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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15화 (15/150)

〈 15화 〉 15화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서...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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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기를 옮기는 수많은 시녀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산해진미들.

저녁 만찬의 분위기를 돋구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모든 게 다 완벽 그 이상을 자랑했다.

그 자리의 주인공들만 제외하면······.

‘아버지······.’

요한의 눈이 상석에 앉아 송아지 스테이크를 작게 썰어서 입으로 가져가는 한 중년인에게 머물렀다.

그의 이름은 하이든. 크림포드 백작가의 현 가주이자 국왕이 가장 총애하는 왕족파 귀족 중 한 명이었다.

예전의 요한에게는 언제까지나 근엄하고 차가운 아버지로 원망받던 존재였지만······.

‘어머니······.’

요한의 시선이 맞은편에 있는 중년의 여성에게로 옮겨졌다.

아직까지도 젊었을 적의 미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녀는 인자한 성품과 덕망으로 백성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은 요한의 어머니, 아네트였다.

두 사람을 바라보던 요한은 울컥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평범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는 순간,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지키며 죽어간 부모님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너는 꼭 살아남거라. 요한!’

‘사랑한다. 우리 아들······.’

그때까지만 해도 형에게 모든 사랑을 빼앗기고 부모님의 눈밖에 났다고 생각하던 철없는 개망나니는 그렇게 부모님의 진심을 깨닫게 된 그날,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버렸다.

‘이제는 내가 지킬 차례다.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반드시······.’

마지막으로 요한의 시선이 가장 미워했던 사람이자,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며, 가장 고마웠던 사람에게로 향했다.

‘형!’

요한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그의 시선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워드 크림포드.

어릴적 요한에게 신동, 천재 같은 말들은 전부 형을 위해서 만들어진 단어인것만 같았다.

문(文)과 무(武)에 두루 능통하고,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달았으며 얼굴까지 잘 생긴 것도 모자라 올곧은 가치관에 따뜻한 심성까지······.

‘모든 걸 가지고 태어난 형이 부러웠다. 그래서 형이 되려고 노력했지. 하지만 난 형의 그림자도 밟을 수 없었어. 형을 따라가려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늘어가는 건 자괴감과 열등감 뿐이었으니까······.’

어느 순간, 존경과 사랑은 그 이상의 원망과 증오가 되었다.

괜히 가족들의 관심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전부 형을 향하는 것 같았다. 그럴수록 세상이 자신을 얕보고 하찮게 깔보는 것처럼 느껴져 참을 수 없었다.

‘참 등신이 따로 없었지. 같잖은 착각 속에서 그 귀한 시간들을 허비했으니까.’

어느 날, 하워드는 소리소문없이 암살을 당했다. 요한은 그제서야 형의 무덤 앞에서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신은 형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형에게 인정받는 동생이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는 걸······.

하지만 그걸 깨닫는게 너무 늦었다. 돌이킬 방법따윈 없었다.

아니, 없는 줄 알았다. 지금 이 순간까지는······.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 사과하고 싶다.’

보고싶었다고, 미안하다고, 가족들을 끌어안고 울부짖으며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죽을만큼 사랑한다는 말이 지금도 목구멍에서 튀어나올까봐 필사적으로 말을 삼켜야만 했다.

요한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이 수많은 시녀, 시종들 중에 누가 제국의 그림자인지, 어디서 누가 어떻게 지켜보고 있을 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때문에 모든게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기 전까지 자신은 개망나니 요한의 모습으로 있어야 했다.

“거기서 멀뚱히 서서 뭘 그리 구경하고 있는게냐. 버릇없이.”

“앉거라. 요한. 먼 길 오느라 많이 힘들었지? 고생했다.”

냉담한 아버지의 딱딱한 지시와 따뜻한 어머니의 자상한 위로가 요한의 마음을 술렁거리게 만들었다.

