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16화 개망나니 나가신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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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성웅성······.
자유롭게 거닐며 친목을 도모하던 귀족들의 시선이 파티장의 입구로 향했다. 파티장에 들어서는 한 여성 때문이었다.
보통 파티에 초대받은 귀족 여성들은 자신의 피앙세나 남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피앙세나 남매가 없다면 피앙세가 없는 남자 귀족이나 자신의 호위기사에게 에스코트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것은 숙녀를 대하는 귀족들의 매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파티장에 들어서는 여성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비단 호위기사를 대동하고도 혼자서 입장했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오~ 무척 아름다운······.’
꼬집!
“아얏!”
피앙세가 있는 남자들은 그녀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애써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피앙세가 없는 남자들은 눈을 반짝이며 순식간에 그녀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저 하늘의 별빛보다 아름다운 여인이여.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오?”
“내가 지금 살아있음은 이 순간, 그대를 만나기 위해서였나 봅니다.”
“크림포드 클랜 최고의 기사가문, 라펠트 자작가의 후계자. 안드레오 라펠트라 하오. 마드모아젤. 오늘밤, 나를 선택한다면 그대에게 최고의 밤은 선사해드리리다.”
피앙세가 없는 남자들은 지금이 기회다 싶어 다른 여성에게 작업을 걸던 남자들조차도 여인에게 달려가 호감을 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금세 여인의 주변에는 짐승같은 수컷 귀족들로 득실거렸다. 그들에게 바람맞은 젊은 여성들은 남자들을 욕하며 여인을 질투하기도 했다.
요안나도 그런 여인의 미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아름다운 분이시네요. 제가 귀족 신사였다면 저도 분명 용기를 내서 다가갔을 거 같아요.”
“그래봤자 헛수고지. 금새 제 풀에 지쳐서 나가 떨어질껄?”
“네? 도련님은 저분을 아세요?”
“아직은 몰라.”
‘······?’
마치 아는 것처럼 얘기해놓고 아직은 모른다는 요한의 알 수 없는 대답을 잠시 접어두며 요안나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요한의 예언은 적중하였다.
어떤 노력에도 시선조차 주지않는 여인의 고고한 모습에 젊은 귀족들은 제풀에 지쳐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한들, 꺾지 못하면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항상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다.
‘네년이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여인을 스산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안드레오의 시선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솟았다.
이미 자신의 친구들은 모두 작업을 포기하고 이쪽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당연히 안드레오의 성공 여부였다.
물론 안드레오 역시 여인에 대한 호감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하지만 호감이 사라진 것과 포기할 수 없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친구들 중에서 리더는 안드레오라고 자타가 공인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다른 녀석들과 같은 결말을 맺는 건 안드레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반드시 네년을 오늘밤, 내 침대로 끌고와 주마!’
순수한 호감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쓸데없는 오기가 가득 들어차는 순간이었다.
“좋습니다. 그대가 나에게 이성적으로 관심이 없다는 걸 인정하지요. 하지만 명망있는 자제분들 중에서 내가 모를 사람은 없을 터. 그런데도 내가 그대를 아는 바 없으니 혹 최근에 봉작받은 귀족가의 여식이 아닙니까?”
안드레오는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없게끔 그녀에게 자신의 말을 전달했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지위와 위상을 그대가 이용하는 것도 그대와 그대 가문에게 있어 나쁘지는 않을 터. 우리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취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실례하겠습니다.”
여인은 그런 안드레오의 말에 살짝 고개를 숙인 뒤,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그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처음 그녀가 움직이지 않았던 것도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움직이지 못 했던 것일 뿐, 더 이상 통행을 방해받지 않자 미련없이 자리를 떠나려 한 것이다.
빠직!
그런데 안드레오에게는 이것이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으로 비춰진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스트레스가 잔뜩 쌓여있던 와중에 여인의 차갑고 냉담한 태도는 그야말로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격이었다.
“이 같잖은 계집년이 감히 나를 누구라고······!”
덥썩!
안드레오는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그녀의 어깨를 억세게 움켜쥐었다. 평범한 여성이라면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아버릴 정도로.
“어머어머! 어쩜 좋아······. 빨리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요안나는 깜짝 놀란 얼굴로 안절부절하자 요한이 피식 실소를 터트리며 대꾸했다.
“그러게, 더 이상 개쪽당하기 전에 빨리 말려야 할 텐데.”
“네? 그게 무슨······.”
짝!
그 순간, 찰진 소리가 파티장 전체에 울려퍼졌다. 심지어 그 소리가 얼마나 크고 찰지게 울려퍼졌는지 오케스트라도 연주를 끊고 멍하니 쳐다 볼 정도였다.
마치 파티장 전체에 시간이 얼어붙어버린 듯, 모두가 놀란듯 경악한 얼굴로 여인과 안드레오를 지켜보았다.
