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18화 하이 리스크 슈퍼 리턴!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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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이렇게 돼 버렸네. 하하하······.”
별장으로 돌아가는 길, 요한은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휴······.”
요안나는 그런 요한의 모습에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본가에서 지원도 끊겠다는데.”
“글쎄, 뒷마당에 농사라도 지어야 하나······.”
“농사는 하실 줄 아시고요?”
“에이~ 이몸을 뭘로 보고.”
요한이 자신있게 콧대를 치켜들자 요안나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요새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요한의 모습을 보면 농사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농사도 할 줄 아세요? 정말?”
“당연히 모르지! 그래도 감자 심는 건 내가 또 전문이지.”
요한은 전투 노예가 되기 전, 감자밭에서 혹사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감자를 심을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놀랍네요. 그렇다고 평생 감자만 드시고 사실 생각은 아니시죠?”
“일단은 고민을 해 봐야지. 아무튼 나야 그렇다 치고 너와 윌라드에게는 미안하게 됐다. 내 괜한 사정 때문에 직장을 잘리게 된 셈이니까.”
요한이 사과하자 요안나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야 본가에서 해고당한거지 도련님이 해고하신 건 아니잖아요?”
“설마 나더러 고용하라는 거야?”
“그럼 혼자서 감자 심을 생각이셨어요? 그 넓은 저택 청소는 또 언제 하고요? 보나마나 일주일도 안 지나서 유령의 집처럼 변할걸요.”
요안나가 유령 흉내를 내며 귀엽게 겁을 주자 요한이 피식 웃었다.
“월급이 감자인데 괜찮겠어?”
“상관없어요. 저도 우리 식구들도 감자 좋아하니까. 그리고··· 어떤 키다리 아저씨가 보내준 약 덕분에 우리 오빠가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 어깨도 한결 가벼워졌달까, 덕분에 계속 도련님을 모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나도 고마워해야겠네. 그 키다리 아저씨한테.”
피식.
푸흡!
요한도 요안나도 서로의 얼굴을 보다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 하고 그대로 터트렸다.
“저도 잊지 마십시오. 도련님!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도련님을 따를 작정이니 늙었다고 버리시면 안 됩니다!”
“그래. 고맙다. 윌라드!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마차 밖에서 윌라드의 다급한 목소리가 안으로 울려 퍼졌다. 요한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소리치다가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했다.
돈으로는 한 번도 채울 수 없었던 이 공허함이 사람으로 채워지는 이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
별장으로 돌아온 요한은 별장을 지키는 병사들을 제외하고 모두 떠나버린 별장을 둘러보면서 착잡함을 감추지 못 했다.
“빨리도 정리하셨네. 돈이 될만한 물건들도 싹 다 치우셨어. 해고당한 아이들은? 할만한 일을 금방 찾기는 어렵겠지?”
“아마 그럴겁니다. 그 아이들 대부분이 요안나보다 힘들면 힘들었지 쉬운 환경은 아니니까요. 이곳에서 배우고 한 일이 가정일인데 그것만 가지고 여기서 벌었던만큼 벌어 가족들을 부양하는 건 아무래도······.”
“그럼 어쩔 수 없지. 요안나.”
“네. 도련님.”
창고에서 감자 모종을 옮기던 요안나의 모습에 요한은 어색한 웃음을 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해고당한 아이들의 집주소 알지?”
“그럼요! 그런데 그건 왜요? 그 아이들도 도련님을 좋아하긴 하지만 감자만 캐서는 생활이 어려울 텐데······.”
“걱정마. 와서 감자 심으란 소리는 안 할 테니까. 지금까지와 똑같은 조건으로 고용한다고 해. 대신 낮에 와서 일하면 혹시라도 눈에 띌 수도 있으니까 밤 근무로 변경하고.”
요한이 시종들을 다시 고용하려는 건 그들의 사정은 안타깝게 여긴 이유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자신의 변화를 알고 있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미리 충고는 해뒀지만 그래도 혹시 상황이 열악해지면 어떤 말을 꺼낼지 알 수 없으니까. 당분간은 옆에 두는 게 최선이겠지.’
“정말요?! 그럼 우리 감자는 안 심어도 되는 거예요? 근데 돈은 어디서······.”
