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8화 최종병기 활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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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겔러핀이 무기를 점검하며 부하에게 묻자 부하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게··· 상당히 많다는 것만 파악했을 뿐, 숲속이 너무 어두워서 정확한 숫자는 아직······.”
“312명이네. 제법 옹골찬 놈들만 모인 것이 작정하고 보낸 것 같은데?”
“설마······.”
요한이 창밖을 훑어보더니 심드렁하게 얘기했다. 그러자 빅스가 이전보다 더욱 강한 적의를 가지고 요한을 노려보았고 요한은 피식 웃었다.
“왜? 혹시 내가 불렀을까봐?”
그에 겔러핀조차 요한을 조금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쳐다보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니었던 듯 싶습니다. 조심히 살펴 돌아가시길······.”
일리있는 의심이었다. 요한 본인이라도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한다면 당장 자신을 의심할 테니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나? 하기야, 모두가 빅스처럼 조직에 충성심이 깊은 건 아닐 테니까.’
빠각!
“무슨······!”
돌연 갑자기 요한이 바닥을 향해 손을 내려치자 세 사람이 깜짝 놀라 그를 경계하였다.
바닥에 박힌 손을 빼낸 요한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놀랍게도 활과 화살이 가득 담긴 화살통이었다. 이런 상황을 예측한 요한이 미리 와서 사전에 준비해 둔 것들이었다.
활을 왼손에 들고, 화살통을 옆구리에 걸친 요한이 빅스에게 말했다.
“나한테 사과받아낼 거라면서. 괜히 힘빼지 말고 얌전히 여기 있어. 금방 끝날 테니까.”
“자, 잠깐만······!”
슉.
빅스가 뭐라 하기도 전에 요한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적들의 움직임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아직 눈치채지 못 한 게 아닐까요?”
“방심하지 마라. 단순한 도적들이 아니다. 이런 곳에서는 어지간한 레인저 부대보다 위험한 놈들이니 감각을 곤두세우고 어디서 기습이 와도 대응할 수 있도록······.”
스핏. 털썩······.
병사들에게 주의를 주던 기사 베릴이 말을 멈추고 눈을 부릅떴다.
푸른 섬광이 번쩍이더니 자신의 옆을 은밀하게 따르던 병사 하나가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졌기 때문이었다.
베릴은 다급히 근처 나무 뒤로 숨은 뒤 죽은 병사의 주변을 살폈다.
파지직, 파직!
그러자 바닥에 깊숙히 박힌 화살 주변으로 미약한 전류가 방전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근처에 궁병이 숨어있다는 보고는 못 들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 순간.
스핏.
다시 한 번 푸른 섬괌이 번쩍이며 병사 하나가 숨을 거두었다.
이번에는 육감을 모두 곤두세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릴은 어디서 화살이 날아왔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베릴은 더욱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저 오두막에서 화살이 날아왔다고? 말도 안 돼! 저기서 이곳까지 거리가 300m는 넘을텐데 도대체 어떻게······!’
현재 왕국에서 사용하는 활의 최대 사거리는 끽해야 120m정도였고 그마저도 살상력을 감안하면 유효 사거리는 80m이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낮에 탁트인 평야도 아니고, 어두운 숲속에서 300m거리를 정확하게 꿰뚫는 화살이라니?
‘심지어 바람마저 역풍이 아닌가?’
하지만 화살은 자비없이 날아왔고 그때마다 병사들의 숫자는 꼬박꼬박 줄어들고 있었다.
“나무나 바위 뒤로 몸을 엄폐하라! 이동할 때는 최대한 바닥에 붙어서 포복 전진한다!”
진군 속도가 느려도 어쩔 수 없었다. 이미 기습은 간파당했고 이제는 오히려 이쪽이 사냥당하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뭐 해. 화살 떨어진 거 안 보이니?”
“아, 예!”
지붕 위에서 신나게 시위를 당기던 요한이 아래쪽을 향해 외쳤다.
그러자 레지스탕스 대원 한 명이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서둘러 지붕위로 화살이 가득 담긴 화살통 하나를 던져 올렸다.
다시 새롭게 화살을 충전한 요한이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숲을 살펴보던 그의 눈에 나무 뒤로 숨는 병사의 모습이 보였다. 정확히는 그의 몸에 흐르는 생체 전기가 감지된 것이었다.
하지만 대낮에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선명하고 또렷해서 마치 손을 뻗으면 잡힐 것만 같았다.
