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9화 너 이제 큰일났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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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입니까? 대장이 얘기한 그 괴물이.”
“야, 임마. 에단, 아무리 그래도 장본인 앞에서 괴물은 좀! 죄송합니다. 저 녀석이 좀 정신머리가 이상해서······.”
헨더슨이 진땀을 흘리며 동료의 실수를 애둘러대자 요한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괜찮아. 괜찮아. 틀린 말도 아닌데 뭐. 그나저나 각자 자기소개 좀 해볼래?”
요한이 당연하다는듯이 겔러핀의 자리에 착석하며 자기소개를 요구하자 간부들의 표정이 미세하게 불편해졌다.
하지만 겔러핀이 자연스럽게 요한의 등 뒤에 서자 누구도 티를 내지 못 하고 그저 속으로 삭힐 뿐이었다.
“크흠! 저 먼저 소개하자면 우리 레지스탕스 최강의 완력을 자랑하는 전사, 헨더슨이라고 합니다. 레지스탕스 최강의 공격 부대가 바로 제가 이끄는 헨더슨 부대라고 할까요. 크하하하!”
“그런 것 치고는 저번에 보니까 너무 빌빌거리던데?”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헨더슨에게 다가가 악수를 건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 그건 그 용병놈이 설마 오러 유저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서······.”
“알았어. 약골. 다음.”
요한의 눈에 들기 위해서 자신있게 먼저 나섰다가 다른 의미로 눈도장이 찍힌 헨더슨이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물러섰다.
그에 옆에 서 있던 빅스가 식은땀을 흘리며 어쩔 수 없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오~ 반갑다. 노예 1호. 그동안 잘 있었지?”
“푸흡!”
“끅끅······!”
노예 1호라는 말에 헨더슨이 대놓고 웃음을 터트렸으며 다른 이들 또한 고개를 돌렸지만 어깨가 들썩이는 것까지는 감추지 못 했다.
그에 빅스가 얼굴을 붉히며 진심 반, 짜증 반 섞인 표정으로 요한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저··· 죄송한데 이름만이라도 똑바로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드립니다.”
“제대로 1인분을 하는 날이 오면. 그래서 1호 너는 특기가 뭔데?”
“하아······. 저는 대장의 호위와 이곳 아지트의 수비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실력으로? 용케 버티고 있었네······. 영주한테 뇌물이라도 먹인건가? 제발 쳐들어오지 말아달라고.”
빠직.
요한이 진심으로 이죽이자 빅스의 이마에 혈관 자국이 살짝 도드라졌다.
‘크윽! 진짜 한 대만 시원하게 쥐어박았으면!’
“진짜 한 대만 시원하게 쥐어박았으면 좋겠다는 표정이네. 말 나온김에 어때? 한 번 때려볼래?”
“그, 그럴리가요. 하하하······.”
그렇게 빅스도 요한과 악수를 나누었다.
빅스 다음으로 자신을 소개한 사람은 네 명의 간부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가렛이라고 해요. 레지스탕스의 안살림은 모두 제가 도맡아 하고 있죠.”
“상당한 미인이네. 그쪽같은 미녀랑 함께 일하게 돼서 기뻐. 잘 부탁하지. 가렛.”
가렛과도 악수를 나눈 요한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남은 간부에게 향했다.
“대장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발터라고 합니다. 주로 정보수집과 공작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발터는 헨더슨 못지않은 근육질의 거구였다. 그러나 풍기는 분위기가 차분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맡은 임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적인 느낌이 강한 인물이었다.
“정보수집과 공작이라···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군. 앞으로 잘 부탁하지.”
“대장의 뜻은 곧 저의 뜻.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지막으로 발터까지 요한과 악수를 나누었다.
겔러핀은 요한의 뒤에서 간부들을 보며 흔들리는 눈빛을 애써 진정시켰다.
그의 눈은 요한을 처음 만났던 그날 밤으로 돌아갔다.
