 체크 포인트까지 꽝이었다. 심지어 마지막 체크 포인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기에 더욱 아쉬움이 컸다.

‘한두 명의 나무꾼이나 사냥꾼들로는 이 정도의 흔적이 남아있을 리 없을 테니 분명 녀석들이 확실했을텐데······.’

조금만 일찍 올 걸 후회해도 이미 떠나버린 배는 붙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응?’

창고의 허름한 지붕 위에서 축 쳐져 앉아있던 요한의 눈에 저 멀리 옅은 불빛이 길게 이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상행인가?’

밤 상행은 굉장히 위험한 행위였지만 멀리서 찾아온 상단들은 납품 기일을 맞추기 위해 무리해서 밤 상행을 강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잠깐, 그렇다면 방금 전까지 여기 있던 놈들이 사라진 이유가······.’

요한의 입꼬리가 절로 말려올라갔다.

아무래도 아직 기회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