퉁. 파지직!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가 탄성을 터트리며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순간, 화살은 푸른 스파크를 방전하며 직선상으로 곧장 날아갔다.
“커헉!”
그리고 여지없이 저 멀리서 들려오는 단말마가 레지스탕스 대원들을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젠장, 나무 뒤에 숨어있어도 상관없다는건가! 도대체 어떤 괴물이 있길래······!’
나무 뒤에 숨으면 나무 기둥과 함께, 바위 뒤에 숨어 있으면 바위와 함께 바람 구멍을 뚫어버렸다.
날아오는 화살 앞에서는 은폐 엄폐 자체가 무의미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인 베릴은 결국 눈을 질끈감고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원 돌격! 빠르게 접근해서 놈들을 쳐라!”
어차피 숨는 게 무의미하다면 포복으로 천천히 접근하는 건 독이라 판단한 베릴. 그의 명령은 무모해보이지만 후퇴를 제외한다면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명령이었다.
“으아아아아···!!”
“돌격! 돌격하라!!”
그렇게 죽음을 각오하고 돌격하기 시작하는 병사들. 그 와중에도 화살은 꼬박꼬박 날아와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날아오는 화살은 한 발 뿐이다! 접근하는동안 조금 더 희생이 따르겠지만 거리만 좁힐 수 있다면 병력 차이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
병사들의 악에 받친 함성 소리 탓일까?
레지스탕스 대원들도 마른침을 삼키며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요한이 이 만큼이나 적들의 숫자를 줄여준 것만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무려 20명이 넘는 병사들을 아무 피해 없이 쓰러트린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 했다. 이건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요한은 미소를 그리며 화살 한 발을 시위에 걸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뭐야?!”
“화살들이······.”
파지직, 파지직!
화살통에 들어있던 열댓 발의 화살들이 별안간 푸른 전기를 방전하더니 스르릉 공중으로 떠올라 요한의 주변을 둥둥 떠다녔던 것이다.
“세상에······. 어떻게 저런······.”
“화살이 무슨 물고기도 아니고······.”
둥둥 떠다니던 화살은 요한이 시위를 당기는 순간, 마치 훈련받은 군인처럼 동시에 그 자리에 멈춰 서더니 요한이 조준하는 방향으로 화살촉이 머리를 돌렸다.
파지직, 파직!
시위에 걸려 당겨진 화살의 화살촉과 둥둥 떠다니던 화살의 화살촉 사이에서 간헐적으로 전기가 흘렀다. 마치 화살끼리 사슬이 걸린 것처럼.
그래서일까?
퉁.
요한이 시위를 놓는 순간, 전기의 사슬에 묶인 화살들이 동시에 사라지더니 무서운 속도로 공간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숲속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는 수많은 비명들······.
“뭐해?! 이것들아! 어서 화살을 공급해 드리지 않고!”
“아, 맞다!”
“화살! 화살을 더 가져와!”
그 모습을 넋놓고 지켜보던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소리치며 화살을 준비하려 하자 요한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필요없어.”
요한이 오른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푸른 전기가 방전하며 파지직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슝슝슝슝슝슝!!
“헉!”
“조심해! 화살이 날아온다!”
돌연 적들 측에서 무서운 기세로 날아오는 화살비에 눈을 부릅뜨는 사람들.
레지스탕스 대원들은 혼비백산 하면서 방패를 들어 올리며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레지스탕스 대원들은 의아해하면서 방패를 치우고 화살들을 확인했다. 이후, 그들은 벌어진 턱을 다물지 못 했다.
“허······.”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건가?”
“이게 현실이라니 말도 안 되지. 암, 말도 안 되고 말고.”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날아온 화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요한의 주변을 천천히 날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숫자만 무려 오십 발!
“방금 쏜 화살들을 수거했단 말이야? 대체 어떻게······.”
“나도 모르니까 나한테 묻지마. 그냥 저런 괴물··· 아니, 저분하고 마주보고 있는 게 우리가 아니라는 것만 감사하자고.”
꾸드득······.
요한의 시위가 다시 한 번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서른 발의 화살촉이 숲속을 향하고······.
퉁.
이내 푸른 섬광을 터트리며 화살 폭격을 가했다.
슝슝슝슝슝슝!!
그리고 또 다시 반복되는 끔찍한 악몽······.
몇 번 더 똑같은 악몽이 반복되자 마침내 숲속에서는 더 이상 비명소리조차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
“저, 전부 전멸했습니다. 화살은 전부 머리나 심장을 관통했고요······.”
꿀꺽······.