고개가 팩 돌아간 안드레오는 눈을 부릅뜨고 다시 고개를 돌려 여인을 쳐다보았다.
얼얼하게 화끈거리는 자신의 왼쪽 뺨과 그녀의 돌아간 오른팔이 현재 자신이 무슨 짓을 당했는지 명명백백하게 가르쳐주었다.
‘내, 내가 따귀를 맞았다고?’
안드레오가 놀란 이유는 그녀가 자신에게 느닷없이 따귀를 때릴 줄 몰라서가 아니었다.
안드레오는 스스로 소개한 것처럼 크림포드 백작가의 기사 가신인 라펠트 자작가의 후계자였다.
아무리 흥분했다고 해도 평범한 여성의 따귀 정도는 눈을 감고도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기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눈앞의 여인이 날린 따귀에는 반응도 못 해보고 얻어맞았으니 놀랄 수밖에. 그리고는 이내 주변 상황이 한 눈에 들어왔다.
어쨌거나 자신은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인에게 따귀를 맞은 한심한 남자로 격하되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이내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야, 야! 저 자식 또 폭주한다!”
“하여간, 요한 도련님만큼은 아니지만 저 자식도 어지간히 돌아이야. 실력만 없었어도 후계자에서 진작에 잘렸을 놈인데.”
“헛소리 말고 빨리 말려!”
상황을 지켜보던 안드레오의 친구들이 그의 이상을 눈치채고 서둘러 나서서 말리려던 순간······!
철썩!
“헐······.”
“이게 무슨······.”
“내가 지금 뭘 본 거냐?”
안드레오도, 그를 말리려던 친구들도, 그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모두가 다시 한 번 그 자리에서 꽁꽁 얼어붙었다.
여인이 손에서 하얀 장갑을 벗더니 안드레오의 얼굴에 정면으로 그것을 집어 던졌기 때문이다.
귀족들간에 그 행위는 결투를 신청한다는 뜻으로 여성 귀족이 남성 귀족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경우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실수가 아님을 증명하듯 여인은 안드레오의 당황한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결투를 신청했다.
“혈기왕성한 신사분께서 저에게 무리하여 추파를 던지신 것까지는 이해하고 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계집이라 폄하하며 힘으로 저를 욕보이려 하신 점은 결코 간과할 수 없습니다. 라펠트 자작가의 안드레오 경이라고 하셨나요? 제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당신에게 결투를 신청하겠습니다.”
······.
“푸하하하하!!”
모두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 해 당황하는 사이, 요한의 박장대소만 크게 울려퍼질 뿐이었다.
***
“어떡해요. 도련님? 이럴 때 하워드 도련님이 계셨다면······.”
요안나는 발을 동동굴렀다. 입장 상 요한이 나서서 말릴 수는 없었으니 하워드가 있었다면 두 사람의 싸움을 충분히 말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귀족들이 이 상황을 진징시킬 수는 없었다.
라펠트 자작가는 도모스 자작의 가문인 히로벤칼 가문만큼이나 백작가에서 상당한 권위를 가진 클랜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잖아. 지금은 파티 개회식 전이니까.”
파티 개회식이 시작되고 주최자가 등장하면 아무래도 사람들의 이목과 신경은 주최자에게 집중 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지금처럼 개회 전에는 손님들끼리 자유롭게 사교를 가지라고 일부러 주최자가 시간을 주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귀족들의 파티는 단순히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 자리가 아닌, 정치의 연장선이었으니까.
“그래도 백작가의 후계자가 주최한 자리에서 이만한 난동을 부릴 진상 새끼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안드레오라고 했나? 나랑 닮은 구석이 많은 친구야. 물론 나만큼은 아니지만.”
“그건 자랑할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도련님. 그보다 이 상황을 계속 두고만 보실 생각이세요? 잘못하다가는 큰일나겠어요!”
여인측과 라펠트 자작가 측 기사들도 사태를 주시하며 일촉즉발의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백작가 측의 사병들 눈치를 보느라 당장 움직이지 못 했을 뿐이지.
“그러게. 하는 수 없지. 에휴······.”
“도련님?”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직접 단상을 내려가 두 사람에게 향했다.
요한이 움직이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비켜 서면서 그에게 길을 만들어 주었다. 괜히 그의 길을 막고 있다가 시비가 걸리면 피보는 건 자신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드레오와 여인의 앞에 도착한 요한.
잔뜩 독이 올라있던 안드레오도, 그런 그를 주시하며 언제든지 호위기사에게 건내받은 검을 뽑을 준비를 하고 있던 여인도 요한에게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그가 희대의 개망나니고 엮이기 싫은 인간 1순위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나왔는데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안드레오 라펠트가 요한 도련님께 인사 올립니다.”