요한은 말 없이 자신의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데 숙련된 시녀들은 식기를 운반할 때도 조금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훈련을 받은 것이겠지만 요한은 이게 답답하게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이 공간에만 음소거를 한 것 같아 불편했다.

그러나 자신이 먼저 말을 거는 건 이상하다. 그건 평소의 요한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소의 그라면 말 없이 누구보다 식사를 빨리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식사에 스퍼트를 올리려는데 그리운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 들었다.

“살이 많이 빠졌구나. 요한. 체형을 보니 굶어서 뺀 건 아닌 듯 하고. 살이 빠지고 나니 인물은 이 형보다 낫구나. 아주 젊었을 적 어머니의 초상화를 쏙 빼닮았어. 하하하!”

‘형······!’

요한의 입에서는 고맙다고, 노력했다고, 그동안 보고싶었다는 말 대신 가시돋힌 말이 튀어나왔다.

“형 좋으라고 뺀 거 아니거든. 아무래도 뚱뚱한 몸으로 여자들을 품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말야. 확실히 살을 빼고나니까 밤이 즐거워지더라고.”

······.

순간, 정적이 흘렀다.

가족들이 함께 식사 중인 저녁 만찬 자리에서는 절대로 할 말이 아니었지만 요한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하워드는 크게 개의치않고 자신의 진심을 전했다.

“네가 무슨 이유로 살을 뺏건 아무래도 좋다. 건강해 보이는 모습이 이전보다는 훨씬 보기 좋구나. 다만 밤일은 적당히 하려무나. 정력이 쇠하면 일찍 요절할 수도 있다고 하니.”

“그럼 더 열심히 해야겠네. 내가 죽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할 테니까.”

요한은 자신이 내뱉고도 너무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게 이렇게 아픈 말인줄 그때 당시에는 왜 알지 못 했던 것일까?

“요한!”

그 순간, 하이든의 일갈이 터져나오자 요한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맛이 없네요. 잘 먹었습니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난 요한은 화장실을 찾아가 숨죽여 울고 또 울었다.

***

“도련님······.”

“하아······.”

눈이 퉁퉁 부어 돌아온 요한을 보고 요안나와 윌라드는 걱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의 눈이 퉁퉁 보어있는 이유를 짐작하지 못 할 두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도련님.”

“도련님이 숨기고 있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전부 밝히고 가족분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안 되는 건가요? 크림포드 백작가는 대단한 가문이잖아요! 백작가가 나서서 할 수 없는 일 따위 이 나라에 없는 게 아닌가요?”

윌라드는 진심어린 위로를 건냈고 요안나는 답답함에 자신의 생각을 숨김없이 밝혔다.

그러자 요한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수 있다면 그랬겠지. 하지만 지금 내 신용도로는 말 해봤자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은데다 설령 믿어준다 하더라도 백작가의 힘만으론 계란으로 바위치기야. 아니,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어.”

“도대체 도련님이 하시는 일이 뭐길래······.”

혼자서 세상을 상대하는 일이다.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윌라드와 요안나같은 사람들의 위로만으로도 충분한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똑똑똑.

그때마침 노크 소리가 들리자 요한은 침대에 누워있고 요안나를 보냈다. 퉁퉁 부은 눈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누구세요?”

“시녀, 로나라고 합니다. 요한 도련님께 마담의 전갈을 가지고 왔습니다.”

‘마담의 전갈?’

마담이란 요한의 어머니, 아네트를 존칭하는 말이었다.

그렇게 로나로부터 아네트의 전갈을 전달받은 요안나가 요한에게 다가갔다.

“어머니께서 뭐라고 하셨어?”

“일주일 뒤에 하워드 도련님께서 주최하시는 클랜 파티가 예정되어 있으니 도련님께서도 꼭 참석 하라고 하셨어요.”

‘아, 그러고보니······.’

클랜 파티라는 말을 듣자 기억 속에 묻혀있던 과거가 살포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데 도련님. 클랜 파티가 대체 뭐에요?”