***
“간부들 중에 스파이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럼 저 녀석들이 기도하다가 영빨받고 여기까지 찾아왔을까봐? 나랑 만나는 게 간부 회의에서만 논의된 일급 기밀이었다면서? 그렇다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너랑 간부들 뿐이라는 뜻아니야?”
빅스와 헨더슨까지 밖으로 내보낸 요한은 겔러핀과 둘만 있는 오두막 안에서 스파이의 존재를 언급했다.
“하지만······!”
“생사고락을 함께 한 동료를 의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특히 댁처럼 인정많고 고지식한 인간이라면 더더욱. 그러니까 믿으라는 말은 안 해. 대신 확인을 해보자고.”
“확인이요? 어떻게······.”
***
그 순간, 겔러핀의 눈빛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만나서 반갑다. 제군들. 보면 알겠지만 이쪽도 사정이 있어서 간단히 정체를 노출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서 말이야. 그래도 부르기 편한 호칭은 있어야 하니 편의상 ‘알파’라고 불러주면 고맙겠어.”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알파라고 했나요? 당신의 목적은 뭐죠? 왜 우리 조직을 원하는 건가요?”
가렛의 질문에 요한은 입꼬리를 살짝 말아올리며 대답했다.
“좋은 질문이야. 이런 촌구석에 박혀있는 너희는 잘 느끼지 못 하겠지만 현재 대륙의 암중에서 흐르는 기류는 결코 심상치 않아. 그래서 나는 다가올 그날을 대비해서 힘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너희는 그 시발점이고.”
“심상치않은 기류라니··· 설마 이 평화로운 시대에 난데없이 전쟁이라도 터진다는 뜻인가요?”
“장담하지. 내 목을 걸어도 좋다.”
가렛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겔러핀에게 시선을 돌렸다.
“설마 대장도 이 말을 믿는 건 아니겠죠?”
겔러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알파 경의 예상은 둘째치고라도 우리 조직과 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한, 나는 당분간 그와 손을 잡을 생각이다.”
“이해관계라뇨?”
요한은 팔걸이에 턱을 괸 채로 가렛의 질문에 답했다.
“나는 너희들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지길 바란다. 아니, 반드시 강해져야 하지. 하지만 이런 곳에서는 훈련도, 시설도, 병력의 증강에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너희도 이곳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싶을테지. 그러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잖아?”
“설마··· 도모스 자작을 치겠다는 말입니까?”
헨더슨이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겔러핀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처음 듣는 것처럼 놀람을 감추지 못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놀랄만한 소식은 따로 있었다.
“나는 할 수 있는 일에 시간 끄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말야. 도모스 자작이 문제라면 오늘밤 안으로 해결해주지. 공교롭게도 침투와 암살은 내 전문 분야거든.”
***
그날 밤.
요한과 겔러핀은 그의 집무실에서 단 둘이 술잔을 기울였다.
“정말 움직일까요?”
“그러라고 일부러 쇼 한거잖아. 나라고 300명이 넘는 기사들과 병사들을 상대하는 게 쉬운 줄 알아?”
‘엄청 쉬워보이던데······.’
“간부들 중에서 내 위험성을 모를 녀석은 이제 없어. 내가 오늘밤 당장 자작의 암살을 계획한다고 하면 똥줄이 탄 범인이 반드시 움직일거야. 철저히 감시하고 있지?”
“예. 믿을만한 녀석들로 붙여서 감시중입니다. 그런데 만약 감시를 눈치채고 움직이지 않는다면요?”
“계획대로 해야지. 그렇게 되면 스파이의 이름은 자작의 입에서 듣게 되겠지.”
어느쪽이든 손해 볼 것은 없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겔러핀의 밀명을 받아 아지트 주변을 숨어서 감시하고 있던 대원 둘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응? 저건 뭐지? 비둘기인가?”
“이 시간에 산비둘기가 날아다닌다고?”
산비둘기가 활동할 시간이 아님에도 날아다니는 녀석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때마침 구름에서 빠져나온 달빛의 도움이 컸다.
퉁.
활에 자신있던 대원 한 명이 화살을 시위에 걸어 비둘기를 향해 쏘았다.