겔러핀은 믿을 수가 없었다. 특히 사체 중에 베릴을 포함한 실력있는 기사들도 섞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베릴······.’
베릴은 자신의 뒤를 이어 기사단장에 올랐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인물이었다.
비록 권력욕과 물욕이 너무 강해서 자신과는 자주 충돌하던 인물이었지만 실력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인물이었다.
‘베릴은 나도 진심으로 겨루면 승부를 장담하기 여러운 강자다. 그런 베릴조차 피할 수 없는 화살이었단 말인가······.’
일반 병사도, 오러 유저였던 베릴조차도 평등하게 죽음을 안겨준 화살.
겔러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요한에게 향했다.
“이 정도면 굳이 스파이 의심에 대한 항변은 필요 없을 것 같고. 혹시 나한테 할 말은 없나?”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상황이 워낙 급박했던지라 전후사정을 파악할 여유가······.”
겔러핀이 고개숙여 사과하자 요한은 손을 내젓더니 빅스를 가리켰다.
“너 말고 저 녀석 말이야. 훼방꾼들도 정리 됐으니 아까 하려던 거 마저 해야지. 안 그래?”
요한이 히죽 웃으며 능글맞게 이죽이자 빅스는 마른침을 크게 삼키더니 똥배짱을 부렸다.
“다, 당연하지! 약속이나 꼭 지키시오! 그 대신 다른 대원들에게는 해코지 하지 말아주시오. 부탁하오.”
빅스는 검을 뽑아들고 앞으로 나서며 헨더슨에게 유언을 전했다.
“헨더슨 혹시 내가 죽으면 내 침대 밑에 감춰놓은 내 보물은 네가 꼭 찾아서 가져가던가 아니면 태워주라. 아르아가 찾아내기 전에.”
“아, 그거? 아르아가 진작에 가져갔지. 아직 말 안 해줬냐?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벼르고 있는 것 같던데.”
“······.”
애인이 벌써 침대 밑에 숨겨두었던 자신의 보물을 찾아서 들고갔다는 말을 듣고 빅스는 깔끔하게 삶을 포기할 수 있었다.
“언제든지 들어와.”
“으아아아아!!”
그날 밤. 빅스의 입에서는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
“조심해서 옮겨!”
“보석에 생채기 하나라도 나봐. 그 자식 얼굴을 아주 줄무늬로 만들어 줄 테니까.”
일단의 마차 행렬이 조심스럽게 동굴로 이어졌다.
동굴의 입구는 계곡과 계곡 사이에 교묘하게 감춰져 있어서 입구까지 제대로 접근하지 않고서는 발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봉우리 위쪽에서 보면 훤히 뚫려 있어서 감시가 쉽고 계곡 주변의 지형이 험준해서 천혜의 요새라 불릴만하군.’
“꽤 좋은 요새잖아? 방비도 제법 훌륭하고. 고생이 많았겠어.”
“저보다는 제 동료들이 힘써 준 덕분이죠.”
요한의 순수한 칭찬에 겔러핀은 공을 동료들에게 돌렸다.
그렇게 겔러핀 일행과 함께 필립 상단의 장물을 가지고 아지트로 찾아온 요한.
동굴 안쪽은 의외로 환풍이 잘되는지 그다지 습하지 않았고 곳곳에 횃불이 밝혀져 있어 가시성도 나쁘지 않았다.
“이곳이 거주구역입니다.”
겔러핀이 거주구역이라고 밝힌 동굴 안쪽의 거대 공동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움막을 짓거나 따로 굴을 파서 살고 있었다.
“이들 모두가 레지스탕스 대원들의 가족이거나 도모스 자작의 폭정을 피해 도망친 백성들입니다.”
“사는 게 불편할 법도 한데 표정들이 제법 밝아 보이네.”
멀쩡한 사람보다 굶주리고 아픈 사람들의 비율이 훨씬 많아 보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표정은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한결 가벼워 보였다.
“적어도 이곳에는 최소한의 자유가 있으니까요.”
자유······.
망나니 공자 시절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었던 그 가치를 이제는 자신도 뼛속 깊이 알고 있었다.
때문에 힘겹게 살고있을 사람들의 표정이 밝은 것도 이해가 되었다.
사람들은 대장과 함께 있는 처음보는 복면인을 보고 경계하거나 호기심을 드러내곤 했다. 하지만 누구도 요한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겔러핀을 신뢰한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요한은 거주구역을 지나 겔러핀의 집무실에서 이미 대기중이던 레지스탕스 간부들과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