“리리아 아반가르디가 요한 도련님께 인사 올립니다.”
‘아반가르디?’
요한의 등장으로 인해 처음으로 그녀의 성과 이름을 알게 된 안드레오는 고개를 숙인채로 크게 눈살을 찌푸렸다.
아반가르디 남작가는 상인 출신의 귀족으로 최근에 봉작을 받아 크림포드 클랜에 합류한 말단 귀족이었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천민이었던 계집년이 감히 나에게 모욕을 줬다 이 말이지?’
으드득!
안드레오는 이를 갈았지만 복수는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음을 짐작했다.
‘이 자리에 저 개망나니가 찾아온 이유야 뻔하지. 한 시라도 빨리 리리아를 안고 싶다 이건가?’
아무리 리리아의 자존심이 고고해도 백작가 차남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을 터. 오히려 안드레오는 속으로 비웃었다.
요한과 동침한 여자들 중에 제대로 걸어나온 여자가 없다는 소문은 이미 귀족들 사이에 파다했기 때문이다.
리리아도 그런 상황을 예감했는지 표정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의자랑 와인 가져와라.”
요한의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빠르게 움직여 그가 앉아있던 의자를 가져왔다.
그러자 의자에 앉은 요한이 두 사람을 보며 의뭉을 떨었다.
“뭐 해? 안 싸워? 기껏 1열에서 구경하려고 찾아왔더니.”
“네?”
“그게 무슨······.”
두 사람이 이해하지 못 하자 요한은 인상을 찌푸리며 리리아를 재촉했다.
“싸우라고. 자신있으니까 애비가 작봉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남작가의 계집아이 따위가 안드레오한테 싸움을 건 거 아니야. 라펠트 자작가가 어떤 가문인지는 알지? 감히 백작가의 귀중한 인재에게 네까짓 년이 무례를 저질러?”
“도, 도련님······!”
안드레오는 자신을 인정해주며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치켜세워주는 요한의 모습에 감동을 금치 못 했다.
그러면서 지난날 요한을 욕했던 수많은 날들을 반성했다.
“만약 네년이 진다면 이 자리에서 알몸으로 무릎꿇고 안드레오에게 사죄하거라. 알겠느냐?”
요한이 내건 조건에 사람들은 눈살을 치푸리며 속으로 요한을 욕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악랄한 놈······! 천하의 개망나니 같은 놈! 말릴 생각은 안 하고 오히려 싸움을 부추기다니······!’
‘살을 빼고 조금은 인간다워졌나 싶었더니 멀쩡한 건 겉모습 뿐이었구나.’
‘귀족 아가씨에게 여기서 알몸으로 사죄하라고? 차라리 혀를 빼물고 죽으라 하지! 저런 말도 안 되는······.’
아무리 낮은 직급의 귀족이라고는 하나, 귀족 숙녀에게 이런 자리에서 알몸으로 사죄하라는 조건은 곧 죽으라고 등을 떠미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어때 자신없어? 자신없으면 지금 여기서 내 가랑이를 핥는 것으로 내 너를 사면해주도록 하마.”
요한은 앉아있던 중에 다리를 넓게 벌리며 씨익 웃어보였다. 그에 리리아는 결의에 가득 찬 얼굴로 자신있게 대답했다.
“명예를 설욕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드시 요한 도련님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렇다는군. 안드레오. 나는 저 콧대높은 계집이 알몸이 되어 울면서 네 녀석의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만약 백작가의 검이라 불리는 라펠트 자작가의 후계자가 이제 막 봉작된 상인 남작의 여식 따위에게 지는 불상사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할 텐가?”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은······.”
“당연히 없어야지.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 손으로 자네를 직접 때려죽일 생각이니까. 백작가에 그런 나약한 검은 필요 없거든. 안 그런가? 안드레오 라펠트.”
순간, 요한의 두 눈과 마주친 안드레오는 심장을 저미는듯한 한기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평소와 같은 탁한 두 눈을 보고 자신이 착각한 거라 생각하고 흘러 넘기며 힘차게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도련님.”
“좋아! 그런 자네를 믿고 이번 대결에 내 분신과도 같은 검을 빌려주도록 하지.”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옆구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더니 안드레오에게 하사했다.
“아버지께서 내 성인식에 특별히 선물해주신 검일세. 이 검을 나라고 생각하고 소중히 사용하도록.”
“이, 이런 귀한 검을······! 감사합니다!”
안드레오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공손히 요한의 검을 받아들었다.
다른 때였다면 군주가 기사에게 자신의 검을 하사하는 멋진 장면이었겠지만 그 목적이 여인을 핍박하기 위함이란 게 다른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파직.
검은 하사받는 순간, 안드레오의 눈가에서 미세하게 경련이 일어났다.
‘큭! 방금 살짝 팔이 저릿한 것 같았는데··· 기분 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