요한은 요안나가 가지고 있던 감자 모종 포대를 대신 짊어지더니 뒷마당으로 향하며 대답했다.
“그걸 지금부터 열심히 생각해 봐야지.”
***
요한이 별장으로 돌아오고나서 일주일이 지난 어느날 밤.
도모스 자작성의 영주 집무실에서 골치아픈 서류들을 검토하던 겔러핀이 순간 안광을 번뜩이며 은밀히 옆으로 손을 뻗었다.
그가 손에 쥔 것은 다름아닌 검이었다. 돌연 은밀한 인기척이 근처까지 다가왔음을 감지한 것이다.
‘암살자? 첩자? 그렇다고 한다면 누가······. 아니, 쓸데없는 고민이다. 어차피 잡아서 심문하면!’
스릉!
그 순간, 검집에서 빠져나온 겔러핀의 검이 섬광을 번뜩이며 공간을 가로질었다. 인기척이 느껴진 바로 그 지점이었다.
그런데.
턱!
파지직!
“감이 더 좋아진 것 같은데? 실력도 훨씬 늘었고.”
“푸하! 아, 알파 경!”
겔러핀은 은밀한 침입자가 자신의 검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집어버리는 것을 보고 숨이 멎었다가 이내 푸른 스파크와 익숙한 야행복이 보이자 참았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깜짝 놀랐잖습니까.”
“책상 업무만 보느라 실력이 녹슬진 않았을지 걱정돼서 말이야. 필요한 인재들은 아직도 못 구한건가?”
겔러핀은 납검한 뒤에 책상으로 돌아가 앉으며 대답했다.
“그 반대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쓸만한 인재가 많더군요. 조금만 교육하면 곧바로 현장에서 쓸 수 있는 녀석들도 많았고요. 문제는 그 이상으로 도모스 이 미친 작자가 영지를 엉망으로 운영했다는 겁니다.”
“파도 파도 괴담뿐이구만. 우리 영주님은.”
“예. 정말이지 지금껏 영지가 망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악착같이 백성들을 착취해서 루멜 후작에게 가져다 바친 돈이 무려 20만 골드에 달하더군요.”
“루멜 후작? 귀족파의 거목이라는 그 작자?”
겔러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크림포드 백작가에 뇌물이 통하지 않다보니 루멜 후작측으로 노선을 변경하려 했던 모양입니다. 만약 이 사실이 백작가에 알려졌다면······.”
“자작령은 불바다가 됐겠지. 도모스 자작과 일가는 불바다가 된 영지를 두 눈 뜨고 지켜보다 마지막에 사지가 찢겨 죽었을 거고.”
귀족 클랜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실패가 아니라 배신이다.
명령에 실패한 가주는 최고형이 자신의 목숨이다. 하지만 배신을 꾀한 가주는 최하형이 가문을 포함한 영지 전체의 몰살이었다.
자신을 저주하는 영지민들의 처참한 얼굴과 비명소리를 눈앞에서 보고 들으며 괴로워하다가 마지막에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멍청하면 용감한건지··· 아무튼 방심하지말고 사태를 지켜보자고. 경우에 따라서는 루멜 후작이 이걸 이용할 수도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하지만 작금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영지 운영 자금입니다. 영지의 곳간이 텅텅 빈 건 둘째치고 당장 거둘 세금도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작년과 올해는 흉작이 좀 심하긴 했지.”
도모스 자작령의 생계는 농업이었다. 때문에 농사가 풍년이 들면 그만큼 영지도 부유해지지만 반대로 흉작이 들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이다.
“도모스 자작령 자체가 기름진 토양에 축복받은 땅이라 흉작 1,2년 가지고는 티도 안 날 텐데, 하여간 도모스 이 새끼는 진짜······.”
“후우······. 까놓고 말해서 지금 당장이라고 가서 대가리를 부숴버리고 싶은 걸 매일매일 참고 삽니다.”
문제는 풍년에 모아둔 식량을 모두 팔아 뇌물로 갖다 바쳤으니 졸라맬 허리띠도 팔아서 운영 자금으로 써야 할 판국인 것이다.
“현재는 알파 경이 양보해주신 장물을 처분한 돈과, 도모스 자작의 비자금을 몽땅 털어서 어찌어찌 막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것도 세 달 후면 바닥입니다. 만약 여기서 무리하게 세금을 걷게 된다면 최악의 경우······.”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지?”