“클랜은 우리 백작가를 중심으로 백작가 휘하에 충성을 바친 가신들을 뜻해. 도모스 자작처럼. 클랜 파티는 그런 가신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교류회같은거고. 보통은 백작가의 가주가 하는 경우가 많은데 형이 주최한 걸 보면······.”

“차세대 가주들의 교류회라고 볼 수 있겠군요.”

윌라드의 추측에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요안나가 물었다.

“그런 자리에 도련님을 굳이 참석 하라는 이유가 뭘까요? 물론 지금의 도련님이라면 당연히 참석해야겠지만 예전 도련님이라면 불참하는 게 더 나은 거 아닌가요?”

“그러게. 나도 그게 궁금하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요한은 사실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 녀석을 여기서 또 보게 될 줄이야······.’

“하아······.”

요한은 오랫동안 잊고있던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너무 파란만장한 기억에 묻혀 얼굴도 가물가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터져나오는 한숨을 막을 수는 없었다.

***

일주일 후.

요한은 몸이 별로 좋지 않다는 핑계로 되도록 방을 나서지 않았다.

별장에 또 다시 유배되기 위해선 되도록 사고를 크게 치고다녀야 하지만 이제는 맨정신으로 시녀들과 시종들을 예전만큼 괴롭힐 자신이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하지만 별장으로 돌아갈 명분을 얻기 위해서는 크게 한 번 뒤집어 엎어 줘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

요한은 그 D-day를 오늘로 잡았다.

바로 클랜 파티 말이다.

“자자, 마무리들 서둘러!”

“귀빈들 입장하십니다!”

시종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마무리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사이, 저물어가던 태양은 손님을 맞기 위해 붉은 융단을 하늘 위에 깔았다.

이내 총총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별빛들과 마찬가지로, 지상에도 형형색색의 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사람들이 파티장에 입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파티장으로 꾸며진 별관은 어느새 초대받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세상에··· 이 사람들이 전부 귀족이라니······.”

요안나는 평생 가도 한 번 보기 힘든 귀족을 이 자리에서 전부 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야 요한의 전담 시녀였기 때문에 다른 시녀들처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게 아니라 지금처럼 여유롭게 귀족들을 관찰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 사잔 도련님도 오셨네요?”

“그러게.”

평소 망아지같은 기질은 어디갔는지 어딘가 많이 불편하고 위축되어 보이는 사잔의 옆에는 드레스를 차려입은 가렛이 함께 있었다.

‘사잔 녀석을 감시하려고 따라온건가? 그래도 제법 드레스가 잘 어울리네.’

피식.

차세대 귀족 가주들답게 젊은 귀족들은 이곳저곳을 바쁘게 오가며 친목을 도모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요안나의 눈에도 그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시종분들보다 귀족분들이 더 바빠 보이는 것 같아요.”

“그렇겠지. 여기에 놀고 먹으러 왔다기보다는 다음 세대의 가주로서 영향력을 과시하고 다른 가문의 차기 가주와 친분을 쌓을 목적으로 왔을 테니까.”

“그런데 요한 도련님께는 좀처럼 안 다가오시네요.”

“악명이란 건 이럴 때 편리한거지. 대충 분위기 잡고 인상만 찌푸려줘도 알아서 피해 가거든.”

요한이 앉아있는 자리는 현재 비어있는 주최자석의 오른편이었다.

즉,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 지언정, 앉아있는 자리만으로 그가 요한임을 짐작하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저 녀석들의 진짜 목적은 내가 아니라 우리 형이야. 괜히 나같은 성질 더러운 놈한테 물려서 피볼 이유가 없지.”

백작가의 차남이란 참으로 애매한 위치다. 특히 하워드처럼 가문의 상속자인 장남이 매우 뛰어난 경우는 더 더욱.

이럴 경우, 차남의 용도는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략 결혼을 통한 가문과 가문의 연결 고리······.’

그리고 반대쪽 고리가 지금 막 파티장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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