화살이 명중하자 힘없이 추락한 비둘기를 쫓아 이동한 두 사람은 비둘기의 발목에 묶여 있던 통 하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얼른 대장님께 보고하자.”
대원들은 비둘기를 챙겨 신속히 겔러핀을 찾아갔다.
“대장, 이걸······.”
그들에게 비둘기를 건내받은 겔러핀. 그는 통속에 들어있던 밀서를 확인하고는 괴로움에 이마를 감싸 쥐었다.
요한은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답이 나온 모양이지?”
겔러핀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당장 발터를 구속시켜!”
***
‘이런, 젠장!’
발터는 전서구가 출발하자마자 사냥당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함정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이게 함정이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짐작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알파의 계획이 성공하면 결국 자작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겠지. 실패하면 실패하는대로 자작은 내게 책임을 물을 것이고. 결국 어느 쪽이든 죽을 수밖에 없잖아!’
흔히들 말하는 외통수에 걸린 셈이었다.
그나마 달이 구름에 가리고 있어서 희망을 가졌었는데 하필이면 비둘기가 날아가는 순간에 구름이 걷힐 줄은 그도 예상치 못 했다.
‘신도 나를 버렸다는 건가? 아니, 내가 잘못한 게 아니야. 알파···! 어디서 그런 괴물같은 놈이 나타난거지?!’
혹시 몰라서 준비해 두었던 비상금과 돈이 될만한 정보들을 가지고 책장으로 다가서는 발터.
겔러핀이 붙인 감시의 눈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건 이미 파악했다. 하지만 밖으로만 나가지 않는다면 상관없었다.
딸깍. 드르르륵······.
그가 책 한 권을 반쯤 꺼내자 딸깍하는 장치음과 함께 책장이 옆으로 밀려났다. 책장의 뒤는 비밀통로로 이어지는 입구가 존재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다른 영지로 가서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이 돈이면 뭐가 됐든 나 혼자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어!’
통로 안쪽에 있던 장치를 조작하여 다시 책장을 원래대로 되돌린 발터는 횃불에 의지하여 비밀통로를 기어가기 시작했다.
비밀통로는 작고 좁아서 엉금엉금 기어가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까진 무릎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지만 그걸로 목숨을 건질 수 있다면 대가라고 할 것도 없었다.
“끄응···!”
길고 비좁은 비밀통로를 지나 머리 위에 막혀있는 작은 바위를 치우고 나니 구멍 위로 달빛이 보였다.
그렇게 비밀 통로를 빠져나온 발터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자신이 빠져나간 걸 눈치채지 못 했는지 주위에는 시원한 물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물과 요한의 얼굴이······.
“방에서 여기까지 기어온거야? 거리가 제법 됐을텐데 그 덩치로 고생이 많았겠어.”
“허어억!”
털썩.
“어, 어떻게······!”
엉덩방아를 찧은 발터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요한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벌벌 떨었다.
비밀 통로는 아지트를 건설할 당시에 대장장이 한 명을 매수하여 조심스럽게 만들었었다. 심지어 그조차도 완성된 후에는 곧바로 대장장이를 처리해버린 발터였다.
때문에 누구도 이곳에 대해서 알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요한이 이곳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궁금해?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특별히 알려줄게. 네 손을 봐봐.”
‘손?’
그러나 손을 들여다봐도 흙먼지 묻은 손에서는 아무런 이상도 보이지 않았다.
“잠깐, 설마 그때 악수했을 때······?!”
요한은 말 없이 눈웃음을 지어주었다.
그 순간.
“발터!!”
계곡이 무너져라 울려퍼지는 분노에 찬 겔러핀의 포효가 발터의 몸과 마음을 공포로 물들였다.
그 순간, 주변을 포위하게 빠르게 모습을 드러내는 전 레지스탕스 동료들과 간부들, 그리고 분노한 겔러핀의 모습까지······.
꼼짝없이 그들에게 포위당한 상태로 오들오들 떨고있던 발터에게 요한은 씨익 미소를 그렸다.
“어쩌냐. 너 이제 큰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