겔러핀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농사가 풍작이 확실하다 쳐도 수확을 얻기까지 1년은 더 남았다. 심지어 내년마저 흉작일 경우에는 더욱 더 악몽같은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지금 당장 돈을 빌리던가, 없는 돈을 벌어야 하는데 다른 영지에서 돈을 빌리려면 사정을 설명해야 하니 이 경우는 일단 패스. 그렇다면 없는 돈을 벌어야 하는데 농사 말고는 쓸데도 없는 땅을 어떻게 해야 하나.’
벽에 걸린 자작령의 지도로 다가간 요한은 턱을 쓰다듬으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중.
‘응?’
자작령 너머의 무언가를 발견한 요한의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가만, 여긴······.’
“부대장. 여기 말이야.”
요한이 지도로 어느 지형을 가리키자 눈을 돌린 겔러핀이 알아보고 설명했다.
“아, 구르칸 산맥이요? 이 근방에서는 악명높은 산맥이죠. 신기한 약초나 좋은 목재는 많다고 하는데··· 몬스터들이 워낙 많고 무엇보다 구르칸 오크들의 영역이라서 거기는 눈독도 들이지 않는 게 좋아요. 돈이라면 브론즈 한 닢도 아까워하는 상단들조차 큰돈 써가며 그곳을 돌아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겔러핀이 산맥과 영지 사이에 있는 구르칸 협곡을 가리키며 말을 덧붙였다.
“설령 갈만하다고 해도 협곡을 흐르는 급류가 워낙 강하고 깊어서 별도로 다리를 건설하지 않는 한 건너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물론 그 덕분에 구르칸 오크들이나 몬스터들이 이쪽으로 넘어오지 못하는 것도 맞지만요.”
‘구르칸 산맥··· 구르칸 산맥이라······.’
요한은 구르칸 산맥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이 머릿속을 간질이느라 협곡에 대한 설명은 거의 듣지도 못 했다.
그는 머릿속을 간질이는 이 기억이 지금 이 문제를 타파할 열쇠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그 순간.
번쩍!
진흙 속을 헤집어 진주를 찾는 사람마냥 기억의 강을 거슬러 올라건 요한의 머릿속에 스파크가 튀었다.
“아, 이런 등신! 왜 그 중요한 걸 잊고 있었던거지?!”
“네? 갑자기 뭐가 생각이 나셨다는 말씀이신지······.”
“구르칸 산맥 말이야! 저게 열쇠가 맞았다고! 아니, 열쇠 정도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 저기는 터무니없는 보물산이 될 수도 있다!”
“네?! 보물산이요? 알파 경이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건지 당최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당황스러워하는 겔러핀에게 요한은 마치 생일 선물을 눈앞에 둔 아이처럼 흥분하며 대답했다.
“겔러핀 부대장. 잘 들어. 지금부터 한 달 뒤에 나는 구르칸 산맥으로 갈 거야. 그러니까 부대장은······.”
요한의 계획을 전해들은 겔러핀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지,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수만 명의 목숨을 걸고 장난칠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잖아.”
“하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그러니까 가는거야. 위험한만큼 가치가 있는 곳이니까.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해 줄게. 일단은 나를 믿고 준비해 줘.”
겔러핀은 확신에 찬 요한을 믿기로 결심했다. 애초에 이런 고민조차 요한이 없었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구르칸 산맥과 구르칸 오크······.’
회귀하기 전에 요한은 제국의 영웅으로서 구르칸 산맥을 찾은 적이 있었다.
구르칸 산맥을 토벌하고 그곳에 대로를 건설하면 물자와 병사들의 이동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르칸 산맥의 몬스터들은 다른 지역의 몬스터들보다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몬스터들조차 피해다니는 녀석들이 있었으니··· 바로 구르칸 오크족이었다.
사실 요한이 곧바로 떠올리지 못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당시 제국의 구르칸 오크 토벌대 대장이었던 요한은 녀석들에 대한 평가를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강적으로 구분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아인종을 배척하는 제국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토벌 할 수밖에 없었지만······!’
구르칸 오크들을 떠올리던 요한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감돌았다.